숲의 백미…소나무·히말라야시다 등과 군락 이뤄 '아홉산'
부산행 열차를 타고 달리다보면 바로 앞 정거장이 구포역이다. 구포역에서 양산 방향으로 차를 타고 약 40분 가량 가다보면 기장군으로 가게 된다. 기장군 철마면에는 무엇보다도 산봉우리가 아홉 개라 해서 불리는 아홉산 숲이 있는데, 뭐니 뭐니 해도 아홉산 숲(입장료 \5,000)에서 만나게 되는 맹종죽 숲은 백미라 할 수 있다.
그 맹종죽 숲과 9대째 살아온 문씨 집안의 숲(051 721 9183)을 아끼는 마음도 고스란히 그 숲에서 함께 숨을 쉬고 있다. 숲을 좋아하는 사람이면 한번쯤 방문해 숲의 진면목을 직접 체험해보는 것은 더 없이 큰 기쁨이 아닐 수 없다.
아홉산 숲에 들어서면 오래된 정원과 정감 넘치는 한옥집이 눈에 들어오는데, 대숲이 내는 소리와 새소리들은 잠시 마음을 내려놓게 하고, 몸과 마음은 자연의 일부가 되고 만다.
정원에는 흔하게 볼 수 없는 약 50그루의 독특한 형태의 대나무가 눈에 띠는데, 줄기가 마치 거북등처럼 생긴 구갑죽이란 진기한 대나무를 만나게 된다. 한옥집을 우측에 두고 길게 늘어선 왕대숲 길을 지나게 될 때면 앞으로 어떠한 숲의 모습이 눈앞에 펼쳐질까 하는 가슴 뛰는 설렘은 누구도 어쩔 수 없으리라.
약 13만 평 되는 아홉산 숲에서 만날 수 있는 나무의 종류는 대략 50여 종에 이르며, 그 중 아홉산 숲을 대표할 수 있는 나무들은 맹종죽과 더불어 층층나무, 소나무, 히말라야시다, 삼나무, 벚나무류, 굴참나무, 상수리나무와 편백이 높은 숲의 층을 이루고 있다. 작은 키로 숲의 아랫면에 접영하고 있는 눈주목, 개옻나무, 진달래, 어린 층층나무들이 아홉산 숲의 아름다움을 그려내고 있다.
이미 여기저기 고사목이 되어버린 나무들과 길을 내면서 뿌리 일부가 잘려짐으로 인해 가벼운 바람에 쉽게 넘어진 히말라야시다의 모습이나 우람한 소나무들이 맹종죽들에 의해 압박을 받으며 살아가는 모습은 그야말로 자연의 참 모습을 솔직하게 보여준다. 자연이 늘 감동적인 이유는 바로 그 솔직함에 있다. 그 속에서 삶과 죽음은 하나로 이어진다.
히말라야시다나 전나무가 그렇듯이 암꽃은 늘 수꽃 위에서 자란다. 암꽃은 화려한 자태로 수꽃 위에서 정자를 기다리는 모습은 어디 하나 부끄러움도, 숨김도 없는 그야말로 솔직함이다. 그들은 바람에게도, 수많은 곤충이나 새들에게도 쑥스러움이 없는 그들이야말로 자연이다.
소나무가 맹종죽에 의해 사라져가는 반면 아홉산 숲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히말라야시다, 굴참나무와 상수리나무의 어린나무들이 미래의 시간을 위해 힘차게 자라고 있다. 아홉산 숲은 늘 그렇게 수백 년을 반복하면서 찾는 이들에게 감탄과 탄성을 자아내게 했다. 단지 그 가치를 만끽하지 못할 뿐이지.
무엇보다도 아홉산 숲의 상징이며 백미라 할 수 있는 맹종죽이란 이름의 유래는 효자 맹종이 겨울철 죽순을 캐어서 어머님께 드렸다는 전설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이때부터 죽순을 식용으로 할 수 있다는 의미에서 맹종죽을 죽순대라고도 부른다.
이 맹종죽은 높이 자라는 것은 무려 20m에 이르며, 둘레는 약 90cm에 달한다. 우리나라에는 14종의 대나무가 자생 또는 인위적으로 심겨져 살고 있는데, 그 중 중국으로부터 들어온 맹종죽과 왕대만이 높이 자라는 특성을 지니고 있다.
대나무는 엄격히 말해 나무로 분류하지 않는다. 일찍이 고산 윤선도는 '나무도 아닌 것이 풀도 아닌 것이 곧기는 어찌 그리 곧고 속은 어찌 비었는가, 저렇게 사시사철 푸르니 그를 좋아하노라'며 대나무를 노래한 것처럼, 대나무는 나무로 분류하지 않았다. 나무라 함은 매년 자라면서 나이테를 만들 수 있는 형성층이란 어린 세포가 존재하는데, 대나무에는 바로 그 형성층이란 세포가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한번 자라 성장이 멈추면 그 크기 그대로 살다 죽는다.
대나무가 나무라 불릴 수 없는 또 다른 이유는 모든 나무는 씨앗에서 발아하는 순간 떡잎이 두 개(활엽수), 또는 떡잎이 2개 이상(침엽수)인 반면, 대나무는 떡잎이 하나인 외떡잎식물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나무는 나무도 아닐 뿐 아니라, 들풀에도 속하지 않는다. 벼나 밀과 같은 외떡잎식물로 분류하는 사초류에 속한다.
대나무는 기후가 온화한 중부 이남 지역에서 잘 자라며, 땅속줄기는 옆으로 뻗어 마디에서 뿌리와 죽순이 나온다. 습도가 높은 땅에서 생장이 빠르고, 좀처럼 꽃을 피우지 않는다. 만일 대나무 숲에서 일제히 꽃을 피울 때는 토양의 영양분이 부족하게 됨으로 인해 모두 고사하게 되는 현상을 나타낸다.
대나무는 한번 자라기 시작해서 수십 일 내에 다 자라고 더 이상 굵어지지 않고 오로지 단단해지기만 한다. 맹종죽은 약 4주 동안 생장하며, 대나무의 자람을 보고 ‘우후죽순처럼 자란다‘란 속담이 유래했듯이 하루에 무려 80cm까지 자랄 정도다. 1시간에 자라는 소나무의 자람보다 무려 30배나 빠른 속도로 한꺼번에 자라고 더 이상 자라지 않는다.
대나무가 그렇듯이 맹종죽 또한 굵기가 서로 다른데, 이것 또한 죽순이 올라오는 당시의 굵기로만 자라고 더 이상 굵어지거나 하는 현상을 보이지 않는다. 대나무에 마디가 있는 이유는 마디가 없다면 바람에 잘 부러질 수 있기 때문이며, 마디와 마디 사이가 비어있는 이유는 대나무의 생장속도가 빠르다는 점에서 찾아볼 수 있다.
아홉산 숲에서는 나이가 무려 80년에서 100년 정도로 보이는 거대한 소나무숲을 만나게 되는데, 다른 나무들의 자람이 좋아 소나무는 쇠퇴현상을 보이게 된다. 그 중 특히 소나무숲 아래에 누워서 자라는 눈주목이 건조한 소나무 토양을 그나마도 습하게 유지하고 있는 절묘한 현상을 나타내고 있다.
고향이 히말라야이며 이름은 시다(Cedrus)이다.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은 1920년대 후반부다. 사시사철 모여 나는 푸른 잎을 달고 있어 관상적 가치가 높다. 단지 뿌리의 발달이 깊지 않은 천근성을 나타내기 때문에 바람이나 지반의 변화에 쉽게 넘어지는 경향을 보이는 경우가 있다.
비교적 따듯한 지방에서 잘 자라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는 중부 이남 지방에서 자주 만날 수 있는데, 대구의 동대구역쪽으로 달리는 가로수가 대표적인 히말라야시다 길이다. 잎갈나무와 매우 닮았다 해서 개잎갈나무라고도 한다. 하지만 모여 나는 잎의 모양이 비슷하나 잎갈나무는 가을이면 침엽수임에도 불구하고 모든 잎이 떨어지지만, 개잎갈나무는 늘 푸르다.
전나무나 구상나무처럼 구과가 하늘을 보며 가지에 앉아있는 특징을 지니고 있으며, 종자에는 날개가 있다. 대부분의 꽃은 봄이나 초여름에 피워내지만, 히말라야시다는 여름도 아닌 늦은 가을에 꽃을 피우는 자신만의 계절을 즐길 줄 아는 놈이다.
아홉산 숲의 특징이라면 맹종죽과 더불어 살아가는 소나무와 히말라야시다이지만, 그밖에 곳곳에서는 층층나무들이 군락을 이루며 살아가는 곳을 만나게 된다. 층층나무는 나무 이름에서 특징을 알 수 있듯이 나뭇가지들이 마치 마디를 이루듯이 가지들이 돌려나면서 자라 올라가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가지의 맨 끝부분이 대부분 붉은 빛을 띠고 있어 쉽게 식별이 가능하다. 빛이 적은 응달에서 자라는 가지는 붉은 색소를 그다지 많이 볼 수 없다. 한 가지에서도 가지의 앞뒷면의 색깔이 다른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또한 아홉산 숲에서 빼놓을 수 없는 대표적인 나무가 삼나무다. 삼나무는 원산지가 일본이며, 우리나라에 인공적으로 심기 시작했으며, 고향인 일본에서는 60m 이상까지도 자라는 나무이기도 하다.
삼나무숲을 거닐면서 삼림욕을 한층 높일 수 있다는 일반적인 상식도 있다. 삼나무는 늘 푸른 잎을 달고 있으며, 매우 곧게 자라는 특징이 있기 때문에 경제성이 높은 나무로 평가를 받아왔다.
그밖에도 무려 50여 종의 크고 작은 나무들이 자라는 이곳은 우리나라에서 만나기 힘든 개인이 소유하고 오랜 세월 동안 지켜온 숲이기 때문에 마치 맹종죽의 우람하고 곧은 것처럼 그 가치는 더욱 더 높아 보인다.
생태적 가치를 찾아 물결처럼 움직이고 있는 오늘날의 우리에게 아홉산 숲의 그 가치는 직접 찾아보지 못한 사람이면 함께 공유할 수 없는 느낌일 것이다. 가족과 함께 한적한 곳을 찾아 자연을 음미하고픈 사람에게 추천하고 싶은 곳이다. 다만 다음을 위해 흔적도 없는 발걸음은 필수다.
조용히 아홉산 숲이 품어내는 맛과 향기와 그 기세를 한 줌 담아 보는 것도 물질문명에 찌든 우리에겐 삶의 큰 활력소가 될 것이며, 무엇보다도 아이들에게 자연의 경이로움과 호연지기를 만끽하게 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월간산 남효창 이학박사
아홉산 산행기
정상의 높이는 해발 365m로 낮은 편이지만 산세가 오목조목해 걷는 맛이 제법이다. '산은 걷는 게 아니라 오르는 것'이라 말하시는 분들. 들머리에서 최초 정상에 이르기까지의 경사는 꽤 가파른 편이어서 오르는 맛도 있다. 반면 정상을 지나면 평평한 숲길이 이어져 가족들이 함께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산행 코스이기도 하다.
무엇보다도 아홉 개의 봉우리를 오르고 내리며 타는 재미가 일품이다. 또 있다. 산행 중 곳곳에서 회동수원지의 전경을 감상할 수 있는데, 조금씩 다른 각도에서 보는 호수의 풍경이 산행을 더욱 흥미롭게 한다.
아홉산은 부산 기장군 철마면 장전리에서 금정구 회동동 회동수원지 방향으로 길게 드러누워 있다. 산세라는 것이 이리 휘고 저리 휘기 마련이건만 아홉산의 능선은 거의 직선으로 뻗었다.
부산 기장군 철마면 장전리에 위치한 식당 '밤나무집' 앞마당을 들머리로 해 제1봉에서 제9봉까지 아홉 개의 봉우리를 지나 날머리인 금정구 회동동 동대재 앞까지 5.1㎞의 거리를 3시간 동안 걸었다. 3시간이면 가족 산행으로도 적당한 시간이다.
산행은 '밤나무집' 뒤편 포장길을 걸어 올라가면서부터 시작된다. 묘지 왼쪽으로 난 산길로 접어들면 경사가 급격히 가파르게 변한다. 이후 20분 정도는 가파른 경사길. 다행히 '갈 지(之)' 자로 길이 나 있어 경사를 조금이나마 완만하게 한다. 아이들과 함께라면 10분 정도 오른 후 잠시 쉬어가는 것도 좋겠다. 중간쯤 큰 바위로 된 작은 봉우리를 왼쪽으로 돌아 올라가면 시야가 확 트인 곳이 나온다. 철마면 일원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가파른 길이 끝날 무렵 제1봉에 도착한다. 아홉 개의 봉우리 중 가장 높은 곳. 해발 365m의 높이다. 따로 정상석은 없다. 대신 나뭇가지에 '그 산에 가고 싶다 365m'라고 쓰인 작은 팻말이 걸려 있다. 날씨가 제법 더워졌다. 첫 번째 봉우리까지 오는 데 땀이 흥건하다. 아직 여덟 개의 봉우리가 남았는데…. 걱정할 필요는 없다. 앞서도 말했다시피 이제부터는 약간의 오르내림을 가미한 평탄한 숲길이 이어진다. 제1봉을 지나 4~5분가량 내려가면 갈림길이 나온다.
여기서 주의! 우리가 가야할 길은 왼쪽이지만, 리본은 오른쪽 길에 훨씬 많이 달려 있다. 바로 회동수원지로 내려가는 길. 최근 회동수원지 인근에 걷는 길이 조성되면서 이쪽 길이 인기가 많아졌다고. 5시간 정도 소요된다니 다음 번에는 이쪽 코스도 한 번 둘러봐야겠다.
어쨌든 우리는 11시 방향 좌회전. 내려가는 듯 어느새 다시 올라가더니 제2봉이다. 소나무 숲에 가려 제1봉만큼 전망이 좋지 않다. 다시 숲길을 걷는다. 재선충 피해로 비닐 커버를 씌워놓은 소나무 무덤이 많다. 유독 부산에 많은 듯하다. 소나무 숲을 지나 조금만 올라가면 제3봉. 역시 나무가 많아 전망은 별로다. 산길 오른쪽으로 위치해 유심히 살펴야 세 번째 봉우리임을 알 수 있다.
제3봉까지 오는 데만 산행 시작으로부터 약 1시간이 걸린다. 다시 5분쯤을 더 걸으면 제4봉. 여기도 마찬가지다. 제2봉부터는 봉우리 정상이라는 느낌보다 숲 속 작은 언덕 위라는 느낌이다.
아홉 개 봉우리를 오르는 재미가 있다고 하지 않았냐고 되물으시는 분. 봉우리에서 바라보는 전망이 그다지 좋지 않다는 말일 뿐이다. 봉우리를 찾아가며 '여기가 몇 번째 봉우리일까' 생각하며 걷는 재미는 분명 색다르다. 그리고 제4봉을 지나면서부터 시야가 확 트인다.
▲ 흔히들 정상이라고 부르는 여섯 번째 봉우리(353m)를 올라가고 있다.
제5봉을 지나 여섯 번째 봉우리부터는 바위 봉우리다. 흔히들 이 곳을 아홉산 정상이라 부르지만 사실 처음 오른 봉우리보다 높지 않다. 조그마한 돌(바위라고 하기에도 무색하다) 위에 '아홉산 353m'라고 새겨져 있다. 정상석인 모양인데 그다지 볼품은 없다.
그러나 내려다보는 전망으로 비교하자면 여기가 정상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다. 회동수원지와 금정산, 쭉 뻗은 번영로와 구서동 아파트 단지까지…, 이 모든 전망이 한 폭 안에 들어온다.
제6봉을 지나 조금만 내려오면 방 하나 크기만한 작은 분지가 나온다. 정면으로 소나무 한 그루가 서있다. 밑동이 가지가 갈라지듯 일곱 개로 갈라져 언뜻 보면 여러 그루가 서있는 듯하다. 이 나무 2시 방향 소로로 방향을 정한다. 조금만 내려가면 제7봉. 이곳 역시 전경이 좋다. 갈수록 회동수원지가 더욱 가깝게 느껴진다. 아니, 실제로 가까워지고 있다.
이제부터는 주로 내리막길. 여덟 번째 봉우리를 지나면 높이 1m 정도의 작은 돌탑이 나온다. 돌탑을 지나 조금만 더 내려오면 이 산에서 회동수원지를 가장 잘 내려다볼 수 있는 포인트를 만난다. 봉우리는 아니다. 하늘에 떠다니는 구름이 회동수원지 물 위로 얼핏 내비친다. 목가적인 느낌마저 든다. 물론 그런 느낌을 유지하려면 수원지 뒤로 보이는 아파트 숲은 애써 무시해야만 한다.
▲ 여덟 번째 봉우리를 지나 회동수원지가 가장 잘 내려다보이는 포인트
마지막 봉우리인 제9봉에는 특이하게도 '하영봉 260m'라는 작은 표지석이 서있다. 이제 내려가는 일만 남았다. 내려가는 길 역시 첫 봉우리를 오르는 길 만큼이나 가파르다. 가파른 길을 10여 분 내려오다 보면 송전탑이 나온다. 송전탑을 지나 동아줄을 잡고 좀 더 내려오면 임도. 임도를 따라 걷기보다는 임도를 건너가 다시 숲 속으로 접어든다. 조금만 더 내려가면 시냇물 소리. 그대로 시냇물을 건너면 상수원 보호구역임을 나타내는 커다란 간판을 볼 수 있다. 간판 옆으로 난 산길을 따라 2분 정도 걸으면 오른쪽으로 아스팔트 도로가 보인다. 바로 날머리인 동대재 입구다.
글·사진=부산일보 김종열 기자
'밤나무집'에서 식사를 하게 되면 10인 이상에 한해 식당승합차로 42, 99, 179번 버스 종점이나 지하철역까지 데려다준다. '밤나무집' 추천 메뉴로는 추어탕(1인분 6천 원)과 메기 매운탕(2만~3만 원), 오전 10시부터 오후 9시까지 영업한다. 전화(051-721-9048)로 예약할 경우에도 10인 이상이라면 승합차가 마중을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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