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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방곡곡/전라남도

여수 여천동-석창성지

by 구석구석 2008. 9.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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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창성지(여수석보)

Seokchang Fortress Site

 

전남도 기념물 제106호 (1987. 1. 15)

대한민국 사적 제523호 (2012. 6. 22)

주소 : 여천동 868

시대 : 조선중기

형태 : 방형성곽시설

 

 

 

 

여수반도를 따라 들어오다 보면 도로가 8차선으로 넓어지고 넓은 들판 한가운데 큰 사거리를 만난다. 석창이라고 부르는 곳이다. 석창이라는 이름은 행정구역이나 마을이름으로 등록되어 있지는 않지만 이 지역에서는 모두 이곳을 석창이라고 부른다. 석창사거리에서 여수시내방향으로 우회전을 하면 돌담으로 보기에는 조금 큰 돌로 쌓여진 석축이 보인다. 석창성지(石倉城址)이다.

석창성이 있는 이곳은 행정구역상 여수시 여천동에 속하며, 성내마을로 불리고 있다. '성내'는 성안에 마을이 형성되었다는 이름이며,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석창성의 역사는 백제 성왕 16년(538년)에 원촌현이 설치되면서 성을 쌓았다고 하며, 이 지역 행정의 중심으로 자리 잡았다고 한다.

 

이후 조선 초 왜구가 침입할 것에 대비하여 15세기 중엽에 석보(石堡)를 쌓았으며, 위급할 때 인근 주민들과 병마절도사영(兵馬節度使營)에서 군사를 빌려 받아 이곳을 지키도록 하였다. 세종 때부터 시행된 잡색군(雜色軍)의 조직에 의하여 창고를 마련해 곡식을 비축하고, 만약의 사태에는 읍성(邑城) 역할을 하였으나, 이후 중종 17년(1522)에 상주하던 군사는 돌산포로 옮겼다고 한다.

 

기록에 의하면 성 둘레는 1479척(682m), 높이가 10척이라 하였으며, 성안에 3개의 우물이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한 쪽 면이 172m인 네모꼴로 높이 3m쯤 남아있다.

 

예전에는 성터 안에 마을이 있었는데 시에서 발굴조사와 복원을 한다고 철거를 하였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감나무와 은행나무가 성벽을 따라 군데군데 남아있다. 감나무 아래 평상 두 개가 붙어서 놓여있다. 아마 석창성내 유일한 편의시설이 아닐는지. 

 

북측성벽이 시작되는 곳엔 감나무 등이 남아있는 길이다. 성벽의 폭이 대략 5미터 이상 되니 상당히 넓은 편이다. 그 길은 얼마 가지 않아 2미터 내로 좁아들고 성벽은 끊어졌다가 다시 이어진다. 아마 성 밖으로 일하러 나가기 위해 마을 주민들이 일부러 터놓은 곳 같다.

 

성벽 밖으로 깊지는 않지만 해자(垓字)처럼 보이는 수로가 4미터 정도의 폭으로 성벽을 따라 이어진다. 성 밖으로 이어진 길을 따라가니 소들이 풀밭을 점령하고 있다. 20여 마리 정도 될까. 가까이 다가가니 한 무리의 백로가 놀라서 하늘로 날아오른다. 조용한 휴식을 방해한 것 같다.

 

여수시에서는 사업비 101억원을 들여 2010년까지 석창성지 복원계획을 갖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힘들어 보인다. 그렇다고 문화유적을 마냥 방치할 수만은 없을 것 같다. 완벽한 복원도 좋지만 많은 비용이 들지 않은 사업부터 점차적으로 해나간다면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닐 것 같다.


성내 탐방로 조성과 더불어 벤치라도 놓아두면 어떨까? 유적에 관심이 많은 관광객들에게 개략적인 성의 모습이라도 파악할 수 있도록 복원 계획도라도 게시했으면 좋겠다.

 ⓒ 2008 OhmyNews 전영호

 

‘여수 석보(麗水石堡)’ 사적으로 승격

여천동 868번지 일대 106필지(77,393㎡)의 전라남도기념물 제106호 ‘석창성지’가 지난 22일 국가지정문화재인 사적(史蹟) 제523호 ‘여수 석보(麗水石堡)’로 승격 지정됐다.

 

성벽에는 ‘구례시면(求禮始面:구례 지역 주민들이 성벽에 축성을 시작한 성벽의 면)’이란 명문이 확인돼 인근 군현에서 분담해 축성역(築城役)을 담당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평면형태와 부대시설의 배치, 축성기법에서 나타나는 여수 석보의 주요 특징들은 15세기 중반의 성곽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사적적 가치가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처음에는 군사적인 방어위주의 석보(石堡)에서 출발해 점차 관청용 물자비축의 창고(倉庫), 장시(場市) 기능으로 활용되는 등 다양한 유적의 성격을 보여주고 있어 더욱 주목되는 유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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