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읍에서 덕천-이평을 거쳐 부안-새만금으로 이어지는 도로로 정읍에서 우덕리-신월리-오금리-장내리-대수리를 지난다.
덕천면 신월리 신송마을 강일순탄생지
증산교의 교조는 강일순이다. 호가 증산이었으므로 강증산(대나무 삿갓을 쓰고 다녔기 때문에 강삿갓으로 부르기도 하고 그의 기행이적으로 기인 혹은 광인이라 부르기까지 하였음.)으로 부르고 있다.
본관이 진주, 본명은 흥주, 휘자는 일순이며 4204년(1871)에 정읍 덕천면 객망리(현 신월리 신송마을) 시루봉 아랫마을에서 태어났다. 신송마을은 정읍에서 덕천을 거쳐 황토현으로 가는 길에 정우와 신태인, 고부로 갈라지는 사거리 못미처 300m 지점에서 왼쪽으로 들어가는 마을이다.
노인들에게는 속칭 '손바래기'로 잘 알려진 마을이다.
마을 입구에 강증산 성지 푯말이 세워져 있다. 탄생지에는 강증산 상제하강지(姜甑山上帝下降地)라 쓰여 있고 방안에는 강증산의 영정이 걸려 있으며 양쪽에는 증산계열의 모든 종교에서 쓰는 주문인 태을주가 걸려 있다.
(태을주는 충남 비인의 김경소(金京訴)가 지은 태을경(太乙經)에서 얻은 것이다.
김경소는 조선 선조때 사람으로 50년간 도통공부를 하면서 모든 주문을 사용하였지만 효험을 보지 못하다가 불교에서 쓰는 구축병마주(구축병마주:훔리치야도래 훔리함리사파하)를 염송하여 비로소 개안이 되었다.
여기에다 신의 계시에 따라 주문의 머리에 태을천상원군을 붙여 주창했다.
다시 이 위에 훔치훔치를 붙이는데 훔치는 송아지가 태어나면서 우는 소리를 본뜬 신생(新生)의 의미가 있다. 음양학적으로 송아지는 음성으로 후천을 의미한다.
따라서 태을주는 유교의 경전 주역과 불교, 선교의 3개의 사상이 조합되어 이루어진 것이다.
증산은 김경소가 50년 도통공부에도 도통이 되지 못한 원한이 맺혀 있으므로 김경소의 원을 풀어주기 위해 구축병마주의 머리에 훔치훔치를 첨가하여 주문으로 사용하였다.
증산은 한때(24세) 동학에도 뜻을 두어 전봉준의 동학농민군이 북상하는데 공주까지 행군한 일도 있었다 하나 대순전경(증산교 경전)에는 그 해 겨울철에 동학군이 패배할 것을 예언하고 망동치 말라고 효유한 것으로 되어 있다.
증산은 30세까지 전국 명산을 돌아다니며 수행한 결과 유, 불, 선을 토대로 한 흠치교라는 종교를 창시했다.
증산교는 그의 사후에 붙여진 명칭이다. 그는 4234년(1901) 모악산 대원사(입구에서 약 2 Km) 칠성각에서 49일 동안 먹지 않고 마시지 않고 도를 닦더니 드디어 우주의 조화 본능을 뜻대로 하게 되어 상제의 권능을 얻었다 한다. 이후로 옥황상제로 칭하고 기행이적이 많았다.
강일순(증산)은 4240년(1907) 금구면 거야 주막에서 우연히 차경석을 만나 입암면 대흥리로 오게 된다. 여기서 강증산은 차경석의 이종매(姨從妹)인 고씨 부인과 결혼하고 차경석에게 도를 전한 다음 4242년(1909) 전주로 이거했으나 4243년(1910) 나이 서른 아홉 살에 원인이 밝혀지지 않은 채로 세상을 뜨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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