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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방곡곡/경상남도

창녕 대지면-1080지방도-석동마을 성씨고택

by 구석구석 2008. 9.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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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앞은 광활한 들판, 길 양옆으로 줄지은 코스모스가 한들한들 반겼다. 예전에 이 들판은 양파를 지천으로 심었으나, 지금은 중국산에 밀려나 수익성 있는 마늘을 더 많이 심는다. 양파 시배지 기념탑에 들어서니 한옥 십여 채가 보인다. 예전 부호의 세거지란 걸 단번에 알 수 있게 해준다. 이 곳이 바로 창녕 석리 성씨 고택이다.

 

이 한옥촌이 형성된 것은 1850년쯤. 성씨 문중 입향조인 성규호옹이 터전을 마련했다. 창녕에서는 '성부잣집'으로 잘 알려져 있다. 또한 지난 1953년 일본에서 양파 씨를 갖고 와 창녕에서 재배를 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 성재경씨의 생가며,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전처 성혜림씨가 유년시절을 보낸 곳으로 창녕성씨 전통가옥이다.

 

성씨 고가는 현재 큰집(일신당·日新堂), 둘째(아석헌·我石軒) 셋째(석운당·石雲堂), 넷째(경근당·慶勤堂)의 집으로, 본채와 별당으로 1만 평 남짓하다. 그 중 셋째의 집은 썩은 목재를 교체하는 등 1999년에 복원됐다. 이 집은 1920년대 일제강점기에 지었는데, 전통양식에 약간의 변형이 가미된 특이한 집이다.

예부터 우리 선조들은 화장실을 외따로 지었다. 근데 이 집은 출입문이 바깥으로 나있어도 화장실은 안채 지붕 아래 함께 있다.

 

또 일반적인 고가의 대청마루는 여름철 시원함을 주는 공간으로 마당과 탁 트여 있지만, 이 집은 대청마루와 안마당 사이에 유리창이 끼인 열 창문이 있는 것이다.

 

솟을대문 달린 종갓집, 연이어 세 집이 붙어 있는데 중문(中門)으로 다 이어져 있다. 솟을대문과 중문 등에 사귀(邪鬼)를 물리치기 위한 의미로 붙은 '지네철'이 있었다.

 

종갓집의 솟을대문을 열고 들어가면 안 대문이 가로막는다. 행랑채 머슴들의 생활공간과 안채 상전 생활공간이 철저하게 분리돼 있다. 솟을대문은 열 때 소리가 요란하게 열려야 제대로 만들어진 것이다. 그래야 안채 주인도 그 소리를 듣고 사람을 맞이할 수 있는 시간을 벌 수 있기 때문이다.

안 대문을 들어서면 이 한옥촌에서 가장 압권인 풍광이 내방객을 단숨에 사로잡는다. 무릉도원 뺨치는 종가의 정원이다. 여느 한옥의 정원과 배치 구도가 다르다.

 

통상 한옥의 정원은 건물 중앙에 두지 않는다. 거의 후원 개념으로 한쪽으로 밀쳐둔다. 이건 일본 등 외국 정원에 영향을 받은 것 같다. 왼편 연지도 원형으로 하지 않았다. 한반도 모양으로 파놓아 만든 이의 세심함과 정성이 묻어 있다.

 

수심은 개구리밥으로 덮여 있어 짐작하기 어려웠으나 4m쯤 될 것 같다. 서울 지점에 석탑을 쌓고 봉우리에 70㎝ 남짓한 소나무 한 그루를 심어 놓았다. 이밖에 배롱나무, 은행나무, 향나무, 측백나무, 단풍나무, 천리향 등 20여 종의 수목이 원형으로 도열해 있고 그 복판에 십자로를 냈다. 돌확처럼 보이는 석물이 몇 개 눈길을 끈다.

 

성씨 고가에서 눈여겨 볼 것은 마루와 지붕이다. 툇마루, 쪽마루, 눈썹마루, 대청마루 등이 전통미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대청으로 쉽게 잡고 오를 수 있도록 말린 죽순 손잡이를 매달아 뒀다.

또한 평주와 고주기, 종도리,·판공대, 중보, 동자주, 대들보 등 집 내부와 천장을 하나하나 새롭게 보였다. 망와, 수막새, 암막새 등의 기와, 용마루, 내림마루, 추녀마루 등의 지붕도 여느 고가와 달라보였다. 곡식과 음식을 보관하던 고방, 마당에 놓여진 떡돌, 절구 등을 보면서 한옥에 대해서 한꺼번에 많은 것을 보았다는 충만감이 들었다.

후원은 상당히 큰 규모의 정원이다. 먼저 대나무 숲이다. 고택들에 대나무 숲은 은은함을 좋아한 선조들이 햇빛보다는 대나무 숲에서 나는 그 은은함을 좋아했기 때문이란다. 대나무 중에는 까만 오죽도 있었다. 안채(지금은 복원 공사 중) 쪽으로 조금 더 돌아가니 사당 바로 뒤편에 여러 개의 석등이 세월을 이기고 서있었다. 그 중 몇 개는 세월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무너져 있었다.

 

이 밖에도 후원에는 볼거리가 많았다. 가장 먼저 눈에 띠는 것이 '세숫대'였는데, '확대'라고 했다. 수도시설을 설치할 수가 없었던 그 시대에 후원 곳곳에 무릎 높이의 돌에 둥근 모양과 복숭아 모양의 홈을 파서 물을 담을 수 있게 만든 것으로, 둥근 모양은 남성전용이고, 복숭아 모양은 여성전용이었단다.

  

 물을 담아 밖 갓 출입 후 온갖 좋지 않은 소리나 못 볼 것을 본 것을 씻고 정화하는 그런 기능도 있는 확대로 여러개가 있다 / 김환대

 

후원에는 연못도 있다. 그 형태가 보는 사람에 따라 지렁이를 본 딴 것으로도 보이고, 한반도를 본 딴 모양으로 보일 수도 있단다. 연못을 지렁이를 본 딴 것은 이 곳 터가 지네의 입에 해당하는 형상이 때문에, 그래서 지네가 좋아하는 지렁이를 본 딴 것이란다.

 

실제 이곳에는 지네가 많이 나왔다고 했다. 한반도를 본 딴 것은 일제시대 우석 성재경 선생이 고가 바로 앞에 '지양강습소'를 세워 4년 정도 교육에 힘썼으나, 일제에 의해 폐쇄되는 등 조선독립을 위한 활동을 했던 때문이었다.

ⓒ 2008 OhmyNews 박종국

 

 

 넓은 연못이 조성되어 있으나 물이 잘 정화되지 않고 있다/김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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