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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방곡곡/강원도

홍천 내촌면-451번지방도 물걸리 동창마을

by 구석구석 2008. 7.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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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의 청취를 동창마을(물걸리)에서 dongchang.invil.org

동창마을정보화 위원회 (033-435-1431, 033-435-7257)

홍천읍에서 속초방향(44번 국도)으로 가다가 철정검문소에서 우측 451번 지방도를 가다 보면 내촌면소재지를 뒤로하고 와야삼거리에서우회전 6km쯤 지나 동창마을에 이르게 된다. 행정구역명은 홍천군 내촌면 물걸리이나 그 이름보다는 동창마을이란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동창(東倉)이란 지명은 중종때 대동미 수집 창고가 홍천의 동쪽에 위치한데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영서지방에서 거둬 들여 매년 정기적으로 서울의 경창(京倉)으로 수송하던 세곡을 집결 시켰던 창고가 지금은 그 터만 남아 있으나 이곳에 있었다.

현재 동창마을은 213 가구 552명 주민이 살고 있는 전형적인 농촌 마을로 유기농법으로 생산되어지는 무공해 오리농법 쌀 과 토마토,오이,애호박,밤호박 등의 특산물이 있으며, 물걸리사지, 물걸리 삼층석탑을 비롯한 다양한 문화 유산을 간직한 살아 있는 자연과 문화유산 그리고 잊혀져 가는 고향의 정취를 느낄 수 있다.

 

 

 

잘 알려져 있지 않은곳, 그래서 더욱 신비한 아름다움을 간직한 곳 동창마을 물길과 산길이 두루 통하여 조선시대 까지만 해도 서울과 영동을 잇는 교통에 요지였다고 하는데 예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는 건 수려한 산과 강 계곡과 들 과거에도 현재에도 동창마을에 들른 이들을 감탄하게 한다.

  

 

동창마을에서는 각종농촌체험 정월 대보름 달따러가헤여, 미니호박 체험, 오리농체험, 머루와인 담그기, 오~미자 체험하기 등 동창마을만의 최적의 자연환경과 동창마을 만의 특산품(오미자, 미니밤호박, 토마토)을 연계한 농촌체험학습은 가족단위의 관광객으로 하여금 많은 호응을 얻고 있으며 동창마을 만의 역사적 유적지와 때묻지 않은 자연환경 과 함께 넉넉한 인심도 한껏 느낄 수 있다.

 

복골지라 불리우는 동창저수지는 마을에서 북쪽으로 약 1Km 가량 떨어져 있는 저수지 입니다. 갈수기에 어려움을 겪던 마을 주민들이 1979년부터 2년간 정부보조와 군비 그리고 주민들의 주머니를 털어 만들어진 저수지로 제방만 45미터 높이에 134미터 길이로 만들어져 1만여평의 넓이에 이십만여 톤의 물을 담고 있다.

  

 

동창저수지는 계곡물을 그대로 담고 있어 맑은 물과 다양한 토종 어류가 그대로 살고 있어 낚시꾼들에게도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척야산은 동창 마을 동쪽에 자리 잡은 자그마한 산입니다. 멀리 태기산에서 시작한 내촌천과,갈현에서 흐르는 실개천과 만나는 지점에 우뚝 솟아 있는 산으로, 주변의 백암산이나 웅봉산 같이 크고 웅장함은 갖추고 있지 않으나, 가족끼리 손잡고 오를 수 있을 만큼의 편안함을 가진 산으로 2시간 정도면 산을 돌아 다시 마을로 돌아올 수 있다. 해마다 오월이면 산은 붉은 철쭉의 물결이 소백산이나 한라산의 그 것보다 결코 뒤지지 않을 아름다움을 보여 주고 있다. 또한 전국제일의 오석비 거리라는 별명이 말해주듯 애국 충절의 깊은 뜻을 간직한 오석비가 곳곳에서 방문객을 맞이 하여 주고 있다.

 

 

척야산 등산 코스는 마을에서 10여분 거리에 있는 동창만세기념사업회 부터 시작 합니다. 가파른 콘크리트 길을 따라 오르면 청로각과 창의사가 있다. 창의사 옆으로 난 소로길을 따라 오르면 잘 꾸며진 작은 식물원을 지나고 곧 완만한 소로길을 따라 오르면 된다. 척야산 정산의 청류정에서 잠시 흘린 땀을 식힌 나무숲 사이의 경사면을 따라 내려오다 보면 영천 약수에 이르며 영천약수부터 마을로 다시 돌아오는 길은 굽이 친 개천을 따라 기암 절벽이 잘어우러진 남강로를 따라 내려오면 된다. 

 

물걸리 589-1 물걸리사지

강원도 기념물 제47호로 지정 되어 있는 물걸리사지는 절에 관한 명확한 기록은 없으나, 통일신라시대의 홍양사가 있던 장소로 상당한 규모의 사찰이 있었을 것으로만 추정하고 있다.

 

 

 


출토 유물로는 통일신라시대의 금동여래입상 1점, 고려시대 철불파편 4점, 철쇄파편 2점, 암막새 4점, 수키와 조각 6점, 암키와 조각 6점, 청자 조각 4점, 토기 조각 5점, 조선시대 백자 조각 7점이 있다. 문화재로는 석조여래좌상(보물 제541호), 석조비로자나불좌상(보물 제542호), 대좌(보물 제543호), 대좌 및 광배(보물 제544호), 삼층석탑(보물 제545호)이 지정, 보존되어 있다.

 

보물 제545호(1971.07.07) 홍천물걸리삼층석탑(洪川物傑里三層石塔)

물걸리 절터에 남아있는 통일신라시대의 탑이다. 절터에 남아있는 많은 유물들로 보아 이전에는 이곳이 상당히 큰 규모의 사찰이었을 것으로 여겨지지만, 절의 이름은 전해지지 않고 있다.


탑은 2단의 기단(基壇)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올려 세운 모습이다. 위·아래층 기단의 각 면에는 모서리와 가운데에 하나씩의 기둥 모양을 새겨 두었다. 탑신은 몸돌과 지붕돌이 각각 하나의 돌로 이루어져 있으며, 몸돌에는 모서리마다 기둥 모양이 새겨져 있다. 지붕돌은 밑면의 받침이 1·2층은 5단이나, 3층은 4단으로 줄어들었다. 경사면은 평평하고 얇으며, 모서리선이 뚜렷하여 끄트머리에서의 들림도 날카롭다. 꼭대기의 머리장식은 없어지고 이를 받쳐주는 노반(露盤)만 남아있다.


전체적으로 일반적인 통일신라의 탑이나, 기단 각 면의 가운데기둥이 하나로 줄어든 것이라든지, 3층에서의 지붕돌 받침이 4단으로 줄어 아래층과의 조화를 이뤄내지 못한 점 등으로 보아 시대가 조금 떨어지는 9세기 후반의 것으로 보인다.

 

 

물걸리 기미만세공원

1919년 4월 1일 일제탄압에 항거하여 만세 운동을 하다 이곳에서 순직한 8열사를 추모하기 위하여, 1963년 관과 민이 합동하여 팔렬각을 건립하였으나, 최근 팔렬각이 노후되고 초라하여,당시 만세운동에 참여했던 모든 선열들의 뜻을 기리고자, 1990년 2월 28일에 기미만세공원 추진위원회를 구성하여, 군민의 성금과 독지가의 도움과 군비를 투자하여 5천7백여㎡의 부지에 기미만세상을 세우고, 부대시설을 만들어 팔렬사를 비롯한 선현들의 애국충절의 높은 뜻을 후세에 길이 전하고자조성된 공원이다.

  

 

매년 기미만세운동을 기념하고자 매년 3월1일 돌아가신 순국선열을 기리기 위한 행사와 추모제가 열리고 있다.

 

주차시설 : 승용차 50대 / 내촌면 사무소 033-433-3003 / 연중무휴(09:00-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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