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현리 산3 사적60호(1963.01.21) 건지산성
건지산의 정상부근을 에워싼 말안장 모양의 내성과 그 서북쪽 경사면을 둘러싼 외성의 2중구조로 되어있는 산성이다.
성을 쌓은 시기는 백제 말에서 통일신라 전기로 보고 있다. 비교적 큰 규모의 산성으로, 내성은 흙으로 쌓았고 외성은 돌과 흙을 함께 사용하여 쌓았다. 이러한 2중구조의 산성은 특히 백제 말에 나타난 새로운 산성의 형식으로 알려져있다. 산성의 북쪽은 험준한 천연의 암벽을 이용하여 성벽을 삼았고, 나머지 부분은 흙으로 쌓았으나 심하게 붕괴된 상태이다. 문터의 흔적은 찾을 수 없으며, 성안에 봉서사라는 작은 절이 있다. 봉서사 서쪽에 건물터로 보이는 계단 모양의 평지에서 불탄쌀과 백제의 토기조각이 출토되었다.
산성에서의 전망이 매우 좋아서 한산읍성과 함께 금강 하류의 수륙교통의 요지에 위치하고 있으며, 한때 백제부흥군의 거점이었던 주류성(周留城)이 곧 이 산성으로 추정되고 있다.
성안에는 동문지로 추정되는 곳이 남아 있는데, 지금도 한산(韓山)에서 산성에 이르는 도로는 이 문터쪽을 거치게 된다. 또한 서쪽에도 문지가 확인되었는데, 이 문지에 이르러 앞뒤로 서로 방향이 어긋나게 벌어지면서 개방되었다. 이것은 마치 후대의 성곽에서 볼 수 있는 옹성(甕城)과 같이, 방어를 목적으로 미리 설계된 축성상의 구조로 추정되며, 성벽의 너비는 약 4m이다.
또한 산성의 남서쪽 낮은 봉우리에는 2개의 소규모 산성이 있는데, 이는 건지산성에 딸린 부속성으로 방어를 위한 보루로 볼 수 있다. 이 구조 역시 백제식 산성의 특징이라 할 수 있으며 동쪽의 것은 길이 95m, 너비 60m의 타원형을 이루었고, 서쪽의 것은 길이 60m, 너비 45m로 동쪽 성에 접근하고 있다. 최근 발굴조사를 통하여 건지산성이 삼국시대에 쌓은 성이 아닌 고려시대 산성일지도 모른다는 설이 제기되고 있는데 반해 이들은 건지산성과는 시기가 다른 백제시기의 산성으로 여겨지고 있다.
최근 발굴 조사에 의하면 건지산성은 고려말기에 금강하구에 출몰하던 왜구(倭寇)를 막기 위하여 고려시대에 축조된 것으로 여겨지며, 조선왕조가 읍성을 축조하기 이전에 산성을 읍성 대용으로 사용한 것으로 여겨지는 중요한 의미가 있다. 남쪽 시가지에 남은 조선시대 초기에 축조된 읍성(邑城)이 경영되자 이 산성은 읍성 후방의 농성을 위한 산성으로 기능하였다고 여겨지고 있다.
읍성이란 군이나 현의 주민을 보호하고 군사적·행정적인 기능을 수행하기 위해 소재지를 둘러싸은 것을 말한다. 한산읍성에 대해서는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돌로 쌓은 성이며, 성의 둘레가 4,070척(1,233m), 높이가 11척(3m)이고, 성 안에 도랑 1개와 우물 4곳이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현재 남아있는 성의 둘레는 1,820m이며, 평면형은 서벽이 동벽보다 긴 사다리꼴 형태이다. 서쪽과 북쪽의 성벽은 돌로 쌓았고, 남벽은 흙으로 쌓았으며, 동벽은 흙과 돌을 섞어 쌓았다. 남쪽 벽의 중간에 서천-한산간 지방도로가 통과하고 있어서 성벽이 잘린 것을 빼고는, 나머지 대부분의 성벽이 원래의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다.
고려 중기에 왜구가 강을 끼고 자주 침범해오자, 고을의 백성을 안전하게 지키고자 성을 쌓았던 것으로 짐작된다.
한국관광공사추천 12월에 가볼만한 곳 - 한산면 지현리와 신성리 일대
갈대 위 후드득 철새가 날아오른다. 금빛 가을의 끝 무렵인 11월부터 겨울 내내 서천은 낭만과 운치가 풍성해진다. 그래서 12월이 되면 서천으로 여행을 준비한다. 술 익는 마을이 있고, 서걱대는 갈대숲을 거닐고, 떼 지어 날아오르는 철새들의 비상을 만날 수 있는 서천은 명품 겨울여행지임에 틀림없다.
그래서 가족이나 연인과 함께 서천을 여행한다면 훗날 아련한 흑백사진처럼 추억을 떠올릴 것이다. 여기에 우리나라 전통주의 대명사로 손꼽히는 한산소곡주(041-950-0290)를 곁들인다면 시공을 초월해서 신선이 어디 따로 있겠는가.
첫 번째 잔 입 안에 탁 털어 넣으면 그 향기로운 맛에 반해 자리를 털고 일어날 수 없고, 두 번째 잔 주욱 들이켜면 어느새 손끝, 발끝이 취해버려 몸을 일으킬 수 없게 만든다 하여 사람들은 소곡주를 ‘앉은뱅이술’이라 불렀다.
한산 소곡주는 1300년 전 백제왕실에서 즐겨 음용하던 술로 알려져 있다. 현존하는 한국 전통주 중 가장 오래된 술이다. 1800년경 주류성의 아래 마을인 호암리에서 명맥을 이어오다가 1979년 7월 3일 고(故) 김영신씨가 선조들로부터 전수를 받아 충남무형문화재 제3호로 지정을 받았다.
▲ 소곡주의 재료들
현재는 우희열 씨가 한산 소곡주 무형문화재다. 문화재 기능은 시어머니 김영신(1997년 작고) 씨에게 전수받았다. 스물일곱 살에 시집와서 지금까지 소곡주를 담갔으니 벌써 40년이 지났다. 10여 년 전부터는 아들 나장연 씨 내외와 함께 술을 빚는다.
소곡주는 연한 미색이 나고 단맛이 돌면서 끈적거림이 있고 향취는 들국화에서 비롯된 그윽하고 독특한 향을 간직하고 있다. 술의 재료가 되는 잡곡의 냄새가 전혀 없는 최고급 찹쌀로 빚어 100일 동안 숙성시켜 만드는 전통곡주다. 소곡주 공장을 안내하던 우희열 씨가 독에서 방금 떠낸 소곡주 한 잔을 권한다. 잘 익은 벼이삭처럼 노릇한 술은 향기로운 누룩향이 풍긴다.
▲ 소주고리
코끝을 맴도는 누룩향의 단내를 맡으며 한 모금 맛보니 술이라 하기 민망할 정도로 입 안이 달콤하다. 독 안의 술을 맛본다는 핑계로 이리저리 항아리 뚜껑을 열고 한잔 두잔 넙죽 받아 마시다 보니 얼굴이 벌게지며 취기가 오른다.
우희열 씨는 소곡주의 맛을 좌우하는 것은 첫 번째가 물이요, 두 번째가 누룩, 세 번째가 술 익는 온도라고 했다.
소곡주에는 찹쌀과 누룩, 향을 위한 약간의 국화잎과 부정을 타지 말라는 의미로 홍고추 서너 개가 들어가는 것이 전부다.
우씨는 한산의 건지산 밑에서 나는 약수로 담가야만 제대로 된 소곡주를 얻을 수 있다고 한다. 인근 서천 지역에서도 소곡주를 담가 먹는 사람이 많은데, 그들도 꼭 건지산 물을 가져다가 술을 빚을 정도라고 했다.
소곡주를 빚는 과정은 이렇다.
먼저 쌀을 찐 후에 누룩과 쌀로 밑술을 담그고 3일 정도 발효시킨다. 발효가 되면 밑술에 고두밥(찹쌀)을 비벼 덧술을 빚은 후 항아리에 넣고 100일 동안 땅 속에 묻어 발효, 숙성시킨다. 소곡주가 백일주라 불리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백일주는 약주로는 가장 오래 발효시킨 술이다. 발효 기간이 길어질수록 술 빚기가 어렵고 술이 쉬기 쉽다.
반면 백일주는 오래 보관할 수 있고 그 맛도 깊고 은근하다. 소곡주는 18%로 정도인데, 그리고 이 약주를 증류해 매력적인 43%짜리 불소주도 만들어낸다.
좋은 술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고 하지만 한산 소곡주의 달콤함은 꽤 오래 혀 끝에 남아 솜사탕처럼 입안이 화해진다. 무릇 좋은 것일수록 솜사탕처럼 아쉬움을 남길 필요가 있다. 그래야 다시 찾고 싶은 여운이 생길 것이니 말이다. 한국관광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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