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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방곡곡/충청남도

서산 지곡면-안견기념관 안견에술제

by 구석구석 2008. 6.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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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천리 59-1 안견기념관 041-660-2536

서산 출신인 현동자 안견은 조선초기 산수화풍을 창출한 한국화의 대가로 신라의 솔거, 고려시대 이녕과 함께 우리나라 3대 화가로 손꼽힌다. 현존하는 선생의 대표적인 작품은 조선초 회화에 큰 영향을 주었던 곽희파 서풍을 바탕으로 안평대군의 부탁을 받고 단 3일만에 그린 몽유도원도이다.

 

 

몽유도원도는 안평대군이 세종 29년(1447)에 어떤 날 꿈속에서 무릉도원을 여행하고 거기서 본 바를 안견에게 설명해 주어 3일만에 완성된 그림인데 국내외를 막론하고 가장 널리 알려져 있는 조선최고의 그림이라 할 수 있다. 몽유도원도에서 두드러지는 독창적인 면모를 살펴보면 일반적인 두루마리 그림과는 반대로 그림의 왼쪽으로부터 오른쪽 방향으로 이야기가 전개되어 가는 독특한 화면구성을 들 수 있는데 화면의 좌측 아래쪽에서 우측 위로 대각선을 따라 현실세계와 꿈속의 세계를 효율적이고도 치밀하게 배치하였다.

 

또한 평원과 고원의 대조를 통해 산세의 웅장함과 환상적인 느낌을 더욱 고조시키고 넓게 펼쳐진 도원을 강조하기 위해 다른 부분과는 달리 이곳만 조감도법을 사용하여 묘사하였다. 세부표현도 매우 뛰어나 선묘는 세밀하여 일획의 실수도 없이 정갈하며 박락되어 흔적만 살펴볼 수 있는 복사꽃 꽃술의 금채를 제외하고는 정교하게 채색된 부분 역시 아직도 화려함과 영롱함을 잃지 않고 있다.

 

화면 오른쪽 아래 구석에 지곡가도(池谷可度)라는 안견의 관지(款識)가 있고 이어서 주문방인(朱文方印) ‘가도(可度)’가 찍혀있다. 현재 몽유도원도는 상하 2개의 두루마리로 표구되어 있는데 상권의 첫 머리에
몽유도원도라는 안평대군의 제첨과 몽유도원도가 완성된지 3년 후에 지은 안평대군의 칠언절구가 주서로 쓰여있으며 이 시문에 이어서 몽유도원의 세계가 펼쳐져 있다. 이 그림 뒤에 안평대군의 발문이 붙어 있으며 그 뒤를 이어 세종조의 대표적 인물 21명의 찬시가 실려있다

 

안견은 ‘몽유도원도’를 그릴 당시 이미 정4품의 호군(護軍)벼슬을 하였는데 6품이 한계였던 화원의 신분으로 정4품까지 올라간 것은 매우 파격적인 경우로써 조선 건국이래 최초의 일이었다. 후대의 화가나 화론가들이 그를 찬탄하는 글을 남기고 있는데 성현은 ‘용재총화’에서 “안견은 천성이 총민 한데다 고래의 명적을 많이 보고 연구하여 그 요체를 터득하고 고금 명가들의 장점을 모두 규합 절충하여 자기 것으로 소화하였으며, 그의 산수화는 특히 빼어났다”고 적고 있다.

 

 몽유도원도비와 그림 / 서산시청

광해군 11년에 기록한 서산의 지방지 호산록에 안견의 출신지가 서산시 지곡면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서산 문화의 뿌리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자 서산시는 4천7백만원을 들여 안견의 출신지인 지곡면에 몽유도원도를 실측크기로 조각한 기념비를 건립했다.

한국화인 창출자인 안견의 자연애호사상을 현창하고 미술 학도의 정신적 지주로 승화시킴은 물론 국민 정서 순화의 산 교육장으로 활용키 위해 91년 10월 기념관도 건립했다. 기념관은 사업비 2억2천여 만원을 들여 지곡면 화천리 대지 4백평에 한 양식 충형 건물(건평 80평)로 세웠는데 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안견의 유작품인 적벽도 소상팔경도 사시팔경도 등 모사품 18점이 전시되어 있다.

 

안견예술제

해마다 가을이 되면 안견의 출생지로 이름난 지곡면에서는 안견선생의 예술혼을 기리며 지역문화예술의 계승과 발전을 위하여 안견예술제가 개최된다.

 

 

 

 

안견예술제는 추모제, 국악, 문학, 무용, 미술, 사진촬영, 청소년의 댄스경연대회, 청소년 음악제, 향토미술, 작가 초대전, 충남학생 백일장, 충남학생미술실기대회, 가훈써주기, 자기주장발표대회 등 다양한 예술프로그램으로 남녀노소가 함께 참여하는 종합 예술제이다. 매년 수천명이 이 행사에 참여하여 저마다 지닌 끼를 발산하고 예술적 재능을 발전시키고 있으며 지곡면 일대는 축제 분위기에 휩쌓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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