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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방곡곡/충청북도

청원 낭성면-512번지방도-신채효기념관 고드미마을

by 구석구석 2008. 6.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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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의 역사를 중국의 역사로 편입시키려는 중국의 시도를 보면서 착잡한 마음으로 청원군 낭성면 귀래리 고두미 마을에 있는 단재 신채호의 묘역을 찾았다.


신채호는 빼앗긴 나라를 되찾기 위해서는 나라의 뼈대를 이루는 역사를 제대로 세워야 한다고 믿엇고, 우리 민족의 부리를 찾아내기 위해 홀로 만주벌판을 누볐다. 그리고 마침내 광활한 만주벌판에 숨겨져 있던 우리 민족의 혼을 찾아내 고대 역사를 새롭게 정립해 놓았다.


 

만주 벌판을 헤맨 그의 발품으로 고구려의 혼이 되살아났고, 발해의 역사가 바로 우리 민족의 것임이 밝혀졌다. 누구도 들춰보지 않았던 중국의 고대 서적들을 두루 섭렵한 그의 연구로 우리 민조그이 고대 역사가 다시 쓰여지게 된 것이다.

 

신라를 삼국의 중심에 두고, 통일신라를 중심으로 한반도의 역사를 생각하는 풍토에 익수해있던 당시에 신채호의 주장은 매우 놀라운 것이었다. 고조선.부여.고구려 시대를 파헤치며 우리 선조들이 동북아시아의 강자였고, 찬란한 민족문화를 갖고 잇었음을 설파하는 그의 주장은 국내에서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켰고, 만주에 이주하여 정착하고 있던 한민족에게도 커다란 자부심을 심어주었다.


신채호는 일직부터 강직한 성품으로 많은 일화를 남겼는데, 세수를 할 때도 허리를 굽히지 않았다고 한다. 강도 일본에게 굽히지 않겠다는 의지였고, 어떠한 상황에서도 자기를 굽히지 않겠다는 의지였다.

 


오랜 감옥생활로 병을 얻었을 때, 보석으로 출옥을 할 기회가 있었다. 그를 아기는 사람들의 노력으로 일제가 믿을 만한 보호자를 물색하여 보석을 신청하였으나, 신채호는 보호자가 친일파라는 이유로 보석을 거부하여 스스로 옥중에서 운명을 맞이했다. 그만큼 철저하게 일제와 타협하지 않은 불굴의 독립운동가였다.

 

청원군 낭성면 일대는 세종, 세조 때의 권신인 신숙주가 자리를 잡은 뒤에 대대로 세거지가 되었던 곳이다. 권세를 이어오던 집안은 영조 때 신천영이 이인좌의 난에 가담하면서 몰락하였고, 아버지 대에서는 결국 처가살이를 해야 하는 곤궁한 형편이 되었다. 신채호는 외가가 있는 충남 대덕군 정상면(지금의 대전시 동구)에서 태어나서 아버지가 죽은 뒤에 귀래리로 돌아와 어린 시절을 보냈다.



일찍부터 학문에 출중한 재능을 발휘하여 13세에 이미 사서삼경을 독파하니 더 배울 책이 없어 귀래리에서부터 천안에 있는 친척 대감집으로 책을 빌리러 다니며 공부를 했다고 한다.

 

친척의 추천으로 성균관에 들어가 공부를 하였고, 신학문을 접한 뒤에는 고향에서 문동학원, 산동학원 등을 설립하여 계몽활동을 하기도 하였다. 1936년 56세의 나이로 숨을 거두면서 유언으로 일제의 발에 치이지 않도록 화장을 하고 묘지를 만들지 말라고 하였으나, 부인 박자혜 여사의 노력으로 지금의 귀래리 고두미마을에서 안식을 취할 수 있게 되었다.

 

묘정에는 한용운, 오세창, 신백우 등이 세운 묘표가 있고, 영각 앞에는 기념관이 세워져 있다.

 

고드미마을 043-288-3651

 하늘채 숙박시설 ☏ 043-298-2574

 

귀래리는 면 남동단에 있으며 동은 미원면 내산리 서는 문박리와 호정리, 남은관정리 북은 미원면 기암리와 접하고 있다. 귀래리는 본래 청주군 산내 이상면 지역으로 조선 광해군 때 신요가 곧은 말로 상소하여 귀향 살이를 하다가 풀리어 돌아와 은거하는데 인조가 반정하여 여러 번 불러도 나아가지 아니 하였으므로 이 마을을 고디미라 불러오다가 1910년에는 귀래동 도암리, 삼곡리, 동림리, 문박동으로 분리되어 있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문박동의 일부를 문박리로 넘겨주고 귀래리라 하였다.

 

이곳에선 농촌생활을 체험할 수 있다. 황토집서 묵으며 친환경 오리농법과 벼농사현장 등 전통 농촌생활 체험이 가능하다. 건강한 먹을거리와 건전한 놀이, 문화를 동시에 맛볼 수 있는 곳이다.

이 마을은 지난 1996년 오리, 쌀겨, 우렁이농법 등을 시작했다. 또 표고버섯, 고추, 옥수수 등 21가지 농작물이 친환경 재배되는 것을 볼 수 있다. 500평의 농사 체험장에서는 고추, 고구마, 감자, 옥수수 등을 직접 키우고 수확할 수 있다.

 

계절별로 다양한 농촌 체험 프로그램도 준비된다. 봄에는 유기농법 교육, 창포물에 머리감기, 모내기·씨앗뿌리기, 개구리소리 듣기 등 생태관찰, 산나물 뜯기 등을 한다. 여름에는 환경 교육, 질경이 제기 차기, 동녘골 반딧불이 체험, 고추·옥수수·수박따기, 오리넣기, 산림욕, 옥수수전·감자전 만들기를 한다.

 

가을에는 단재 추모제, 벼베기, 허수아비 만들기, 메뚜기 잡기, 다래·잣따기, 메주 만들기, 머루주 등 과일주 담그기, 곶감 만들기 등을 한다. 겨울에는 화로 감자·고구마 구이, 쥐불놀이, 연날리기, 눈썰매타기, 논바닥 썰매타기 등을 한다.

생활 체험장은 100여종의 야생초, 솟대, 돌탑 등으로 꾸며져 있어 그대로가 전통 교육 현장이다.

 

이곳에 온 아이들은 마치 방학을 맞아 외가에 들른 기분을 맛볼 수 있다. 3년이 넘은 된장으로 끓인 구수한 된장국과 한밤에 구워먹는 고구마 맛 또한 잊을 수 없는 고향의 맛으로 남을 것이다. 단재 신채호 선생의 사당과 기념관이 근방에 있어 역사체험도 함께 즐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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