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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방곡곡/경기도

양주 유양동 양주관아지 양주향교

by 구석구석 2008. 4.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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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한미군 공여구역 주변 지역 등 발전종합계획'에 반영돼 국비 350억원 지원을 받아 유양동 양주아트센터건립

 

양주아트센터 이미지

양주 아트센터는 유양동 일원 3만3천373㎡ 부지에 지상 2층, 지하 1층 총 건축면적 1만6천923㎡ 규모로 오는 2024년 준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사업비는 총 871억원이 투입되며 첨단장비를 구비한 962석 규모의 대공연장과 300석 규모의 소공연장을 비롯해 전시시설, 문화편의시설 등을 고루 갖추고, 다양한 장르의 대규모 공연이 가능한 복합문화예술 기반시설로 건립될 예정이다.

 

 

경기도 기념물 제167호(99.4.23) 양주관아지

 

양주의 읍치는 원래 한양의 중심부에 있었으나 1394년(태조 3)에 도읍을 송도에서 한양으로 옮기면서 지금의 서울 광진구 일대인 대동촌(大東村)으로 옮겼다가 다시 견주(見主)의 옛 터인 지금의 양주시 고읍동으로 옮긴 후 중종 1년(1506) 지금의 자리로 옮기게 되었다. 현재 복원한 관아가 있는 자리는 목사의 정청이었던 매학당이 있던 곳이다.

 

매학당은 목사가 정무를 보던 외동헌과 가족이 생활하던 내동헌으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20여 칸 규모였다. 관아터 중앙에는 옛 동헌을 복원하여 신축하였는데, 한식 기와를 얹은 팔작지붕에 정면 7칸, 측면 3칸의 목조건물이다. 화강암 기단 위에 주춧돌을 놓고 방형 기둥을 세웠으며, 두공은 간결한 모양의 익공을 두 겹으로 얹은 무출목 이익공식 건물이다.

 

동헌의 오른편에는 가지에 흩어져 있던 양주목사들의 송덕비들을 모아놓았다. 비가 모두 18기인데 17기는 송덕비이고 나머지 1기는 이를 기념하기 위해 세운 유허비이다. 이 비들의 비좌는 화강암으로 새로 만든 것이다. 부근에 양주목사가 휴식을 하던 금화정과 유양폭포가 있다.

 

- 불광동, 인천 방면에서 장흥관광지 → 기산저수지 → 86번, 350번 지방도로를 따라 양주시청 방향으로 진입, 양주시청 1km 못미친 지점 좌측

- 서울 의정부 방면에서 3번 국도이용, 의정부를 지나 주내검문소를 지나 양주시청 앞 사거리에서 유양동 쪽으로 좌회전 후 1km 지점 우측에 관아지와 향교있음.

 

 

경기도 문화재자료 제2호(83.9.19) 양주향교

 

양주별산대 놀이마당옆에 위치하며 조선시대 국가에서 설립한 지방 교육기관으로 중 고등학교 수준의 교육을 담당하였다. 양민(良民) 이상이면 향교에 입학할 수 있었고, 시(詩)나 문장(文章)을 짓는 사장학(詞章學)과 유교의 경전 및 역사를 공부하는 경학(經學)이 주요 교육내용이었다.

 

또한 향교에서는 교육뿐만 아니라 중국과 조선의 선현(先賢)에게 제사하였다. 고을의 크기에 따라서 향교의 정원을 조정하였는데 대체로 군에는 50명, 현에는 30명의 학생을 수용하도록 하였다. 그리고 토지를 지급하고 그에 따른 세금 수입으로 향교 운영 비용을 충당하게 하였다.

 

일반적인 향교의 건물 배치는 앞의 외삼문(外三門) 쪽에 공부하는 장소인 명륜당(明倫堂)과 기숙사인 동재(東齋) 서재(西齋)를 두고, 뒤의 높은 곳인 내삼문(內三門) 안에는 공자와 4성현(안자, 자사, 증자, 맹자)을 제사지내는 대성전(大成殿)과 공자의 제자 및 송나라와 우리나라 현인을 제사하는 東(동무) 西(서무)를 두는 전학후묘(前學後廟)의 배치를 이룬다.

 

이 향교는 조선 인조 때 건립된 후 많은 유학자를 양성 배출하던 지방의 교육기관이었다. 대성전은 6 25전쟁 때 소실되었던 것을 1958년에 유림들이 재건한 것이다. 이 향교는 제향 인물 중 송나라 4현이 빠지고 기호지방의 이름난 유학자를 제사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해마다 봄과 가을에 제향을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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