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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방곡곡/경기도

화성 남양리 남양성지 남양향교 가시리마을

by 구석구석 2008. 4.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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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시 남양읍 남양성지로 112 / 남양성지(031-357-5828  www.namyangmaria.org)

 

남양성모성지는 병인년(1866년) 대박해 때 무명의 교인들이 순교한 거룩한 땅이며, 성모님의 품처럼 아늑한 자연경관을 지닌 곳이다. 하지만 다른 순교지와는 달리 무명 순교자들의 치명터였기에 오랜 세월동안 무관심속에 방치되어 왔었다.

 

가을이 되면 단풍나무들로 가을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데, 이 모습이 유명 관광지 못지않다. 이에 많은 사람이 가을 단풍 구경을 위해 방문하는 지역으로 천주교 신도들의 순례지 겸 휴식장소로 많이 알려지게 됐다.

지금의 성지가 성역화되기 시작한 것은 1983년부터였다.
이곳은 1991년 10월 7일(로사리인 동정 마리아 축일, 수원교구 설정 기념일)에 성모님께 봉헌되었고 한국교회 사상 처음으로 성모 마리아 순례성지로 공식 선포되었다. 이 곳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순교하였는데 이름이 기록에 나타나는 사람은 충청도 내포사람 김 필립보, 박 마리아 부부와 용인 덧옥골사람 정 필립보, 수원 걸매리 김홍서 토마 네 사람뿐이다.

 

조선조 당시 남양은 도호부가 있던 곳으로 서해안의 군사적 요충지로서 행정과 사법권을 부여받은 종3품의 도호부사가 부임했던 곳이다. 남양부사는 경기도 관찰사의 감독 아래 이반 행정에 관한 권한외에도 민사소송과 형사범을 다루는 사법권까지 갖고 있었다. 그래서 남양은 물론 그 인근에서 붙잡은 천주교인들을 도호부사가 있던 남양으로 끌어다가 처형했다.

 

그리고 남양은 지리적으로도 신앙 활동이 자유로웠던 중국과의 연락이 용이한 서해안에 위치하고 있었기 때문에 조선조 당시 이곳에는 많은 천주교인들이 찾아들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또한 남양과 이웃해서 백학 교우촌이 있던 것도 이 곳이 순교지가 된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이다.

 

이 곳은 남양순교성지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화강암의 대형묵주알, 그리스도왕상, 성모 동굴, 오솔길 소자상, 요셉성인상 등이 있으며 아늑하고 성스러운 분위기 조성을 위한 성지 조성사업을 대대적으로 실시, 성모님 품같이 아늑하고 포근한 경관을 지닌 곳으로 시민은 물론 전국의 천주교 신도들의 순례지 겸 휴식장소로도 잘 알려져 있다.

 

 

※ 기록에 나타난 순교자들


- 김 필립보(1818~1868) 충청도 내포사람으로 조모의 가르침에 따라 입교하려 했으나, 부친의 반대로 어려움을 겪은 후 후일 반대하던 부친과 함께 교리를 배워 영세했다. 전교도 열심히 했고 사제의 공소 방문 때는 사제의 성무를 도왔으며 교우들이 바른 성사를 받을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병인년 대박해 때 피신하여 살다가 1868년 남양 감영 포졸에게 아내 박 마리아와 함께 붙잡혀 남양으로 끌려왔다. 이 부부는 온갖 형벌에도 배교치 않았으며 한달 동안의 옥고 끝에 교수형으로 순교했다. 당시 나이 50세였다.


- 박 마리아(1818~1868) 순교자 김 필립보의 아내로 1868년 남편과 같이 남양 감영 포졸에게 잡혀서 남편과 함께 남양으로 끌려와 한달 동안의 옥고와 가혹한 형벌을 이겨내고 남편 김필립보와 같이 교수형으로 순교했다. 당시 나이 50세였다.


- 정 필립보(?~1867) 경기도 용인의 것옥골에서 살았는데, 1866년 11월 남양 감영의 포졸에게 붙잡혀 가옥한 형벌에도 굴하지 않고 다음 해 1867년 1월에 교수형으로 순교했다.


- 김홍서 토마(1830~1868) 수원 갈매리 사람으로 1868년 남양 감영의 포졸에게 아내와 함께 감옥에 끌려왔다. 아내는 배교하여 풀려났으나, 김홍서 토마는 끝내 배교치 않고 김 필립보 부부와 함께 교수형으로 순교했다. 배교한 아내는 김홍서 토마가 순교하자 시신을 찾아 장례를 치렀다. 순교자 김홍서의 나이는 38세였다.

 

남양동 335 경기문화재자료34호 남양향교 031-369-2643

남양향교는 화성 최초의 교육기관으로 어질고 덕이 높은 선비들의 위패를 모셔 두고 경기도 지방의 선비들과 백성들을 교육시킬 목적으로 1397년(태조 6) 남양부 음덕리면 역골에 건립되었다가 1873년에 지금의 자리로 옮겨졌다.

 

현재의 위치로 옮겨지을 당시 향교 건물은 대성전, 양무, 명륜당, 동재, 서재, 외삼문, 내삼문, 홍살문, 교직사 등으로 이루어져 있었으나 현재는 대성전, 내삼문, 명륜당, 동재, 서재, 외삼문, 교직사, 홍살문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중 명륜당은 1973년 멸실되어 초석만 남아있던 것을 1989년~1990년간에 복원한 것이고 교직사는 1995년에 신축한 것이며 다른 건물들도 몇 차례의 보수를 거쳤다. 남양향교는 크게 두개의 영역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제향영역과 강학영역이 그것이다. 제향영역은 대성전과 내삼문으로 구성되어 있고 강학영역은 명륜당, 동재, 서재 및 외삼문으로 구성되어 있다.

 

 

안석저수지 /  031-356-6436

 인천, 서울에서 약 50 ㎞거리에 위치하고 있으며 깨끗한 수질을 보유한 저수지이며 주변에는 화성온천, 남양성지, 제부모세등 유명한 관광지는 물론 남양성지, 제암리 3.1운동 순국유적지가 주요 볼거리이며 또한 자연경관이 수려하고 아늑하다.

 
 
○ 면적 : 19,000여평 비고
○ 다양한 지역행사 : 제부도 여름축제(7 ~ 8월), 송산포도축제(9월), 화성수라청 쌀 축제(9월)
○ 요금안내 : 노지 - 20,000원, 수상 방가로 15동 - 30,000원 (입어료 1인당 20,000원 별도)
○ 기타 : 휴게실, 식당, 매점, 주차장

 

시동172 가시리마을 031-355-5012

비봉 IC 수작사거리 우회전(4km) 남양유포도로(문호,시동방면) 원천동 삼거리 직진(문호리방면)1.5km 

 

가시라마을은 30년간 개발제한구역으로 지정되어 마을주변에 공장, 축사등의 오염원이 전혀없는 무공해, 청정한 환경을 자랑하며 가시리 마을의 가시리는 액운과 귀신을 막아준다는 가시나무인 엄나무의 가시와 마을의 형태가 숟가락 같다고 하여 나온 시리의 합성어다.

 

마을회관 옆에는 옛 선조들이 마을의 액운을 피하기 위하여 심어놓은300년이 넘은 "엄나무"가 마을을 지키고 있고, 잘 보전된 자연환경을 이용한 전통농사 체험에서 옛 향수를 느낄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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