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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방곡곡/경기도

수원 화성행궁 화성축제 화령전 무예24기

by 구석구석 2008. 4.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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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부속건물인 화성행궁

정조18년~20년에 화성을 축성하고 팔달산 동쪽에 행궁을 건립하였다. 정조는 선왕에 대한 효성이 지극하여 사도세자의 원침에 자주 참배하고 이 행궁에서 숙박하였다. 건립 당시에는 봉수당을 비롯하여 낙남헌등 33개 동의 건물이 있어 궁전 형태를 이루고 있었고 지금 복원 중에 있다. 1998년 3월 25일 화성행궁이 복원 준공식을 가졌다. 우리나라 행궁중 가장 규모가 크고 아름다웠던 화성행궁의 주건물(정당)로서 정조임금께서 모친 혜경궁홍씨의 회갑연을 열었던 건물이다. 


현재 남아있는 낙남헌을 제외한 다른 모든 시설물들과 함께 일제의 민족문화와 역사 말살 정책으로 인해 사라져 버렸던 건물. 그러다가 10여년전 당시 수원문화원장과 지역원로, 문화계인사, 향토사학자들이 이를 안타깝게 여기고 복원추진위원회를 구성, 꾸준하고 적극적인 복원운동을 펼쳐온 것이 결실을 맺게 됐다.

 

왕이 궁궐을 벗어나 머무르는 곳을 행궁이라 하는데 수원성의 원래 이름이 화성이었으므로 화성행궁이라 부른다. 화성행궁은 화성의 동서가로의 서쪽 끝에 주산인 팔달산을 배경으로 정조 13년~14년(1789~1790)에 자리잡아 화성축성(1794~1796)때 증축되었다.

 

 행궁에는 정전인 봉수당ㆍ장락당을 비롯하여 경룡관ㆍ복내당ㆍ유여택ㆍ노래당 등의 전각이 있었고, 정정인 신풍루를 비롯하여 좌악문ㆍ중양문 등의 문루건물과 남북 군영ㆍ서리청ㆍ집사청ㆍ비장청ㆍ외정리소 등 많은 부속건물이 있었으며, 또한 신풍루 앞쪽 좌우와 중요한 전각주위에는 행각이 세워져 행궁으로서의 격식을 갖추고 있었다. 일제시대에 건물을 헐어내어 신풍초등학교 교정에 낙남헌만 남아 있었고, 최근에 복원공사를 통하여 옛 모습을 되찾아가고 있다.

 

 

○ 규모 : 45,358m2
○ 관람시간:  하절기 :09:00 ~ 17:00 · 동절기 : 09:00 ~ 18:00
○ 휴관 : 매주 월요일
○ 요금정보
일반 1,000원(개인)/700원(단체), 학생 및 군인 500원(개인)/300원(단체), 노인 및 장애인 유아 무료

 

 

사적 제115호(1963.1.21) 화령전

 이 건물은 정조의 초상화를 모셔 두고 제향을 올리던 곳이다. 정조는 아버지 사도세자의 무덤을 화산으로 옮긴 후 수원에 행궁을 만들어 놓고 여러 차례 다니면서 지극한 정성으로 아버지의 제사를 모셨다. 1800년 정조가 죽고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순조는 정조의 효심을 받들기 위해 그 이듬해인 순조 1년(1801)에 행궁 곁에 정조의 영전을 건립하였다.

 
화령전은 화성부의 주산인 팔달산의 동쪽 자락에 동쪽으로 향하여 자리잡았다. 외삼문, 내삼문, 운한각, 전사청, 풍화당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외삼문 내삼문과 진영(眞影)을 모신 운한각은 일직선상에 놓여 있다.

 
운한각의 오른쪽에 제사를 준비하는 전사청이 있고 담장으로 두른 바깥에 제사를 주관하는 제관이 머무르는 풍화당이 있다. 운한각은 정면 5칸 측면 4칸의 건물로 전면 1칸은 퇴칸으로 꾸미고 앞쪽에는 월대(月臺)를 두어 제사의례에 적합하게 구성하였다. 팔작 지붕에 익공으로 구성하였는데 규모나 형식이 격식에 맞고 부재의 크기나 다듬은 목재가 적당하여 조선 후기의 영전을 대표하는 건물로 볼 수 있다.


운한각과 전사청 사이에는 5칸의 행각을 세워 두 건물을 연결하였다. 이렇게 섬돌과 행각, 마당의 삼도(三道) 등은 이 건물이 궁전과 격식이 같음을 나타낸다.

 

 수원화성 행궁에 핀 ‘축제 한마당’ 

가을바람이 쓸고 간 자리엔 성곽에 꽂힌 깃발만이 펄럭거리며 허공을 채운다. 정갈한 모양의 돌이 차곡차곡 쌓여있는 성벽은 대단한 비밀이라도 지키고 있는 듯 단단한 모양새다. 동서남북 네 방향으로 성과 사람을 연결해주는 성문도, 성을 가로지르며 흐르는 개천도 아무 말 없이 청명한 가을을 맞이한다. 이렇듯 고요한 나날들을 보내고 있는 수원화성에 지난 11일부터 4일간 수원화성문화제가 열려 하늘아래 가장 흥겨운 노랫가락이 흘러나왔다. 성문은 유유히 품으로 들어오는 객을 맞이하고, 객은 즐거이 화성 곳곳에 숨겨진 이야기를 들으며 그렇게, 한바탕 축제의 꽃을 피운다.

정조대왕 무예24기 공연

 

조선의 무혼 되살아나다

 

수원 화성은 정조대왕이 뒤주에서 서거한 아버지 사도세자의 죽음을 기리기 위해 축성된 것으로 유명하다. 따라서 화성은 곧 정조의 효심이 깃든 곳으로 여겨지고 있다. 그러나 화성에는 정조대왕의 효심뿐만 아니라 옛 조선시대의 무혼 또한 살아 숨쉬고 있다.

 

바로 조선 최정예 장용영(왕권강화를 위해 설치한 친위병 조직) 무사들이 연마했던 무예 24기가 그것이다. 임진왜란을 통해 무예의 중요성을 느낀 조선왕조는 무예도보통지를 편찬했고 이를 병영에 보급해 무예 24기를 익혔다고 한다. 이 또한 사도세자의 뜻을 이어받아 정조가 무예도보통지를 보급했다 하니 무예 24기에는 조선 무사들의 혼과 더불어 아버지를 향한 효심이 깃들어있다 하겠다.

 

화성축제를 맞이해 300년 전의 무예 24기가 화성행궁 신풍루 앞에서 그 화려한 모습을 드러냈다. 보병, 기병의 의복을 갖춰 입은 10여명의 무예단이 먼지를 흩날리며 등장하자 관중은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숨죽여 이들의 무예를 감상하기 시작했다.

  무예단은 무예도보통지 1권에 수록된 장창부터 4권에 마지막 무술로 게재된 마상재까지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기합소리를 흩뿌리며 완벽히 재현해냈다. 바람을 가르며 나아가는 월도(칼날의 모양이 달처럼 생긴 창)의 호쾌한 놀림, 쌍검의 날카로운 공격, 등패의 기백 있는 방어까지. 무예단 이마에 단단히 묶인 띠가 땀으로 젖어갈수록 관중들의 박수 또한 힘을 더해갔다. 이들의 무예 24기가 빚어낸 조선의 무혼은 몇 백년의 시간을 지나 화성행궁에서 다시 날아나고 있었다.

 

  갈고 닦은 기량 한없이 발휘하라    

화성행궁 봉수당에서는 정조대왕이 참관한 유생들의 과거시험이 한창 무르익고 있었다. 임금이 친림해 과거시험을 참관한 것은 정조대왕이 최초라고 하니 그 당시 유생들이 얼마나 긴장했을지 짐작 가능하다. 50여명의 유생들은 봉수당에서 정갈한 자세로 먹을 갈며 정조대왕을 기다리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북소리와 함께 조복, 제복, 공복을 차려입은 문무백관이 입장하고, 곧이어 정조대왕이 친위부대와 함께 장내로 들어오자 유생들과 치타대, 좌통례, 도승지 등 모두가 머리를 조아리며 임금을 맞이했다. 정조대왕이 의자에 착석한 뒤 유생들은 무릎을 꿇고 자리에 다시 앉았다. 3개의 시제가 담긴 교지를 도승지가 정조대왕에게 건네자 정조대왕은 그 중 1개를 선정해 도승지에게 일러주었다. 이 날의 주제는 부모님의 뜻과 본인의 뜻을 같이 하라는 것. 도승지가 주제를 발표하니 정조대왕은 지난 세월동안 갈고닦은 학문의 기량을 여지없이 발휘하라며 유생들을 격려했다.

 

정조대왕은 어린이 과거시험이 진행되는 낙남헌으로 자리를 옮기고 유생들에게는 한 식경 남짓한 시간이 주어졌다. 유생들은 붓을 곧게 잡고 차분한 마음으로 하이얀 한지에 자신의 생각을 적어 내려갔다. 시험이 끝났음을 알리는 북이 세 번 울릴 때까지.

 

 

효심 가득한 행렬 장엄하다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를 참배하러 오는 정조대왕의 행렬은 그 어느 왕의 행차보다 화려했다고 한다. 13차례 거행된 능행차 중 1795년 2월에 시행됐던 행차는 가장 대규모의 행렬로 기록돼 있다. 행차에 참가한 사람이 1807명, 말이 796필로 추산된다. 이번 화성축제의 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조대왕 능행차 연시에는 5661명의 인원과 1417의 말이 동원돼 시민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임금이 행렬의 중앙에 위치하는 여느 행차와 달리 정조대왕 능행차 연시에는 정조대왕이 앞에서 인도하고 혜경궁 홍씨가 행렬의 중심에서 이동했다. 행렬의 선두인 경기감사가 모습을 드러내자 행렬을 기다리고 있던 시민들은 박수와 환호성으로 이들을 맞이했다.

 

특히 외국 참가자들은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이들의 행색과 깃대, 말의 행동거지 하나하나를 관찰했다. 곧이어 총리대신, 훈련대장, 금군별장, 어보마 순으로 행렬이 이어졌다. 드디어 정가교(정조대왕이 타는 가마)가 등장하자 폭죽이 터지고 수많은 깃발들이 나부끼는 가운데 관중들은 보다 열렬히 정조대왕을 환영했다. 뒤이어 혜경궁 홍씨를 태운 가마가 들어서고 행렬의 끝인 장용영 부대가 들어섰다. 행렬은 장안문에서 팔달문까지 이어지며 축제의 열기를 한층 더했다.

 

  궁중 문화 마음껏 체험하라     화성행궁 일원에는 궁중 문화를 몸소 배울 수 있는 체험행사들로 가득했다. 한 푼에 2000원하는 엽전을 구입한 뒤 각각의 체험행사장으로 가서 행사를 돕는 궁녀들에게 건네면 된다. 한지만들기를 통해 닥나무가 한지로 변하는 과정을 몸소 체험하는 아이들의 눈빛에는 신기함과 호기심이 역력했다. 도자기를 굽는 작은 손길에는 정성스런 마음이 한껏 묻어나왔다.  

유여택 마당에서 만들어지는 궁중음식은 코를 자극하는 구수한 냄새를 풍기며 축제 참가자들을 유혹했다. 노오란 화전과 노릇노릇하게 구워진 부침개, 달달한 식혜까지.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했던가. 축제 참가자들은 유여택 마당에서 주린 배를 달래며 청명한 화성행궁의 하늘을 느긋이 감상하는 듯 했다.

  옆 마당은 궁중 한복을 입어보며 축제를 즐기는 아이들의 웃음소리로 가득했다. 혜경궁 홍씨의 가채머리 쓴 뒤 방석 위에 다소곳이 앉아도 보고, 나인시절 장금이가 입던 옷을 입고 한껏 멋을 부리기도 하고, 의녀 장금의 복장을 하고 상궁들의 맥을 짚어 보며 옛 조선 궁궐 여인네들의 멋을 한껏 따라해 본다. 한복 차려입고 가마타기, 갑옷 입고 말타기 등의 체험행사와 함께 널뛰기, 윷놀이 등의 민속놀이도 축제를 즐기는 감초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여행미디어 2007.10. 29

 

武藝 二十四技 - 조선 무예의 전통을 찾아서 

 

힘찬 구호와 함께 조선시대 관군들의 복장을 한 무사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인다. 원앙진은 중국의 명나라 장수인 척계광이 왜구를 상대하기 위해 발명해 낸 진법으로 대장 1명, 등패수 2명, 낭선수 2명, 장창수 4명, 당파수 2명, 화병(취사병) 1명, 도합 12명으로 구성된 가장 작은 규모의 진법체계다. 원앙진을 선보이는 무사들은 사단법인 무예 24기 보존회 회원들이다.

 

무예 24기는 조선 정조 때 박제가, 이덕무, 백동수 등 서얼 학자들이 완간한 <武藝圖譜通志>(무예도보통지·1790)에 실린 스물네 가지 기예를 말하며, 조선조 武科試取(무과시취)의 과목으로 구한말 구식 군대가 해체될 때까지 조선의 관군들이 익혔던 군사무예다.

세계문화유산 수원화성 행궁 신풍루 앞에서는 월요일을 제외한 매일 오전 11시면 갑옷을 입은 무사들이 등장해 무예공연을 벌인다. 창 끝이 하늘을 찌르고 칼날이 허공을 가르면 무게 10㎏의 갑옷을 입은 무사들의 얼굴은 땀으로 흠뻑 젖고 외국인 관광객 무리에서는 `와아~`하는 감탄이 흘러 나온다.

공연단이 선보이는 무술은 조선 정조시대 출간된 `무예도보통지`에 기술된 24가지 무예.
정조의 개혁정신과 당대 과학기술이 집약된 수원화성은 정예부대 장용영 무사들이 무예도보통지의 24기를 연마했던 역사의 현장이자 한국무예의 성지이기도 하다. 보병무예 18기와 마상무예 6기로 구성된 24기에는 단순한 무술 차원을 넘어, 외적으로부터 우리 땅을 지켜온 조선 무사들의 불굴의 기상과 동양의 우수한 무예를 통합해 표준화시킨 실용과 창조 정신이 깃들어 있다.

장창을 이용한 진법을 선보이고 있는 단원들. 장창은 길이가 4m 60㎝나 되는 긴 창으로, 밀집대형을 이뤄 적의 기병이나 진을 무너뜨리는 데 사용한다. 월간조선

사단법인 `무예24기보존회`는 2004년 12월 창립돼 수원화성 중심으로 무예 24기를 계승 발전시키며 전수를 통해 보급하고 있다. 회원 30명에 시범단원 25명으로 꾸려진 `무예24기보존회` 활동의 중심부에는 김영호(46) 중앙전수원장이 있다. 호리한 몸짓에 무사의 눈빛을 가진 그는 7일부터 시작된 수원화성문화제의 하이라이트 야조(夜操.야간군사훈련)를 기획한 주인공이다. 야조는 정조대왕이 1795년 윤2월 화성행차 나흘째 서장대에 친림해 지휘했던 군사훈련이다. 당시 화성행차를 기록한 `원행을묘정리의궤`를 바탕으로 208년 만인 2003년 처음으로 재연됐다. 야조는 장용영 군사와 성내 백성들이 정조의 명에 따라 횃불과 등불을 켜고 벌였던 불꽃축제 한마당이기도 하다.

거창 출신인 그는 1990년 광주광역시에서 임동규 선생으로부터 무예 24기를 익힌 뒤 그 매력에 흠뻑 빠져들었다. 2001년 제자 1명, 사범 4명과 `무예 24기의 성지` 수원으로 온 그는 무예24기보존회의 전신`24반 무예협회`를 만들어 화성을 무대삼아 전수와 홍보에 정열을 쏟았다. 지금 무예24기보존회는 수원지역 10여 군데 학교와 공원에서 무예 24기를 가르치고 있고 여름철에는 화성행궁에서 정기 무예교실을 열고 있다.

 

2002년 `조선의 협객 백동수`(푸른역사)를 펴낸 그는 또 다른 무사 전기소설 `전설의 검객 김체건`(가칭)을 조만간 간행할 예정이다. 서얼 신분으로 장용영 초대 초관(중대장)을 지낸 백동수나 일본과 중국을 드나들며 검법을 익혀 숙종의 친위부대 금위영의 별무사(특별교관)를 지낸 김체건은 삶 자체가 드라마라고 한다. 연합뉴스 2009.10 김경태기자

팔달구 지동 402-28 옛장터 밀알전복순대국 031 242 0042전복이 들어간 토종순대 1인분 7,000원/막창 9,000원

순대타운 길 건너편에 보면 ‘매일 직접 순대를 만드는 집’이란 문구를 건 20년 역사의 순대와 곱창전문점이 있다. 곤드레나물밥전문 음식점 ‘행궁곤드레팔달구 신풍동 94-2 / 031-252-1229

행궁곤드레나물밥엔 쌀눈이 얹혀 나온다. 참으로 특이하다. 몸에 좋은 곤드레나물에 쌀눈까지 더해지니 금상첨화다. 쌀눈 역시 몸에 좋다는데 저렴한 가격으로 마치 보약을 한 재 먹는 기분이 이럴지 싶다. 한 상 가득 차려진 곤드레나물밥의 밑반찬은 정말 가짓수고 많고 양도 푸짐했다. 밑반찬으로는 감자조림, 가지나물, 어묵조림, 된장찌개, 올갱이묵무침, 김, 아삭이고추, 오이지, 새싹샐러드, 두부전, 도라지강정 등이 나오는데 반찬 하나하나가 한결같이 맛있다. 곤드레나물밥을 간장양념에 비벼 먹다보면 그 맛만으로도 만족인데 밑반찬이 많으니 먹기도 바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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