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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방곡곡/경기도

파주 하포리-허준묘

by 구석구석 2008. 4.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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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기념물 제128호 허준묘 하포리 산129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명의 허준(許浚 1546∼1615) 선생의 묘이다. 선생의 본관은 양천, 자는 청원, 호는 구암이다. 용천부사를 지낸 허론의 서자로 김포에서 출생하여 당대의 명의인 유의태의 문하에서 의학을 배웠다.

 
선조 7년(1574) 내의원 취재에 장원으로 급제한 후 혜민서 봉사를 거쳐 전의로 발탁되어 왕실의 진료에 많은 공적을 세웠다. 선조 25년(1592) 임진왜란때 어의로서 왕을 의주까지 모셨으며 1604년 충근정량호 성공신 3등이 되었고 1606년 양평군에 봉해지며 숭록대부에 가자되어 의인으로는 최고의 명예를 누렸다. 1608년 선조가 승하하자 치료를 소홀히 했다는 죄로 파직, 유배를 당했다가 광해군 원년 (1609)에 다시 복직되었다. 

저서로는 동의보감, 언해구급방, 언해두창집요 등이 전한다. 광해군 2년(1610) 16년의 연구 끝에 이루어진 동의보감은 우리나라는 물론 일본, 청나라 등지 에서도 간행 보급되어 조선의학 내지 동양의학의 성전이 되었다. 선생은 우리나라가 낳은 대표적인 명의·의학자로서 한의학 중흥의 거봉이자 동양의 의성으로 이름이 높았으며 별세후 숭록대부에 추록되었다.


그 동안 선생의 묘는 확인되지 않다가 1991년 9월 30일 재미 고문서 연구가 이양재씨등이 『양천허씨족 보』에 기록된 "진동면 하포리 광암동 선좌 쌍분"이라는 내용을 바탕으로 군부대의 협조를 얻어 조사한 결과 발견되었다. 허준의 묘소는 비무장지대에 방치되었다가 1991년 두 조각으로 쪼개진 채 묻혀 있는 비석에서 『陽平(君) (扈)聖功臣 (許)浚』이라는 글자가 발견되어 허준의 묘임이 확인되었다.


묘비 및 무덤을 수호하기 위해서 세우는 문인석, 향로석, 상석 등이 있다. 왼쪽이 허준의 묘이고 오른쪽은 부인인 안동 김씨의 묘인데, 뒤쪽에는 허준 어머니의 묘로 추정되는 묘가 있다.

 

- 37번국도 문산에서 적성방면 → 두포리 → 전진교(출입통제) → 전진교를 건너 동파리 수복마을쪽으로 진행하다 일월성 부대 지나 방벽에서 우회전하여 소로길을 따라 약 1키로미터 진행 ※ 민간인 통제구역으로 군부대와 사전협의후 출입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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