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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방곡곡/경상남도

합천 치인리-희랑대 삼선암

by 구석구석 2008. 3.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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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산 보덕굴을 닮았다는 암자 희랑대 (055-932-7301)
 

국일암에서 조금 올라가자 삼거리가 나온다. 백련암으로 가는 길과 희랑대로 가는 길이 갈라지는 지점이다. 희랑대 가는 길은 왼쪽이다. 꽤 넓은 길이지만, 키 큰 소나무들이 길 양쪽에서 마치 길손을 호위하듯 서 있어 호젓한 느낌을 준다. 십여 분쯤 걸었을까. '나반존자 기도도량 희랑대'를 알리는 팻말이 나오고, 우측으로 희랑대로 오르는 계단이 있다.

 

 

희랑대오르는 길과 희랑대/안병기

 

희랑대는 927년 희랑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지며 1940년에 현옹이라는 분이 중건했다고 한다. 통일신라시대 말기부터 고려시대 초기까지 활동한 희랑 스님은 화엄학의 대가였다. 고려 태조 왕건을 도와 후삼국을 통일하는 데 큰 공을 세웠다고 하며 해인사를 중창하기도 했다.

 

희랑대는 왼쪽의 불전 영역과 오른쪽으로 치우쳐 있는 살림 영역으로 나눌 수 있다. '희랑대'라 쓰인 현판을 단 법당은 정면 4칸, 측면 1칸 크기의 팔작지붕 건물이다. 1970년에 성허 스님이 지은 것이다. 안에는 지장보살과 아미타불을 모셨다. 지장보살은 지옥·아귀·축생·수라·사람·하늘 등 육도 윤회의 고통에서 중생을 구제하고자 원을 세운 보살이다.

 

 

법당과 뒤로 보이는 독성전(좌), 멀리보이는 지족암(우)/안병기

 

독성전은 정면 3칸, 측면 1칸 크기 전각이다. 1940년 희랑대를 중창할 무렵, 이화백이라는 목수의 꿈에 한 노인이 나타났다. 노인은 "두 칸은 너무 작으니 3칸으로 지어달라"고 했다. 원래 계획은 암반 위에 2칸 6평 정도 되는 독성전을 지을 예정이었는데 이 꿈 때문에 3칸으로 늘려 지었다는 것. 꿈에 나타난 노인이 바로 독성 나반존자라는 얘기다.

 

희랑대를 절경이라 하는데 암자 내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좀 답답하다. 골짜기와 골짜기 건너편에 있는 지족암밖에 보이지 않는다. 희랑대를 더 잘 볼 수 있는 곳은 어디일까. 요사 뒤로 해서 산기슭으로 올라간다. 암자 위에서 바라보니. 이제야 모든 풍경이 잘 보인다. 건너편 지족암이 한눈에 들어온다. 저 멀리 아득한 산자락을 바라보니, 원당암도 바라다 보인다. 조계종 종정을 지내시다 2001년에 입적하신 혜암 스님께서 오랫동안 머물렀던 암자다.

/ ⓒ 2008 OhmyNews 안병기

 

근대 명망 있는 비구니 스님들의 산실 삼선암 (055-932-7278)

성보박물관 뒤로 난 길을 따라 해인사 가는 길로 올라가다 보면 길이 세 갈래로 갈라진다.
 

좌측으로 난 길을 택해 향상교라는 다리를 건너 오른쪽으로 가면 삼선암·금선암으로 가는 길이다. 이 길은 계곡을 따라가는 길이다. "물이 말라 있지 않다면 계곡의 시냇물소리와 동행하는 좋은 길인데..." 하는 아쉬움이 슬그머니 고개를 쳐든다.

  삼선암 가는 길/안병기
 

삼선암은 조선 고종 30년(1893)에 비구니 자홍 스님이 창건했다고 한다. 세 봉우리 밑에 있다 하여 삼선암이라 불렀다고 한다. 그러나 암자 옆 계곡에서 세 사람의 신선이 놀았다고 해서 삼선암이라 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나는 신선이 놀았다는 이야기를 신빙성 있게 받아들인다. 그런 상상을 불러올 만큼 계곡이 맑고 깨끗하기 때문이다. 세 봉우리 밑에 있다 해서 삼선암이라 불렀다면 그야말로 맥 빠질 만큼 단순하지 않은가. 물론 신선이 놀았던 곳이라 해서 삼선암이라 불렀다는 것도 약간 진부하긴 하다. 단순한 사실에 기대기보다는  진부할망정 아름다움이 서린 전설이 더 좋은 것이다.

 
 

법당(좌), 약사전과 선불장

 

삼선암으로 가는 다리를 건너기 직전에 돌확처럼 생긴 샘을 만난다. 물 한 모금을 떠 마신다. 바닥으로부터 물이 콸콸 솟아오른다. 어떻게 바위에 구멍을 뚫고 파이프를 연결했을까.

 

1904년에 보찬·지종 두 스님이 중건했다고 전해진다. 중앙에 법당이 있고, 그 좌측에 '우소정(又小井)이란 선방이 있다. '작은 샘'이라는 뜻을 가진 선방이다. 아무렴. 마음이란 작은 샘 같이 끊이지 않고 물이 솟아나야지. 우측에는 세로로 길게 늘어선 반야선원이 있다. 근래에 지은 건물로 여러 가지 주의사항이 쓰여 있는 걸 보면 아마도 시민선방이 아닌가 싶다.

 
 
 

법당보다 한 층 더 높은 축대 위에는 약사전과 선불장(選佛場)이란 현판을 단 선당이 있다. 선불당이라고도 부르는 선불장은 스님들이 참선하시는 방이다. 부처 뽑는 시험공부를 하는 방이니 얼마나 치열한 곳인가.

 

금룡·수옥 근대 비구니계의 3대 강백 중 한 사람인 혜옥 스님을 비롯하여 우리나라 내로라하는 비구니 스님들이 이곳 삼선암을 거쳐 갔다.

 
 
 

선원 뒤로 난 큰길을 따라서 부도밭으로 간다. 왼쪽에 돌계단이 있다. 부도밭으로 올라가는 길인가 보다.

 

이곳에는 3기의 부도가 모셔져 있다. 좀 세월의 때가 낀 것이 문오 스님의 부도이다. 그에 대한 기록은 찾을 수 없다. 그러나 20c 초 삼선암에 주석했던 스님이라는 건 틀림없다. 정암당 혜옥(1901~1969) 스님의 은사이기 때문이다. 나머지 2기의 부도는 근래에 조성한 것으로 보인다.

 

떠들썩한 저 아래 해인사 들머리와는 달리 언덕이 매우 조용하고 적막하다. 이제 절집에 와도 쉽게 맛볼 수 없는 적멸을 이곳에서 겨우 맛본다. 어쩌면 이렇게 시끄러운 시대엔 부도밭이야말로 가장 절집다운 곳인지도 모른다.

/ ⓒ 2008 OhmyNews 안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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