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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방곡곡/제주시

서귀포 하원동-법화사 머네 약천사

by 구석구석 2008. 2.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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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귀포 시내에서 서쪽으로 16번 중산간도로를 주행하다 보면 하원동과 탐라대학교로 각각 진입하는 3거리가 나온다. 이 3거리에서 직진방향 오른쪽에 법화사로 들어가는 비포장 샛길을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다.

 

 

 

 하원동 법화사

 

 우리 민족에게 있어 해양시대의 최전성기를 꼽으라면 단연 장보고 대사의 청해진 시대를 들 것이다. 육지에 광개토대왕이 있었다면 바다에는 장보고 대사가 있었다.
장보고 대사가 창건한 것으로 알려진 천년사찰 법화사는 서귀포시 하원동에 있다고 전해진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근거로 법화사는 지난 1971년 제주도 기념물 제13호로 지정됐으며 1982년 이후로 고고학자들에 의해 발굴과 사지매입, 복원 등의 작업이 병행되고 있다. 

관련 자료에 따르면 장보고 대사는 통일신라 문성왕 1년(서기 839년)을 전후하여 중국의 산동반도 적산촌과 양자강 하류, 완도의 청해진에 법화원을 창건했다. 
이후 현 서귀포시 하원동 1071번지 일대에 법화사를 창건함으로써 이를 해상축으로 하여 동북아 바다는 물론 멀리 남지나해까지 세력권으로 수용하는 광활한 해상왕국을 구축했다.

 

일본과 태평양을 바라보는 최전방에 법화사를 창건한 것. 이미 1천여년전 장보고 대사는 법화사지의 지정학적 중요성을 놓치지 않고 있었다.

법화사를 방문하면 ‘종합정비복원계획’에 따라 철저한 고증을 거쳐 복원된 대웅전과 남순당, 구품연지, 구화루를 만나 볼 수 있다. 이 가운데 구품연지는 불교사상에서 말하는 극락정토의 구품세계관을 상징하는 연못으로 전국 사찰 중 가장 넓은 규모다.
구품연지 바로 곁에 자리잡은 구화루도 감상할 수 있는데 나무로만 지어진 독특한 건축형태와 나무향을 음미할 수 있다.

 

머지않아 산동반도 법화원과 완도 청해진 서귀포시 법화사지를 경우해 일본 큐슈에 이르는 장보고 해상무역 관광투어가 각광받는 날이 오지 않을까.

 

 

법화사는 수정사, 원당사와 더불어 고려후기 제주지방의 대표적인 사찰이었다. 원당사는 원의 순제때에 기황후의 소원에 의해 창건됐으나, 법화사, 수정사는 그 창건연대가 확실하지 않다. 이들 사찰은 조선중기까지 계속 존속돼 제주불교의 명맥을 유지해 나갔다.

특히 법화사와 수정사는 조선시대 제주도의 산남, 산북을 대표하는 사찰로 유명하다.

 

법화사 연꽃축제

대한불교 조계종 법화사가 주최하고 연꽃축제위원회(위원장 변성근)가 주관하는 이 축제는 해신 장보고 대사에게 바치는 헌다례를 시작으로, 연꽃이 핀 구름연지에서 선시 낭독과 함께 불교작품 소장전 및 서각전, 서예ㆍ사군자전, 경구 및 가훈 써주기 등 다채로운 행사가 펼쳐진다.

축제 마지막 날에는 연꽃으로 만든 차와 음식 시음행사, 판소리.바라춤.가야금 병창 등 연꽃음악회와 어린이 재롱잔치 등이 마련된다. 법화사는 통일신라 때 장보고대사에 의해 개창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1971년 지방문화재로 지정됐다.

 

상상의 세계로 떠나는 장소는 서귀포시 하원마을 '머네'

 

 

 

바위 하나가 서 있다고 해서 이름 지어진 약천산 앞 선궤 양쪽으로 물, 선궷내 하류 일대에는 예로부터 가뭄에도 마르지 않는 샘인 머네가 있었다. 일부 사람들은 머내로 표기하기도 한다. 지명에 대한 선행조사가 부족해 현재 있는 자료로 지명유래를 찾아낸다는 것이 어려워 원로들에 의해 구전되는 내용과 그나마 지금 부르고 있는 발음에서 찾는 길 밖에 없다.

 

 

김창원 하원노인회장은 "선궷내를 기준으로 동쪽은 하원, 서쪽은 대포마을로 나뉜다"면서 "머네는 약천사 옆길을 따라 바다로 향하는 선궷내 하류지만 과거 선궷내 일대 논지대를 모두 머네"라고 했다고 말했다.

 

과거 논과 과수원 사이 좁은 길을 따라가야 머네에 이를 수 있었지만 지금은 약천사 앞 해안도로변에 간이 목재 다리가 놓여있어 쉽게 찾아갈 수 있다. 흐르는 물 사이 울퉁불퉁 모난 바위를 징검다리 삼아 선궷내를 따라 조심조심 걷는다. 가는 길목 바위틈에는 유채와 이름 모를 어여쁜 들풀, 수중생물까지 가는 길의 지루함을 달래준다.

 

300m 정도를 걸어 내려갔을까. 물소리가 다르다. 발 밑 바위도 범상치 않다. 거북이 등딱지 모양을 한 널따란 바위가 화산섬, 제주를 다시 일깨워 주는듯 하다. 군데군데 용암이 굳어 형성된 넓고 평평한 바위들이 나름대로의 높낮이를 형성하면서 얕은 2단 폭포를 형성했다. 

 

머네의 진풍경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왼쪽 강정마을 해안을 끝에서부터 그리는 타원처럼  형성된 해안가는 자갈과 수초가 적절히 배합된 둥근 수조다. 서귀포해안의 특징인 수려한 기암과 몽글몽글 알작지까지.

서귀포신문 한애리기자

 

중문에 있는 제주 컨벤션센터에서 풍림콘도 쪽으로 난 길을 따라가면 약천사라는 절이 있다.

 

 제주 남쪽 바다가 어렴풋이 내려다 보이는 낮은 언덕위에 고래등 같은 기와를 이고 있는 상당히 큰 규모의 절이다. 이곳의 대웅전이 되는 대적광전은 동양에서 가장 큰 단일 법당으로 알려져 있다.

 

밖에서 보이는 외형은 4층짜리 건물이지만 실제는 7층 정도의 높이에 속은 단층의 뻥 뚫린 형태다. 여기에 모셔진 불상의 크기만도 5미터.

 

법당의 기본 구조는 금산사의 미륵전과 같은 외부 3층 구조의 양식을 취하고 화엄사 각황전의 웅장한 구조미를 본떠 약천사의 창건자인 혜인스님이 직접 설계도를 그렸다고 전한다.

 

법당 내부 정면에는 국내 최대인 높이 5m의 주불인 비로자나불이 4m의 좌대 위에 안치돼 있고, 좌우 양쪽 벽에는 거대한 탱화가 양각으로 조각됐다. 이외에도 약천사에는 특이하게 역사적으로 중요한 인물이 안치돼 있는데, 조선조 마지막 왕인 영친왕[李垠]과 이방자 여사, 문종대왕,현덕왕후 등의 위패가 이곳에 모셔져 있다.

대웅전앞에는 운동장 같은 넓은 공간이 있고 양쪽으로 범종각과 북루가 지킴이처럼 서 있다. 특히 왼쪽에 있는 종각에는 무려 18t이나 되는 범종이 걸려 있다.  또 하나 약천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볼거리는 대웅전뒤쪽에 위치한 자연 암굴 법당. 한사람이 겨우 드나들 정도의 바위문을 들어서면 안에는 여느 암자에 버금가는 법당이 마련되어 있다. 이 법당은 약천사를 짓기 오래전부터 김평곤 법사라는 분이 출가하여 수도를 하던 곳.

약천사(藥泉寺)가 위치한 자리는 본래 ‘�새미’라 불리우던 곳으로 수질이 뛰어난 약수가 샘솟던 자리다. 예부터 주변 마을 사람들은 이 약수를 마시고 기갈을 해소하였을 뿐만 아니라 병을 고치는 명수로 아끼고 있었다. 그러던 중 1981년에 경북 영천 은해사의 혜인스님이 이곳에 들러 절을 창건할 것을 결심하고, 88년에 착공을 하여 이듬해 법문을 열었는데, 약수가 샘솟는 곳이라 하여 약천사(藥泉寺)라 이름지었다.

 

아직도 약천사 연못 위에는 사시사철 연못으로 물을 흘러 보내는 약수터가 남아 있고, 많은 사람들이 이 물을 찾아 약천사를 찾고 있다.

 

* 대중교통 이용시
서귀포시나 중문관광단지에서 시내버스를 타고 중문상고 앞에 하차한 후 5분여 정도면 걸어갈 수 있다. 중문상고 앞에서 약천사를 가리키는 큰 간판이 있다.

* 자가용 이용시
1.제주공항에서 서부산업도로를 타고 중문관광단지로 가는게 가장 빠르다. 중문에서 서귀포방향으로 조금 올라가면 중문시가지를 지나 중문오렌지파크와 중문상고사이 가운데쯤 바닷가로 난 조그만 길 입구에 약천사라는 입 간판이 있다. 이를 따라 500미터를 들어가면 된다.
2. 서귀포쪽에서 갈 경우는 서귀포시외버스터미널과 서귀포여고등을 지나고 제주월드컵경기장을 지나 중문쪽으로 내려가면 중문상업고등학교가 왼쪽으로 보이고 약천사 표지판이 커다랗게 나타난다. 또는 제주 월드컵 경기장 앞에서 강정 풍림콘도앞을 지나 해변길을 따라 올라가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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