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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방곡곡/강원도

삼척 무건리 이끼계곡

by 구석구석 2008. 2.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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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동·동해 고속도로를 이용할 경우는 동해에서, 중앙고속도로를 이용할 경우는 제천에서 38번 국도를 이용하여 영월, 태백을 지나 하고사리역까지 간다. 하고사리역 맞은편 방향으로 고사리를 가리키는 이정표를 따라 3.5km 정도 산길을 달리면 석회암 채굴장인 태영EMC를 지나 무건리 성황골 초입에 닿는다. 이끼폭포로 향하는 임도 초입에 차단기가 달려 있다. 이곳에서부터 4km 정도 걸으면 무건리의 끝인 큰말 샘터가 나온다. 샘터 맞은편으로 계곡으로 내려서는 오솔길이 보인다. 그곳에서 10분 정도 가파른 내리막이 끝나는 곳에 이끼폭포가 있다.

 물안개 진양조로 흐르는 협곡의 이끼폭포

 

첩첩 산중 강원도 삼척군 도계읍 소달초등학교 무건분교가 있던 자리. 사방을 둘러봐도 산밖에 없던 산마을 아이들이 꿈을 키우던 곳이다. 94년 문을 닫은 이후 무궁화나무만 아슬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구름이 눈높이에 걸려 있다. 훌쩍 고개 하나 넘었을 뿐인데, 산허리에 걸린 구름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


강원도 삼척군 도계읍 무건리. 강원도 산마을이 다 그렇듯, 길이 길을 잊고 산으로 스며드는 곳에 터를 잡은 곳이다. 38번 국도가 지나는 도계읍 하고사리역에서 고사리 방향으로 향하다 찻길이 끝나자 무건리의 초입이다. 이곳에서 이끼폭포까지는 약 4km. 성황나무가 서 있는 첫 번째 고갯마루까지 2km 정도는 가파른 콘크리트 포장길이다. 

 

성황나무 고갯마루에서부터 산길과 계곡 물소리의 숨바꼭질이 시작된다. 빨아들일 듯 강렬한 계곡 물소리가 어느 순간 거짓말처럼 사라지고 다시 이어지기를 반복한다. 비 오는 여름 산의 매력은 장중한 계곡 물소리만이 아니다. 비에 젖은 숲의 표정은 맑은 날보다 더 풍부하다. 금강소나무의 붉은 몸통은 더 생동적이고 나뭇잎에 매달린 물방울은 저마다 하늘을 담고 있다. 

 

듬뿍 물을 머금은 산허리의 물골마다 물봉선이 곱다. 곁에는 역시 진보라색 칡꽃이 빗물 속으로 향기를 흘려보내고 있다. 절정의 여름이 이제 내리막길로 들어서며 한결 부드러워진 숨결을 내뿜고 있다. 그 숨결에 마타리꽃 노란 색이 수줍게 흔들린다.


길이 거의 끝나는 곳에 집 한 채만 오도카니 앉아 있다. 무건리의 끝자락인 ‘큰말’이다. 한때 300명이나 살았다는 시절 이곳이 가장 큰 마을이어서 붙은 이름일까. 지금의 분위기와는 어울리지 않는 이름이다.

 

 귓속에 계곡물 소리와 폭포 소리가 뒤섞여 들어온다. 숨을 죽이고 가만히 들어보면 그 두 소리를 구별할 수 있다. 거침없이 말달리듯 요동치는 계곡 물소리와 온산이 웅웅거리는 듯한 폭포 소리. 하늘과 땅의 합창이다. 그 소리를 따라 계곡으로 내려선다. 내리막길이 살짝 허리를 펴는 곳에 한 무리의 무궁화가 꽃을 피우고 있다.

귓속에 계곡물 소리와 폭포 소리가 뒤섞여 들어온다. 숨을 죽이고 가만히 들어보면 그 두 소리를 구별할 수 있다. 거침없이 말달리듯 요동치는 계곡 물소리와 온산이 웅웅거리는 듯한 폭포 소리. 하늘과 땅의 합창이다. 그 소리를 따라 계곡으로 내려선다. 내리막길이 살짝 허리를 펴는 곳에 한 무리의 무궁화가 꽃을 피우고 있다.

94년에 문을 닫기까지 28년 동안 89명의 졸업생을 낸 소달초등학교 무건분교가 있던 자리다. 작으나마 운동장 모양도 갖추고 교실도 세웠을 텐데, 이런 산비탈에 어떻게 그것이 가능했을까? 10년이 넘은 세월의 풍화는 다시 그곳을 자연 상태로 되돌려 놓고 있다.

하지만 나는 도저히 아이들이 뛰어놀던 곳이라고 상상하기 힘든 산기슭에서 오히려 광대한 대지를 느낀다. 아마도 지금 마지막 졸업생의 나이가 27살쯤일 텐데, 여름 숲 같은 그 나이에 어울릴 꿈을 꾸게 한 땅이기 때문이다. 가난이 꿈꾸는 일을 방해하지 않았던 지난 시절의 아름다움을 우리는 너무 쉽게 잊어 버렸다.

빛기둥과 물기둥이 한꺼번에 쏟아져내리는 자리

학교가 있던 오솔길을 지나면 10여 분 동안 가파른 내리막길이 이어진다. 폭포의 물살 같은 기울기다. 숲은 우산을 받지 않아도 좋을 만큼 우거져 있다. 미끄러지듯 계곡으로 내려서자 홀연히 이끼폭포가 태고의 모습을 드러낸다. 빛기둥과 물기둥이 한꺼번에 쏟아져 내린다.

무건리 이끼폭포는 천 길 낭떠러지로 아스라이 쏟아져내리는 물줄기가 아니다. 여름철 같이 자주 비가 내리는 계절이 아니면 이끼가 덮인 바위를 타고 가느다란 물줄기가 다소곳이 흘러내리는 폭포다.

 

석회암 지대인데다 워낙 가파른 계곡의 윗부분에 자리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끼가 주인 노릇을 하고 물줄기는 이끼의 초록에 생기를 더해주는 역할을 한다고 보는 것이 좋겠다. 
 

폭포는 8m 남짓한 높이에서, 치마를 활짝 펼친 모양의 거대한 몸통을 거침없이 내리꽂는다. 이틀째 비가 내리는 중이어서 약간의 흙빛을 머금고 있지만 품위를 떨어뜨릴 정도는 아니다. 숲이 건강한 덕분일 것이다. 산자락에서도 거침없이 물줄기가 흘러내리며 계곡 전체를 물의 나라로 만들고 있다.

 

무건리 이끼폭포의 특별함은 상단 폭포의 이끼와 물안개가 어우러진 풍광에 있다. 그 모습을 하단 폭포 앞에서는 볼 수 없다. 하단 폭포의 벼랑에 놓인 알루미늄 사다리로 폭포를 거슬러 오른다. 모든 빛을 초록색으로 바꾸어 놓을 정도로 숲이 우거진 협곡 끝 절벽의 동굴에서 쏟아져내리는 물은 용이 토해내는 듯하고, 이끼 옷을 입은 층층의 벼랑 위로는 활짝 몸을 펼친 물줄기가 부드럽게 흘러내린다.

 

유심히 살피자 물줄기에 가려진 이끼가 팽팽하게 살아 숨 쉬는 것이 보인다. 계곡 사이로는 물안개가 진양조의 속도로 흐른다. 거대한 높이와 압도적 규모는 아니지만 우리 고유의 산수미를 다 모아놓은 듯한, 그윽하면서도 밀도 높은 자연미의 진수가 바로 눈앞에 있다.

무건리 이끼폭포는 낙동정맥의 최북단에 맺힌 백병산(白屛山:1,259m) 북쪽 기슭에서 발원하여 동해로 흘러드는 오십천 중상류의 젖샘 구실을 한다. 매봉산에서 두타산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과 나란히 흐르는 59.5km의 오십천 물길은, 산봉우리 사이에 빨랫줄을 이을 만하다는 첩첩 산자락을 굽이굽이 돌아 흐른다. 동국여지승람은 그 모습을 이렇게 적고 있다.

“삼척도호부에서 물 근원까지 마흔일곱 번을 건너야 하므로 대충 헤아려서 오십천이라 일컫는다.”

 

인류 역사가 그러했듯이 자연의 물길은 문명의 발길을 인도한다. 인간은 자연의 물길에 기대어 삶의 터전을 얻고 물길을 따라 마을과 마을을 이어간다. 동해에서 태백, 영월, 제천 등 강원 충청 내륙을 지나 서해안으로 연결되는 38번 국도도 오십천 물길을 따라 오르며 백두대간을 가로지른다. 그 오십천 중상류의 고사리에서 동남쪽으로 핏대봉(879.4m)과 천제봉, 삿갓봉 줄기가 말발굽처럼 휘어 도는 사이에 놓인 성황골에 이끼폭포가 있다. 국토지리정보원의 지도에 용소굴이라고 표기된 지점이다.

 

무건리 이끼폭포는 아직 때 묻지 않은 원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워낙 오지에 자리한 데다 이제는 몇 채의 집으로 간신히 명맥을 이어오는 때문일 것이다. 거의 숨어 있다시피 한 이 계곡이 근래에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비경을 찾는 사진가들이 찾기 시작하면서, 지리산 뱀사골의 실비단폭포에 버금가는 곳으로 알려지면서부터다.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뜻밖의 횡재로 여겨질 법한 곳이다. 어차피 어디든 산을 찾는 사람에게 애써 찾고 싶은 절경이 있다는데 어찌 신들메를 조이지 않을 것인가.

이곳이 절경임을 들어 안다면 어찌 신들메를 조이지 않을 것인가

하지만 애석하게도 인간이 자연을 사랑할수록 자연이 망가지는 역설 앞에서 마냥 떳떳하기는 힘들다. 조심조심 다가가서, 그렇게 얻은 청신한 기운을 삶 속에 돌려놓는 일만이 최선에 다가서는 일이 될 것이다.

 

그리하여 인간관계의 결이 조금이라도 고와진다면, 자연 앞에 포악한 성정을 드러내는 일도 줄어들 것 같다. 이른바 문명의 진화도 그러한 쪽으로 진행되고 있지 않는가.

무건리 이끼폭포의 산수미는 찾는 시기에 따라 상당히 다를 것 같다. 수량이나 숲의 빛깔 혹은 날씨에 따라, 하루 중 언제쯤이냐에 따라 다른 느낌의 아름다움을 펼쳐 보일 것이다. 하지만 어떤 모습인들 어떠랴. 한국인이라면 언제 찾아가도 첫눈에 반할 터. 이미 사랑에 빠진 대상에 곱고 미운 모습이 따로 있지 않을 성싶다.

글 윤제학 현대불교신문 논설위원ㆍ동화작가 | 사진 정정현 사진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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