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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방곡곡/충청남도

논산 신풍리 백제군사박물관 계백장군유적지

by 구석구석 2008. 1.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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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타고 활 쏘며 신나는 역사체험 <백제군사박물관>

논산시 부적면 충곡로 311-54 (부적면 신풍리 7) / 041-746-8431

 

 

더블클릭을 하시면 이미지를 수정할 수 있습니다<주몽> <연계소문> <대조영> 등 역사 드라마의 전성시대다. 고구려 역사를 중심으로 백제와 신라를 아우르는 삼국시대 전후의 이야기는 흥미진진하다. ‘폐인’이라 불리는 열혈 시청자들은 어른, 아이가 따로 없다.

드라마의 인기에 힘입어 우리 역사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각 지자체는 드라마 촬영지 유치에 열을 올리고, 촬영한 드라마의 세트장은 관광지로 활용되고 있다. 하지만 세트장에서 장대한 역사를 탐하기에는 무언가 아쉬움이 남는다. 역사박물관이 각광받는 것도 그런 이유다.

논산에 위치한 백제군사박물관은 근래 들어 방문객이 부쩍 늘었다. 역사 드라마들이 전쟁 장면을 전면에 내세워 시청자의 시선을 잡아 끈 탓이다. 백제의 명장군 계백이나, 윤충 같은 인물들이 드라마에 속속 등장한 것도 한몫했다. 무엇보다 ‘역사’나 ‘박물관’이 갖는 지루함이나 고리타분함은 줄였다. 대신 ‘군사문화 ’라는 독특한 테마의 체험 시설이나 프로그램을 강화했다.

 

백제 문화는 부여나 공주, 익산 정도를 떠올리기 십상이다. 하지만 ‘황산벌’이라는 지명은 모든 설명을 대신한다. 계백장군이 오천 결사대를 이끌고 장렬히 전사한 황산벌이 논산시 연산면 일대다. 백제 군사 문화의 요충인 셈이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계백장군유적지 내에 백제군사박물관이 자리를 잡았다.

      

백제군사박물관은 여느 역사박물관보다 훨씬 재미나고 알차게 꾸며졌다. 입구부터 독특하다. 무녕왕릉 입구를 본떠 만든 벽돌 길은 어두컴컴하다. 실제 무덤으로 들어가는 듯한 느낌이다. 양쪽에는 고분벽화를 본뜬 그림도 있다. 입구를 지나면 3분가량의 간단한 고대 전투와 전쟁에 관한 영상물을 보게 했다. 본격적인 전시물을 보기 전 이해를 돕기 위한 친절한 장치다.

전시실은 크게 3개로 구성 돼 있다. 1전시실의 테마는 ‘백제의 군사활동’이다. 백제의 중흥기 때 지어진 풍납토성, 공산성 등을 모형화해 전시했다. 실제 사람 모양의 인형을 등장시켜 토성의 축조 과정을 아주 세밀하게 묘사하고 있다. 

 

 
2전시실의 테마는 ‘백제의 무기’다. 삼국 가운데 가장 화려한 백제의 문화를 확인할 수 있다. 백제군의 행렬모형과, 당시의 의장, 복식, 및 무기 등이 눈길을 끈다.

 

제 3전시실은 ‘논산의 역사실’로 꾸며졌다. 선사시대부터 후백제를 지나 조선시대 이르기까지 논산의 궤적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럼에도 백제군사박물관의 진면목은 실내체험실과 야외체험장이다.
       

실내체험실은 백제 장군의 갑옷을 직접 입어볼 수 있다. 투구와 치마갑옷, 정강이가리개 등 간략한 복장이지만 아이들에게는 더없이 신나는 체험이다. 마치 계백 장군이 된 듯 으쓱해진다. 직접 활을 당겨볼 수도 있고 무기를 만져볼 수 있다. 야외체험장은 이보다 더 흥미진진하다. 대형장기 놀이, 투호놀이, 호박고누놀이 등이 준비돼 있다. 가장 재미난 시설은 황산벌전투를 재현한 성곽전투체험이다.

 

         

국궁(생활체육 궁도연합회 추천 전문강사), 승마체험장에서는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5월 2일 ~ 11월 1일(매주 토,일요일 및 공휴일)까지 전문강사의 지도하에 직접 체험함은 물론 심신단련의 기회 제공하고 있다.

 

 

 

충남도기념물 74호(1989.12.21)  계백장군묘

 

백제 말기 성충(成忠)·흥수(興首)와 더불어 백제 3충신으로 꼽히는 계백의 유적지로 최후의 결전장이던 황산벌과 가까운 곳에 있다.
계백 장군은 660년(의자왕 20) 나당연합군이 백제의 요충지인 탄현과 백강으로 진격해왔을 때 죽음을 각오한 5,000여 명의 결사대를 이끌고 신라 김유신의 5만 대군을 맞아 황산벌에서 싸웠다. 결사대의 용맹스러운 활약으로 4번의 싸움에서 이겼으나 중과부적으로 결사대와 함께 장렬한 최후를 맞았다. 전쟁이 끝난 후 김유신은 계백의 시체를 찾도록 하였으나 끝내 찾지 못했다고 한다.

 

계백의 충성어린 죽음을 본 백제 유민들이 장군의 시신을 거두어 은밀하게 가매장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후 백제의 유민들과 묘소 인근마을주민을 중심으로 묘제를 지내오던 관행이 이어져 오다가 1680년(숙종6)에 계백의 위패를 주향으로 모신 충곡서원(忠谷書院)을 건립하고 향사를 지내왔다. 근래에 이르러 본격적인 고증작업을 하게 되었다.

 

 

자료 - 일간스포츠 2007. 4 editor 고선영 photographer 박용구

          백제군사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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