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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방곡곡/충청남도

세종시 신대리 학림사 민락정 오봉산 봉서재 용암강다리

by 구석구석 2008. 1.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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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대리 268-1 학림사 041-867-2635

조치원역에서 역을 좌측에 끼고 달리다 보면 우측에 조치원제일교회가 나온다. 여기서 서면 방면으로 우회전하여 신흥사거리를 지나 연기 군민체육관에서 604번 도로를 타고 성제교를 건너 4km가다 신대1리에서 고복저수지, 비암사 방면으로 우회전하여 500m정도 가면 좌측에 학림사 표지판이 나온다. 

 

 

학림사는 정말 아름다운 비구니 스님들의 수행도량이다. 봄철의 학림사는 보기 드물게 아름다운 꽃밭이다. 이 곳 사찰에서 수행에 정진하는 비구니스님들의 맑은 영혼을 닮아 보석처럼 빛나는 사찰인 것이다.

봄에 이 지역을 지나다가 멀리서도 꽃 향기에 취해 어느새 사찰로 들어가게 되는 그런 곳이다. 그 안에 들어가면 잘 가꿔 놓은 화단에서조차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게 된다. 이 사찰에서는 여러 가지 다양한 꽃을 만나게 된다. 아마도 철마다 이 꽃 저 꽃 피겠지만, 특히 봄철의 학림사는 꽃밭이다.

 

우선 만나게 되는 꽃은 연분홍 진달래가 산을 불태우고, 노란색 산수유가 봄을 시새움하듯 꽃 망울을 터뜨리기도 한다. 아직 잎사귀도 피지 않은 채 고고한 자목련이 한 송이씩 피어나고 있다. 4월이지만 아직 남아 있는 추위에 돌 틈 사이로 붉은 영산홍이 숨어 있다가, 날씨가 따스해지면 수줍게 한두 송이 피다가 사찰 입구를 꽃동네로 만든다. 그럴 때쯤 우연히 이 곳을 지나게 되면 무언가에 홀린 듯 사찰 안으로 들어가게 된다. 이처럼 맑은 영혼이 아름다운 비구니 스님을 닮은 학림사에서 부처님의 말씀이 활짝 핀 꽃을 통해 전해지는 느낌을 맛보길 권한다.

 

서면 고복리로 가면 1,949㎢(고복리 1,949,000㎡, 용암리 805,864㎡)의 넓은 면적을 가진 고복 저수지를 만나게 된다. 주말이면 전국에서 '붕어 손맛'을 보려는 많은 낚시꾼들이 몰려드는 유명한 낚시터로 자리잡았다.

 

농업용수를 공급하기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졌지만, 가물치, 붕어, 잉어, 메기등 풍부한 어종을 가지고 있어 전국에서 많은 인파가 몰려들어 군에서는 90년 군립공원으로 지정 관리하고 있다.

아름다운 저수지의 화장실/kr.blog.yahoo.com/odk56 

벚꽃이 만개한 저수지 길

저수지 한편에 주변경관과 조화를 이루고 있는 이화여대 미술대 강태성 교수가 조성한 야외 조각공원이 있어 방문객들에게 또 하나의 볼거리를 제공해 주고 있으며 광장이 조성되어 있어 가족단위의 관광객이 많이 찾고 있다. 고복저수지 중간지점에는 '민락정'이 있어 정자에 올라 저수지를 관망하면 그 경치또한 일품이다.

 

 

 

 

 

 

 고복저수지 주변에는 한방오리와 메기매운탕을 전문으로 하는 음식점등이 산재해 있어 미식가들의 입맛을 돋구어 준다.

 

오봉산은 충남 연기군 조치원의 서남쪽에 위치한 비암산의 내맥이며 조치원의 진산(鎭山)이다.

높이가 262m이며 다섯봉으로 이루어져 오봉(五峰)산이며, 풍수지리상 제1봉은 목형봉(木形峰-정상봉), 제2봉은 화형봉(火形峰-牛角峰 또는 평상봉), 제3봉은 토형봉(土形峰-聖主峰), 제4봉은 금형봉(金形峰-主峰 또는 두루봉), 제5봉은 수형봉(水形峰-平當峰)으로 오행을 갖추었다. 동쪽은 조치원읍 봉산리, 서쪽은 전동면 송정리, 남쪽은 서면 고복리이다.

 

산에 오르는 길이 무척이나 미끄럽다. 날씨가 포근하여 땅이 녹아 있기 때문이다. 조심조심 산에 오르자 길옆에 서 있는 나무들이 무표정하게 나를 바라보고 있다. 그들은 이곳을 찾아온 나를 반갑게 맞아줄 것인가 !

 

 

인적 없는 조용한 산길을 가만 가만히 걸어가며 그들을 살펴보았다. 어떤 나무는 입은 속옷이 헤어져 무릎이 벌겋게 드러나 있었고, 어떤 나무는 실밥이 튿어진 듯 하얀 줄무늬 모양의 속옷을 입고 있다. 산속의 나무들이 대부분 짙은 회색의 내복을 입고 있었는데, 간간히 하얀 내복이나 붉은 내복을 입고 폼을 잡는 나무들도 있다.

지금 겨울 산속은 날씨가 포근하여 모두가 편안한 옷차림으로 사랑방에 와 있는 느낌이다. 더구나 몇 해를 두고 오랫동안 쌓인 두툼한 솔잎이 산속을 솜이불처럼 덮고 있다. 그래서 산속이 더 따뜻하고 편안해 보인다.

 

이처럼 따뜻한 겨울산속에서 살갑게 사랑을 나누는 이들도 있고, 짓굳게 장난을 치고 있는 나무들도 있다. 과연 산속의 나무들은 어떻게 사랑을 나누고 있을까. 사랑을 나누는 나무들의 모습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서로 두 팔 벌려 보듬어 안고 눈을 질근 감은 모습이 마치 사람들의 모습과 같다.

 

사랑을 나누는 나무와 괴롭히는 나무들/임재만

또 그 옆에는 장난이라고 보기엔 심하다 할 정도로 힘센 녀석이 가냘픈 녀석을 칭칭 감아 금방이라도 숨이 끊어질 것 같다. 어떤 나무는 양팔이 부러진 채  길가에 서서 사람들에게 침묵시위를 하는 것도 있고, 숲속을 찾아온 사람이 부끄러운 양 큰 나무 뒤에 숨어 새색시 처럼 훔쳐보는 나무들도 있다.

 

혹이 달린 소나무/임재만

오봉산 중턱의 약수터에서는 기우제와 산제를 지내어 영험한 산으로 유명하며 산의 모양이 장엄하고 엄숙한 기상(氣象)이 마치 유덕(有德)한 거인(巨人)이 책상다리를 하고 있는 것 같다. 예로부터 많은 시객(詩客)이 오봉산을 칭송했으며 연기팔경(燕岐八景)중의 하나이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산길을 오르니 어느덧 산 정상에 이르렀다. 멀리 보이는 고복 저수지가 안개에 가려 신비롭게 펼쳐져 있다. 한참을 물끄러미 산 아래 풍경을 내려다본다. 눈이라도 내리면 한 폭의 동양화처럼 아름다운 풍경이 그려질 것 같다. 다음에 눈이 내리는 날 가족들과 함께 다시 오리라는 다짐을 하면서 하산을 시작하였다. 내리막길로 하산을 재촉하는데 여기저기서 장끼가 푸드득 날아오른다. 깜짝 놀라 하마터면 넘어질 뻔하였다.

 

 

오봉산에서 내려다 보이는 고복저수지

자료 - 오마이뉴스 2008 임재만

 

고복리 224번지 향토유적 제43호(2003.2.20) 봉서재

봉서재는 1600년대 말 봉옹(鳳翁) 장원주(1634-1700)가 만년에 창건하여 자제와 인근 마을 학동들을 교육하였던 서당이다.

 

봉서재가 건립된 것은 장원주의 만년인 1680-1690년대로 추정되는데 이는 동면 노송리에 있는 결성장씨의 문중서당인 육영재(育英齋, 옛 송동재)와 비슷한 시기이다. 초기의 봉서재는 현 위치의 북쪽으로 500m 정도 떨어진 “구서당”이라는 골짜기에 있었으나 1918년 장기칠 등에 의해 현재의 위치로 옮겨졌고 구서당터는 현재 복숭아밭으로 변해 있다.

 

 역대 훈장으로는 1800년대에 장성갑 장술선 장태산 김남철 류인철 홍종우 송창헌 등으로 홍종우를 마지막으로 학생소집을 하지 않았다 류인철은 1906년에 이곳 봉서재에 신식학교를 도입 동광학교(東光學校 )를 설립하여 교장으로 부임하여 측량과 등을 두었고 시대에 적합한 천문 등을 교과목으로 가르쳤으며 배달가(倍澾歌- 학도가라고도 함)를 작사 작곡하여 학생들에게 가르치기도 하였다. 봉서재에 많은 학동이 공부하였으나 말기에 배운 이가 장의순 장덕순 장낙원 홍덕표 임헌문 장은석 홍광치 장재화 등이다. 연기군청

 

조치원역앞에서 대전방면으로 가다가 고가도로를 건너면서 국도 1호선을 만나게 된다. 국도 1호선에서 우회전하여 500m가면 좌측으로 지방도 604호선의 입구가 나온다. 지방도 604호선을 따라 3km가면 성제교가 나온다. 성제교를 건너지 않고 우측도로를 따라 4km정도가면 좌측으르 잔디광장과 우측으로 조각공원이 있으며 그곳에서 1.9km를 더가면 우측에 용암리 마을에 닿게된다.

 

용암강다리

마을의 풍년을 기원하고 재앙을 물리치기 위해 400여년 전부터 매년 정월 16일 남녀로 편을 갈라 줄다리기를 하며 여자가 이겨야 풍년이 든다고 한다. 줄다리기가 끝나면 주민이 한데 어우러져 농악에 맞추어 즐기는 세시풍속놀이다.

 

정확한 유래는 알수 없으나 일제시대때 인근 지방에 역병이 돌아 많은 사람이 죽었는데 이 마을에서는 강다리기를 해서인지 역병이 들지 않았다고 해서 계속 강다리기를 했다고 한다. 또 강다리기는 농사가 시작되기 전에 농민에게 힘을 배양하고 체력단련을 꾀하기 위해 하는 것이라는 합리적 해석을 내린다.


그러나 이러한 해석에도 불구하고 강다리기의 종교적 의미는 여러곳에서 발견되는 바 남자 여자의 겨루기가 대표적이다. 남자가 이기면 동네 건달이 승하고 난봉기가 많아 살림이 피폐해진다고 하며, 여자가 이기면 마을이 단합되고 질서가 잡힌다고 한다. 이는 남자가 이겼을 경우 흉년이 들고 여자가 이겼을 경우 풍년이 든다는 내용과 관련이 있다.


그 밖에 강목, 강줄, 강터 등의 용어에서 보듯 강이 단순히 줄이라는 뜻의 한자어 만이 아닌것은 분명하며, 오히려 강은 신의 의미와 통하지 않을까 한다. 이런 가정에서 본다면 강다리기는 신줄다리기가 되며 강줄은 신줄, 강술은 신주가 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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