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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방곡곡/인천광역시

인천 화평동냉면거리 할머니냉면

by 구석구석 2008. 1.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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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인천역에서 송현동 방면으로 가다가 화평철교 아래를 지나자마자 왼쪽 길이 냉면 거리. 좌회전이 안 되기 때문에 승용차를 타고 가면 유턴 후 진입해야 한다. 이 일대 냉면집은 평소 밤 9~10시까지 영업한다. 손님이 있으면 연장. 

 

더운 여름 나기. 목만 타는 게 아니다. 오장육부 전체가 온도를 낮춰달라 아우성이다. 이름마저 ‘차가운 면’ 냉면(冷麵)이 밤낮 가릴 것 없이 떠오르는 이유다. 하지만 이녀석 인심이 좀 박하다. 젓가락 몇번 오갔나 싶으면 가닥가닥 흩어진 면발이 바닥에 붙어 있다. 반대로 갈증을 못 참고 그릇째 국물을 후루룩 마셔버릴라 치면 그릇에는 숫제 면만 똬리를 틀고 앉아있기도 한다. 맛있지만 어지간해선 양이 차지 않는 음식이란 의미다.  

 

하지만 이곳에서만큼은 예외다. 인천동구 화평동 냉면골목 말이다. 이곳은 "화평동 냉면골목"이라는 심심한 이름보다 "인천 세숫대야냉면"이라는 편이 더 잘 알려져 있다. 양만 많은 게 아니다. 맛에 가격까지 흡족해 음식 삼박자가 척척이다. 세숫대야냉면으로 속을 든든히 채운 후에는 이국적 정취가 물씬 풍기는 차이나타운을 거닐자. 붉은색, 황금색, 푸른색…. 채도 높은 중국 특유의 분위기가 생기를 북돋워 준다.

 

인천시 동구 화평동 288번지 일대. 30년 전쯤 이곳은 인천 노동자들이 막걸리나 소주 한잔으로 회포를 푸는 선술집이 자리를 잡고 있었고, 거리엔 아가씨로 넘쳤다고 한다. 냉면 가게가 들어선 때는 1970년대 중반 이후. 거리의 노동자를 상대로 한 그릇에 300원 하는 국수와 냉면을 팔면서부터 냉면의 역사가 시작된다.  “예전엔 이 근처에 목재 공장이나 방직 공장이 많았대요. 손님의 대부분이 노동자라서 싼값에 양이 많은 냉면을 만들다 보니 지금의 세숫대야 냉면이 된 거죠.” 1976년부터 식당을 해온 ‘화평냉면’ 임옥례 씨의 말이다.

 

50~60년대 부두노동자들의 먹거리  

 

사람들이 화평동 냉면거리에 오면 세 번 놀란다고 한다. 냉면집이 많은데서 한번 놀라고 어마어마하 게 큰 냉면그릇에 또 놀라고 마지막으로 계산하고 나오면서 싼 값에 놀란단다.

 

싼 게 비지떡이라고 양이 많은 만큼 질은 포기해야 하는 걸까. ‘절레절레’. 양이 많은 것으로 음식의 승부수를 띄웠다면 20여년간이나 화평동 냉면골목의 명성을 이어가지는 못했을 게다. “20년 전에는 근처에 극장, 시장이 있어서 번화가 였어요”. 서울에서 왔다는 한 손님 말이다. 덕분에 냉면집이 호황이었다고. 하지만 냉면집이 자리잡기 시작한 것은 그 이전. 50·60년대 인근 공장 부두의 노동자를 상대로 한 냉면집이 처음 문을 연 뒤 명성을 이어온 것. 1997년부터는 인천의 특색음식거리로 지정 운영되고 있다. 일단 세숫대야냉면의 면면을 살펴보자. 생김은 면발이 굵고 국물이 열무김치 국물 마냥 붉은 기운을 띈다. 독특한 것은 숟가락으로 퍼먹어도 될 만큼 깨가 많다는 것. 그릇이 크다보니 양념이 쌓여있다는 표현이 적당하다. 외모만으로 봤을 때는 면발이 얇고 맑은 함흥냉면보다는 평양식 막국수에 가까운 편. 

 

이곳의 육수는 대체로 매콤하면서도 새콤달콤하다. 육수 만드는 비법은 집집마다 다르지만 대체로 소의 무릎 뒤쪽 부위인 사태를 무, 양파, 마늘, 고추씨 등 야채와 함께 넣고 푹 곤다.

 

그 국물에 매운 양념을 가미하기 때문에 국물 맛이 깔끔하고 매콤한 맛이 난다. 함흥냉면 스타일에 가까운 면발은 쫄깃쫄깃하다. 여기에 잘 익은 열무김치와 무절임, 싱싱한 오이냉채 그리고 통깨와 참기름을 쫄깃한 면발에 버무려 먹는다.

 

 

20년간 세월이 비켜간 냉면가격

 

노력했으되 역시 바닥을 보는 것은 무리였다. 양이 많아서다. 음식을 남긴 것도 송구스러운데 가게 아주머니가 한마디를 보탠다. “모자라면 말씀하세요. 사리 추가는 돈 안받습니다”. "이런 게 우리 음식인심이라고, 양껏 배부르게 드시라"는 뜻으로 들린다.

 

이곳에서 성업중인 가게들은 대부분 10년~20년 사이에 자리잡았다. 하지만 이 골목은 세월도 비켜가는지 가격은 다른 냉면집에 비해 "심하게" 저렴하다. 대부 분 3500원 선. 12년째 이곳에서 냉면을 팔아오셨다는 일미 냉면 아주머니께 가격이 싸단 말을 건내자 “처음 시작할때는 한 500원 했었나봐요.물가따라 여기도 오르긴 한건데 …”하며 소박한 웃음을 보이신다.

 

화평동 냉면 골목의 원조는 ‘할머니냉면’. 1974년부터 이곳에 터를 잡았다.  할머니냉면의 할머니는 이제 팔순이 넘어 식당엔 잘 나오지 않는다. 경인선 전철을 따라 나란히 자리한 골목에서 원조와 관련된 현란한 수식어를 붙인 냉면집을 거슬러 올라가야 원조 할머니냉면집을 만난다.

 

붉은색, 황금색, 코발트 색. 특유의 채도 높은 차이나타운 거리

 

냉면을 든든히 먹고 나서는 길에는 냉면거리에서 지하철 역 하나를 두고 위치한 인천 차이나타운으로 향해보자.붉은색, 황금색, 코발트색 등 채도 높은 중국특유의 분위기가 이국적 정취를 물씬 풍기게 한다. 인천차이나 타운은 1884년 4월 청국의 치외법권지역으로 체결 된후 화교들이 모이면서 형성됐다. 북성동, 선린동 일대 5천평에 청구의 영사와 학교가 세 워지고 중국산동반도와 정기적으로 배가 운영되면서 화 교 숫자가 늘었다. 당시 화교들은 중국에서 가지고 온 곡물, 소금 등으로 상권을 넓혀 갔지만 청일전쟁 이후 쇠퇴의 길을걷게 됐 다. 현재는 관광특구로 지정 돼 중식집을 비롯한 여러 상가들이 성업중이다. 화교 2·3세들 170여 가구 500여 명이 살고 있다.

 

인천역에 내리면 정면으로 붉은 기둥에 휘양찬란한 모양으로 세워놓은 패루가 차이나타운 임을 알려준다. 패루길을 따라 가는 동안 양쪽으로 중국요리집과, 기념품 점이 붉은 간판을 앞세우고 있다. 패루길 에서 제 3패루로 향해 위로 올라가면 자유 공원을 향하고, 오른쪽으로 꺾으면 자장면 거리가 나온다. 인천이 자장면의 태생지라는 것은 잘 알려진 바. 자장면의 고향 인천에서 보들보들 한 춘장에 슥슥 비빈 자장면 한그릇 먹는 것도 별미다.

 

한국에서 대표적인 중국음식인 자장면의 원조는 인천! 1883년 개항한 인천에는 청국조계지가 설정되고 중국인이 거주하기 시작하면서 1920년부터 항구를 통한 무역이 성행했다. 중국무역상을 대상으로 한 중국음식점들이 생기기 시작한 것도 이 때문. 중국 대중음식을 처음 접한 우리 서민들은 신기한 맛과 싼 가격에 놀랐고, 중국인들은 중국요리가 인기 를 끌자 부두 노동자들을 상대로 손쉽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을 고심했다고. 그렇게 탄생한 것이 볶은 춘 장에 국수를 비벼 먹는 자장면이다.

[한국관광공사 국내온라인마케팅팀 취재기자 김수진/  프라이데이 김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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