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방방곡곡/경상북도

청도 오산리 다강산방 용천사 비슬산

by 구석구석 2008. 1. 22.
728x90

 

오산리 전통찻집 '다강산방'  

찻집 하면 떠오르는 자연속의 이미지를 이보다 더 잘 표현할 수 있을까. 계곡물과 하나로 아름다이 자리한 찻집. 다강산방은 오늘도 그렇게 찾는 이들을 반가이 맞는다.

오솔길 51미터는 걸어야 한다. 신발 위에 타박 타박 먼지가 내려앉는 만큼 잃어버린 추억 몇 개 다시 줍는다. 모퉁이 막 돌아서면 산 그림자로 흐르는 정갈한 물소리. 윤이 나는 돌맹이에 미끄러져 잠시 길을 잃고 서성인다.

비슬산 뒷자락을 달리다 겨우 찾은 간판을 따라 어느 시인이 읊은 것처럼 그렇게 골짜기를 내려가면서 먼저는 시원한 계곡물 소리에 귀를 빼앗긴다. 그리고 불쑥 펼쳐지는 계곡물에, 정겨운 그 골짜기의 정경에 다음으로 눈을 빼앗긴다. 찻집을 들어서면서는 올망졸망 도란도란 야생초의 아름다움에 빼앗겼던 눈을 다시 빼앗긴다. 그리고 겨우 여유를 찾으면 은은한 나무향과 향긋한 차향에 이번에는코를 빼앗긴다.


그렇게 온통 마음을 빼앗기는 곳 다강산방(茶康山房). 모르면 찾을 수 없는 계곡 옆에 그림처럼 자리한 찻집이다.

 

 

 

 찻집의 실내에서건 실외에서건 계곡이 보이는 자리에서 담소와 함께 마시는 한잔의 차는 한동안 그의 마음을 떠나지 못할 것이다. 아름다운 야생초는 안주인 기종희 씨의 마음이요. 눈을 커지게 하는 수림석이며 꽃돌등의 수석은 바깥주인 김재호 씨의 마음이다.


눈 가는 곳곳이 그저 감탄을 젓게 한다. 모르면 찾을 수 없기에 지인들만의 안식처이리란 생각이었으나, 비록 깊은 산골에 뿌리를 내리더라도 은은한 난향은 천리를 간다고 입소문으로 이미 널리 알려져 있어 쉼터를 찾는 도시인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심상찮은 외모를 가진 바깥주인의 사람좋은 웃음은 단아한 야생초의 아름다움을 간직한 안주인의 미소와 함께 찻집을 완성한다. 한번 찾으면 다시 찾지 않고는 배기지 못할 그런 정겨움이 다강산방에는 곳곳에 널려 있다.

 

 
안정된 직장을 그만두고 수입원을 겸한 일생의 보금자리를 찾아 전국을 헤매다 한눈에 반하여 자리잡은 것이 5년 전이다. 집을 꾸미고 있는 모든 것이 평소에 자신들이 각지에서 직접 수집, 기르고 아끼던 것들이기에 모두가 사연을 담고 있어 애착이 많을 수 밖에 없다.

 

 

 


오산리 1062번지 용천사 054-372-7204

북대구 IC를 나와서 대구 신천대로를 따라 가다가 가창댐 입구에서 우회전을 한다. 댐 입구에 운흥사, 달성조길방가옥 표지판이 있다. 길을 따라 비슬산 헐티재를 넘어오면 오른쪽 길가에 용천사가 있다.

 비슬산(琵瑟山)에 자리한 대한불교 조계종 제9교구 본사 동화사의 말사이다. “...청도 각북 용천사 가는 길, 산 능선을 타고 건장한 송전탑들 이어지고 비탈을 타고 내려오는 진달래 꽃불, 저를 한 마리 꽃소로 만드는 것도 산은 알지 못한다...” (이성복, 「호랑가시나무의 기억」중에서 ) 맑고 깨끗한 계곡을 따라 비슬산 헐티재를 넘어 용천사 가는 길은 시인의 눈을 사로잡을 만큼 아름답다.

 

 

산 능선을 타고 구비구비 산길을 넘어가면 길가에 천년 고찰 용천사가 아담하게 자리하고 있다. 비슬산 동쪽 기슭에 자리잡은 용천사는 신라 문무왕 10년(670년) 의상대사가 창건한 해동화엄전교의 10대 사찰 중 한 곳이다. 화엄 십찰은 의상대사가 당나라에서 수행하고 돌아와 세운 사찰인데 최치원이 쓴 『법장화상전』과 일연(一然)의 『삼국유사』에 절 이름이 나온다.

 

『법장화상전』에 의하면 태백산 부석사, 원주 비마라사, 가야산 해인사, 비슬산 옥천사, 금정산 범어사, 지리산 화엄사, 팔공산 미리사, 계룡산 갑사, 웅주 가야협 보원사, 삼각산 청담사 10개 사찰을 말한다.

 

 

 그러나 『삼국유사』에는 이중 부석사와 비마라사·해인사·옥천사·범어사·화엄사 6개 사찰만이 기록되어 있다. 이들 사찰은 의상대사가 전파한 화엄사상을 널리 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불교 전성기에는 승려가 천여 명이나 되었고 주변에 자리잡고 있던 암자들은 백련암, 청련암, 일련암, 남암, 서암, 내원암, 부도암 외 47개의 암자가 있었다고 전해지고 있으나 오랜 세월 속에 모두 없어져버렸다.

이미 24명의 도인이 나왔고 앞으로 104명의 도인이 나올 것이라는 설이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다. 현존하는 건물 중 3중창(1631년) 때의 것은 문화재로 지정된 대웅전만 남아 있고 다른 건물은 근대에 세워진 것이다. 고려 원종 8년(1267년) 일연 선사가 중창하여 불일사(佛日寺)라 칭하였다가 다시 용천사로 고치고, 임진왜란 후 인조 9년(1631년) 조영대사가 3중창하였으며 순조 5년(1805년) 의열 화주가 크게 중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유물로서는 법당의 삼존불, 후불탱화, 나한십육존불, 영탱, 석조물 등이 있으며 불을 밝히는 데 사용하였던 정료대가 남아있고 절 오른쪽 골짜기에 고승들의 부도6기가 이 절의 역사를 대변해주고 있다. 용천사라는 이름은 맑고 풍부한 석간수가 끊임없이 용솟음쳐 흘러내리고 있어 용천이라 부쳐진 것이라고 전한다.

이 용천의 샘물은 가물 때나 장마가 질 때도 늘 일정한 양의 맑은 물이 흐르고 사철 마르지 않으며 한겨울에도 어는 법이 없다고 한다. 1300년 전에도 흐르던 이 샘물은 지금도 여전히 중생들의 감로수가 되어 우리의 마른 목을 축여주고 있다.

 

 

대구 달성군과 경북 청도군에 걸쳐 있는 비슬산(琵瑟山·1,083.6m). 4월이 오면 산꾼들의 머릿속을 맴도는 산이다. '참꽃'으로도 불리는 진달래 때문이다. 정상 부근 진달래 군락은 이맘때 만개해 산 사면을 붉게 물들이며 절경을 이룬다. 그러나, 비슬산이 산꾼을 불러 모으는 이유는 이뿐 아니다. 사위가 탁 트인 조망의 즐거움도 꽃구경 못지않다.

비슬산을 오르는 가장 일반적인 코스는 대구 달성군 현풍면 유가사를 거쳐 도성암 능선을 따라 정상에 오르는 것이다. 이후 진달래 군락지와 대견사지를 보고 자연휴양림 쪽으로 하산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 구간은 진달래가 본격적으로 피기 시작하는 4월 말부터는 교통 체증을 연상시킬 정도로 사람들이 많이 몰린다.

 

번잡함을 피하기 위해 경북 청도군 각북면 오산리 용천사 코스로 올랐다. 산행 구간은 용천사~778.1봉~삼봉재~비슬산 정상~마령재~용천사로 내려올수 있고 마령재에서 대견사지를 거쳐 내려올 수도 있다.

 

비슬산 정상 대견봉에 오르자 사방에 거칠 것이 없다. 가까이로는 청도군 각북면과 달성군 현풍면, 멀리는 대구 시내와 경남 창녕의 화왕산까지 보인다. 일망무제, 가히 '조망의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는 산'이라는 평판이 허명이 아니었다.

 

 

오산리 415 오산추어탕 054-372-7578  

 

 오산리에는 추어탕집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오산추어탕은 이 동네의 이름을 따서 지었는데 물좋기로 소문난 옥천사 지하 140미터 암반수로 음식을 만드는 것이 특징이다. 추어탕은 미꾸라지와 잡어를 넣어 민물 추어탕이라고도 하는데, 시골된장으로 잡내를 없애고 시래기를 넣어 담백하면서 시원한 맛이 아주 그만이다.

 

09:00 ~ 21:00 / 명절휴무 / 포장가능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