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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방곡곡/전라남도

나주 영산포 홍어축제

by 구석구석 2008. 1.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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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어 하면 흑산도다. 하지만 맛의 태동지는 나주 영산포다. 흑산도에서 영산포에 이르는, 닷새가 넘는 뱃길로 굽이굽이 돌아온 홍어는 ‘썩었고’, 마침내 그 맛이 빛을 보게 된다.

 
스무 살 즈음, 혼례를 치르는 어느 잔칫집이었을 것이다. 가재미인줄 알고 초장 발라 오물거렸다. 서너 번쯤 씹자, 갑자기 알싸하면서 괴기스러운 기운이 목구멍과 콧속을 파고들었다. 얼굴은 벌개졌고 오물거리던 입은 동작을 멈췄다. 어찌해야 할지 몹시도 난감해 하는 판국에 웬 아낙이 “전라도사람 아닌 갑네. 홍어 맛을 잘 모릉갑소이~”라면서 비실비실 웃는다.

요것이 홍어였구나. 자존심이 상했다. 웃는 아낙에게 대뜸 어디선가 주워들은 소리를 내 뱉었다.

“모르긴 뭘 몰라라~ 요것이 그랑께 홍어가 조금 많이 삭었구마~”

 

시인 송수권은 한중일 삼국의 음식을 상징적인 언어로 대비한 적이 있다. 음식을 관통하는 키워드가, 중국이 불이라면 일본은 칼이라 했다. 한국의 음식은 ‘삭힘’이라는 것이 시인의 진단이다. 젓갈을 비롯해 각종 장류들이 그러하고 대표음식에 해당하는 김치가 모두 이 ‘삭힘’에 기반하고 있다. 홍어 또한 삭힌 맛이다. 다른 것들이 일상에서 접하는 반찬이거나 재료라면 홍어는 요리에 해당한다.
 

삭힌 홍어는 잔칫날 먹는다. 상다리 부러지게 산해진미가 쌓여도 홍어가 빠지면 잔치의 객들은 ‘잘 먹었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 홍어가 비싸고 귀한 음식이기 때문이라는 것은 표면적인 이유다. 배고프던 시절, 축복처럼 차려낸 잔치음식은 뿌리칠 수 없는 ‘독’과 같았다. 주린 배에 기름진 음식을 허겁지겁 집어넣으면 속이 온전할 리 없었다. 암모니아 성분을 내포하고 있는 홍어는 소화를 도와주는 약품이자 식중독을 막아주는 예방주사와 같았다.

배고픔이 어느 정도 해결된 지금 ‘잔칫집 홍어’는 문화로 굳어졌다. 이 문화는 매우 고급스럽다. ‘백고가 불여일블’이라 했다. 고고 백번 추는 것보다 블루스 한번 ‘땡기는’ 것이 더 기가 막힌다는 이야기. 나름대로 어려운 학습과정을 통해서 얻은 기쁨이 더 많은 엔도르핀을 만들어 낸다는 뜻이다. 그렇다. 홍어 맛은 ‘학습’된다. 전라도사람이라고 해서 유별나게 암모니아 향을 좋아하는 유전자를 갖고 있겠는가. 세대에서 세대로 전수하는 사회적 디엔에이 체계를 통해 홍어 맛은 각인되는 것이다.

 

홍어는 흑산도에서 난다. 하지만 그 맛의 태동지는 전남 나주시의 영산포다. 뱃길이 가장 중요한 운송수단이었을 때 영산강 항로의 중심지에 자리 잡은 영산포는 서남해안 권역의 바다산물과 내륙물산이 몰려드는 물류거점이었다.

흑산도에서 영산포에 이르는, 닷새가 넘는 뱃길을 돌아온 홍어는 ‘썩었고’, 오랜 물일에 지친 어부들은 막걸리 잔을 기울이다가 부족한 안주를 대신해 썩은 홍어에 젓가락을 댔다. 처음에는 “이 무슨 골쾌한 맛” 하면서 뱉어내기도 했을 것이다. 그러기를 얼마나 반복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마침내 삭힌 홍어 맛은 그렇게 ‘발견’되었다.

유배지 흑산도에서 <자산어보>를 쓴 정약전은 “동지 후에 비로소 잡히나 입춘 전후에야 살이 찌고 제 맛이 난다.……나주 가까운 고을에 사는 사람들은 즐겨 썩힌 홍어를 먹는다.”고 기록했다. 약전이 진술한 ‘제 맛’은 삭지 않은 홍어를 말한다. 삭힌 홍어는 봄의 절정기라 할 수 있는 4~5월에 제 맛을 낸다.

 

“겨울철에는 너무 더디게 삭습니다. 여름에는 너무 빨리 삭아서 홍어가 단단하지 않고 무르죠. 수분이 제대로 증발하지 않아서 입니다. 그래서 맛없는 홍어를 물홍어라고 합니다. 수분을 적절히 증발시키면서 마치 맞게 삭힐 수 있는 때가 봄입니다. 삭힌 홍어 맛은 봄이 제철이죠.”  

 

2대째 홍어 음식점을 운영하고 있는 ‘홍어1번지’ 안국현 사장의 말이다. 안 사장은 “만물이 소생하는 봄이 돼야 다른 재료를 곁들여 요리할 수 있고, 또 결혼이다 뭐다 봄에 행사를 많이 치르기 때문에 홍어는 봄 요리”라고 설명했다.

삭힌 회가 가장 유명하지만 무침, 찜, 애국, 전, 튀김 등 홍어요리는 다양하다. 삼합, 오합, 홍탁으로 이어지는 응용요리의 계보도 유장하다.  

‘일코 이애 삼날개 사살 오뼈’라고 한다. 맛있는 부위에 서열을 매기는 호사가들의 걸진 입답이다. ‘애’는 내장을 말한다. 문학인들이 내놓은 말의 성찬 또한 화려하다.

황석영은 삭힌 홍어의 맛을 “참으로 이것은 무어라 형용할 수 없는 혀와 입과 코와 눈과 모든 오감을 일깨워 흔들어버리는 맛의 혁명”이라 했고, <홍어>라는 소설을 쓰기까지 했던 김주영은 “온몸 구석구석에 숨어 있는 예민한 촉수까지 자극하는 오묘한 향기의 파장”이라고 묘사했다. 송수권은 “맵고 지릿하고 그로테스크하다”며 “전라도 맛의 자존심”이라고 추켜세웠다.

영산포에서 취급하는 홍어는 대부분 칠레산이다. 
        
흑산도에서 건져 올린 녀석도 있지만 가격이 칠레산의 다섯 배에 이른다. 찰진 맛이 조금 덜하기는 하지만 삭힌 맛을 보는데 칠레산은 크게 뒤지지 않는다. 황토방 옹기숙성 방식을 개발해 특허를 낸 ‘영산포 홍어’ 김영수 대표는 “집집마다 숙성방식이 다르고 사람 입맛도 다릅니다. 많이 삭으면 삭은 대로 덜 삭으면 또 그대로 맛을 느낄 수 있는 게 홍어”라고 설명했다.

영산포 홍어의 거리에 촘촘히 자리 잡고 있는 숙성홍어 도소매집은 약 40곳. 지린 홍어향이 봄바람에 실려 코를 자극한다. 하구가 막혀 더 이상 배가 뜰 수 없는 영산강이 낮게 흐르고, 기능을 잃어버린 내륙 수로의 유일한 등대가 강과 홍어의 거리를 동시에 굽어보고 있다.

상가에는 오는 4월20일~22일 열리는 홍어축제 포스터가 붙어 있다. 번창하던 포구의 옛 영화는 홍어와 함께 되살아나고 있다.
 
홍어요리
삭힌 홍어와 묵은 김치, 비계가 적당히 섞인 삶은 돼지고기를 한입에 넣으면 삼합이 된다. 여기에 막걸리를 함께 곁들이면 홍탁이 된다. 최근에는 삼합에 김과 초장을 더 포개 오합으로 먹는 방법이 생겨났다. 보리애국은 육수에 홍어내장과 보리순을 넣어 끓인다. 보리순이 가장 부드러운 늦겨울 별미다. 지금은 사철 맛볼 수 있다. 손질한 홍어회는 전국 각지에 택배로 배달된다. 강-중-약으로 숙성도를 따로 주문할 수도 있다. 가격은 칠레산 기준 택배비 포함, 12~15인분 3만5천원, 25~30인분 6만원, 50인분 12만원 선이다. 흑산도산은 칠레산의 5배 정도로 계산하면 된다.

맛집 

 영산포에서는 홍어1번지(061-332-7733)가 인근 나주시내에서는 풀하우스(061-332-7733)가 맛집으로 알려져 있다. 풀하우스에서는 8만~12만원 선에서 홍어회를 맛볼 수 있고, 홍어1번지에서는 찜, 탕, 회, 애국, 삼합 등 다양한 홍어요리를 맛볼 수 있다. 정식(2인분 3만원, 4인분 6만원)을 주문하면 모든 홍어요리를 한꺼번에 즐길 수 있다.

 

 

 

홍어축제 

4월20일~22일 사흘 동안 영산포 선창 일원에서 열린다. 홍어상인들을 중심으로 꾸려진 민간위원회가 기획?진행하는 축제다. 영산포선창의 어제와 오늘, 홍어 이야기 및 유래, 전통 홍어 숙성과정 등을 알아볼 수 있는 전시?홍보코너가 운영되고, 무료시식코너, 향토음식 시장 등이 운영된다. 30분 거리에 주몽촬영 오픈 세트장이 있다.

 
가는 길
서해안 고속도로 무안 IC - 1번 국도 나주방면 - 다시역 - 가운 삼거리에서 우회전
호남고속도로 비아 IC - 나주.목포 방면 - 송정리 - 동곡 -나주시청 - 영산교 지나 우회전
KTX 나주역 - 영산포행 버스나 택시 5분 거리
  editor 김성환 writer 이정우 photographer 이미연
 

’영산포(榮山浦)’로 불리는 전남 나주시 영산동 일대가 근대(近代) 역사거리로 조성된다.
9일 나주시에 따르면 1900년대 초 일제 강점기 당시의 옛 모습이 그대로 남아있는 영산동 일대를 근대 역사거리로 조성, 관광자원화 하기로 했다. 시는 이를 위해 우선 영산포 일대를 등록 문화재로 지정하기 위해 다음달 문화재청에 지정 신청을 하기로 했다.

지정구간은 옛 영산포 선창에서 정미소 거리까지 750여m로 당시 형성된 시가지 모습과 일본식 가옥, 상가 등 100여 채가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특히 당시 나주평화 일대에서 나온 쌀 등 각종 곡물을 도정하기 위해 수십여 곳의 정미소가 운영됐으며 수탈의 아픔을 간직한 정미소 3곳이 아직도 남아 있다.

영산포는 목포항 개항과 함께 일본인들의 내륙 진출과 ’수탈’ 전진기지로 나주평화 일대 쌀과 목포항 등의 수산물이 모이는 호남지역 최대 집산지였다. 시는 영산포 일대 만큼 일제 강점기의 옛 모습이 그대로 남아있는 곳이 없는데다 거리에 대해 등록문화재 지정을 추진하는 것 또한 처음이라고 밝혔다.

시는 원형이 그대로 보전돼 있는 당시 일본인 지주(地主) 가옥 매입 등 대표적인 경관 포인트 건물을 매입, 역사교육장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이미 영산포 근대거리 조성을 위해 현황조사 등 기초용역을 마쳤으며 조만간 민간단체와 행정, 학계 등으로 협의체를 구성해 구체적 개발방향을 정하기로 했다.

시 관계자는 “과거 일본에 의한 수탈의 현장을 이제 새로운 관광자원으로 활용, 지역경제 활성화에 크게 기여하는 계기로 삼을 계획이다”고 말했다. 국가나 지방문화재와 구분되는 등록문화재는 근·현대에 형성된 시설물, 문학예술작품, 생활문화자산, 역사유적 등 보존 및 활용을 위한 조치가 특별히 필요한 것으로 문화재청장이 지정한다. 연합뉴스 2007.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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