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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방곡곡/전라남도

순천 2번국도 대룡리 여자만

by 구석구석 2008. 1.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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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깃졸깃한 참꼬막을 찾아 벌교 갯벌로 나섰습니다. 알고보니 참꼬막은 ‘죽을 둥 살 둥’ 널배를 밀고 나가는 아낙네들이 빚어내는 고통의 산물이었습니다. 그 힘겨운 발짓, 손짓이 담겨 그렇게 찰진가 봅니다.
오전 10시30분. 벌교읍 대룡리 웃나루(상진上津)선창가는 꼬막잡이 출항을 준비하는 예닐곱 명의 사내들 목소리로 왁자지껄하다. 1.5톤급 예인선이 65평 남짓한 바지선을 끌고 제몫의 갯벌을 향해 내달리면서 대략 10시간이 걸리는 꼬막잡이가 시작된다.

30분쯤 내달리자, 꼬막자동선별기가 설치되어 있는 27평급 바지선이 바다 한 가운데서 사네들을 기다리고 있다. 65평 바지선이 그 옆으로 바짝 붙은 다음 닻을 내린다. 곧바로 남정네들의 몸놀림이 바빠진다. 한쪽에서 선별기며 차두(꼬막을 담는 망), 발동기 따위를 점검하는 동안 다른 한쪽에서는 삼겹살, 김치 등을 꺼내 놓고 점심과 오후 새참에 쓰일 먹을거리를 준비한다.

김치찌개로 점심을 먹고 소주를 한 순배씩 돌리고 나자 시간은 금세 오후로 접어든다. 방방하던 물이 어느새 다 빠져 갯바닥이 시나브로 제 모습을 드러낸다.

“곧 있으믄 널배가 오리새끼 모냥으로 빼꼼빼꼼 나타날 거시요.”

오후 1시30분. 상진어촌계장 김점곤씨의  예언처럼  멀리 마을 해안선에 하나둘 검은 점들이 떠오른다. 점들은 이내 굵어져 울긋불긋해진다. 모자와 장화, 목도리 같은 ‘장비’의 색깔이 더없이 화려하다.

널배를 밀면서 달려드는 갯꾼들은 흡사 수색작전에 나선 해병대처럼 일사불란하다. 갯벌이 갯꾼들에게 점령당한 것은 그야말로 순간이었다.
‘촤르르, 촤르르’ 갯바닥에서 캐낸 꼬막을 바구니에 담는 소리가 경쾌하다. 갯꾼들은 쉼없이 뻘흙으로 뒤범벅된 꼬막을 바지선에 퍼 올린다.

선별기를 거쳐 절반쯤 뻘흙을 털어낸 꼬막은 20kg들이 차두에 담겨 볏가리처럼 차곡차곡 쌓이기 시작한다.

오후 3시30분. 어촌계장이 소주와 김치찌개를 바지선 가장자리에 양껏 준비해 놓는다.

한 무리의 갯꾼들이 가장자리를 지나치면 1.5리터 소주는 금새 빈병이 되고, 김치찌개 그릇은 바닥을 드러낸다. 어촌계장이 자리를 뜨자 갯꾼들은 거침없이 취재중인 기자를 부린다.

“와따 취재양반 요것 좀 갖다 줘.”

한 아낙이 화난 듯이 빈 소주병을 흔든다. 서둘러 소주를 챙기려 몸을 움직이자 한술 더 떠 재촉이다.

“담박질로 가야 이삐제. 그라제 빨리빨리!”

‘취재양반’은 어느새 갯벌 아주머니들의 심부름꾼이 되어 ‘요것’을 갖다 대느라 정신이 없다. ‘콸콸콸’ 밥그릇에 소주를 부어 훌쩍 마시고 입안 가득 김치찌개를 오물거리면서 그니들은 다시 꼬막잡이에 나선다.

“우리가 요것을 묵고 잡어서 그란 것이 아니여. 안 묵으믄 일을 못해. 그랑께 어디 가서 숭보지 마.”
외지인에게 그릇 소주 들이키는 모습을 보여주는 게 부담스러웠는지, 묻지도 않았는데 알리바이를 댄다.
“국물 좀 더 떠갖고 와! 우리가 요것 한 잔 묵을라고 이 고생을 하네.” 갯벌처럼 찐덕거리고 칼칼한 목소리가 ‘취재양반’을 가만 놔두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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널배를 밀어 갯벌 속으로
갯꾼 무리들은 대략 50여명. 99%가 아낙네들이다. 40대 나이는 젊은 축에 속하고 여든 할머니까지 있다. 왼손으로 널배 앞에 고정된 줄을 잡고 왼무릎을 널배 하단부에 괸 채로 오른무릎으로 뻘을 박차면 널배는 미끄러지듯 갯벌을 달린다. 어느 지점에서 널배를 멈춘 다음 끝이 휜, 길이 1m가 못되는 머리빗처럼 생긴 어구를 뻘 속 깊숙이 박아 들어 올리면 한 되박 가량의 꼬막들이 걸려 나온다.

오후 5시. 숭겅숭겅 썰어 넣은 두부에 굴 알맹이를 넣은 떡국이 갯꾼들에게 보급된다. 갯벌에 발을 담근 채 마시듯 떡국을 먹고 나면 마지막 수색작업이 시작된다. 해는 이미 붉은 빛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오후 6시. 메가폰을 잡은 어촌계장이 하루일과의 종료를 알리자 아낙네들은 마지막 꼬막을 바지선에 부리고서 뻘흙으로 뒤범벅된 몸을 뻘물로 닦아낸다. 어느 틈에 스며들었는지 갯벌은 밀물로 엷게 찰랑거린다.

“이거 한 잔만 더 갖다 주소.”

일흔은 족히 넘어 보이는 서너명의 ‘할머니’들이 가지런히 서서 취재양반에게 소주 한잔을 부탁한다.
“약주 좋아하시나 봐요. 일도 끝났는데….”

말이 떨어지지도 않았는데 한 할머니가 손사래를 치며 “그것이 아니다.”고 답답해한다.

“요것을 묵어야 집에까지 간당께. 젊은 사람들은 심(힘)이 좋응께 기냥 밀고 가제, 우리들은 요것을 묵어야 제우(겨우) 가네. 하도 심들어서 감시로도 움시로(울면서) 가네.”

번개를 맞은 듯 정신이 맑아진 취재양반은 서둘러 찬 소주를 밥 그릇 가득 채워 할머니에게 드린다. 석양과 널배부대와 갯벌들이 한 순간에 사라져버린 오후 6시30분. 65평 바지선에는 총 920개의 꼬막차두가 사열되어 있었다. 돈으로 치면 5천7백96만원어치.

“오늘이 최고네. 맨날 800개 이짝저짝이등마, 오늘 갯꾼들이 참말로 일을 많이 했네.”
어둠 저쪽에서 한 사내가 수확량을 고지함과 동시에 다른 사네가 바지선의 닻을 끌어 올렸다. 북녘 아득한 거리에 벌교읍내의 불빛들이 가물거렸다.

꼬막은 참꼬막, 새꼬막, 피꼬막 등 세 종류로 나뉜다. 피꼬막은 표가 나게 굵다. 참꼬막과 새꼬막을 구분하는 외형은 껍질에 기와지붕처럼 패인 골의 수다. 골이 20개면 참꼬막이고 30개면 새고막이다. 맛에서는 참꼬막이 다른 꼬막들을 압도한다는 데 이견이 없다. 그래서 ‘참’자가 붙었다.

꼬막의 보고, 여자만 갯벌


참꼬막은 고흥·보성·순천·여수가 공유하고 있는 여자만 권역 벌교 앞바다에서만 서식한다.

인근 장흥, 강진 득량만에서도 둥지를 틀기도 하지만 알이 튼실하지 못하고 어획량이 많지 않다. 까닭에 참꼬막은 온전히 벌교의 소유물로 인식되고 있다.

참꼬막에 관한 가장 화려한 기록은 벌교를 배경삼은 소설 <태백산맥>에서 발견된다. 소설의 들머리에서부터 참꼬막은 인상적으로 등장한다.

정하섭과 하룻밤을 지낸 다음날, 아침밥을 준비하는 소화가 “싱싱한 꼬막이라도 한 접시 소복하게 올려놓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지만 “무시로 드나들던 꼬막장수 여편네가 왜 이럴 때는 지나가지 않는지” 아쉬워하는 대목이 그것이다.

소설이 전해주는 꼬막맛은 “간간하고, 졸깃졸깃하고, 알큰하기도 하고, 배릿하기도 한 그 맛”이다.

벌교를 동서로 횡단하는 옛 2번 국도는 온통 꼬막으로 치장되어 있다. 발길에 꼬막껍질이 채이는 일이야 자연스러울 따름. 5일장이 서기도 하는 길의 양 옆으로는 20kg짜리 꼬막자루가 그득그득 쌓여 있고, 식당마다 어김없이 ‘꼬막정식’ 문구가 새겨져 있다. 사람들마저 꼬막을 닮은 듯 그 인상들이 투박하고 거무튀튀한 것처럼 느껴진다.

“피꼬막, 새꼬막은 물 속에서 자라는 놈들이고, 이 참꼬막은 하루 한번 햇빛을 봐야 합니다. 그래서 껍질이 아주 두텁고 뭍으로 나와도 15일 가까이 살아 있죠.”

30년이 넘게 벌교꼬막을 전국에 유통시켜온, 벌교읍에서 만난 진석수산 김길두 대표의 설명이다.

“처음에는 양이 많다 싶지만, 하나 집어 먹고, 그라다가 또 하나 까서 먹고, 요 꼬막이 한없이 입 속으로 들어가죠. 걱정 붙들고 양껏 먹어도 상관없습니다. 꼬막 많이 먹어서는 탈나는 법이 없으니까요.”

홍어가 그렇듯, 전라도 그 중에서도 남도 지역에서는 잔칫상에 참꼬막이 빠지지 않는다. 차례상이나 제사상처럼 격을 갖추어야 할 때도 참꼬막은 귀하게 대접받는다. 한편으로 참꼬막은 대표적인 서민음식으로도 꼽힌다. 아무런 양념도 하지 않고 그저 끓는 물에 살짝 데친 꼬막 한 되박을 맨손으로 까먹으면서 막걸리 사발을 들이키는 모습은 선술집에서 흔한 풍경이다.  

 

 

꼬막잡이
대룡·상장·하장·제두·대표 5개 어촌계에서 꼬막잡이를 한다. 물때에 맞춰 꼬막잡이가 이뤄지므로 채취 시간은 날마다 다르다. 보통 한달에 꼬막을 잡을 수 있는 날은 보름 정도다. 물때가 맞으면 포구에 나가 먼발치에서 구경할 수 있다. 원칙적으로 산지에서는 꼬막을 팔지 않는다. 벌교역에서 터미널로 가는 길에 꼬막상가가 늘어서 있다. 가격은 대동소이하다. 진석수산(061-857-4444)에서 꼬막을 살 수 있다. 가격 5kg 22,000원 7kg 29,000원 10kg 40,000원.

 

맛집

벌교에서 맛볼 수 있는 별미는 꼬막정식과 짱뚱어탕이다. 짱뚱어탕은 벌교역 앞의 역전식당(061-857-2073)과 향우(061-857-0848)가 추천할만하다. 꼬막정식은 국일식당(061-857-0588), 일송정(061-857-7686), 그리고 원조로 알려진 벌교역 앞의 갯벌식당(061-858-3322)이 유명하다. 아침식사도 가능하다. 이곳이 아니더라도 대부분의 식당에서 짱뚱어탕과 꼬막정식을 취급한다. 정식은 꼬막회, 양념꼬막, 삶은 꼬막, 꼬막 전, 꼬막 국 등이 나온다. 가격은 짱뚱어탕 5,000원, 꼬막정식 12,000~15,000원. 돌아오는 길에는 조금 이르더라도 승주 IC 진일기사식당(061-754-5320) 백반으로 저녁을 해결하는 정성을 들여도 후회하지 않을 성 싶다.

 

일정

서울-벌교는 다섯 시간이 넘는 거리이므로 첫날은 곧바로 휴식을 취하는 게 좋다. 지방 소읍이라서 야식집을 제외하고는 9시가 넘으면 대부분의 식당들은 영업을 종료한다. 벌교로 오는 길에 저녁식사를 해결하는 수밖에 없다. 단, 벌교로 가는 길에 다음날 아침식사를 예약하는데 신경을 쓸 필요가 있다. 벌교읍내권 숙소, 그랜드모텔(061-858-5050), 백제장(061-857-5800), 대도장(061-858-0239).

숙소


벌교역-벌교터미널로 연결되는 옛 2번 국도변에 약간의 모텔이 있다. 이들 모텔이 마땅하지 않으면 현재의 2번 국도쪽으로 빠져 나가 순천방향으로 진행하면 10분 거리에 모텔을 발견할 수 있다. 가격은 3만원 선.

가는 길


호남고속도로 승주IC에서 빠져 나와 857지방도 선암사 방향으로 진행한다. 산을 끼고 흐르는 좁은 지방도이므로 안전운행에 주의할 필요가 있다. 낙안면을 지나 15번 국도와 만나면서 벌교읍내가 시작된다. 작은 길들이 조금 복잡하게 얽혀있지만 높은 건물의 모텔 불빛을 발견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서울에서 승주IC까지 걸리는 시간은 약 5시간. 승주 IC에서 벌교까지는 40분 정도.

 


 

 

꼬막 맛있게 삶는 방법
너무 많이 삶으면 물기가 없어지고 알맹이가 줄어들어 제 맛이 나지 않는다. 지나치게 살짝 삶으면 껍질이 벌어지지 않고 갯비린내가 강해 역시 제 맛을 볼 수 없다. “삶는다기보다는 껍질을 벗기기 위해 끊는 물에 데친다”는 게 벌교사람들이 말하는 꼬막삶기의 핵심이다. 끓는 물에서 공기방울이 생기면 넣었다가 다시 공기방울이 올라오기 시작하면 불을 끄고, 뚜껑을 닫은 채로 2~3분 기다렸다가 꺼내 먹으면 참꼬막의 진미를 맛볼 수 있다고 한다.

  editor 김영주, writer 이정우(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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