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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방곡곡/경기도

화성8경

by 구석구석 2008. 1.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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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8경 경기도 화성. 한 때, 영화의 모델이 되었을 정도로 연이어 터진 불미스러운 사건들 때문에 사람들의 수군거림을 감내해야했던 이 곳은 이제 서해안의 대표적 관광명소로 제자리를 찾았다.

 

궁평리의 낙조는 여전히 아름답게 갯벌과 송림을 물들이고, 제부도의 바닷길은 언제나 신비롭다. 최근엔 공룡알 화석지가 생태 여행지로서 폭발적인 인기를 얻고 있으니 화성은 그 풍부한 관광자원에서, 서울에서 1시간이라는 접근성에서 분명 혜택 받은 곳이다.

 

어디 볼거리만 뿐이겠는가! 가을이면 달큼하게 익어가는 들녘의 포도들, 미식가들을 유혹하는 양식장의 대하, 바지락 국물이 얼큰하게 우려 나오는 바지락 칼국수는 화성의 3미이기도 하다. 

 

서해일미 마을은 조개잡이를 정식 체험 프로그램으로 육성하는데 성공하였다. 마을 앞 갯벌을 양식장처럼 관리하여 입장료를 받고 조개잡이를 할 수 있도록 개방한 것이다. 관광객들은 대가를 지불하고 충분히 조개잡이 체험을 즐길 수 있다. 어촌계에서 운영하는 이 곳 양식장은 관광객들이 실망하지 않도록 수시로 종패를 뿌리기도 한다.

 

체험장이 되는 갯벌 앞에는 장승과 솟대가 세워져 있어서 관광객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여느 솟대처럼 오리가 주인공이 아니라 물고기와 고둥이다.

 

융건백설(隆健白雪) : 융건릉 주위에 빽빽한 노송에 백설이 덮힌 풍경
용주범종(龍珠梵鐘) : 용주사 경내의 범종
제부모세(濟扶모세) : 하루에 두 번 바닷길이 열리는 제부도 모세기적
궁평낙조(宮坪落照) : 궁평리 해수욕장에서 맞는 낙조의 아름다움
남양황라(南陽黃羅) : 남양간척지에 펼쳐지는 가을의 황금들판
입파홍암(立波紅岩) : 태고의 신비가 감추어진 입파도의 붉은 기암괴석
제암만세(堤岩萬歲) : 제암리 3.1운동 순국유적지
남양성지(南陽聖地)

 

화성시 화성시 안녕동 187-1 번지에 위치한 융건릉은 사적 제206호로 지정된 효의 상징으로서, 정문 오른편에 있는 융릉은 정조대왕의 생부인 장헌세자(일명 : 사도세자, 후에 장조로 추존)와 경의왕후로 추존된 혜경궁 홍씨의 합장릉이며, 왼편의 건릉은 정조와 효의 왕후의 합장릉이다.

 

융릉 항공사진

정조대왕은 그의 부친인 사도세자의 죽음을(뒤주속에 갇혀 죽음) 애석해하며 양주 배봉산에 있는 영우원을 현재의 화산으로 옮겼는데 어느날 아버지의 능주변 소나무에 송충이가 대단히 번식하여 소나무를 갉아 먹고 있다는 보고를 받고 행차를 서둘러 산에 와보니 송충이의 기승이 목불인견이라, 정조가 진노하여 송충이를 잡아 깨물면서 "아무리 미물일 망정 네 어찌 내가 부친을 그리워하며 정성껏 가꾼 소나무를 갉아 먹느냐"고 꾸짖고 돌아서자 천둥번개와 함께 장대비 가 쏟아져 송충이가 사라졌다는 일화가 있으며, 융건릉은 용주사와 함께 정조대왕의 효심이 깃든 유적으로 우리나라에서 하나밖에 없는 효(孝)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화성의 자랑거리이다.

 

융건백설이란 융건릉 전역에 빽빽히 들어선 노송이 백설에 덮힌 풍경은 세인들의 마음을 무아의 경지로 빠져들게 하는 장관을 이루고 있는데 바로 이와 같은 아름다움을 일컫는 말이다.

 

융건릉에서 자동차로 약 5분거리에 있는 용주사 역시 정조의 효성이 잔뜩 묻어나는 곳이다. 정조는 사도세자의 명복을 빌기위해 용주사를 중건하고 부모님의 은혜에 관한 불교 경전인 "부모은중경"을 목판에 새기게 하는 한편, 당대 최고 화가였던 김홍도에게 탱화를 그리게 했다. 정조 자신은 손수 대웅보전 글씨를 쓰고 나무를 심기도 했는데 현재 용주사에는 이런 여러 문화재와 함께 정조가 심었다는 200년된 회양목이 푸른잎을 자랑하고 있다.

 

화성시 송산동 성황산 남쪽 기슭에 위치한 용주사 경내의 범종은 국보 제120호로 보존되고 있는데 용주사는 신라 문성왕 16년(A.D 854)에 갈양사로 창건되어 고려 광종때에는 혜거국사(惠居國師)가 불도를 닦던 곳으로 조선 정조대왕이 양주군 배봉산에 있던 사도세자의 영우원(永祐園)을 지금의 화산(花山)으로 이장한 이후 사찰을 중건하여 융릉 (사도세자의 묘)의 원찰로 이용하였고 사찰내의 범종은 고려시대 범종으로서는 한국종의 양식을 가장 충실히 갖추고 있는 종으로서, 정조의 애절한 효심이 깃든 용주사의 "불설부모은중경"과 함께 우리 고장의 자랑거리이며 금동청동향로와 전적수사본, 후불탱화, 병풍 등 많은 문화재를 소장한 용주사는 일년사철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화성시 서신면 제부리에 위치한 제부도는 0.98㎢미터의 작은 섬으로서 하루에 두번씩 바닷물이 양쪽으로 갈라지며, 섬을 드나들 수 있는 길이 열리는 곳으로 '모세의 기적'을 볼 수 있는 환상의 섬이다.

 

12km 해안선은 해수욕객들의 각광을 받고 있고, 모래벌 끝에는 크고 작은 암석이 어울린 3개의 바위가 솟은 매봉 (일명 삼형제 촛대바위)이 환상적인 분위기를 더해주고 있다.

 

철 따라 어선을 이용한 낚시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으며, 피서철등 성수기에는 인근지역의 송산포도와 함께 각광을 받고 있는 곳으로 관내 중 관광인파를 가장 많이 유치하는 곳이며 또한 이 지역에서 생산되는 굴, 바지락, 숭어, 우럭 등 각종 횟감들은 이곳을 찾는 관광객들의 발길을 사로잡고 있다.

 

화성시 서신면 궁평리에 위치한 해안 유원지는 해송과 모래사장이 어우러진 천혜의 관광지로서 길이 2km, 폭 50m의 백사장과 100년된 해송 5천여 그루가 한데 어우러져 한폭의 동양화를 연상케 하며 서해안 지역에서는 보기 드문 경치를 자랑하고 있다.

 

두 개의 방파제 중 오른쪽 방파제 중간에는 낙조를 감상할 수 있는 정자가 있다. 정자 위에 올라서면 탁 트인 바다와 궁평항이 한눈에 들어온다. 궁평리 낙조는 장관 그 자체다. 바다 위의 하늘이 푸른색에서 보라색 주황색으로 변하더니 바다가 붉게 타오른다. 붉은 하늘을 나는 갈매기의 울부짖음과 바람소리가 곧 찾아오는 어둠을 아쉬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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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시 장안면 수촌리∼우정면 이화리까지 14.8km에 이르는 남양 간척지는 1973년 12월 20일 2,065m의 남양 방조제가 완공되면서 1,211ha의 간척농지가 형성된 곳으로 서해바다인 남양만을 막아 조성된 농지라하여 남양 간척지로 불리워오고 있으며, 제방 축조와 함께 조성된 967ha의 남양호수는 새롭게 등장한 화성시의 관광명소이다.

 

남양호수는 농업용수는 물론 사시사철 강태공들이 즐겨찾는 곳으로서 특히 겨울철 얼음낚시터로 유명한 곳이며, 남양 간척지에서 생산되는 쌀은 염실이 좋고 알칼리 성분이 많아 경기미 중 최고의 미질을 자랑하고 있다.

 

광활한 들녘은 계절 따라 각기 다른 풍요로움을 안겨주지만 특히 가을의 황금 벌판은 남양호와 어우러져 넉넉함과 충만함을 더하여 주는 곳이다.

 

화성시 우정읍 국화리에 속해있는 입파도는 0.44㎢의 섬으로 직선거리는 서울로부터 70km, 인천에서는 해상 40km, 수원에서는 50km거리에 있으며 대부분의 표고가 50m이하의 구릉으로 연결된 아기자기한 선형의 섬으로서 중심부 동서로 완만한 능선과 해안의 모래 및 조약돌 밭을 제외한 섬전체가 30%이상의 급사면을 이루고 있으며 남북측의 해안은 절벽을 이루고 있다.

 

광활한 서해 바다에 태고의 신비를 묻고 우뚝 솟아있는 붉은 기암괴석과 파도와 갈매기가 어우러진 풍경은 한폭의 산수화로 보는이로 하여금 감탄을 자아내게하고 사면에서 불어오는 바닷바람은 우리 가슴을 시원하게 하여 주는 곳이며 아직도 뭇사람들에 때가 묻지않은 청정지역으로 인근에 있는 국화도와 함께 낚시객과 피서객들이 즐겨 찾는 곳이다.

 

제암리 3.1운동 순국기념관은 수원에서 남서쪽으로 약 20km지점에 위치한 조용한 농촌 마을로서 일명 '두렁바위'라고도 불려지는 이곳은 1919년 3.1독립만세운동당시 국권회복을 위한 만세운동을 적극적으로 전개한 곳으로 특히 4월5일 이곳 주민들이 발안장터에서 격렬한 만세운동을 벌이자 만세운동에 대한 주모인사명단을 입수한 일본 헌병 30여명이 4월 15일 오후 2시경 제암교회에 주민을 모이게 한 뒤 모든 문을 폐쇄하여 감금시키고 교회에 불을 지른 후 교회를 향하여 무차별 총격을 가하여 23명을 학살하고 30여채의 가옥을 불태워 버린 선조의 한과 넋이 서린 곳이다.

 

제암리 학살사건이 있은지 63년이 지나서야 마을에서 4km떨어진 도이리 공동묘지에 평토장으로 안장되었던 유해를 발굴하여 제암교회 뒷동산 양지바른곳에 유택을 마련하였으며 후세에 이 사실을 기리기 위한 기념비와 기념관, 교육관, 조형물 등을 설치하여 나라사랑 정신을 일깨우는 산 교육장으로 활용하고 있다.

 

화성시 남양동에 위치한 남양성모성지는 1866년 병인년 대박해때 무명의 교인들이 순교한 거룩한 땅이며, 성모님의 품처럼 아늑한 자연경관을 지닌곳이다.

 

이곳은 1991년 10월 7일(로사리인 동정 마리아 축일, 수원교구 설정 기념일)에 성모님께 봉헌되었고 한국교회 사상 처음으로 성모 마리아 순례성지로 선포되었다.

 

이곳은 남양순교성지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화강암의 대형묵주알, 그리스도왕상, 성모 동굴, 오솔길 소자상, 요셉성인상 등이 있으며 아늑하고 성스러운 분위기 조성을 위한 성지 조성사업을 대대적으로 실시, 성모님품같이 아늑하고 포근한 경관을 지닌 곳으로 시민은 물론 전국의 천주교 신도들의 순례지 겸 휴식장소로도 잘 알려져 있다.

 

/ 자료 - 화성시 문화홍보과 / '서울근교의 가볼만한문화재' / '혼자서기차타고당일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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