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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방곡곡/충청남도

금산 17번국도 묵산리 진산자연휴양림 권율장군

by 구석구석 2008. 1.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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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란드산 나무 향에 팔 베고 스르르 '진산자연휴양림'
해발 349m 배티재 정상 진산자연휴양림으로 향하는 길. 지대가 높아짐에 따라 공중부양을 하는 듯 재미가 쏠쏠하다. 대둔산 휴게소 안쪽 입구, 왼편으로 난 산책로 대신 오른쪽 숲길을 따라 걸으면 통나무집이 모습을 드러낸다.

 

총 17동의 숙소는 ‘한국형 마을’과 ‘핀란드형 마을’로 구분된다. 한국형은 천안방, 아산방, 논산방 등 지역 고장의 이름을 딴 방이다. 핀란드형은  공주방·대전방·서산방 등 충청도의 유명 도시 이름을 붙였다.  윗마을과 아랫마을로 나누는 기준은 ‘나무’다. 우리나라 낙엽송으로 만들어 은은한 향기를 더하는 한국형 마을과 달리 핀란드형 마을은 핀란드에서 수입한 목재로 집을 지었다. 내부 모양만 다를 뿐, 가격은 비슷하다.

핀란드형 통나무집 중 ‘연기방’에 들어가 본다. 밖은 몰아칠 태풍을 예고하듯 후텁지근한데 방 안은 거짓말처럼 시원하다. ‘ㅅ’ 자 모양의 천장이 시원스레 솟구쳐 있다. ‘홍성방’ 문을 열자 모서리에 박힌 벽난로가 보인다. 연기방보다 좀더 진한 나무 향내가 코끝을  자극한다.

 

숙소 내에는 취사가 금지되어 있으므로 마당에 마련된 공동 취사장을 이용해야 한다. 가스레인지가 두 대 갖춰져 있으며 깨끗하고 정갈하다. 휴양림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음식점에서 인삼을 넣은 백숙과 닭볶음탕 등을 맛볼 수 있다.

총 6km의 산책로에는 일정한 구간마다 자작나무, 소나무 등 각기 다른 나무가 자리잡고 있다. 초입에 들어서자 야외 음악당이 보이고 그 뒤로는 푸른 대둔산이 병풍처럼 펼쳐졌다. 고인돌 모양의 돌침대 위에서 삼림욕을 즐길 수 있다.  

 

 

숲에서는 꿩도 흔히 볼 수 있다. 채 다듬어지지 않은 숲길을 더듬어 걷다 보면 세상의 소음이 산새의 지저귐에 묻혀 사라진다. 대둔산이 숲 사이로 모습을 드러낼 즈음이면, 그 아래 작은 나무 벤치에 앉아 숨을 돌려본다. 1km 정도 거닐면 벚나무 정자가 나오는데, 녹차 가루를 수북하게 얹은 듯한 모양의 초록빛 숲을 감상할 수 있다.

 
숲이 있고 흙이 있고 하늘이 있는 대둔산. 흘끔흘끔 곁눈질하며 걷노라면 산자락 끝으로 구름이 물결치듯 흐른다. 그제야 비로소 고여 있던 마음도 따라 흐른다. 심신이 편안해지기 시작하는 것은 바로 그 순간부터다.

2.5km 지점부터 삼림욕장이 시작되는데, 굳이 과학의 효능을 들어 숲의 이로움을 예찬하지 않아도 좋다. 그저 들이마시는 공기만으로도 심신이 상쾌하다. 빽빽이 우거진 나뭇가지가 햇살을 가리고, 느린 보폭에 맞춰 들숨과 날숨을 반복하다 보면 맑고 청명한 공기가 한겨울을 대비하는 월동 식량처럼 든든하게 쌓인다.


몸도 마음도 필터링되는 기분이랄까. 그렇게 한 시간 반 정도 아무 생각 없이 걸으면 어느새 다시 휴양림 입구에 다다른다. 자연에서 시작해 자연으로 끝나는 여행, 한여름에 나무와 벗 삼는 일은 짐작보다 훨씬 근사하고 탁월한 선택이다.    editor 고선영, 박나리, photographer 전은정, 김연지

 
진산자연휴양림 정보 / 041-753-4242 | 입장료·주차료 무료, 숙박료 4만~15만원(인원 1인 추가 시 5000원 적용, 여름 성수기 기준) | 부대시설; 산막, 물놀이장, 청소년수련원 주변여행지 대둔산컨트리클럽, 충렬사, 칠백의총, 금산인삼종합전시관 | 서울에서 옥천 IC를 지나 대둔산 17번 국도를 타고 배티재휴게소 입구 | http://ijinsan.net
 
▶ 대둔산 트레킹
휴양림 내의 숲 산책만으로 부족하다면 인근 대둔산 트레킹 코스를 이용하면 좋다. 대둔산 주차장에서 동심바위와 구름다리, 마천대, 낙조대, 배티재를 잇는 코스는 6.6km로 2시간 20분가량 소요된다. 또 하산북에서 안심사를 거쳐 주능선 바위지대를 따라 829봉, 마천대를 거쳐 주차장까지 내려오는 코스도 좋다. 10.1km 길이로 4시간 10분 정도 걸린다.
 
묵산리 산83 권율장군이치대첩비 041-750-2383

 

 

이치는 순우리말 배티재의 한자식 이름이다. 이 배티재는 대둔산 중허리를 넘어 전북 완주군으로 통하는 교통의 요지이며, 전략상 중요한 곳이었다.
임진년 7월 경상도와 충청도를 휩쓴 왜군이 군량미의 현지 보급을 위해 이 배티재를 넘어 호남평야로 진출하려 하였다. 이때, 왜장 고바야가와가는 2만 병력을 이끌고 재를 넘으려 했다. 한편, 이보다 앞서 권율장군은 동복현감 황진과 1,500여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이 재를 지켜 왜군의 호남진출을 막으려고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왜군은 수의 우세함과 승승장구의 힘을 믿고 단숨에 이 재를 넘으려고 공격했지만, 장군은 전병력을 독려, 결사전을 벌여서 적을 섬멸하여 승리를 거두니, 이를 일컬어 이치대첩이라 하고, 이후 왜군의 호남 진출 전략에 차질을 빚게 되었다.

 


1866년 금성면 상가리에 이치대첩비와 대첩사 를 세웠으나 1944년 6월 일제가 항일유적 말살정책으로 폭파하여 그 파편이 진산면 사무소에 보관되었다. 1963년 대첩 에 참여한 후손과 지역 유지가 지금의 장소에 비석을 건립하였다.
1991년부터 성역화계획이 수립되어 사당, 비각 및 안내판 이축, 내삼문, 외삼문, 담장을 건립하였다. 장군의 묘소(경기기념물 2)는 경기도 양주군 장흥면 석현리에 있다.
 
 
주변명소 '칠백의총'
1963년 사적 제105호로 지정된 칠백의총은 임진왜란 때 조헌선생과 영규대사가 이끌던 의병이 왜군과의 싸움에서 순절한 700 의사의 묘와 사당이 자리잡고 있는 곳이다. 조헌 선생의 제자 박정량과 전승업은 싸움이 있은 4일 후 칠백의사의 유해를 한 무덤에 모시고 칠백의총이라 했다.
광복후 1952년에 군민들이 성금을 모아 의총과 종용사를 지었고 1970년에 묘역을 확장한 후 종용사와 순의비를 새로 지었으며, 1976년에는 기념관을 신축하여 순절한 칠백의사의 숭고한 호국정신을 이어받게 하고 있다.
이 비각에는 중봉 조헌선생 일군 순의비의 파비가 보존되어 있다. 이 비는 임진왜란 때 조헌선생과 승장영규대사를 따라 청주를 수복하고 금산 싸움에서 순절하기까지 행적을 쓴 것이다.
그러나 일제 강점기에 금산 경찰서장 일본인 이시까와 미찌오에 의하여 이 비가 폭파되었던 것을 인근 주민들이 뒷산에 묻어두었다가 8.15 해방 후에 다시 파내어 보관하던 중 1971년 4월에 그 파비를 붙여 다시 세우고 비각을 건립하였다.
금산의 자랑인 칠백의총은 금산여행시 꼭 한번 들러 보아야할 곳으로 주변이 깨끗하게 정비가 잘돼있고 가족단위로 들러 쉬어 가기에 좋은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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