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방방곡곡/충청남도

공주 651번지방도 곰나루국민관광지 꽃밥 선화당 무령왕릉 황새바위 송산리고분

by 구석구석 2022. 12. 16.
728x90

 

승용차를 이용할 경우 경부고속도로 회덕 분기점에서 호남고속도로로 들어가서 유성 IC로 빠져나오면 된다. 거기서 200m쯤 가다가 공주 방향으로 우회전해 공주로 시원스럽게 뚫린 고속형 국도를 타면 20~30분만에 공주에 도착한다. 공주에서는 워낙 이정표가 잘 부착돼 있어 쉽게 관광지로 들어갈 수 있다.

 

비련의 사랑 안고 죽은 곰, 공주 금강 곰나루 041-840-2469 

 곰나루 소나무 숲 앞으로 푸른 금강이 휘돌아 흐르는데 제법 운치가 있다. 시원한 강바람이 끊임없이 불어오는 곰나루는 맑은 바람이 가득하며 소나무 향이 그윽한 여름 휴식지의 별천지 같다. 오마이뉴스 임재만

 

공주의 옛 이름은 웅진이다. 웅진은 곰나루란 뜻이다. 공주에서 금강 변으로 나있는 백제 큰길을 따라 자동차로 5분 정도 달려가면 강변 쪽으로 소나무 숲이 우거진 작은 동산이 보인다. 이곳이 바로 곰나루다. 곰나루로 향하는 작은 길을 따라 들어가 보면 멋진 아름드리 소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다.

 

송림 속의 벤치에 앉아 유유히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노라면 모든 시름이 씻은 듯 가슴이 맑아지는 느낌이다. 곰나루의 하얀 백사장으로 내려가면 두루미, 까치, 까마귀가 강물 위를 날며 또 하나의 볼거리를 제공한다. 곰나루에 서서 주변 풍경을 바라보면 신선이 따로 없다.


곰나루는 고어로 고마 나루라고 하는데, 매년 7월과 8월 사이에 고마 나루 축제를 연다. 곰과 인간의 애틋한 사랑의 전설을 바탕으로 하는 시민의 공연예술 축제로, 국악, 연극, 관현악, 사물놀이, 시민 어울림 마당 등 다양한 이벤트로 이어지는 여름밤 축제이다.

 

곰나루 웅신각(熊神閣)

 고마나루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내려온다. 아득한 옛날 한 사냥꾼이 사냥을 하러 강을 건너 갔다가 여자로 화한 곰에게 붙들려서 본의 아니게 동굴에 갇혀 암곰과 살게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 곰은 의심이 많아서 밖으로 나갈때는 동굴의 입구를 바위로 막아 놓고 나가곤 하였다. 그렇게 수년간을 살아오면서 아이 셋을 낳았는데 하루는 곰이 방심한 틈을 타서 사냥꾼이 동굴을 빠져나와 강을 건너오고 말았다.

탈출을 한 곰은 다시 돌아오라고 애처롭게 호소하였지만 남편이 돌아오지 않자, 곰은 도망간 남편을 원망 하면서 세 아이를 안고 강물에 몸을 던져 죽었다고 한다. 그 뒤로는 죽은 곰의 원혼 탓인지는 몰라도 농사를 지으면 계속 흉년이 들고 배를 타면 물결이 세차게 일어 배가 전복되는 일이 자주 발생하여 사람들이 조금 떨어진 곳에 은곰의 원혼을 달래기 위한 사당을 세운 뒤에는 그런 일이 없어졌다고 한다. 지금도 송림 사이에 웅신을 모신 곰사당이 있어, 곰과 인간의 애닯은 사랑 이야기를 들 려주고 있다.

66세기경 작품으로 추정되는 돌곰상은 웅진동 무령왕릉 맞은편 남쪽 구릉 중턱에서 출토된 것으로 1972년 공주박물관에 수장하게 되었으며 이 곰상을 사당에 안치하고 제사를 지내며 신앙의 대상으로 삼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공주의 맛 '꽃밥' 

 

꽃 싫다는 사람 없다. 받아도 줘도 좋은 게 꽃이다. 받다, 주다 동사에 ‘먹다’를 더해도 결론은 같아진다. 각종 허브요리와 유기농식단이 대중화되면서‘꽃’을 재료로 한 밥들이 심심찮게 등장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먹는 '꽃'은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다. 먹는 맛도 맛이거니와 보는 맛이 더해졌으니 그럴 수 밖에. 쌀이 좋아 돌솥밥이 유명한 충남 공주에서  '꽃밭'같은 ' 꽃밥'을 만나봤다.

 

 

꽃쌈밥은 단어 그대로 쌈밥에 각종 식용꽃들이 곁들여져 나온다. '그뿐야?'란 생각이 든다면, 꽃쌈밥을 얕잡아봐서다. 일단 풍성한 각종 쌈 야채들이 거짓말 좀 보태 탑처럼 쌓여 나온다. 그리고 그 위엔‘여전히 줄기와 뿌리를 가진 꽃’인 마냥 신선한 자태를 지닌 식용꽃들이 선명한 색을 거침없이 드러낸다.

 

물감으로 꼽자면 수채화 물감이 아니라 짙은 유화물감으로 그려 놓은 듯 선명한 빛깔이다. 쌈과 영양돌솥밥, 자글자글 끓는 불고기 전골까지 보는 것만으로도 배가 불러 오건만, 여기서 끝이 아니다.  곁들여 나오는 겉절이에도 꽃, 달콤시원한 물김치에도 꽃, 짭쪼롬 쫄깃한 찹쌀 화전에도 꽃은 빠지지 않는다. 꽃밥정식이 차려진 게 아니라 상위에 꽃밭을 옮겨왔다 싶을 정도. 

 

샐러드, 화전, 물김치 등 모든 음식이 채도 강한 식용꽃들로 만들어졌다. 팬지, 베고니아, 장미 패랭이 등 상에 오른 꽃들은 식용꽃 단골인 팬지, 베고니아, 장미, 패랭이꽃 등이다. 식용꽃이라곤 하지만 꽃중에서 노랑, 빨강, 주황, 보라색처럼 채도 높은 순으로 모아 놓은 듯하다. 젓가락으로 꽃잎을 건드릴 때마다 꽃잎에서 화려한 물방물이 물감처럼 번져 나올 마냥 생생하다. 하지만 온갖 미사어구 앞에서도 자고로 음식은 맛이 있어야 하는 법. 예쁘기만 하다면 빛 좋은 개살구. 행여 모양 흐트러질까 아깝지만, 먹어보자. "꽃에도 맛이 있을터이니…" 

 

일단, 각종 쌈야채들 틈바구니 속에서 여린 꽃잎들은 보드라운 솜털을 오롯이 간직하고 있다. 아삭이는 쌈야채들과는 대조적인 질감이다. 향기 역시 살아 있기는 매한가지. 워낙 보드라운 꽃잎이나 보니 씹기도 전에 사라지기 일쑤지만, 후각이 이내 미각으로 전달되는 경험은 신기하기까지 하다. 하지만 아쉽다. 오래도록 입에 머물 만큼 인내심이 많지도 않은 게 꽃인가 보다. 그래서 더 기억에 남 을지 모를 일이다. 상에 오른 모든 꽃들은 완전 무공해 유기농재배로 키워져 식탁까지 오른다. 각종 쌈 채소 역시 마찬가지다. 농수산 검사소가 인증한 농장에서만 공급받는 야채들이라고 하니, 마음 놓고 즐겨도 좋다.

한국관광공사 국내온라인마케팅팀 김수진 기자

 

한국관광공사

 

 꽃쌈밥(고마나루 돌쌈밥/041-857-9999)은 공산성 맞은편에서 먹을 수 있다. 꽃쌈정식 18,000원 / 쌈밥정식 10,000원 외 전골, 비빔밥류 등 다양하다.

728x90

공주시 고마나루길 51-12 금강유황온천 041 856 0033 

공주한옥마을 맞은편에 있으며 지하 1300m 암반수에서 용출하는 양질의 온천수로 약칼리성 단순천이며 수질은 무색, 무미, 무취의 성질을 지니고 있다. 효능은 게르마늄 성분이 함유되어 피부노화 방지, 만성 신경계통 류마티스 관절염, 당뇨병, 부인병 및 성인병 예방과 치료에 유효하다.

금강유황온천은 대형 온천 시설과 숙박 시설이 함께 있어 공주를 관광하는 가족 단위의 손님이 많이 있고 주변 관광지로는 무녕왕릉, 공주박물관과도 가까워 관광지 주변 숙박으로 최적의 위치를 자랑한다.

 

웅진동 332-9 선화당(충남감영) 도지정유형문화재 제92호

선화당은 충청도 관찰사의 행정청으로 사용되었던 건물이다. 처음에는 감영지에 자리 하였는데 국립공주박물관 안으로 옮겼다가 최근 다시 공주 웅진동으로 옮겨와 복원하 였다. 충청도 관찰사는 처음 충청북도 충주에 있다가 1598년(선조 31)에 공주로 옮기 었는데, 1646년(인조 24)에 큰 장마로 인하여 선화당이 떠내려 가서 금성동 성안으로 옮겼다가 1653년(효종 4)에 당시의 관찰사 강상연이 반죽동 공주사대 부속고등학교 자리로 옮겼으며, 1910년 국치를 당한 후 충청남도청이 되어 오다가 1931년에 도청을 대전으로 옮겨가고, 건물은 1938년 중동으로 그대로 이전하여 국립공주박물관 진열실 로 이용되어 왔었다.

건물은 정면 8칸 측면 4칸의 평면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는 초창의 건물이 정면 9칸 이었던 것을 이전 복원하면서 원형이 변경되어 정면 8칸으로 변화되었다. 건물의 내 부는 통칸으로 넓은 공간을 두었고 기둥은 내진칸을 두도록 배치하면서 주위에 외진 칸을 만들어 퇴칸 형식을 취하고 있다. 공포는 무출목 이익공 계통으로 시설하였고, 창방이 있는 주칸에는 운공이 있는 화반을 3구씩 배치하여 장설을 받쳐 주어 관아 건 축의 장엄을 유지하고 있다 (문화재지정일 : 1980. 12. 29). 건물의 내부는 통칸으로 넓은 공간을 두었고,기둥은 내진주를 두면서 주위에 외진주를 두어 퇴칸 형식을 취하고 있다.공포는 무출목 이익공계통으로 시설하였고,창방이 있는 주칸에는 운공이 있는 화반을 3구씩 배치하여, 장설을 받쳐 주어 관아 건축의 장엄을 유지하고 있다.
 

충남감영은 고려대부터 공주목이 설치된 이후 지방행정 중심지로서 그 이전시기 (삼국,통일신라)의 웅주, 능천 도호부를 이어받은 공주 건치가 비롯되었다.조선시대에 들어 정삼품의 공주 목사는 세조때 시행된 진관체계 수립에 따른 첨절제사를 겸하게 되고, 예하의2군(임천한 산), 10현을 통치하게 되었다. 따라서 공주목관아는 동헌을 비롯한 정청들과 중앙기관인 객사 외에 진관에 소속된 여러 건물과 창고건물들이 지금의 공주시 중동 도립병원 주변 일대에 산재해 있었다. 여지도서에 나타난 공주목소속공해는 객사32간(웅주지관),아사 26간(혜의당), 향소청,향사당 13간,군관청7간,작청10간,진무청7간, 지인방 3간, 우영15 간, 토포군관청 8간, 기(?)청 9간, 작청6간이었다.

창고시설로는 대동고 20간,보역고5간, 관청고 6간이 주내에 있었고, 사창 16간이 산성내에 그리고 동· 서· 남· 북·유창이 주외현에 배치되었다. 공주목 동헌 건물이 도립병원 건립 당시 대책없이 철거되어 후일 (1980年代중반)금성동 산기슭(황새바위 밑)에 복원되었는데,또다시 요실됨으로서 곰나루 변「문화단지」선화당 앞마당에 새롭게 이건재되었다.
 

포정사는 공주 감영에 부속되었던 건물로 감영이 철회되면서 구 공주군청 곁으로 이건하였다. 한 동안 공주제일감리교회로 사용되다가, 다시 군보건소로 이용하였다. 그 후, 1980년대에 교동으로 옮겨 중수하였으나 1985년 화재로 전소하였다. 지금은 무령왕릉과 금강사이의 곰나루에 위치하고 있다. 건물은 정면5칸, 측면2칸의 익공식팔작지붕이다.

선화당(宣化堂)에서 6~7일 재현(再現)된 '향시(鄕試)'. 향시는 조선시대 전국 8도(道)에서 치러지던 과거(科擧)의 1차 시험, 선화당은 관찰사(觀察使·현재의 시·도지사) 사무실을 일컫는다. 충북일보

동헌은 두벌대로 기단을 쌓은 위에 각 초석에 각주를 세워 정면 8간, 측면 4간의 평면을 보성했다. 8.2척 주간으로 등간격을 준 7간 내진의 전후로 반간퇴마루를 돌리고 동측면에도 같은 퇴간을 둠으로서 정면 8간이 되었다. 전퇴 부분은 창호없이 개방되고 안쪽 중앙3간은 우물 마루깔은 대청 우측편은 온돌방 2간이다. 중앙 대청 우측의 2간 은 마루바닥이나 4面창호구획 되고 대청을 중심한 양옆 측변면도 모두 4분합 으로 접어서 들어 열수 있는 구조이다. 납도리, 홑처마로 2고주 2중량 7가연의 단출한 목조 팔작지붕집이다.

선화당과 포정사등 감영건물에 비해서는 너무나 섬약한 용재쓰임 등 단조로운 관어건물이다. 정삼품 관원이 주재하는 공주목의 치호 품계로 보아서는 동헌 건물이 너무 왜소할뿐 아니라 각주, 무익공, 납도리, 처마등이 평범한 전각구조와 다 를바 없어 동헌 중심건물로서의 위풍이 없는 듯 느껴졌으나 감영(관찰사영)앞에 존재하는 겸양함이 발휘된 것으로 사려된다.
 

금영측우기(錦營測雨器) 보물 제561호 
조선 헌종 3년(1837) 빗물을 그릇에 받아 강우량을 재는 측우기는 조선 세종 23년 (1441)에 만들어진 후 여러 차례 다시 만들어졌으나, 현재 남아 있는 것은 헌종 3년(1837)에 만들어진 금영측우기가 유일 하다.

 

높이 31.5㎝, 지름 29.4㎝의 이 측우기는 원통형의 표면 3곳에 대나무처럼 도드라진 마디가 눈에 띤다. 동그란 통은 빗 물을 받는 그릇으로 여기에 주척(周尺)이라 부르는 자가 있어 측우기에 고인 빗물의 깊이를 쟀다. 화강석 받침에 새겨진 글 에는 조선 영조 46년(1770)에 만들었다는 기록이 있지만, 이 받침대는 원래 대구에 있던 것으로 측우대와는 별도의 것이다. 금영측우기는 1910년 당시 공주감영에 있던 것으로, 그 뒤 주척과 함께 일본 기상청으로 옮겨졌다가, 1971년 3월에 반환되어 지금은 기상청에 보관되어 있다. 2006년 5월 금영측우기가 본래 있었던 공주에 금형측우기 모형을 제작하여 여기에 설치하였다.

 

공주 여행은 역시 무령왕릉에서 시작한다 

공산성 맞은편 아치형 큰문부터 송산리 고분군이다. 1호에서 6호까지 6개의 고분은 일제시대에 발굴됐고 무령왕릉만 1971년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중 5호분은 전형적인 백제의 횡렬식 석실분이고, 6호분은 유일하게 청룡, 백호, 주작, 현무 등이 그려진 벽화 고분이다.

백제의 고분은 신라나 고구려의 것과 달리 사람이 드나들 수 있도록 입구를 마련하고 있어 발굴 전에 도굴되지 않은 것이 없을 정도였는데 무령왕릉만은 처녀분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다.

무녕왕릉

게다가 국내에서 발굴된 무덤 중엔 유일하게 주인을 밝히는 지석까지 품고 있었으니 그것만으로도 백제를 살리는 데 제 역할을 다했다 하겠다. 그러나 고분의 보존을 위해 실제 무령왕릉은 관람객의 출입을 통제한다. 대신 고분 입구에 실제 크기로 만들어놓은 모형분 전시관을 둘러보는 것으로 만족할 수밖에.

 

무령왕릉의 발견으로 송산리고분군이 왕릉임이 분명해졌고 공주 일원의 주미리(舟尾里), 교촌리(郊村里), 금학동(金鶴洞), 옥룡동(玉龍洞) 분묘군이 동시기 귀족의 분묘로 추정된다.

모형분 입구에 들어서기도 전에 둥글게 모아 올린 궁륭형 천장이 눈길을 끈다. 극락왕생을 바라는 백제인의 내세관이 담겨 있다는데, 화려하진 않아도 섬세한 백제 장인의 솜씨가 과연 감탄을 자아낸다. 이는 부채꼴 모양의 벽돌을 축조할 수 있는 기술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라는데, 놀랍게도 구운 벽돌 두 장이 맞대어져서 온전한 한 송이 연꽃이 완성되어 있다.

 

 전시관을 둘러보고 나오면 곧바로 무령왕릉과 연결된다. 신라의 웅장한 고분과 달리 백제의 고분은 이제 막 봉긋하게 솟아오른 처녀 젖가슴처럼 아름다운 선을 자랑한다. 사람이 지나가는 자리마다 가로수를 두었는데 진록의 나무 그늘에서 오수를 청해도 좋을 만큼 여유로운 풍경이다. 박물관으로 간 진묘수(무덤을 지키기 위해 놓아둔 동물상) 대신 무덤을 지키기라도 하려는 듯 봉분 가까이 갈수록 매미 소리가 뜨거워진다.

 

디오라마로 보여주는 무덤 축조장면 
입구의 ‘고분군 모형관’을 힐끗 지나쳐 무령왕릉이라는 7호 고분으로 다가가 보면 도굴은 다 당해 놓고 또 그나마 풍상이 도와 무너진 탓에 간신히 지켜진 대왕의 능은 '소 잃고 외양간 고친 격'으로 주먹만한 자물쇠로 굳게 잠겨 있다.

백제역사 연구에 새로운 장을 연 이 능은 발굴 이후 일반에게 공개되었으나 지난 97년 정밀조사한 결과 누수현상 등으로 훼손이 우려됨에 따라 원형보존을 위해 영구 폐쇄했다.
공주시와 문화재청은 무령왕릉폐쇄 후 모형관을 재현 관람객에게 전시하기로 하고 이후 5년간의 공사 끝에 2003년 5월 15일 정식으로 개관시켰다.
무령왕릉 모형관은 무덤을 직접 들어가서 체험하는 공간으로 만들어졌으며 무덤을 절개한 모형을 유리관속에 배치해 입체적인 관람을 할 수 있게 했고, 실제와 똑같은 크기와 모양으로 재현 인근의 5, 6호분과 함께 복원·전시하고 있다.


모형관 내부는 왕릉에 대한 각종 정보검색과 함께 영상, 패널, 디오라마 등 전시 연출시설도 설치해 관람객들에게 1천5백년전 역사의 이해를 돕고 있다.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108종 2,096점의 유물은 국립공주박물관에 그대로 전시됐는데, 모처럼 여유를 가지고 둘러볼 일이다. 국립중앙박물관이나 경주국립박물관과 달리 이곳 국립공주박물관은 지역 내에서 발견된 유물만 전시하므로 큰 부담없이 하나하나 살펴볼 수 있는 것이 장점이다. 특히 관련 인사의 인터뷰나 시뮬레이션 등을 이용한 영상·인터넷 자료실을 운영하여 딱딱한 역사를 이해하기 쉽다.

 

"공주를 찾는 관광객 중 50% 이상이 일본의 중장년층입니다. 자신의 뿌리를 찾기 위한 여행인 셈이죠. 일본 천황도 자신의 외가는 백제의 후손이었다고 할 만큼 그들에게 백제는 이웃나라 이상이랍니다.

"문화해설사 최명옥 씨의 말이다. 이미 일본에서 출토된 많은 고분에서 백제의 흔적이 굵직굵직하게 나타났고 우리의 무령왕릉에서도 왕과 왕비의 시신을 거둔 나무 관이 일본에서만 자라는 '금송'으로 밝혀진 바 있다.

  editor 이귀랑

  

 

가는 길

천안 IC에서 대전 방면 1번 국도를 타고 가다 행정리 백제주유소 앞 삼거리에서 23번 국도를 타면 송산리 고분군 입구가 나온다.

 

공주시 금성동 황새바위 천주교도 순교지 관리사무소 041-856-3923

공주중학교 건너편에 위치

 

한국관광공사

이곳은 천주교 박해가 극심했던 18세기 100여년 동안(1797~1879) 수많은 천주교 신자들이 공개 처형된 사형터이다. 즉, 유교를 통치이념으로 했던 조선조 시대에 충청도의 감영이 있던 공주로 압송된 천주교 신도 수백명의(기록된 이름 248명) 순교를 당한 곳이다. 죄인들의 공개 처형지였던 이곳 황새바위는 황새도 서식했던 곳이기에 황새바위라고도 하고, 이곳에 있던 바위가 죄수들의 목에 씌우는 칼인 황새 모양으로 생겼고, 목에 큰 칼을 쓴 죄인들이 이 언덕 바위 앞으로 끌려나와 죽어 갔으므로 황새바위라고도 한다. 

 

백제의 흔적을 따라서 걷는길 / 공주 공산성~무령왕릉~곰사당

글 김영록 걷기모임 ‘유유자적’ 회원

 

 

 

●알고 가면 더 좋아요
걷는 거리·시간: 10.7㎞·3시간 15분

시작하는 곳: 공주 시외버스터미널
끝나는 곳: 박물관 앞 삼거리 버스정류장(8번 버스를 타면 공주 시외버스터미널까지 간다.

 

① 공주 시외버스터미널~공산성 매표소(1.6㎞/25분)

공주 시외버스터미널을 나와서 오른쪽으로 가면 중앙로 삼거리다. 전막 사거리까지 계속 간 다음 금강 쪽으로 횡단보도를 건너 금강교를 넘어 쭉 가면 왼쪽에 공산성 매표소가 있다. 

공산성 왕궁터

② 공산성 매표소~공산성 일주~공산성 매표소(3.5㎞/75분)

언덕을 오르면 공산성 서문인 금서루다. 금서루 아래를 통과한 직후 오른쪽에 나무를 박은 계단을 오르면 성벽과 만난다. 성벽을 오른쪽에 두고 시계 반대 방향으로 가면 공산성을 한 바퀴 돌 수 있다. 금서루로 돌아오면 매표소 쪽으로 다시 나온다.

공산성 임류각


③ 공산성 매표소~송산리 고분군과 무령왕릉 매표소(1.3㎞/20분) 매표소 앞은 삼거리다. 매표소 앞의 횡단보도를 건너 ‘초우장’과 ‘공주동물병원’을 지나 쭉 가다 공주문예회관이 있는 삼거리에서 오른쪽으로 돌면 바로 오른쪽에 계단이 있다. 계단을 올라 곧장 앞으로 가면 무령왕릉 매표소다. (무령왕릉 입장료:성인 1500원·청소년 1000원·어린이 700원)

공산성 성곽


④ 무령왕릉 매표소~송산리 고분군 일주~무령왕릉 매표소(1.5㎞/30분) 매표소를 지나면 오른쪽에 송산리 고분군모형관이 있다. 모형관을 왼쪽에 두고 고분언덕을 오른다. 언덕 제일 꼭대기에서 만나는 숲길을 따라 내려오다 내리막 끝 화장실에서 왼쪽으로 가면 무령왕릉 입구로 돌아온다.

⑤ 무령왕릉 매표소~선화당~국립공주박물관(1㎞/15분)

무령왕릉에서 나와 오른쪽 주차장 방향으로 간다. 주차장 끝 ‘충남공예협동조합전시장’을 지나면 ‘웅진도서관 버스정류장’이다. 정류장 앞에서 오른쪽의 시멘트 포장 길로 간다. 길가의 나지막한 활터 담장을 따라 내려가면 왼쪽에 선화당 식당이 있고 이어서 선화당이다. 선화당을 지나 오른쪽으로 돌면 국립공주박물관이다.

⑥ 국립공주박물관~웅비탑~곰사당(1.2㎞/20분)

박물관 정문에서 오른쪽 1시 방향의 ‘박물관 슈퍼’ 앞을 지나면 바로 오른쪽에 택배회사들의 영업소가 있다. 영업소를 지나 삼거리에서 오른쪽으로 간다. 계속 가면 웅비탑이다. 웅비탑 앞의 큰길에서 횡단보도를 건너 왼쪽으로 간다. 300m 정도 가면 길가에 ‘능소야가든’ 표지판이 있고 오른쪽으로 들어가는 길이 있다. 이 길을 따라 ‘능소야가든’ 앞을 지나면 곰사당이다.

⑦ 곰사당~박물관 앞 삼거리 버스정류장(0.6㎞/10분)

곰사당에서 돌아 나와 ‘능소야가든’ 앞 큰길에서 오른쪽으로 가다가 첫 번째 횡단보도에서 큰길을 건넌다. 곧장 100m 정도 가면 박물관 앞 삼거리다. 오른쪽 ‘웅진상회’ 앞에서 8번 버스를 탄다.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