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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방곡곡/경기도

안양 석수동 삼막사 삼성산

by 구석구석 2007. 11.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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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양시 동안구 석수동 삼성산주변

 

삼성산은 서울대학교에서 남으로 내려가면 4㎞, 안양에서 오르면 5㎞ 거리이다. 관악산의 남쪽에 있는 삼막사는 지하철역 관악역에 하차하여 마을버스를 타고 경인교대앞까지 간 후 산길로 걷거나, 포장된 길로 2km 정도 걸어가면 갈 수 있다.



이와 함께 삼막사로 가다 보면 경인교대 옆으로 위치한 삼막사계곡을 만날 수 있다. 도심과 가까운 삼막사계곡은 여름이면 많은 사람이 더위를 피해 찾아오는 명소이기도 하다.

 

경기도 안양시 동안구 석수동 삼성산(해발  481m)8부 능선에는 안양8경의 하나인 삼막사(三幕寺)란 천년 고찰이 있다. 이 절은 1천300여년전 신라 문무왕(文武王) 17년(677년) 원효(元曉), 의상(義湘), 윤필(潤筆) 등 3명의 고승이 암자를 지어 정진하던 곳으로 삼성산(三聖山)이란 이름도 이때 만들어졌다고 한다.

 

이후 신라 도선국사(道詵國師.827∼898)가 중건하고 고려 태조가 중수했으며 조선조 무학(無學)대사에 의해 한양 남쪽의 비보 사찰로 역할을 했다. 임진왜란 당시 왜구가 침범, 절에 불을 질렀으나 법당 건물은 타지 않아 왜구가참회하고 떠났다는 전설이 있으며 조선시대부터 남왈삼막(南曰三幕)이라 하여 남서울의 수찰(首刹)역할을 했다.

 

절 입구에 들어서면 누구든지 깨달으면 부처가 될 수 있다는 대승불교의 근본사상을 상징하는 천불전(千佛殿)이 나타난다. 법당에는 석가모니불, 가섭불, 구나함모니불 등 1천명의 부처가 있어 보는 이를 압도하게 만든다.

 

천불전 옆에는 지난 1990년 신축된 6명의 부처를 모신 육관음전(六觀音殿)이 있고 그 앞에는 조선 태조 7년(1398년) 무학대사가 건립한 것으로 전해지는 망해루(望海樓)가 있다. 정면 5칸, 측면 3칸, 2층 누마루 건물인 망해루는 명칭이 말하듯 맑게 갠 날이면 서해바다를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다.

 

삼막사 종무소건물이 화재로 소실되고 주지스님 사망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 60호인 명왕전(冥王殿)은 지장보살을 위시, 명부의 10대왕을 모신 곳으로 조선 고종 17년(1880년) 건립됐다.

경기도 문화재자료 제60호 삼막사 명부전(명왕전).  ⓒ 삼막사 제공

천불전 뒤편에 위치한 일명 살래탑이라고 불리는 고려시대 3층 석탑(경기도 유형문화제 제 112호)이 있다. 이 탑은 승도(僧徒) 김윤후(金允候)가 몽고군 원수인 살리타이를 살해하고 싸움을 이긴 것을 기념해 세운 승적기념탑으로 적당한 크기의 바위 위에 높이 2.55m 크기로 세워졌다.

 

삼막사 삼층석탑은 고려시대에 만들어졌으며, 1983년 9월 19일 경기도의 유형문화재 제112호로 지정됐다.  ⓒ 삼막사 제공
원효가 도를 닦았다는 삼막사 원효굴.  ⓒ 삼막사

천불전을 가로질러 삼성산 정상 부근으로 오르다 보면 삼귀자(三龜字)란 암각화가 나타난다. 삼귀자는 조선후기 종두법을 실시한 지석영의 형 지운영(池雲英.1852∼1935년)이 인근 백련암지(白蓮庵址)에 은거할 당시 쓴 글로 바위면을 다듬어 음각으로 거북귀(龜)자를 3가지 형태로 새겨놓았다.

 

삼귀자를 지나 계단을 오르다 보면 남녀의 성기 모양을 한  남녀근석(南女根石.경기도 민속자료 제3호, 1983.9.19)을 만나게 된다. 이 바위는 자연 형태의 남근석과 여근석이 있는데 바위를 만지면서 자식 두기를 원하고 출산과 일가의 번영, 무병 장수를 빌면 효험이 있다는 전설 때문에 매일 수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다.

 

경기도 민속문화재 제3호 삼막사 남녀근석. 마애불 바로 앞에 자연석인 남근석과 여근석이 마주보고 있어 민간신앙의 한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   ⓒ 삼막사

남근의 길이는 150㎝, 여근의 높이는 110㎝로 서로 마주보고 있고 속설에는 신라문무왕 17년(677)에 원효대사가 삼막사를 창건하기 전부터 이 바위를 토속신앙의 대상으로 숭배하여 왔다고 한다.

  

남근석을 뒤로하면 마애삼존불(磨崖三尊佛.경기도 유형문화재 제 94호)이라  하여 중후하고 자비스런 인상의 양각화를 만날 수 있다. 매애삼존불은 자연암벽에 감실(龕室)을 만들어 바위에 부조(浮彫)한 치성광삼존불(熾盛光三尊佛)로 조선후기를 대표하는 걸작이다.   

 

조선 후기에 만들어진 삼막사 마애삼존불은 1980년 6월 2일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94호로 지정됐다. 자연 암벽에 감실을 만들고, 거기에 부조한 치성광삼존불(熾盛光三尊佛)로 조선 후기를 대표할 만한 걸작이며, 석굴사원으로 중요한 자료이다.  ⓒ 삼막사

주존(主尊)인 치성광여래의 머리는 소발(素髮)에 반달형 계주가 보이며  얼굴은사각형이지만 눈과 입.볼 등을 율동감 있게 묘사, 미소짓게 함으로써 중후하고 자비스런 인상을 풍긴다.

 

이 절에는 어부와 관련한 이색적인 전설이 하나 있다.

 

옛날 박씨 성을 가진 한 어부가 고기를 잡으려고 바다에 나갔다 풍랑을 만나 배가 난파됐다. 동료는 모두 숨지고 박씨 등 2명이 난파선에 살아 남아 몇날  며칠을  바닷물로목숨을 근근이 연명하고 있었다. 그러던 순간 갑자기 난파선 위에 김이 모락모락 나는 하얀 쌀밥이 수북이  담겨있는 놋그릇이 떨어졌고 이들은 쌀밥으로 허기진 배를 채우며 육지로 돌아올 수  있었다.



같은 시각 삼막사에서는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스님이 부처님께 공양하기 위해 제단에 올려놓은 불기(佛器)가 소리도 없이  사라졌던 것이다. 불공을 드리던 스님은 너무나 죄송해서 다시 공양을 올리며 기도를 계속해야 했다. 이윽고 집에 돌아와 기력을 회복한 박씨는 밥의 출처를 알아보려고 마을 서당에 찾아갔고 훈장으로부터 밥그릇에 삼성산 삼막사란 글씨가 쓰여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결국 그릇의 출처는 난파당한 아들이 살아오기만을 여망 하던 박씨의  어머니가관세음보살을 염송하며 간절히 기도하자 부처님의 법력으로 제단에  있던  밥그릇이난파선으로 이동했던 것이다. 박씨는 어머니와 절을 찾아가 그릇을 간직하게된 사연을 털어놓게 됐고 이후 매년 소금을 절에 공양하게 됐으며 최근까지도 박씨 후손들의 소금 공양은 계속되고있다고 한다.

[자료 - 연합뉴스 강창구] 

 

안양의 삼막사계곡은 도심 속 계곡이라는 콘셉에 집중한 곳으로 과거 안양유원지라 불렸던 지금의 안양예술공원까지 쭉 이어지기 때문에 안양시민들의 사랑을 받는 곳이다. 물이 깊지 않아 가족단위로 찾으면 더 좋다.

 

삼막사계곡은 물이 맑으면서도 얕아서 발을 담그고 있거나 편하게 누워서 계곡을 즐길 수 있다. 특히 산골짜기에 숨어 있는 계곡보다는 교통 편이 좋아서 소소하게 더위를 피하기에 충분하다.

 

석수동16 락천 031-474-3355

안양을 지나는 1번국도에서 삼막사 방향으로 향하는 길은 주말 산행객과 가족 단위 손님을 맞이하는 크고 작은 식당이 많은 편이다. 그중에서도 락천은 손으로 직접 뽑은 수타 짜장을 맛볼 수 있는 곳이다. 새로 지은 건물에 자리잡은 음식점은 현대식 분위기로 깔끔하게 단장했다. 홀은 크게 입식, 좌식 테이블로 구분되며 별실은 따로 없다.

 

락천을 세간에 유명한 맛집으로 알린 것은 다름 아닌 수타 짜장.

미 수타 면발이라는 것이 흔하게 느껴질 정도지만 이곳의 면발은 다른 곳과 차별되는 특별함을 지니고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숙성 과정. 밀가루 반죽을 잘 숙성시킨 후에 통통하게 떠낸 면발은 찰기가 느껴질 정도다. 힘든 과정이기 때문에 면발을 뽑는 작업자의 손은 반죽처럼 두껍다고 한다. 통통한 면발에 자장 양념으로 들어가는 것은 새우, 오징어 등의 해산물. 그냥 해산물이 아니다. 들어가는 양도 엄청나다. 한그릇 6천원에 판매되는 해물자장은 인기가 식을 줄 모른다. 해산물의 열기를 그대로 느끼고 싶다면 간단한 해물자장보다는 쟁반해물자장을 추천한다. 그밖에 별미 메뉴로 해물누룽지탕과 깐쇼새우가 마련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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