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평창군 진부면 446번지방도 - 월정사~상원사지구
월정사는 신라 선덕여왕 12년(643) 자장율사에 의해 창건되었다. 자장율사는 636년에 중국 오대산으로 유학을 가 그곳 문수사에서 기도하던 중에 문수보살(文殊菩薩: 지혜의 좌표가 되는 보살)을 친견한다. 자장율사는 "너희 나라 동북방에는 일만의 내가 상주하고 있으니 그곳에서 다시 나를 친견하라"는 게송을 문수로부터 듣고 신라에 돌아오자마자 오대산 월정사 자리에 임시로 초가를 짓고 머물면서 다시 문수보살을 만나기 고대하며 정진하였다.
월정사(좌), 월정사어귀의 월정대가람/오마이뉴스
월정사는 조계종 제4교구 본사로 60여개의 사찰과 8개의 암자를 거느리고 있으며 개산조 자장율사에서부터 근대의 한암, 탄허 스님에 이르기까지 많은 이름난 선지식들이 머물던 곳이기도 하다.
국보 48호인 팔각9층 석탑 및 보물 139호 월정사석조보살좌상 등 수많은 문화재도 볼거리다. 석가의 사리를 봉안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9층 석탑은 높이가 15.2m로 고려시대의 탑이다. 1999년에 개관한 불교전문박물관인 월정사 성보박물관은 국보인 상원사 중창권선문, 보물인 수타사 월인석보, 팔각9층석탑 사리구 11점, 상원사 문수동자상 복장 유물 23점 등 약 500여 점의 유물들을 소장하고 있다.
아름드리 전나무숲, 천연기념물 열목어가 서식할 정도로 맑고 깨끗한 계곡, 또 이와 어우러진 고색 창연한 사찰 건물. 가을에 오대산 월정사를 찾아가 만날 수 있는 풍경들이다. 특히 월정사 일주문에서 절까지 이어지는 1km 가까운 전나무 숲길이 여행길의 백미다. 길을 따라 온통 몇 아름씩 되는 전나무 거목들이 하늘을 가리고 도열해 있다.
수목군락의 절경을 보여주는 월정사의 울창한 전나무 숲길은 우리나라 제일의 숲길이자 자연의 산림지대이다. 평균수령이 200년 넘은 나무들의 키는 보통 25m를 넘는다. 수령이 400∼600년 된 고목도 많다.
원래 월정사 진입로였으나 지금은 아름다운 숲길을 보존하기 위하여 월정사 진입로를 우회시켰다. 대신 800m 정도의 이 전나무 숲길에는 자연관찰로가 만들어져 있다. 시원스레 쭉쭉 뻗은 전나무는 늦여름에 짙은 그늘을 드리우지만 묘하게도 햇볕이 잘 든다.
또 숲속은 한여름에도 외부보다 기온이 5℃ 정도 낮아 시원하다. 전나무 아래로는 버섯과 이끼, 고사리, 덩굴식물, 풀꽃이 사이좋게 자라고 있다. 다람쥐와 딱따구리를 만나는 것은 사람과 어깨를 부딪치는 일만큼 흔하다.
전나무숲과 더불어 울긋불긋 단풍이 들기 시작한 오대산의 활엽수림지대도 보고 싶다면 상원사까지 올라가보자. 월정사에서 상원사까지는 8.8km. 가는 길가로 청정 계곡이 있다. 길은 비포장되어 있고, 승용차로 다녀올 수도 있지만 차로 휙 지나치기엔 아까운 길이다.
백설이 어지럽게 흩날리는 겨울 오대산 월정사 팔각구층석탑(국보 제48호).
오대산설경은 월정사 일주문에서부터 장관을 이룬다. 일주문에 들어서자마자 멋진 전나무 숲길이 시작된다. 사시사철 언제 찾아가도 머릿속까지 맑게 해주는 이 숲길은 특히 눈 내린 날의 경치가 환상적이다.
하늘을 찌를 듯 우뚝한 전나무 가지는 눈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 축 늘어져 있고, 바람이 가지를 흔들 때마다 안개 같은 눈보라가 숲의 정적을 깨우곤 한다. 눈길을 헤치고 월정사 경내에 들어서면 눈에 묻혀 인적조차 드문 산사가 시야를 가득 채운다.
월정사로 가는 길은 또한 오대천을 따라서 맑고 아름다운 계곡이 이어지는 길이기도 하다. 호명골, 중대골, 서대골 등의 계곡물이 만나 흐르는 오대천은 동대천과 합류하면서 정선을 지나 남한강으로 굽이굽이 흘러든다. 월정사 앞의 금강연은 오대천 중에서도 이름난 명소다. 수온이 낮고 깨끗한 곳에서만 산다는 열목어와 자취를 찾아보기 힘든 수달과 도마뱀도 이 곳의 주인이다.
월정사~상원사계곡
월정사에서 계곡을 끼고 상원사로 이어지는 446번 지방도로(양양까지 이어지는 도로)도 겨울 운치가 그만이다. 비포장 도로인데다 입장료를 받는 탓에 오가는 차량이 적어 한가롭고, 11월 중순경이면 상원사 이후의 길은 아예 통제가 되어 깊은 산사의 숙연한 분위기가 고스란히 묻어난다. 호젓한 길이 좋아 월정사에서 상원사까지 걸어들어가면 딱 좋겠지만 걷기에는 다소 먼 편. 자전거를 탈 수 있다면 차에 자전거를 싣고 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월정사에서 상원사로 이어지는 계곡/오마이뉴스
계곡과 도로 사이에 나무가 유난히 빽빽하게 들어 차 있는 것도 이색적이다. 하늘을 향해 쭉쭉 뻗은 나무와 가지가 사방으로 퍼져 있는 것이 사람의 손길이 전혀 닿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원시림을 보는 듯하다. 나뭇잎이 다 떨어져 앙상한 가지만 남아 있음에도 아래로 펼쳐진 계곡이 제대로 보이지 않을 정도로 촘촘하게 들어차 있는 겨울나무들과 살얼음 밑으로 흐르는 투명하고 맑은 계곡물은 보기만 해도 시원하고 가슴을 확 트이게 한다. 여기에 눈이라도 내리면 가지마다 탐스러운 눈꽃이 피어나 또한 감탄사가 절로 흘러나오게 할 것이다.
중국의 오대산에서 수도하던 자장 율사는 자신이 중국에서 겪었던 문수보살 신앙을 이 땅에도 그대로 재현하고 싶어했다. 이리저리 적당한 터를 물색하던 자장은 강원도 오대산을 적지로 파악한다.
오대산 봉우리들을 방위에 따라 동대 만월산, 서대 장령산, 남대 기린산, 북대 상왕산, 중대 풍로산이라 이름 붙인다. 그러고 나서 대마다 암자 한 채씩 지었다고 한다. 오늘날 그 자리엔 동대 관음암, 서대 수정암, 남대 지장암, 북대 미륵암, 중대 사자암 등 다섯 개의 암자가 자리 잡고 있다.
지장암은 오대성지 중 지장성지로 일만의 지장보살님들이 항상 상주하신다는 곳이다. 지장암은 월정사에서 그리 멀지 않다. 월정사를 나와 상원사 쪽을 향해 조금 가면 돌다리가 나온다. 다리를 건너자, 곧장 지장암으로 가는 길이 기다리고 있다. 길가 옆으로 도열한 전나무와 낙엽송이 나그네를 맞이하고 있다. 그리 넓지도 않고, 좁지도 않은 알맞은 길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길이 너무 짧고 일직선이다.
지장암은 오대산에서 유일한 비구니의 암자이다. 비구니 암자는 어디나 정갈하지만 이곳은 그동안 내가 다녀본 어느 암자보다 정갈한 것 같다.
방한암 스님께서는 1925년, 오대산 상원사에 들어오신 후로 입적할 때까지 27년간 산문을 나가지 않았다고 한다. 1930년경, 률노, 해노라는 두 비구니 스님이 한암 스님을 찾아왔다. 그리고 나선 이곳 지장암에 머물면서 결제와 해제도 없이 용맹정진했다고 한다. 그렇게 해서 이곳에 우리나라 최초의 비구니 선방이 생겨난 것이다. 그 뒤 지장암은 성진 스님과 혜종 스님, 정안 스님으로 이어지는 3대를 거치면서 오늘날의 모습을 갖추게 된 것이다.
기둥에 걸린 한글 주련이 인상적인 지장전
절의 중심 전각이라 할 수 있는 지장전의 돌계단은 전통 석조건물들을 보수하고 복원하는 솜씨가 뛰어나 석공으로서 명장 칭호를 받은 임동조씨가 세운 계단이다. 지장전은 새로 짓고 있는 중이다. 아마도 1975년에 지은 건물이 낡고 비좁았던 모양이다.
지장보살님은 한 사람의 중생이라도 더 삶의 고통에서 벗어나게 하자는 원력을 세우시고, 자신의 성불마저 미루신 분이다. 지옥에서 고통받는 중생을 구제한다는 의미를 가진다. 그래서 지장보살은 영가 천도 등 민간신앙의 가장 중요한 부분으로 자리 잡았다. 기둥에는 한글 주련이 걸려 있다. 만날 한자로 된 주련만 보다가 한글 주련을 보니 색다르다. 알아보지도 못할 한자를 적어 놓는 것보다 얼마나 좋은가.
지장전 왼쪽엔 'ㄴ' 자형 전각인 기린 선원이 있다. 우리나라 최초로 개설된 비구니 선방이다. 비구니 선원이 자리를 잡는 데는 근세의 비구니계를 대표하는 인홍 스님의 역할이 컸다.
원허당 인홍 스님(1908~1997)은 근대의 선지식 만공 선사께 법을 받고 나서 비구니 선풍을 크게 진작시킨 분이다. 그는 1941년, 이곳 지장암에서 출가했다. 스님은 1954년, 종회의원으로서 대처승을 몰아내는 종단 정화불사에 적극 참여하기도 했다. 1997년 4월, 입적하실 때까지 용맹정진을 쉬지 않은 분으로 이름나 있다. 오늘날의 기린선원의 모습을 만든 것은 혜종 스님이다. 스님은 삼 년여에 걸친 선원 불사를 이루고 1995년 입적하셨다. 지금은 결제 때면 40여 명의 비구니들이 참선한다고 한다.
스님이 된 비단장수 이야기가 전해지는 만월산 동대 관음암
월정사에서 상원사 가는 길을 따라 조금 올라가니, 오른쪽에 동대 관음암 1.5km라 쓰인 하얀 돌이 서 있다. 얼마나 걸었을까 높다랗게 쌓은 축대 위에 고고한 자태로 앉아 있다. 오대산의 동쪽에 있는 만월산 관음암은 통일신라 초기에 문을 연 유서깊은 암자다.
<삼국유사> 권 3 '대산오만진신'과 '명주 오대산 보질도태자 전기'를 보면 신라의 정신 태자(보질도), 효명 두 태자 형제가 이곳에서 1만의 관세음보살 진신을 친견했다는 내용이 있다. 월정사라는 이름도 관음암의 뒷산을 만월산이라 부르는 데서 유래한 것이라고 한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달 뜨는 경치는 얼마나 교교할까. 원래의 관음암은 6·25때 불탔는데 1971년에 새로 지었다고 한다. 1996년, 월면 스님이 오래된 요사채를 헐고 새로 지음으로써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된 것이다.
정신태자는 아우인 효명태자와 함께 이 오대산에 들어와 초가를 짓고 수도했다. 아우인 효명태자(성덕왕, 서기 702~737년까지 재위)는 산에서 내려가고, 정신태자만이 수행을 계속했다. 갖가지 이적을 보일 만큼 경지에 이른 그는 임종을 앞두고 유언한다. "동대에 관음방을 두고 암자 이름을 원통사(圓通社)라 칭하라"고.
삼성각으로 가려고 법당 왼쪽으로 난 계단을 오른다. 삼성각의 문은 닫혀 있다. 뒤돌아서 법당의 뒷모습을 바라본다. 지붕의 선은 왜 이리 고운가. 어둠에 젖은 장독대. 어린 시절엔 이런 시각에 술래잡기를 하곤 했지.
포장도로가 끝나는 지점에서 계곡을 만난다. 계곡 왼쪽엔 레일이 있는데, 산 위로 뻗쳐 오르고 있다. 아마도 중대 사자암에서 일용하는 물자를 나르는데 쓰나 보다. 계곡을 건너자, 본격적인 산길이 시작된다. 길은 좁을수록 제맛이 난다. 길가에 수북이 쌓인 낙엽들이 흠뻑 비에 젖고 있다.
비로봉 등산로를 따라 20분쯤 올라갔을까. 중대 사자암이 길 좌측에 모습을 드러낸다. 비탈진 산자락을 따라 5개의 축대를 쌓고 나서 그 위에다 집을 앉힌 계단식 건물이다. 4층까지는 요사채인 향각이다. 3층까지는 대중을 위한 공양간과 요사채이며, 4층은 스님들의 요사채라고 한다.
모르긴 해도 이렇게 철저하게 계단식으로 지어진 암자는 우리나라에서 이곳이 유일할 것이다. 입지가 암자의 형태를 결정지은 것이다. 자연을 건드리지 않고 배려한 듯한 건축이 돋보인다. 듣자니, 8년이나 걸린 불사라고 한다.
계단식 건물의 꼭대기인 5층엔 주불전인 비로전을 중심으로 승방인 좌향각, 종무소 격인 우향각이 자리하고 있다. 비로전 앞 월대엔 사자 2마리가 지키고 섰다. 사자는 문수보살이 타고 다닌다는 짐승이다. 이곳이 문수보살의 상주처라는 것을 상징하려는 듯하다. 문득 상징이 너무 자주 등장하면 내용이 유치해질 수도 있다는 생각이 스친다.
비로전 안엔 주불인 비로자나불을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이 좌우에서 모시고 있다. 1000분의 문수보살을 모신 목탱화가 화려하기 짝이 없다. 저 위, 부처님의 정골 사리를 모셨다는 적멸보궁이 무색할 지경이다. 부처님의 사리보다 더 가치 있는 예불의 대상이 있을 수 있을까. 한순간 마음속에서 의문부호가 떠올랐다가 사라진다. 삼성각을 가려고 승방인 좌향각을 스쳐 좌측으로 난 길을 내려간다. 좌측에 서서 바라보니, 향각과 그 지붕의 선들이 더욱 멋스럽게 느껴진다.
[자료 - 월정사 - 여성동아2004년 신석교 프리랜서 / 중대사자암 - 오마이뉴스2007. 10 안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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