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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방곡곡/전남 섬

진도 18번국도 사천리 사명대사 첨찰산 쌍계사 운림산방 소치기념관 빗기내운림촌

by 구석구석 2007. 11.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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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첨찰산

 

첨찰산 아래에는 아름다운 유적지가 2곳이 있다. 하나는 운림산방이요, 또 다른 하나는 쌍계사이다. 절경(絶景)이라기보다 은은한 아름다움으로서 세인들을 매혹한다. 

 

진도는 참 넓다. 진도대교를 건너는 순간 이곳이 섬이라는 생각을 잊게 한다. 차로 한참을 달려도 쉬 둘러보지 못할 정도다. 진도읍에서 바다를 보러 나가려고 해도 30분은 족히 달려야 한다. 농업이 주된 곳이라 섬인데도 그 흔한 횟집조차 쉽게 찾아볼 수 없다. 섬들에 둘러싸인 아름다운 바다풍경이 한없이 이어진다. 
 
문화예술의 고장 진도에서 문화예술을 찾아보기 이전에 먼저 진도를 느껴보자. 문화예술이 꽃피게 된 연유를 알아야 진도의 아름다움에 녹아들게 된다. 제법 역사를 간직한 아름다운 절인데도 운림산방의 위세에 눌려서인지 잘 알려지지 않은 천년의 역사를 지닌 고찰 첨찰산 쌍계사에 가보자. 운림산방 가는 길 초입에 있는 사찰이다.

 

사명대사가 도를 닦은 유일한 명산 '첨찰산'

쌍계사 들어오는 길목에는 오랑국(삼별초난때 진도에 세워졌던 국가의 명칭)을 세웠던 왕온의 무덤과 왕온이 탔던 말무덤이 있다. 진도의 명산인 첨찰산은 옛날 유일한 통신수단이였던 산봉에 100여 평의 봉화대가 있어 일명 봉화산이라고도 부른다.

 

이 봉화산은 조선시대 유명한 사명대사가 도를 닦은 유일한 명산이다. 또한 1592년 임진왜란 당시 서산대사와 사명대사가 승병을 일으켜 왜병과 싸운 곳이다. 유정은 묘향산 금강산, 팔공산, 청량산. 태백산 등 명산을 찾아다니며 고행과 수행을 하다가 진도 첨찰산 상봉 동암에 머물렀다.

 

 

첨찰산의 길

 

당시 사명대사가 첨찰산에 온다는 소문을 전해 듣고 사람들이 도를 배우러 사방에서 구름같이 첨찰산에 모여 들었다. 모여든 제자들에게 사명대사는 말했다. “어제 피었던 꽃이 오늘은 시들어지고 가지가지 허망할 뿐이다. 꼭 이와 같은 덧없는 하루살이와 같은 것이 인생이다. 너희들도 아까운 세월만 헛되이 보내지 말고 인간 진리를 깨달아라. 석가여래는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각자 사람의 배꼽 속에 있는 것인데, 왜 다른 데서만 구하려고 애를 쓰며 세월만 보낸단 말이냐.”

 

사명대사는 정원에 꽃잎 떨어지는 것을 비유하면서 불교의 최고진리를 설명하였다 한다. 이리하여 제자들은 크게 깨닫고 모두 흩어지고 유정만이 좌선에 들어가 무아의 경지에 올라 도를 통하였다 전해진다.

 

 

쌍계사 뒤로 보이는 첨찰산(좌), 우화루

 

절 양쪽으로 계곡이 흐르는 절 쌍계사

진도에서 가장 오래된 절 쌍계사는 의신면 사천리 해발 485m 첨찰산의 끝자락에 자리하고 있다.

쌍계사 옆을 흐르는 개천 양쪽을 뒤덮고 있는 상록수림에는 동백나무, 후박나무, 모새나무, 메밀잣밤나무, 붉가시나무 등이 뒤섞여 아름다운 숲을 이루고 있다. 고즈넉하고 아담한 고찰의 동백나무는 10월말부터 붉은 동백꽃이 피어난다.

 

 

상록수림과 대웅전

 

쌍계사 뒤편으로 올라가면 첨찰산으로 올라가는 등산로가 있다. 정상까지 2시간여가 소요되는 등산로는 수풀이 우거져 있어 하늘이 보이지 않을 정도다.

그윽한 국화향을 맡으며 해탈문을 들어섰다. 오른편에는 4기의 기념비가 있다.  

 

 

용왕당과 대웅전의 석가모니불

 

석가모니를 주존불로 모시는 쌍계사의 대웅전은 신라 문성왕 도선국사에 의해 세워진 것으로 전해진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 형태를 갖추고 있다. 빗살무늬의 중앙문과 띠살무늬 양측면의 문은 고풍스런 느낌이다.

 

오른편에 우화루, 왼편에는 종각이 있다. 대웅전 앞에는 노란 국화꽃이 만발했다. 대웅전 좌우로 원통전과 시왕전이 있다. 뒤편 용왕당에는 단풍나무가 곱게 물들어간다. 경내에는 동백꽃이 활짝 피었다. 기와를 쌓아둔 담장 주변에는 뚝뚝 떨어진 붉은 꽃잎 수북하고 건너 대숲에는 댓바람이 인다.

 

가는 길  진도대교-18번국도 진도읍 -진도읍 우회도로 두 번째 사거리에서 의신면 방향 좌회전 -쌍계사

 자료 - 오마이뉴스2007  정찬현

 

진도8경인 운림산방

운림산방이나 쌍계사는 첨찰산(尖察山) 아래에 있다는 거 외에도 또 다른 공통점이 있다. 건물의 배치가 자유롭고 넉넉하다는 게 바로 그것이다. 운림산방은 양쪽에 내가 흐르는 곳에 터를 잡아 풍수지리를 생각하였고, 거기에 연못이 있어서 안개가 피어오르는 모습이 아름다워, 연무가 운림(雲林)을 이룬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운림산방(雲林山房)은 현재 전라남도 기념물 제51호로 지정되었으며, 소치 허련(小痴 許鍊 : 1808 ~ 1893)선생이 만년에 기거하시던 곳이라 한다.

 

 
초옥의 돌길과 운림산방 절경인 운림지

 

소치선생은 해남에서 초의선사에게 학문과 인격을 수양하고 녹우당을 오가며 윤공재가의 3대에 이르는 명화첩을 통해 그림에 대한 다양한 체법과 화법을 터득하였다 한다. 그 후 초의선사의 천거로 추사 김정희선생의 문화에 입문하여 본격적인 서화공부를 하였고, 나이 42세에 이르러 헌종을 알현하여 왕 앞에서 그림을 그리게 되었다.


 

소치라는 아호는 스승이 내려준 것으로, 중국의 대화가인 대치 황공망과 비교한 것이라 한다. “압록강 동쪽에는 소치를 따를 자가 없다”라 극찬하였다고 하는데, 시, 서, 화에 뛰어난 삼절이라는 미칭까지 얻은 소치선생은 49세에 고향으로 돌아와 첨찰산 자락에 화실을 지어 소허암, 또는 운림각이라 하였는데, 이게 오늘의 운림산방이라 한다.

소치선생의 남종화의 대가로서, 조선말기 화단에 남종화풍을 토착화 시키는 데 결정적인 공헌을 하였다. 그의 화풍은 후손에게 계승되어 호남화단에 영향을 미치는데, 주로 산수화를 많이 그렸다 한다. 마르고 갈라진 듯한 필력을 구사한 점이 특징이다. 헌종의 총애를 받아 임금의 벼루와 먹을 찍어 그림을 그렸으며, 왕실 소장의 고서화를 평하기도 하였다고 한다.

운림산방의 모습은 옛날에 비해서 많이 변했다고 한다. 그래도 이렇게라도 남아 남종화의 성지로서, 그리고 그 아름다운 모습을 지키고 있는 것이 또 어딜까? 이곳에는 소치화실, 소치거처, 소치영정실, 소치기념관, 그리고 진도역사관이 있다고 한다.

 

  
 운림지의 백일홍은 소치선생이 직접심은것이라고 한다/오마이뉴스

 

 운림산방에 들어서서 가장 눈에 띄는 곳은 가운데에 있는 연못이다. 이 연못은 영화 <스캔들>을 찍었던 장소로서도 유명하다. 연못 근처에는 그 배경 사진을 걸어 놓았다.

 

 
소치화실/오마이뉴스

 

연못 근처에는 소치화실이 있으며, 탑이나 괴석 등이 자리를 잡아 자그마하면서도 아름다운 정원을 만들고 있다. 소치화실 앞에 있는 3층 석탑은 기단부와 상대갑석과 하대갑석 사이가 길며 이를 탱주 4개로 받치고 있다. 그리고 그 속에는 스님이 좌정하여 그윽한 미소를 지으며 연못을 바라보고 있다. 곳곳에 괴석(怪石)이 있으며, 한 쪽에는 해태상으로 보이는 작은 석상도 있다. 주름진 이마에 뾰족한 이를 드러내며 헤벌레하고 있는데, 그 모습이 무섭다 못해 익살스럽다.

소치화실에는 운림산방이라는 편액이 걸려있다. 특별할 게 없어 보이는 작은 기와집이었으나 이곳에 앉아 경관을 감상하며 붓을 놀리었던 소치선생의 모습을 떠올려 본다.

 

 

 정원의 일지매/오마이뉴스 송영대

운림산방에는 소치선생이 손수 심어서 가꾼 나무가 세 그루 있는데, 일지매와 백일홍, 그리고 자목련이 그것이라고 한다. 일지매는 해남 대흥사 일지암의 초의선사께서 소치선생이 운림산방을 열자 선물한 나무로 알려진다.

임삼현이 소치선생의 문하에 입문하여 수학한 뒤 소치선생이 타계한 후에도 26년간 운림산방을 관리하던 중 산방이 팔리고 당시 의신주재소 엔또 소장이 나무를 일본으로 옮기려고 하였으나 임산현의 아들인 임순재가 진도읍 동외리로 옮겨 심어 가꾸었다 한다.(제2대 나무) 제2대 나무가 살아있을 때 뿌리 나누기로 기른 자목 한 그루를 임순재의 아들인 임태영이 원래 있었던 이곳에 옮겼다고 하며, 봄이면 고아한 꽃을 피우고 맑은 향기를 퍼뜨리고 있다 한다.

 

살림집

소치거처는 작은 초가이다. 주위에 돌담이 싸여있으나 낮지 않으며, 돌담 위에는 세인들이 작은 돌탑을 쌓아놓은 듯, 돌들이 옹기종기 모여 살포시 올라가 있다.

그 뒤편엔 소치영정실이 있다. 소치영정실은 운림사(雲林祠)라는 편액이 걸려 있는 맞배지붕에 다포식의 구조를 하고 있었는데, 공포가 일반적인 사찰의 다포처럼 화려하기보다도 절제되고 화려한 단청을 하고 있는게 특징이었다. 문이 열려 있어서 소치의 영정을 바로 볼 수 있는데, 의자에 앉아 지긋한 눈으로 무엇인가를 바라보는 모습이다.

 

 사천사/오마이뉴스 송영대

운림사 옆에는 사천사(斜川祠)가 있다. 이 사천사는 양천허씨 진도중파의 문중제각으로서 매년 한식날 소치선생의 6대조 허순(許珣)의 가문이 춘향대제를 봉행하는 곳이다. 여러 위패가 모셔져 있는데, 그런고로 일반인의 출입을 제한하고 있다.

 

 
소치기념관/오마이뉴스

 

소치기념관은 소치선생과 그의 자손들의 그림을 전시하고 있다. 소치 허련선생의 자손들 중에서는 유명한 화가가 많은데, 미산 허형선생, 임인 허림선생, 남농 허건선생, 임전 허문선생 등으로, 이 중에서 남농선생의 경우 목포에 남농기념관이 있으며, 이들의 그림이 목포 문예역사관, 그 밖의 여러 미술관에도 전시되어 있다.


운림산방은 아득하면서도 편안한 느낌을 준다. 사실 소치선생은 이 운림산방에 오래 있지 않고 전국을 떠돌아다녔다고 한다. 그의 인물됨이 방랑을 즐겼고, 예술가의 혼이 있었기에 그러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게 이곳의 아름다움을 부정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아름다움 속에서 아름다움을 찾아다니며 붓으로 세상을 살았던 소치. 그의 혼이 남아있는 곳은 다름 아닌 이곳일는지도 모른다.   

자료 - 오마이뉴스 2007 송영대 조찬현

 

사천리 빗기내운림촌 http://unlim.go2vil.org

운영위원장 061-543-5675, 011-9602-5675 /신용카드불가

 

첨찰산 아래 조성된 마을의 양옆을 냇가가 빗겨간다고 해서 '빗기내(斜川)'로 불리우게 되었다. 사군자 및 동백그리기체험이 가능하다.

 

* 체험 프로그램
- 축제마당 : 소치예술제,운림녹차축제,운림홍주축제,운림표고축제,운림구기자축제,쌍계사국화축제,운림촌 대보름 당산제
- 동백골마당 : 해맞이행사,다향체험,국화따기,동백숲걷기,명상체험,아리랑계곡오르기,답교놀이
- 운림촌마당 : 사군자그리기,산수화그리기,글씨쓰기,전통혼례
- 서당골마당 : 서당체험,숯가마체험,가마니만들기,옷감만들기,형설지공체험
- 벽수골마당 : 캠프파이어,버섯재배체험,옷감만들기,대동두레놀이,진도아리랑부르기
※ 체험비는 참가인원 및 프로그램 선택에 따라 다르니 전화문의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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