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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 안보/해외 파병

러시아-정보/KGB FSB 알파 Vympel

by 구석구석 2011. 10.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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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릭스 제르진스키. 옛 소련의 비밀경찰로 악명이 높았던 국가보안위원회(KGB·Komitet Gosudarstvennoy Bezopasnosti)를 창설한 인물이다. 폴란드 출신으로 볼셰비키혁명에 참여했던 제르진스키는 1917년 12월 혁명에 반대하는 세력을 제거하기 위해 체카(Cheka·반혁명, 사보타주 단속을 위한 비상위원회)를 만들었다.

 

제르진스키가 체카를 처음 출범시켰을 때 요원은 24명이었고 자체 건물도 없었다. 제르진스키는 모스크바 루비얀카 거리의 한 조그만 사무실을 본부로 삼고 블라디미르 레닌의 지시에 따라 반혁명분자를 색출, 제거하는 임무를 수행했다. 이 체카의 건물은 이후 공포의 상징이 됐다. 이 건물에 들어간 사람은 결코 살아 나오지 못했다.  

제르진스키는 1926년 병사했지만 체카의 후신인 KGB 본부 건물 앞 광장은 그의 이름으로 불리게 됐고, 그의 거대한 동상도 세워졌다. 이 동상을 보면서 공포의 전율을 느껴야만 했던 모스크바 시민은 1991년 8월 보수파의 쿠데타가 실패로 돌아가자 가장 먼저 이곳으로 몰려가 그의 동상을 끌어내린 후 박살냈다.

 

소비에트연방(소련)이 건국된 이후 체카는 1923년 오게페우(OGPU·국가정치부)로 바뀌었다. OGPU는 모든 경찰 기능을 독점했을 뿐만 아니라 자체 군대 및 정보원과 정보제공자로 이루어진 방대한 조직을 갖추었다. 이후 조직 개편에 따라 OGPU는 1934년 엔카베데(NKVE·내무인민위원회)로 흡수되었으며, 스탈린의 숙청작업을 수행했다. KGB라는 이름으로 불리기 시작한 것은 1954년 4월 27일부터다. KGB는 이때부터 명실공히 소련을 상징하는 기구가 됐다.

 

당시 KGB는 10개 부서와 국경경비대를 관장하고, 첩보·방첩 활동을 비롯해 고위간부 및 중요 시설에 대한 경호, 군대 내의 보안활동 감시와 통제, 통신과 암호 해독, 경비 등 국가 안보와 관련된 모든 분야를 취급했다. 당시 정식요원만 70만명, 연간 예산 49억루블(22조700억원)이었던 KGB는 막강한 권력을 행사함으로써 ‘국가 내의 국가’라는 말을 듣기도 했다.

 

1991년 당시 쿠데타는 사실상 KGB가 일으킨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블라디미르 크류츠코프 의장을 비롯한 KGB 주요 간부와 골수 보수파는 공산당의 권력을 약화시키고 민주화를 추진했던 미하일 고르바초프 대통령을 축출하고 다시 독재체제를 복권하려 했으나 국민의 강력한 저항에 부딪혀 3일 만에 두 손을 들어야 했다.

 

이후 소련은 해체되고 러시아를 비롯한 15개 공화국으로 독립했으며, KGB도 몰락의 길을 걸어야 했다. 고르바초프 대통령은 KGB법의 효력을 정지시키고, 같은 해 10월 KGB를 해체했다. KGB는 SVR(연방대외정보청), FSB(연방보안청), EPS(연방국경경비청), FAPSI(연방통신정보국) 등 4개 부처로 분리됐다. 하지만 체첸 사태 등으로 정보 강화의 필요성이 제기되자 1995년 당시 보리스 옐친 러시아 대통령은 다시 현재의 FSB(연방보안국)라는 이름으로 조직을 바꾸면서 기능을 강화했다. 이어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2003년 3월 국경수비대(EPS)와 도·감청 업무를 담당하는 FAPSI를 FSB로 통합시켰다. 이에 따라 러시아의 정보기구는 국내를 담당하는 FSB와 해외담당의 SVR(연방대외정보국)로 이원화됐다.

 

[기사내용]이라크 주재 러시아 대사관 직원들을 납치 살해한 테러리스트를 척결하는데 러시아 비밀특수부대인 자슬론이 동원될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자슬론은 러시아 해외정보국 SVR 소속으로, 연방보안국 FSB 소속인 알파나 빔펠과 달리 그동안 완전히 베일에 가려져왔으며 대테러 정보취득과 타격을 주업무로 하는 최정예 부대로 알려져 있습니다. KBS박정호 기자

 

대테러 훈련중인 러시아 FSB (연방보안국) 특수부대 Alpha Group

옛 소련 체제의 모든 범죄행위를 ‘원죄’처럼 뒤집어쓴 채 그동안 외부로 모습이 드러나는 것조차 꺼리던 KGB가 화려하게 부활했다. 물론 현재는 FSB(Federalinaya Sluzhba Bezopasnosti)라는 새로운 얼굴이다. 이른바 ‘네오 KGB’라고 말할 수 있다. 옛 KGB의 부활은 푸틴 대통령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푸틴은 1960년대와 1970년대 KGB에 발탁된 엘리트 요원 중 한 명이었다. 1967년부터 1982년까지 KGB 의장을 역임한 유리 안드로포프 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은 당시 소련을 이끌어갈 미래의 엘리트를 대거 KGB로 끌어들였다. KGB사상 가장 오랜 기간 의장을 역임한 안드로포프는 KGB만이 소련체제를 이끌어갈 수 있는 기구라고 생각했다. 때문에 그는 유능하고 똑똑한 젊은 청년을 발탁, 국가의 기둥으로 만든다는 프로젝트를 비밀리에 추진했다. 이들은 최고 교육기관에서 외국어 등 특수교육을 받고 새로운 엘리트로서 KGB의 중추를 책임질 임무를 부여 받고 중견 간부로 일해왔다.

 

푸틴도 KGB 중령으로 옛 동독의 드레스덴에서 근무했다. 하지만 이들 엘리트 그룹은 주요 부서의 책임자도 되기 전에 실패한 쿠데타로 가장 큰 피해를 당해야 했다. KGB가 해체됐을 무렵, 일부는 민간 보안회사에 근무하기도 했다. 또 과두재벌이라 불리는 ‘올리가르히(Oligarchy)’를 경호하기도 했다. 새로 개편된 FSB에 남아있던 이들도 한직으로 밀려나 있었다. 이들은 가슴속에 몰락한 소련과 자신의 추락한 운명에 대한 한을 품고 있었다.


KGB에서 옷을 벗고 정치에 입문한 푸틴은 소브차크 당시 상트페테르부르크 시장의 행정담당 부시장으로 활약했다. 소브차크 시장은 뛰어난 능력을 보인 푸틴을 옐친 대통령에게 천거했다. 모스크바에 진출한 푸틴은 크렘린궁 대통령부 자산관리차장으로 일하면서 1996년 대선에서 옐친을 대통령으로 재선시키는 데 일조했다.

 

옐친은 푸틴의 공로를 인정해 1997년 3월, 크렘린궁 수석회계감사관으로 승진시킨 후 다시 1개월 만에 비서실 차장으로 임명했다. 당시 체첸사태로 골치를 앓고 있던 옐친은 그로부터 8개월 후 1998년 푸틴을 FSB 국장으로 발탁했다. 이때부터 푸틴의 옛 KGB 동료들이 권력의 중심부로 진출하면서 ‘이너서클’을 조직하기 시작했다. 푸틴이 FSB 국장으로 취임한 이후 1999년 일련의 폭탄테러가 발생했지만 FSB는 이를 무난하게 처리했다. 러시아 일부 정치평론가는 이런 테러사건이 푸틴을 권좌에 앉히기 위한 FSB의 작품이라는 음모론을 제기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옐친은 자신의 후계자로 푸틴을 지명했고, 푸틴은 2000년 3월 대선에서 승리했다. 푸틴은 강력한 러시아 건설을 기치로 내걸고 정보기관의 역할 강화를 더욱 세차게 밀어붙였다. 특히 푸틴은 대통령의 권력 강화를 위해 올리가르히, 각 지역 주지사, 언론, 의회, 야당과 시민단체를 약화시키고 권력을 공고히 하는 전략을 추진했으며 이를 앞장서서 수행한 인물들은 옛 KGB 출신이다.

 

러시아 언론은 이들을 실로비키(siloviki·제복을 입은 사람들)라고 부른다. 사회학자인 올가 크리슈타놉스카야 러시아 과학아카데미 엘리트연구소 연구원은 “실로비키는 한마디로 말해 힘센 사람을 의미한다”면서 “이들은 옛 KGB와 현 FSB 출신뿐만 아니라 보안기구와 군부 출신으로 구성됐다”고 밝혔다. 그는 현재 정부 고위관료 중 25%는 실로비키이며, 이들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인물까지 포함한다면 75%가 범(汎) 실로비키라고 말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KGB와 FSB 요원 출신 6000여명이 현재 크렘린, 의회, 국영기업, 정부 부처의 요직에 포진하고 있으며 이들이 푸틴 대통령의 손과 발이 되고 있다. 현재 러시아 정·관계의 요직 인사 1016 명 중 78%가 옛 KGB, 현 FSB 출신이다. 세르게이 이바노프 제1 부총리, 블라디미르 야쿠닌 철도공사 사장, 이고리 세친 대통령부 부장관, 빅토르 이바노프 대통령부 부장관, 니콜라이 파트루셰프 FSB 국장, 세르게이 스테파신 감사원장, 알렉산드르 주코프 부총리, 레오니드 레이만 정통부 장관, 블라디미르 우스티노프 검찰총장, 블라디슬라프 슈코프 대통령 행정실 부실장, 예브게니 프리마코프 상공회의소장, 아나톨리 사포노프 내무부 제1차관보, 발레리 골루볘프 가즈프롬 부회장 등이 대표적 FSB 출신 인사다.

 

이 중에서 가장 핵심적 인물은 내년 대선에서 유력한 대권주자로 부상하고 있는 인물로 안보 및 군수분야를 총괄하고 있는 세르게이 이바노프 제1부총리(54)다. 그는 푸틴 대통령과 30여년간 막역한 사이를 유지하고 있다. 두 사람은 모두 상트페테르부르크 태생인 데다 같은 학교 출신에 나이도 동갑이다. 이바노프는 1976년 KGB에서 근무하던 시절 푸틴을 처음 만났고, 푸틴이 FSB 국장으로 재직 당시 핵심 참모로 근무했다.

 

이바노프 제1부총리가 대중에게 잘 알려진 인물이라면,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권력을 좌지우지하는 막후 실세도 있다. 크렘린궁에서 푸틴 대통령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하고 있는 대통령부의 세친 부장관과 이바노프 부장관이다. 러시아 국영석유회사인 로즈네프트의 회장직도 겸임하고 있는 세친 부장관은 푸틴 대통령에게 올라오는 모든 문서를 먼저 검토하고, 경제문제를 총괄하고 있다. 제 1부총리와 성이 같은 이바노프 부장관은 크렘린궁과 정부 요직의 인사를 관할하고 있는데, 군수산업인 알마즈-안데이와 국영항공사인 아에로플로트의 이사장도 겸직하고 있다.

 

이들 3명과 함께 파트루셰프 FSB 국장도 실세 중 실세로 불린다. FSB 국장은 장관급이면서 육군대장의 계급을 겸하는 강력한 권한이 부여되었다. 영장 없이 각종 단체나 기업의 조사는 물론 해외 정보활동을 위한 간첩침투, 기업이나 단체의 위장설립, 자체 특수부대를 운영하고 있다. 법적으로 다른 기관의 감독을 받지 않는 특권도 있다.

 

FSB의 예산과 인원 규모는 비밀이지만, 지난해 예산이 40%나 증액됐으며 정규 요원은 대략 50만명으로 추정된다. KGB 간부 출신인 알렉세이 콘다우로프 의원은 “푸틴 대통령을 제외하고 현재 FSB에 ‘니예트(아니오)’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FSB의 막강한 권력을 지적했다. 특히 권력을 얻는 데 만족했던 KGB와는 달리 FSB는 권력과 부를 함께 누리고 있다. FSB의 예비역 장교들은 국영기업과 대기업에 파견돼 거액의 연봉을 받으며 회사의 의사결정이 ‘국익’과 일치하는지 감시한다. FSB는 어떤 의미에서 볼 때 국가 그 자체가 된 셈이다. FSB는 심지어 자신들의 후계자도 양성하고 있다. FSB가 운영하는 아카데미에서는 대부분 요원의 자녀들이 공부하고 있다. 이들은 이곳에서 교유하면서 결혼 등을 통해 두터운 인맥을 쌓는다.

 

그렇다면 FSB를 중심으로 하는 실로비키가 추구하는 목표는 무엇일까. 이들은 과거 KGB처럼 공산주의를 체제의 우선으로 보지 않는다. 시장경제의 수혜자인 이들은 기본적으로 자본주의에 반대하지 않는다. 이들의 이념은 국가우선주의이다. 이들의 정신은 민족주의와 애국주의다. 이들은 러시아에 대한 최대 위험이 미국 등 서방에서 온다고 본다. 서방의 목표는 러시아를 약화시키고, 무질서를 조장하려는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다. 때문에 러시아에서 서방의 의도에 맞춰 활동하는 사람은 누구든 내부의 적이 된다. 이들의 반(反)서방주의는 러시아 국민의 정서에 부합하는 것이다.

 

러시아가 최근 들어 미국에 냉전적 사고방식으로 맞서는 것도 이런 맥락이라고 볼 수 있다. 이들의 최우선 목표는 강력한 러시아를 건설, 과거의 영광을 되찾는 것이다. 이들은 이를 위해 무엇보다 먼저 고도로 집중된 중앙권력을 통해 정치·경제적 힘을 축적하고 있다. 실로비키는 현재 정부의 법집행기관·정보기관·군부 등을 통제하고 있으며, 에너지부와 국세청도 손아귀에 넣었다. 이와 함께 연방재산기금과 금융감독원 등은 물론 주요 국영은행도 장악하고 있다. 또 이들은 주요 기간산업을 운영하는 국영회사의 최고위직을 대부분 차지했다. 옛 소련 붕괴 과정에서 벼락부자가 된 올리가르히에 반감을 보이던 러시아 국민은 대부분 실로비키의 이런 권력 독점에 반대하지 않고 있다. 그 이유는 실로비키는 혼란을 초래한 민주적 절차보다는 법과 질서, 안정을 우선하는 정책을 추진했기 때문이다.

 

실로비키는 또 경제민족주의 정책도 밀어붙이고 있다. 이들은 과거 올리가르히였던 보리스베레조프스키 로고바스그룹 총수와 블라디미르 구신스키 미디어-모스트그룹 회장, 미하일 호도로코프스키 유코스 회장 등을 러시아의 부를 외국에 팔아먹은 민족 배신자로 규정했다. 심지어 푸틴 대통령은 이들을 제거해야 할 계층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실로비키는 이들을 축출하고 기업을 차지한 후 그동안 철저하게 ‘국익’을 위한 경영을 해왔다. 특히 실로비키는 석유와 천연가스 등 천연자원은 러시아의 국부라는 논리를 내세워 외국의 투자와 지분 참여를 제한하거나 비싼 로열티를 부과하는 정책을 시행했다. 세계화에 반대하고 국내 산업 보호를 강력하게 주장해온 이들은 주요 기간산업을 국유화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실제로 옐친 대통령 시절 민영화된 러시아의 주요 국영기업이 다시 국가 소유로 줄줄이 환원되고 있다.

실로비키가 내세우는 가장 강력한 정책은 바로 외교안보 분야다. 이들은 미국과 나토 회원국을 영원한 적으로 보고 있다. 때문에 이들은 러시아가 앞으로 과거 소련이 보유했던 강력한 군사력을 복원해 국제무대에서 영향력을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푸틴 대통령이 지난 8월 17일 “옛 소련 시절 실시하다 중단된 핵무기 탑재 전략폭격기의 장거리 비행훈련을 15년 만에 재개한다”고 선언한 것도 이런 맥락이라고 볼 수 있다. 러시아가 최근 들어 대규모 군사비를 투입해 각종 대륙간탄도미사일, 전략폭격기 및 핵 잠수함, 항공모함 등을 새롭게 개발하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실로비키는 또 현재 독립한 옛 소련의 자치공화국을 다시 러시아에 편입시켜야 한다는 주장까지 하고 있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실로비키에 나토의 동진은 엄청난 ‘도발’이라고 말할 수 있다. 실로비키는 유대인과 무슬림을 차별하는 인종적 편견도 갖고 있을 정도다.

이들의 영향력은 차기 러시아 대통령을 결정할 정도로 막강하다는 말을 듣고 있다. 과거 KGB는 쿠데타에 실패했지만 네오 KGB는 쿠데타에 성공해 러시아를 이른바 ‘스파이 국가(Spookocracy)’로 바꿔놓은 셈이다. 이안 브레머 유라시아그룹 회장은 “차기 러시아 대통령이 누가 되든 실로비키가 앞으로 상당기간 러시아를 실질적으로 통치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하지만 이들이 국가를 제대로 경영할지는 미지수다. 파괴된 제르진스키의 동상처럼 러시아의 민심이 이들의 운명을 결정할지도 모른다.

주간조선 이장훈 국제문제애널리스트

  

 

FSB는 67개국 104개의 정보 보안 법률 집행기관, 35개국 42개 국경 경비 기관들과 공식적인 교류 협력 관계를 유지 가장 긴밀하게 정보 교류를 하고 있으며 국가들로는 아제르바이잔 벨로루시 독일 영국 이스라엘 키르기스스탄 미국 우크라니아 우즈베키스탄 그리고 한국이 있음

KGB 섹스스파이 3주간 성교기술 실습   

눈에 보이지 않는 정보전쟁, 그 최전선에서 활동하는 사람을 우리는 ‘스파이’라 부른다. 비록 지금은 소련의 붕괴와 함께 사라졌지만 소련의 KGB는 어느 나라 못지않게 그 전통과 수법을 자랑하는 정보기관이었다. KGB는 일찍부터 한 사람의 유능한 스파이는 몇 만대의 U-2기 보다 훨씬 유익한 것임을 실제로 경험했었다.  

 

 

 

65년 당시 소련과 미국은 서로 군사대립관계를 유지해 나가고 있었다. 때문에 상대 군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해서는 군 정보를 쥐고 있는 ‘남자’들에게 보다 용이한 접근방식이 필요했다.    

    

KGB는 남성이 여성에게 약하다는 점을 착안, 여성들을 상대로 '섹스스파이' 교육을 시작했고 상당한 성공을 거둬들였다. 다음은 65년 당시 KGB의 여성스파이 교육에 대해 기술한 중앙일보 기사원문중 일부내용이다.     

 

KGB가 갖고 있는 특수무기는 뭐니 뭐니 해도 침실의 첩자 섹스스파이이다. 오늘도 미국의 거물인사들과 뉴욕의 아늑한 호텔 밀실에서 단꿈을 꿀 지도 모를 이 여간첩들은 모스크바에서 약 86킬로 떨어져 있는 한적한 도시 클린에 있는 사랑의 학교에서 훈련을 받는다. 각국에서 차출되어온 이들은 마지막으로 4주간의 단기교육을 받고 자기 출신국으로 사명을 띠고 배치된다.   

 

교육 첫 주일은 파블로프의 조건반사이론을 습득, 나머지 3주는 지하실험실에서 남성유혹 및 성교기술을 실습한다. 실습교관과 여학생이 한데 얽혀 무아지경의 오르가슴에 도달했을 때 남자 교관의 등에 연결된 전선으로 순간적으로 전기가 통한다. 교관 몸을 통해 학생의 몸 깊숙이 파고드는 전율. KGB는 이렇게 하여 여자의 가장 약점인 사랑에 눈 어두울 순간 그의 사명을 일깨워 준다. 여 간첩들은 여자의 육체가 아니라 전투무기인 것을 알게 된다.  [1965-10-19 중앙일보]   

 

이렇게 양성된 KGB의 미녀 스파이들은 이후 상대국 군관계자들과 육체관계를 통한 유혹으로 정보를 빼돌리거나 ‘정사’사진을 빌미로 협박하는 방식으로 활동하게 된다.     

          

영국대사 소련 하녀와 정사

 

68년 당시 주소영국대사로 근무했던 해리슨은 KGB의 작전에 걸려 대사관에 출입하던 소련하녀와 정사를 나눈 사실이 81년 2월 22일 영국 선데이 타임즈를 통해 드러나기도 했다. 그는 선데이 타임지와의 회견에서 “그녀는 젊고 매력적인 여성이었다. 나는 그녀가 KGB를 위해 일하고 있는지를 묻지는 않았지만 우리 대사관에서 일하고 있는 소련인 들은 모두 KGB의 고용원으로 여겨졌었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주소미국대사도 KGB의 미인계에 넘어가 여인과 정사

또 81년 당시 모스크바주재 미국대사관무관 제임즈 홀브루크 소령(41)이 미인계에 넘어가 KGB의 협박을 받을 위험에 처하기도 했다. 바르샤바 조약군이 기동훈련을 하고 있을 때 서방무관들과 파티에 참석한 그는 한 여인과 정사를 가진 뒤 KGB로 협박을 받다가 미국으로 소환됐었다. 하지만 스파이여성과 성관계를 가진 뒤 협박에 못 이겨 자살한 군인도 있었다.    

       
KGB요원과 정사 장면 찍힌 뒤 협박당한 프랑스 대령 자살
여배우 출신 KGB요원도 있었다

 

주제 소련 프랑스 대사관 무관 기보 대령은 KGB요원과의 정사 장면을 찍은 사진들로 협박을 당했다. 그는 KGB로부터 협력을 하거나 창피를 당하라는 소리를 듣고 결국 1962년 자신의 대사관 집무실에서 권총 자살했다.

 

이밖에 8년간 모스크바에서 근무했던 프랑스 드장대사는 여배우출신 KGB 요원에게 넘어간 사실에 드러나 1964년에 드골 대통령으로부터 파면 당했다. 드장대사는 “미인계에 걸리기는 했어도 조국을 배반한 일이 없었다”고 답했지만 끝내 묵살됐다. 

 

 

러시아의 특수부대 - 스페츠구루파 알파(Alfa)

 

스페츠구루파 알파는 러시아 연방보안국(FSB)산하 직할 친위대로 대테러 특수부대입니다.미국의 델타포스를 염두에 두고 Yuri Andropov KGB(Komitet Gosudarstvennoy Bezopasnosti) 의장은 Alfa 특수부대를 1974년 7월 28일 인가하여 창설하였다.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합동 작전으로 체첸 인질범을 소탕한 ‘알파부대’와 ‘오몬’은 러시아의 최정예 특수부대이다. 오몬 요원 600여 명과 알파 부대원 100여 명이 현장주변에 배치돼 작전 개시 명령을 기다리고 있었다. 연방보안국(FSB) 산하의 테러 전문 진압부대인 알파부대는 1974년 발족 이후 각종 테러 사건에 투입돼 ‘해결사’라는 별칭을 얻었다.

 

-체첸 변경 부드요노프스크 병원 인질 사건 때는 자체 병력과 민간인 등 100여 명의 희생자를 내기도 했다.

-1993년 10월 보리스 옐친대통령에 반기를 든 러시아 보수파들을 체포, 사태를 해결하는데 큰 기여

-러시아 극장테러사건때도 내무부 소속의 오몬등과 함께 사건을 해결해냈습니다. FSB에는 알파외에도 스페차구루파 빔펠이라는 부대도 있습니다.

-러시아 민주화에 기여한 특수부대임

-체첸에서 활동하여 20명이 하루밤 사이에 체첸반군 중대병력을 몰살시킨 사건

 

 

1개 부대는 250여 명으로 편성돼 있으며, 모스크바, 하바로프스크 등 전국 주요 도시에 지부를 두고 있다. ‘

 

 

현재 알파부대는 서방제 대테러부대용 군장시스템들을 테스트하고 있으며 일부 군장 시스템에 대해 대단히 그 성능에 만족하고 정식으로 도입을 검토중에 있다고 합니다.

 

 

 

FBS 산하의 해외 특수임무 전담 부대

빔펠의 공식 명칭은 FSB(테러대책헌정수호본부)의 특수작전/임무센터 V국으로 체첸 임무 주력 그외 러시아 내 지역에서 불법 무장 단체와 투쟁

***창설

-Vympel (Pennant)의 창설의 결정은 소연방의 중앙 위원회에서 하였으며 최초 부대의 지휘관은 Evald Kozlov의 제독이었다.

-1993년에 예친의 의한 반란으로 부대가 강등되어 현재 내무성 직할이다.

-약 500명으로 러시아 각지에 분산되어 있다.

-초기 빔펠 구성원은 전원 KGB 요원들로만 구성되었고 핵심은 과거 아프간 대통령 궁 습격 작전을 담당했던 재닛과 카스카드 부대원 출신들로 구성되었다.

 

 

***임무

- 전시 특수부대

-정찰및파괴 활동, 투쟁, 시민 보호 소련 사회주의 연방 공화국 해외 진출한 상대국의 (수력발전, 원유사업. 원자력, 화학제품 등 및 기업활동) 정보수집 및 그밖의 국내 테러리스트와 게릴라들의 중요한 목표, 상대의 파괴 활동가능성이 있는 중요한 목표의 보호의 감시등의 임무

-1991년에 對 테러리스트 임무가 추가

 

***활동

-아프가니스탄의 전쟁 동안에 부대원들은 조사, 자료 수집, 사보타주의 임무를 수행

-분쟁지역에서 활약 

-북한 특수부대를 훈련시킨것으로 유명함

-1986년 베이르투 소련대사관 사건때 잔혹성을 드러냄


***무장

-맨투맨 전투를 위하여 호신술, 단검, 도끼등을 사용

-수송장비로는 각종 자동차 및 기갑 차량, 헬기, 비행기로 출동한다.

 

***훈련

-폭발물 제거 및 설치와 외국어는 어느 나라든 외국 언어와 학문, 전통및 관례등을 사전에 완벽하게 배우며 언어는 완전 독해력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다.

-외국어, 특수전기술, 생존술등 부분에서 모두 엘리트

-각종 전투 기술, 특수 전술, 폭발물 취급, 근접전 등 다양한 영역의 전투 훈련 기술 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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