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여행] 부산 녹산동 녹도 수능엄사, 녹두만한 갯바위 섬에 5월이 더 아름다운 작은 절집 하나
[주말&여행] 부산 녹산동 녹도 수능엄사, 녹두만한 갯바위 섬에 5월이 더 아름다운 작은 절집 하
녹두처럼 작다고 해서 녹도다 서낙동강과 바다가 만나는 자리에 떠 있는 작은 갯바위 섬이다 작은 섬에 작은 절집 수능엄사가 있다 수능이라는 단어에 움찔한다 실제로 수능을 앞둔 수도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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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두처럼 작다고 해서 녹도다. 서낙동강과 바다가 만나는 자리에 떠 있는 작은 갯바위 섬이다. 작은 섬에 작은 절집 수능엄사가 있다. 수능이라는 단어에 움찔한다. 실제로 수능을 앞둔 이들이 종종 찾는 절이란다. 부자가 되고 싶어 찾아오는 이들도 적잖다고 한다. 저 큰 바다를 몇 걸음 앞에 두고 수능엄사는 참 침착하다. 내 맘은 참 울렁울렁 한데.
서낙동강과 바다가 만나는 자리
절집 뒤 작지만 존재감 큰 봉우리
강서8경 중 1경 '해강일점노적봉'
◆녹도
녹도는 현재 녹산수문에 의해 육지와 연결되어 있다. 녹산수문은 일제강점기인 1930년대 초반 낙동강 제방을 축조할 때 대저수문과 함께 가설된 것으로 1934년 4월에 완공된 우리나라 최초의 하구둑 수문이다. 수문은 바닷물의 역류를 막고 대저에서 온 강물을 확보해 강서들에 농업용수를 공급하는 일을 한다.
덕택에 서부산과 김해 지역 평야는 풍성해졌지만 당시 수확물 대부분은 일제에 빼앗겼다고 한다. 이후 녹산수문의 모자라는 배수량을 보강하기 위해 1992년 6월 녹도 동쪽에 녹산 제2 배수문을 만들었다. 수문은 교량 역할을 하면서 부산과 경남을 연결하는 교통로로 이용되었다.
지금은 수문과 나란히 녹산교가 놓여 있다. 1997년 부산 신항에서 녹산 공단을 거쳐 서부산권을 연결하기 위해 건립된 다리다. 산업 물동량의 수송과 출퇴근 교통을 담당하는데 2010년에 더욱 넓혀 현재 왕복 8차로 도로다. 평일 낮에도 차량이 꽤나 많아 녹도로 들어가는 동안 정신을 바짝 차려야 했다.
서낙동강은 원래 낙동강 본류였다고 한다. 대저수문과 녹산수문이 건설된 이후 본류와 분리되어 생기게 되었단다. 보통 녹산교를 경계로 남측은 남해 바다로 이어지고 북측은 낙동강 지류의 종점이라 한다.
녹도에 들어서면 잠시 벼랑이 둘러서 있는 길을 빠져나가야 한다. 간신히 차 한 대가 드나들 수 있는 좁고 굽은 길이라 어쩐지 알리바바가 된 듯 열려라 참깨를 중얼거리게 된다. 그러면 갑자기 확 트이면서 주차장 앞쪽으로 강인지 바다인지 하는 거대한 물이 펼쳐진다.
녹산교 남쪽이니 바다다. 뒤돌아서면 작지만 존재감이 큰 바위산과 마주한다. 노적봉이다. 봉우리는 높이가 50m, 길이 184m, 폭 138m 정도 크기다. 임진왜란 때 주민들이 섬 전체를 볏가리로 둘러씌워 멀리서 보면 마치 군량미를 산더미처럼 쌓아 놓은 것처럼 보이게 했다 한다.
수많은 조선 군사들이 주둔해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한 것이다. 그 모습에 속아 왜군이 도망갔다는 전설이 있다. 그래서 노적봉, 노적가리 섬이라 부른다. 해강일점노적봉(海江一點露積峰)은 강서 8경 중 제1경이다.
◆수능엄사
노적봉 아래 차분하게 앉은 절집이 수능엄사(首楞嚴寺)다. 수능엄은 범어 수랑가마(suramgama)를 음사한 말이라고 한다. '수능'은 '모든 것에 구경(究竟, 최종의 극치)'임을 뜻하고 '엄'은 '견고하다'는 뜻으로 '수능엄'은 부처님이 얻은 불덕(佛德)을 의미한다.
수능엄사는 대한불교조계종 비구니 사찰이다. 조선시대 말에 창건되었고 1970년대에 향림스님이 중창하여 오늘날에 이른다. 가운데 청기와 팔작지붕 전각이 대웅전, 그 왼쪽 앞에 요사채, 오른쪽에 불교대학이 자리한다. 대웅전 왼쪽 뒤로 물러선 것은 독성각, 노적봉 절벽에 올라서 있는 것이 산신각이다.
앞마당으로 열린 바다와 더불어 푸른 잔디와 능소화, 수국 등 각종 꽃들이 피어나는 5월이 아름다운 절집으로 알려져 있다. 정원이 아기자기하다. 연회색 블록 담장에 드리워진 능소화 마른가지는 아직은 벽에 걸린 말채찍 같은 모습이다. 봄꽃 산당화는 피어나다 언 채로 거무죽죽하다.
그러나 주먹만 한 강돌과 깨진 산돌에 둘러싸인 키 작은 수선화가 다섯 송이 노란 꽃을 피웠다. 강보에 싸인 아기 같고 새집 안에서 잠든 어린 새들 같다.
수능엄사에는 1960년대에 국내 최초 1억불 수출을 달성했던 한일합섬 창립자 김한수회장에 대한 이야기가 전해진다.
가난했던 어린 시절, 김한수의 어머니가 민물이 들어오는 것도 모르고 조개잡이에 몰두하다 물에 빠졌는데, 눈을 떠 보니 현재의 수능엄사 자리에 떠밀려 와 있었다고 한다. 이곳이 생명을 부지해 준 것이라 믿었던 어머니는 눈앞의 노적봉을 바라보며 저 높이만큼 재물을 쌓아 부자가 되면 절을 세워 부처님 은혜에 보답하겠다고 빌었다 한다.
이후 김한수는 일본으로 건너가 포목점에서 일하다가 1944년 5천원을 가지고 귀국하여 경남모직과 한일합섬을 설립해 우리나라 최대의 섬유회사로 성장시켰다. 어머니의 축원대로 부자가 된 김한수 회장은 이 땅을 매입하여 조계종에 시주했다고 전한다.
수능엄사는 작은 절집이지만 문화재 4점을 보유하고 있다. 그 가운데 고려 공민왕 시대 금강경 주해서인 '금강반야경소론찬요조현록'은 보물이다.
◆전망 좋은 방, 산신각
산신각으로 오른다. 좁고 가파른 계단이다. 계단을 놓기 전에는 울퉁불퉁한 바윗길이었는데 사람의 걸음마다 조그만 바닷게들이 조르르 바위 틈새로 숨는 모습이 그리 귀여웠다고 한다. 계단 옆 바위마다 누군가의 염원을 담은 아기자기한 물건들이 앙증맞다. 특이하게도 구슬을 꿰어 만든 팔찌, 목걸이 따위가 많다.
산신각은 한 칸 규모의 전각이다. 전각도 터도 작은데 큰 전망을 가진 테라스는 널찍하다. 녹도와 뭍 사이 수로에 정박되어 있는 어업용 작은 배들을 본다. 녹산 어촌계의 외항이다. 강둑을 따라 남쪽으로 죽 내려가면 빨간 등대가 서 있는 녹산항이 보인다. 항구에는 소형의 페리 류가 다수다.
녹산동은 부산에서 가장 면적이 넓은 행정동이다. 법정동으로서의 녹산동이 이곳으로 보통 본녹산이나 성산 등의 이름으로 불린다. 예전에는 김 양식과 염전이 유명했다고 한다. 부산 신항과 녹산공단 건설로 어장이 줄면서 타격을 받았지만 수산자원연구소의 도움을 받아 고급 특산물인 낙동김, 부산청게(톱날꽃게), 보리새우(오도리), 웅어를 인공 종묘로 생산하면서 어려움을 타개했다고 한다.
마을 뒤에 바짝 붙어선 산은 봉화산 노적봉이다. 해발 243.8m로 녹도 노적봉과 이름이 같다. 정상에 mbc와 kbs 방송 중계소가 있는데 흔히 녹산 중계소라 부른다. 저 멀리 바다를 가로지르는 신호대교는 오른쪽 신호동과 왼쪽의 명지 신도시를 잇는다.
명지도는 낙동강 삼각주의 남부로 원래 강서구의 특산물인 명지 파밭이 있었다. 그 전에는 염전이 있었고, 또 그 전에는 그저 강이었고 바다였다. 지금 명지신도시는 물 위에 떠 있는 수상도시처럼 보인다. 강변에 납작하게 자리한 건물은 국회부산도서관이다. 층층이 쌓인 책의 모습을 형상화했다고 한다.
갑자기, 명지도가 생기기 전의 시대, 이 앞이 모두 바다였던 모습을 상상한다. 녹도는 정말 해강일점이었을 것이다. 새삼 자연도 사람도 위대하다. 침착한 담력으로 바다를 바라보는 수능엄사의 가지런한 지붕위로 평화와 위엄이 흐른다.
■ 여행 Tip
55번 대구부산고속도로를 타고 부산방향으로 간다. 대저분기점에서 백양터널, 수정터널, 부산역 방면 왼쪽으로 가다 삼락IC에서 하구둑 방면 오른쪽으로 나가 직진한다. 하구둑 교차로에서 창원, 을숙도, 하단 교차로 방면으로 우회전해 계속 직진, 오른쪽에 녹산수문공원이 보이면 녹산수문이 있는 녹산교를 건너는 중이다.
정면으로 보이는 봉우리가 봉화산 노적봉, 왼쪽에 절벽으로 보이는 바위덩어리가 녹도 노적봉이다. 녹산교를 건너 성산삼거리에서 좌회전해 가다 유턴해서 다시 녹산교로 온다. 녹산수문 지나 바위절벽 사이 길로 우회전해 조금 들어가면 된다. 주차공간은 넓다.
글·사진=류혜숙 여행칼럼니스트 archigoom@naver.com
낙동강 하구의 지형변화를 실감하는 봉화산
낙동강 하구, 정확하게는 서낙동강 하구변에 자리 잡은 봉화산(烽火山·329m)은 부산시 강서구의 향토색 짙은 산으로, 녹산동의 모산(母山)이며 강서팔경에 속한다. 낙남정맥이 지리산에서 남진하다가 장유 불모산의 용지봉에서 남동쪽으로 가지를 이룬 지맥의 끄트머리에 솟아 낙동강물이 바다로 흘러드는 길목을 훤히 내려다볼 수 있어 좋다.
하단에서 진해 방향 2번 국도를 따라 용원으로 가다보면 성고개란 지명과 함께 시내버스 정류장이 있고, 고갯마루에 내리면 왼편에는 금단곶보성지비가 서 있다. 이 일대는 본래 금단곶으로 조선 세종15년(1433)에 국가 관리 목장을 만들어 군마를 사육 조련했던 곳이다. 또 왜선이 자주 출몰하는 지역으로 성종 16년(1485)에는 석보를 쌓아 군관이 머물며 지켰던 석성(石城)의 옛 흔적을 더듬어 볼 수 있다.
산행 시작점 왼편에는 레스토랑 ‘산에 언덕에’ 건물이 이색적인 분위기를 풍긴다. 시작은 능선으로 이어지는 계단을 따르지만 곧장 산길이 나타난다. 오른쪽은 배수로가 있고 처음부터 약간 경사도가 느껴진다. 10여 분쯤 오르다가 오른편 산길로 접어들고, 얼마 후 다시 갈림길에서 왼편으로 오른다. 무덤 7~8기가 자리 잡고 있는 능선에 서면 제법 시야가 트인다.
능선을 올려다보고 걸음을 옮기다가 전망이 뛰어난 바위에서 잠시 낙동강 하구 주변을 조망한다. 지형이 변해버린 녹산공단 너머로 진우도, 신지도, 대마등, 장자도가 모래톱을 이루고 있다. 내륙에서부터 강물에 휩쓸려온 흙과 모래로 형성된 새로운 삼각주들, 지형조차 변해버린 낙동강 하구는 쉼 없이 살아 꿈틀거리는 땅이라는 사실을 실감케하는 광경이다.
이제부터 능선을 따라 이어지는 산길이 완연하게 그 모습을 드러낸다. 여름이나 가을이면 무성한 억새풀로 뒤덮이지만, 요즘 계절에는 야생화도 눈에 띈다. 이 산은 억새가 절정인 10월이면 산행의 운치가 한껏 더해지기도 한다.
264m의 구치봉을 지나면서 불규칙적인 바윗길이 나타나고, 때로는 가시나무 넝쿨이 발목을 잡기도 한다. 경사가 심한 내리막에 바위지대도 만난다. 짧은 구간이지만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빠져나오면 송전탑이 솟아 있다. 얼마간 숲길로 걷다가 주변이 트인 갈림길에서 왼편 길로 얼마 못가면 체육공원이 나온다.
간이 운동시설이 갖춰져 있는 이곳은 봉화고개(봉오지고개)로 봉화산 안내도가 그려진 입간판이 세워져 있어 산행에 참고로 하면 될 것이다.
잠시 숨을 고르고, 입간판 옆 계단으로 오르다가 키를 넘는 산죽밭에서 왼편 길로 빠져나오면 헬기장이다. 바로 뒤편에는 봉수대가 있는 봉화산 정상이다. 산정에는 1991년 복원한 봉수대가 있고, 바로 옆에는 정상표석이 서 있다. 표석에 새겨진 이 산의 높이(277.8m)는 잘못된 것으로 보인다.
봉화산 봉수대는 동국여지승람의 기록에 의하면 ‘성화례산(省火禮山)의 봉수로서 남으로 웅천현 가덕도와 북으로 분산(盆山)에 응한다고 했으니, 가덕도의 천성봉에서 연결을 받아 김해의 분산봉에 전달하는 역할을 맡았다’고 전한다. 고종 35년(1898)에 전국의 봉수제도가 폐지될 때 이곳 봉수도 함께 폐지된 것이다.
주변의 굴암산, 옥녀봉, 천마산은 물론이고 멀리 신어산을 비롯한 낙남정맥의 산들과 시원한 김해평야, 유유히 흐르는 낙동강 너머의 부산시가지와 승학산도 시야에 또렷하게 들어온다. 강물이 흘러드는 하구에는 변화된 모래톱이 형성되고, 녹산공단과 부산신항으로 인해 바뀌어버린 지형이 낯설기만 하다. 가덕도와 섬 중앙에 솟은 연대봉도 손에 잡힐 듯 가깝다.
봉수대에서 동으로 이어지는 능선을 하산길로 잡는다. 산길 중간에는 체육시설과 벤치가 설치돼 있고, 길은 다시 내리막에 급경사 계단길이다. 안부인 녹산고개를 지나 올라서면 274m봉이다. 밋밋한 봉우리를 넘으면 사거리 갈림길인 생활고개에 닿는다. 오른편으로 100여m 내려가면 샘터가 있다.
곧바로 직진해 올라서면 생곡과 장락마을 사이의 의성봉(265m)이다. 산정주변은 산불 흔적이 아직도 지워지지 않고 있어 안타까울 뿐이다. 뒤돌아보니 지나온 능선 너머로 봉화산이 까마득하다. 두 갈래 길에서 오른편으로 오르다가 방송국 송신탑이 나오기 전의 왼쪽 길로 10여 분 진행하면 소불등고개에 닿는다.
여기서 오른편 성산마을 건너편의 노적봉을 내려다보고 직진하면 녹산농협 성산지소 앞으로 내려서게 되고 녹산수문을 만나면서 산행은 끝난다.
녹산수문은 1934년 준공 당시 우리나라에서는 가장 큰 개폐식 수문이다. 낙동강 하구의 바닷물이 김해평야에 들어오는 것을 막고, 강 상류에서 흘러드는 물을 조절해 김해평야를 경남의 곡창지대로 만드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그러나 돌이켜 생각해 보면 일제시대 수탈정책의 산물이 아닐 수 없다.
수문 위의 녹산교를 건너면 노적봉이다. 수문공사 전에는 강 가운데에 있던 독뫼로, 녹두만큼 작은 섬이란 뜻의 녹도(菉島)라 불렸다. 임진왜란 때 이 섬을 노적가리로 위장하기 위해 짚으로 둘렀다 하여 노적봉으로도 부른다.
#산행길잡이
봉화산은 시내에서 지하철과 시내버스로 연결되는 교통의 편리함도 있겠지만, 가벼운 마음으로 륙색에 물과 간식을 챙겨 넣고 부담 없이 찾을 수 있는 산이다. 산행시간은 성고개에서 시작해 구치봉~봉화산~274m봉~의성봉~녹산수문까지 2시간30분 정도면 끝난다.
#교통
지하철 1호선 하단역에서 5번 출구로 나와 용원행 58번 시내버스를 타고 산행 들머리인 성고개에서 내린다. 하산 후에는 노적봉 능엄사 입구에서 58번 시내버스나 6, 7, 12, 16번 마을버스를 타면 하단 지하철역까지 나올 수 있다.
노적봉 건너편에는 민물장어구이집 장룡수산(051-971-8077)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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