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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거 저런거/주변이야기

인천교당 법호수여식 선산 박중훈교무 설법

by 구석구석 2024. 8.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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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기109년 8월 18일 법호수여식에서

수위단 중앙단원이신 선산 박중훈교무님의 법호에 대한 설법 녹취록을 정리합니다.

법호인 - 효타원 권원경, 세타원 노진원, 보산 박영도, 자타원 진덕윤

반갑습니다. 

저는 법호를 받을 때 오늘처럼 환영을 못 받아봤어요.

회장님 말씀에 법문이 다 들어 있어서 제가 안 해도 될 것 같은데 한 말씀 더 해보겠습니다.

오늘 인천교당에서 네분의 법호인이 탄생한다는 것은 원불교의 경사인 것 같지만 사실은 인천 지역의 경사입니다.
왜 그런가 하면 이분들 같은 인격을 갖추고 또 공익심을 갖춘 분들이 사는 그 마을 그 지역이 얼마나 아름다울 것인가.

그런 생각을 해보기 때문에 법호인이 한 분 한 분 나온다는 것은 그 지역에 경사다.

왜 경사일까 원불교에서 법호를 받는다는 것은

공부와 사업이 원불교가 정한 일정한 수준에 도달했다 그걸 말합니다.
공부라고 하는 것은 세상을 살아가는데 떳떳하고 당당한 길을 알았다는 말입니다.
사업이라고 하는 것은 나를 위에서 살다가 내 동네 내 이웃, 이 세상을 위해서 보훈하는 길로 알았다 그런 이야기가 되겠습니다. 공부와 사업이 둘 다 중요하지만 오늘은 더 중요한 공부에 대해 말씀을 드려보려고 합니다. 

무엇을 공부하는가 법을 공부합니다.

법호, 법법(法)자를 써서 법호 이렇게 부릅니다.

법을 한문 법(法)자를 풀어보면 물 수(水)에 갈 거(去) 이렇게 합쳐서 법 그렇게 보거든요.
그 이치를 생각해 보면 물이라고 하는 것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만 흐릅니다.

막혀 있으면 차 올라서 어떻게든 넘어서 낮은 곳으로 흐릅니다.

이런 것을 이치라고 합니다. 당연한 이치

이처럼 물처럼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는 것처럼 당연한 이치

그리고 서로가 정한 약속을 우리는 더 그렇게 말을 합니다.

 

물론 이 당연한 이치를 모르기도 하고 또 알지만 부정하기도 합니다.
왜 그런가 하면 나라는 것이 있거든요. 

나라는 것이 있으니까 이 나라는 것이 뭔가 생각과 판단을 흐리게 해요.
눈을 가리고 나의 지혜를 가리면 시비이해를 판단할 때에 올바르지 않게 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 결과 사람들은 자기를 위해서 생각하고 열심히 사는데 그 결과는 

자기를 피하지 않는 쪽으로 고해의 바다, 고통의 바다로 빠져드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성자 현인들께서 당연한 이치

사람의 사는 도리에 대해서 자세하게 밝혀주신 것이 종교의 가르침이고 말씀입니다.
원불교에서는 대종사님과 역대 종법사님께서 말씀하신 그 가르침을 교법이라 하고 

원불교에서 공부한다 이렇게 말하는 것은 그 교법을 공부하는 것이고, 

그 공부한 실력을 매 3년마다 어떻게 했는지 측정을 해가지고 결과를 알려주는 것이 법인입니다.
오늘 법호를 받으시는 분들의 공부 수준은 원불교가 정한 공부의 단계가 있는데

그 6단계 중에서 3단계, 법마상전급에 해당하시는 분들입니다.

 

이 단계가 어떤 단계인지 알아야 오늘 우리가 축하할 만하구나.
진정한 축하 의식이 될 것입니다.

법마상전에서 첫 번째로 제일 먼저 알아야 할 것은 

이 분들은 원불교에 입문해서 보통급 십계문, 특신급 십계문

예비 법마상전급의 승급해서 또 삼십계문을 받아서 지키는 분들이다.

 

이 법호를 받는다는 것은 저 분은 원불교에서 준 30계문을 지키는 분들이다.
그렇게 알면 되겠습니다.

계라고 하는 것은 지키라는 것이고 하지 말라는 말이에요.
그런데 그게 원불교를 위해서 그런 것이 아니고 자신과 이 사회와 이 세상을 위해서 

이런 이런 행동은 하지 마시오. 그것이 삼십계문이 되겠습니다.

잘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서 몇 가지 계문을 예를 들어보면

연고 없이 살생하지 말라.
도둑질을 하지 말라.

악한 말을 하지 말라.

공금, 내 돈 아닌 다른 돈을 범해서 쓰지 말라.
공중사, 단체의 일을 단독히 처리하지 말라.

다른 사람의 과실 잘못을 말하지 말라.
신용 잃지 말라.

아만심, 자기만 최고라고 그런 마음을 내지 말라.
한 입으로 두말하지 말라.
시기심을 내지 말라.

탐심, 탐욕하는 마음을 내지 말라.
진심, 성내는 마음을 내지 마라.

 

이제 조금 알아들으실 만한 것을 골라서 제가 몇 가지 말씀을 드렸는데

세상에 이런 생활 표준을 가지고 그걸 지키려고 노력하는 사람 많지 않습니다.
그런데 원불교 교도들은 이것을 지키려고 애를 쓰면서 삽니다.
물론 완벽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항상 이러한 생각을 연구, 자기의 생각 머리에 두고 

행동할 때마다 범하지 않으려고 노력을 하면서 살아가는 공부인이다.

 

이것이 법마상전의 첫 번째 공부입니다. .

두 번째 공부는 법과 마를 일일이 분석하고 우리 경전의 해석에 과히 착오가 없는 분들이다.
법이 무언지 마가 무엇인지 공부해서 염두에 두고 있다가

경계를 당했을 때 어떤 이익을 당했을 때 자기의 과거 습관, 자기의 업력대로 막 나가는 게 아니라

이때 어떻게 하면 법대로 하는 것이지 하고 법을 표준 삼아 행동하려고

노력하는 분들이 원불교의 공부인들이요. 교도입니다.

법이란 성자 현인들께서 우주 자연의 이치를 보아 밝혀주신 떳떳하고 당당한 것으로
그런 법을 표준해서 살면 결국은 은혜가 되고 나도 남도 다 좋게 됩니다.
하지만 말하고 하는 것은 법의 반대로 떳떳하지도 않고 당당하지도 않고 삿되고 이기주의적인 것입니다.
물론 그러고 싶어서가 아니라, 법도 잘 모르고 이치도 잘 모르면 자신도 모르게 그렇게 살고 그렇게 살아가게 됩니다.

 

결국 말하는 것 사적인 것을 우리가 쫓아서 살게 되면 자신도 해를 보고 남도 해를 보게 됩니다.
왜 법을 지키고 순리에 따라 사는 것이 중요할까? 

사람이 태어나 세상을 살아갈 때 어떤 기준으로 살아갈까요?
이걸 한번 생각해 보시면 좋겠어요. 

우리는 세상에 태어나서 자기가 태어난 환경, 어려서 부모 형제로부터 살아가는 모습을 보고 배우죠.
그리고 교육 기회를 통해서 또 배웁니다. 

그러면 그것이 자기의 살아가는 생각과 신념이 되고 이것이 양심이 됩니다.

이것을 우리는 자기 양심이라고 하는데

그러다 보니까 사람마다 처지와 환경에 따라서 양심의 기준이 달라요.

 

저도 처음 출가했을 때 선배하고 많이 다툰 일이 있어요.
왜 그랬냐면, 어릴 때 저는 고향이 전북 고창인데 그 당시에는 먹고 살기 힘들었어요.

그러니까 국민학교 때 방학이면 개구리 잡아서 구워먹고 이런 것이 일상입니다.
그 양심에 거릴낄 바가 없어요. 왜냐하면 다 그렇게 살았기 때문이에요.

그런데 진리를 알고 인과를 알고 도리를 알고 보니까 그것이 잘못됐다는 거예요.

 

우리들이 자기가 살아온 환경에서 자기 나름대로 갖추어진 생각대로 사는 것은 자행자지

즉 자기 마음대로 산다 이런 겁니다.
그런데 이처럼 자기 마음대로 자기 기준으로 살다 보면 
혹은 복이 되기도 하고 혹은 죄가 되기도 해서

내가 사는 길이 과연 정확하게 이게 옳은 건지 그른 건지 잘 모르고 합니다.

 

하지만 신앙이라고 하는 것은 자기 생각, 자기의 가치관 그 기준을

성현의 가르침에 바탕해서 내 생각을 놓고 성현의 가르침에 의지해서 사는 것, 그것이 신앙

그렇다고 맹목적으로 그 종교가 시키는 대로 산다는 것이 아니라

우주의 이치, 세상의 이치, 사람의 도리를 알고 보니 꼭 지켜야 할 것 같아서

그것을 지키려고 온 힘을 다하는 그런 삶. 그것이 올바른 신앙이다.
원불교에 와서 법이 무엇인지 이치가 무엇인지 알고 보니 이제 내 마음대로 할 수가 없더라고요.

그래서 법과 이치에 표준해서 살기로 작정하신 분들.

그분들이 원불교의  교도님들이다.

 

그렇게 살려고 하는데 이제 세상은 녹녹하지가 않잖아요.

그래서 법대로 살려고 하는데 방해꾼이 많아요.

공부를 해보니 그 방해꾼이 밖에 있는 게 아니에요.
내 안에 있어요. 법도 내 안에 있고 나도 내 안에 있어요.
고생을 안하고 쉽게 성공하는 게, 나만 좋으면 되니, 남이야 어찌 됐든 무슨 상관

우리 가족만 잘 된다면 무슨 일인들 못할 소냐. 

이런 유혹과 헛된 생각들

이걸 누가 시킨 게 아니에요 내 안에서 내 마음 안에서 스스로 일어납니다.
이때에 법대로 살아야지 순리대로 살아야지 그렇게 다짐하고 챙기면서 끌려가지 않으려고

이 두 마음이 싸우는 것을 법마상전이라고 합니다.

 

오늘 네 분께서 법호를 받고 나면 앞으로 시비를 많이 들을 수 있습니다.
회장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더라고요.

왜 시비를 두냐면

오늘부터 법호를 받았으니 이마에 딱 표가 붙어요.

공부를 잘해서 법호를 받은 분이래요.

여기 오신 분들은 이제 입력이 되었어요.

그래서 저분은 공부를 잘하신 분이기 때문에

내가 감히 저분들을 따라서 살 만한, 참고할 만한, 그런 삶을 살으시겠구나

이렇게 지켜본단 말이에요.
지켜보고 있는데, 이분이 법 같지가 않으면 사람들이 말을 또 해요.
그래서 법호를 받았다는데 왜 저렇게 해요?
또 어떤 분은 막 적극적으로 교무님한테 와서 따져요

어떻게 그런 분을 법호를 주셨습니까?

 

법호를 받는다는 것은 굉장히 영광스러운 일인데

오늘부터 책임이 하나 주어져서 좀 무거울 거예요.
법복이 몇 그램 안 되는데 굉장히 무거워요.

그래서 오늘 법호를 받으시는 분들이 지금까지도 잘 살으셨지만

좀 더 노력하시라고 몇 가지 짧게 말씀드려보겠습니다.


첫번째는 법이 백전백승할 수 있도록 법으로 체를 잡고 살아가야 합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이 법으로 체를 잡고 살아갈 때에

나는 이렇게 순리에 따라서 살려고 노력하는데 저 사람들은 뭔가, 이런 마음이 막 자꾸 일어나거든요.
그런 상을 내지 않는 것에 주의해야 합니다.

또 하나는 생활 속에서 법을 지키되, 남에게는 인색하고 나에게는 사소한 것이 아니라

반대로 나에게는 인색하고 밖으로는 통하게 마음을 써야 됩니다.

어떤 경우냐면 예를 들어서 몇 시에 만납시다하고 약속을 했는데

나는 어떤 일이 있어도 그 약속 시간을 지키려고 노력해야 맞고

다른 사람이 늦었을 때에는 나처럼 따지지 말고 사정이 있어서 어떤 사정이 있어서 늦었겠거니

이렇게 마음을 써야 한다. 그러지 않고 반대로

내가 어길 때는 그럴 수 있지 이렇게 말하면서 남이 어기면 자꾸 따지기를 좋아하면

가족교화도 안 되고 밖으로 벽을 쌓게 됩니다.


두번째는 천만경계 중에서 사심을 제거하는데 재미를 붙이며 살아가야 한다.

 

사심이 뭐냐, 복잡해요

삿된 마음인데 복잡하니까, 원불교에서 가르치는 것과 반대되는 건 사심이에요.
그렇게 생각하시면 쉬워요. 

교전에서 하라고 하는 것은 하고 하지 말라는 것은 안 하면 되는데

그것과 반대되는 마음이 일어나면 그것이 사심이다.
어떻게 사심을 제거하는 데 재미를 붙이느냐 하면 

항상 자기 마음을 지키고 있다가 

법이 아닌 마음이 일어나면 너 사심이지, 이렇게 챙겨야 합니다.

예를 들어서

친구들하고 차를 한잔하러 갔더니 친구들 만나면 남 얘기가 잘 나오잖아요.
그리고 막 얘기하는데 나도 막 보태고 싶어

그럴 때 마음을 지키고 있다가 그런 마음이 일어나면

너는 법이 아니야, 이건 사심이야 이렇게 하고, 그 마음이 설령 일어나더라도

밖으로 못 나가게 지키는 그런 것을 재미로 삼아 하는 것이다.

 

오늘 법호 받으신 분들이 저보다는 선배님들이시네요.
그런데 그런 분들 만나면 가끔 이런 분들이 있어요.
요즘에 사는 게 재미가 없어, 그런 얘기를 한 번씩 들어요.
왜 재미가 없을까, 보니까 우리가 젊었을 때에는

좋은 직장 구하려고 애들 키우느랴, 재산도 좀 모아야 되고 집도 사야 되고 

그런 것에 마음을 다 쓰니까, 재미가 뭔지 심심한 게 뭔지 이렇게 막 모르고 살았는데 

어느 날 때가 되어서 정리하고 사업도 정리하고 자녀들도 독립하고 그러다 보니까 

갑자기 할 일이 없어지고 혼자만 남아요, 삶의 목표가 사라지니까 재미가 없고 심심해집니다.

그 재미 없는 거, 그 목표를, 이제 마음공부로 목표를 삼고 정리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중년이잖아요. 60이후가 중년이에요.
중년에는 혼자 있는 삶, 일 없는 삶을 즐길 줄 알아야 합니다.

 

세번째는 혼자 있는 삶을 즐길 줄 알아야 한다.

 

무관사, 법마상전급의 중요한 공부입니다.
세상 사람 모두에게 다 필요한 게 이 공부에요.

혼자 사는 삶을 즐기지 못하니까 자녀들만 자꾸 생각이 나요.

휴일날 뭔가 심심하다 싶으면 집사람이 어디로 전화를 하고 있어요.

딸은 뭐 하나

혼자 있는 삶을 즐기지 못하면 자꾸 배우자에게 마음이 가요

혼자 있는 삶을 즐기지 못하니까 여기저기 이제 기웃거려요.
그리고 참여해요. 참여하면 내가 세상을 살아본 경험도 있고 경륜도 있기 때문에 아는 것이 많아.
그러다 보면 또 시비를 하게 돼요.

나는 염려가 되어서 알려주는 것인데 상대는 간섭이 되고 참견이 됩니다.

이런 일들이 다 혼자 사는 삶을 즐기지 못해서 생기는 일이에요.

 

그런데 가실 때는 혼자 가잖아요.

부부가 한날 한시에 같이 못 가잖아요. 그때 너무 힘들어하는 걸 봤어요.
60 넘으면 부부라 하더라도 혼자 사는 삶은 즐길 줄 알아야 

상대방의 삶도 존중해 줄 줄 압니다.

 

정리합니다.
오늘 법호를 받으시는 분들, 함께 이 자리에 앉아 계신 분들

더불어 체를 잡고 살으시고 사심을 제거하는 마음공부를 재미로 삼아 살으시고

일 없어도 심심하지 않고 혼자 있어도 외롭지 않은 삶을 즐기시라.
이렇게 사는 분들이 정말 멋지게 사는 공부인이며 존경받는 법호인입니다.
이 말씀을 드리며 축하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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