ㅁ 6여단 / 흑룡부대
해병대 6여단은 독립여단으로 흑룡부대의 별칭을 갖고 있는 백령도 대청도 소청도를 방어하는 부대이다. 1955년 2월 1일부터 도서경비부대로서 활동을 개시하여, 1974년 도서방어부대로 확장되었다가, 1977년 1월 1일 단대호를 가진 여단으로 개편되었다.
61해병대대 (용기원) / 62해병대대 (번개) / 63해병대대 (기습특공) / 65해병대대 (최강)
[국방일보 정전 70주년 특별기획]
낮과 밤, 임무와 휴식. 군대의 삶은 루틴(Routine), 즉 반복이다. 마치 회전목마처럼 돌고 도는 삶을 반복하느라 우리는 일직선으로 향하는 시간의 물리적 속성을 잊기 마련이다. 매일 같은 일을 하고 있다고 착각하지만, 반복을 거듭하는 루틴의 방향은 끝을 향하고 있다.
대한민국 비무장지대(DMZ) 동쪽 끝인 강원도 고성으로부터 달려온 ‘다시, DMZ’의 종착역은 서해 최북단 백령도다. 그동안 만나온 거의 모든 장병과 마찬가지로 백령도를 지키는 해병대6여단 장병들 역시 하루하루 일상을 반복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들의 매일에는 조국을 수호하기 위한 치열함이 담겨 있었다. 이들의 ‘루틴한 하루’는 대한민국의 일상을 지키기 위한 국군 장병 모두의 노력을 대변하고 있었다. 국방일보 2023 글=맹수열/사진=조용학 기자
인천에서 뱃길로 3시간 30분을 달려 도착한 지난 3일 백령도는 평소와 마찬가지로 평온했다. 휴가에서 복귀한 장병, 관광객 등 인파를 뚫고 3일 동안 안내를 도와줄 노경민(소령) 해병대6여단 공보정훈실장을 만났다.
다른 최전방 부대와 마찬가지로 여단 역시 이른바 ‘현행작전 부대’. 매일 경계의 끈을 놓칠 수 없는 현행작전 부대의 가장 큰 어려움은 교육훈련 시간의 부족이다. 과연 물리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는 훈련의 공백을 여단은 어떻게 이겨내고 있을까? 가장 궁금했던 훈련 현장을 보고 싶었다. 노 실장을 따라 포병대대 포2중대로 향했다.
포2중대 역시 다른 포병 중대와 교대로 대기 임무를 수행하는 현행작전 부대다. 하지만 임무의 반복 속에서도 포2중대는 늘 훈련의 끈을 놓지 않는다고 한다. 이날도 중대는 즉각 대기 임무를 수행하면서 복합상황 조치 훈련을 진행할 예정이었다.
적에게 강력한 응징을…요새가 된 섬
훈련에 앞서 잠시 포상을 둘러볼 수 있었다. 포상에는 우리 군이 자랑하는 K9 자주포가 배치돼 있었다. 백령도에는 현재 K9·K9A1 자주포와 이를 뒷받침하는 K10 탄약보급장갑차가 다수 배치돼 있다. 연평도 포격전 이후 서북도서의 화력 보강이 중요한 숙제로 주목받은 뒤 생긴 변화다.
전차 역시 ‘과거의 유산’인 M48 계열이 모두 도태된 대신 K1E1 전차가 그 자리를 메웠다. 이 밖에도 60㎞ 이상의 사거리와 강력한 화력을 자랑하는 K239 천무 다연장로켓과 탁월한 정밀 타격을 갖춘 스파이크(Spike) 유도탄 등도 배치돼 있다.
서해 북방한계선(NLL)의 요충지인 백령도를 사수하기 위해 여단이 갖춘 강력한 화력은 포2중대에서도 쉽게 느낄 수 있었다. 포상 내 탄약고에는 수천 여발이 넘는 탄약이 빼곡하게 비치돼 있었다. 포상 안에서 상당 시간 교전을 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단 1개의 포상이 이 정도라면 여단 전체가 이 작은 섬에 얼마나 많은 양을 비축하고 있을지 짐작하기 쉽지 않았다. 신효찬(대위) 포2중대장은 “만약의 상황이 벌어지면 이곳에서 장기간 대응 사격을 할 수 있는 모든 준비가 돼 있다”면서 “신속한 대응과 장기전 모두 가능한 상태”라고 자신 있게 말했다.
섬에 새겨진 격동의 역사…우리의 임무는 숭고하다
지금의 ‘요새’가 되기까지 백령도는 많은 부침을 겪었다. 6·25전쟁 당시 해병대는 전략도서 확보 작전을 통해 백령도를 전진 기지로 활용했고, 그 결과 교동도·석도 등 다른 섬들을 확보할 수 있었다.
전쟁이 끝난 뒤 도서경비부대를 운영하던 해병대는 1970년대 들어 서해 NLL을 넘보는 북한의 움직임에 맞춰 도서방어부대로 격상했다.
그리고 연평도 포격전 이후 백령도는 수많은 전력 증강을 거쳐 해병대의 요새가 됐다. 신 중대장은 백령도가 가진 역사적 중요성에 대해 장병과 장병 부모님에게 강조하고 있다고 말했다.
“우리가 지키고 있는 이 섬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아야 그만큼 임무에 적극적으로 매진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부대를 찾아온 장병 부모님들에게도 당신의 아들이 얼마나 중요하고 숭고한 임무를 수행하는지 알려드리고 있습니다.”
목표를 능가하는 속도…실상황에 대처하는 6여단의 자세
신 중대장의 설명을 듣는 사이 훈련 준비가 끝났다. 초여름 태양이 작열하고 있었지만 장병들은 사이렌이 울리자 순식간에 달려와 포상을 점령하고 자주포 가동 준비를 마쳤다. 시작부터 끝까지 걸린 시간은 5분 남짓. 평소 여단의 목표인 5분을 충족시키는 속도였다. 하지만 실상황이 닥치면 이보다 더 빨라진다고 신 중대장은 말했다.
“실상황이 주는 긴장감이 아드레날린으로 치환되는 것일까요? 훈련보다 더 빨리 달려와 임무를 완수하는 일이 잦습니다. 빠르면 3분 안에도 모든 준비를 마치기도 하죠. 오히려 정신없이 준비하느라 다치지 않을까 노심초사하고 있습니다.”
훈련을 마치고 뒷정리하는 1번포수 이현민 일병은 유난히 땀을 많이 흘리고 있었다. 더위를 뚫고 달려와 무거운 탄약을 나르는 일이 쉽지 않았을 터. 하지만 이 일병은 많이 힘드냐는 질문에 “땀이 많을 뿐 전혀 그렇지 않다”고 씩씩하게 답했다.
긍지, 일촉즉발의 반복을 이겨내는 힘
그렇다면 이 일병에게 가장 힘들었던 경험은 무엇이었을까? 그는 최근 있었던 야간 실상황 전투배치를 꼽았다. “언제 뛰어나가야 할지, 언제까지 포상에서 대기해야 할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라는 이유였다.
잦은 실상황에 대한 고충은 장병들 모두가 느끼는 듯 했다. 이날을 기준으로 전역을 20여 일 앞둔 중대 최고 선임 병사 여현진·엄귀용 병장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대공 상황이 크게 발생한 적이 있었습니다. 며칠 연속으로 제대로 잠을 자지 못했습니다. 갈수록 정신이 멍해졌습니다. 가장 힘든 것은 이 상황이 언제까지 지속될지 모른다는 불확실성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이를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은 해병대, 그것도 서해 최북단을 지키는 흑룡부대(여단의 애칭)라는 긍지였습니다. 해병의 자존심이 큰 힘이 됐습니다. 다시 생각해보면 그 힘든 이겨낸 저와 전우들이 대견합니다.” 여 병장은 “후임들도 최정예 흑룡부대원이라는 자부심을 가졌으면 한다”며 이렇게 말했다.
이런 기분은 신 중대장도 마찬가지. 그는 “최근 부쩍 실상황이 잦았다. 지난해 10월부터 올 1월까지가 정점이었는데, 세어 보니 제대로 퇴근해서 아무 이상 없이 잠을 잔 것이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였다.”고 전했다. 하지만 그는 “나보다 더 고생하는 것은 중대원들”이라며 묵묵히 버텨낸 중대원들에게 감사를 전했다.
6여단에 분 ‘마라톤 붐’
포2중대에서 나와 차로 조금 이동하자 바로 학교가 자리 잡고 있었다. 부대 담벼락을 따라 하교하는 여학생은 이곳이 군과 국민이 공존하는 섬이라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줬다.
이동 중 도로에서 전투체육 시간을 이용, 마라톤을 하는 한 무리의 해병들이 목격됐다. 노 실장은 변요환(준장) 여단장 부임 이후 부대에 ‘마라톤 붐’이 불고 있다고 설명했다. 여단은 지난 1월 10㎞ 마라톤을 시작으로 점점 거리를 늘려가며 ‘마라톤 챌린지’를 하고 있다. 노 실장은 “백령도 곳곳을 달리며 정취를 느끼고 체력을 키우는 한편, 전우들과 팀워크를 다지는 1석 3조의 효과가 있다”고 자랑했다.
일과 휴식의 완벽한 분리…1인실 구조 생활관
그 길로 스파이크 미사일을 운용하는 포병대대 유도탄소대를 방문했다. 강력한 스파이크 미사일의 위용도 인상적이었지만 더 눈길을 끈 것은 10여 명이 산 정상에 모여 사는 작은 부대 규모였다. 문득 이들의 생활상이 궁금해져 생활관 내부로 들어서니 낯선 풍경이 펼쳐졌다.
소대는 현재 여단이 진행 중인 1인실 구조 생활관 시범 운영 부대다. 여단은 국방부의 생활관 개선 방안을 벤치마킹해 지난 4월 자체적으로 1인실 구조 생활관을 마련, 3개 부대에 시범 적용했다. ‘근무와 휴식을 완벽히 분리해야 한다’는 변 여단장의 철학이 반영된 것.
생활관 내부는 책상과 관물함을 연결한 가구가 벽이 돼 개인의 생활을 보장할 수 있도록 구성돼 있었다. 장병들은 휴식 시간이면 책상에 앉아 자기 계발을 하거나 침대에 누워 눈치 보지 않고 휴식을 취하고 있다고 한다. ‘생활관 막내’ 장준호 일병 역시 책상에서 공부에 열중하고 있었다.
“해병대 입대 전은 물론, 훈련병 때도 이런 생활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은 일과 이후 제 특기는 물론 개인 공부를 편하게 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잠시 공부를 멈춘 채 기자와 이야기를 나눈 장 일병은 이렇게 말하며 엄지를 치켜 올렸다.
송근종(준위) 소대장은 “처음에는 ‘답답하다’는 의견도 있었던 것이 사실”이라며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훨씬 마음에 든다는 반응이 대부분”이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소대장으로서 개인 생활을 보장해주기 위해 더 신경을 쓰게 되는 효과도 있다”고 덧붙였다.
생활관 이름 역시 소대만의 자부심과 특성을 느낄 수 있도록 지어졌다. 해병대 주요 전사(戰史)를 생활관 이름으로 짓는 대대 방침에 따라 소대 생활관은 ‘인천상륙관’이 됐다. 여기에 소대만의 특별한 전통도 있다. 바로 생활반장의 이름을 따는 것. ‘○○○네’, ‘△△△네’라는 별도의 이름을 붙임으로써 생활반장이 자부심과 책임감을 느끼게 하자는 장병들의 아이디어에 따른 것이다.
생활관을 내려오니 장병들이 저녁 식사를 하고 있었다. 마파두부와 돈가스, 어묵탕 등 그럴싸한 메뉴는 소대에 배치된 뒤 임무를 부여받았지만 꾸준한 노력으로 요리 실력을 끌어올린 조리병 덕분이라고 한다. 10여 명이 채 안 되는 장병들이 한 식탁에 모여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식사하는 모습을 보며 ‘밥을 함께 먹는다’는 식구(食口)의 뜻을 다시 한번 생각했다.
녹록지 않은 경계 임무, 지형적 이점과 제도로 이겨내
비교적 작지 않지만, 백령도 역시 섬이다. 도로를 따라 조금 달리자 61대대 하늬소초가 금방이었다. 소초본부에서 다시 차로 단 몇 분 만에 ○○초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24시간 운영되는 ○○초소는 그동안 육지에서 본 초소와 조금 차이가 있었다. 초소 옆에 구축된 비궁·발칸 진지 때문이었다. 상황이 발생하면 장병들은 차로 신속하게 이동, 배치에 돌입할 수 있다. 이는 곧 신속한 대공·대해 상황 대응으로 이어진다. 도로가 잘 정비된 백령도의 장점을 살린 것이다. 또한 이곳이 백령도에서도 손꼽히는 요충지라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하늬소초는 장병들의 최근 감시 중점은 중국 어선에 맞춰져 있다. 물론 우리 배의 조업 여부 등 여러 사항도 챙기고 있다. 초소 안에 있는 레이더를 이용, 해상 상황을 확인하는 한편 초소 옆 취약지역은 항상 육안으로 관측하고 있다는 것이 근무자들의 설명이었다.
지난달 만났던 해병대2사단 장병들과 마찬가지로 하늬소초 장병들의 가장 큰 골칫거리는 다름 아닌 중국 어선. 초소 근무자 백창훈 상병을 비롯한 모든 장병이 중국 어선을 지목했다. 어민인지, 귀순자인지, 혹은 불순한 의도를 가지고 접근하는 이인지 파악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백 상병은 “중국 어선이 이동할 때면 자연스럽게 눈이 커진다”면서 “상황실에 보고하며 어선의 동향을 예의 주시하는 과정은 상당한 스트레스를 동반한다”고 털어놨다. 하지만 그는 “단 한 순간의 실수가 바로 도발로 연결되기 때문에 근무 중에는 계속 돌발 상황에 맞춰 대응 요령을 시뮬레이션 한다”며 “침범 가능성이 큰 중국 어선, 북한의 도발, 귀순자 발생 등 여러 상황에 즉시 대응하기 위해서는 이론과 경험이 어우러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계 작전을 방해하는 요소는 이 밖에도 많다. 해무가 잦은 백령도 특유의 기상도 경계작전을 방해하는 대표적인 변수다. 병력은 한정돼 있고 근무는 계속돼야 하기 때문에 장병들의 피로도가 높을 수밖에 없을 터. 하지만 ‘할 땐 하고 쉴 땐 쉰다’는 여단의 문화가 정착된 덕분에 장병들은 최대한 좋은 컨디션으로 근무에 임하고 있다고 한다.
“눈으로 확인해야 믿는다”…그들이 걷는 이유
해가 기울자 김지운(중위) 소초장을 비롯한 하늬소초 장병들이 야간 해안 정밀 순찰 작전을 위해 부지런히 움직였다. 김 소초장은 탄창과 수류탄 등을 불출하기 전 꼼꼼히 검사했다. 혹시 모를 돌발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 탄통은 자물쇠 2개로 잠겨 있었다. 자물쇠 열쇠는 각 근무자가 하나씩 챙겼다. 안전사고를 막기 위한 오랜 노하우였다.
김 소초장이 근무자가 꼭 알아야 할 숙지 사항을 전달하며 모든 준비가 끝났다. 장병들은 “흑룡(여단)의 자부심! 선봉(대대)의 자랑! 백곰(소초)! 백곰! 파이팅!”이라는 구호를 외치며 안전 작전을 다짐했다. 장병들의 우렁찬 소리를 들으며 기자 역시 ‘오늘도 무사히’라고 기원했다.
야간 해안 정밀 순찰을 나선 장병들과 함께 걷는 길. 이들은 철책을 돌며 배수로를 점검하고 해안에 수상한 부유물이 있는지 확인했다. 통문·배수로 등 주요 지점은 침투 흔적이 있는지 꼼꼼히 살폈다.
이창규 하나는 “곳곳에 열 영상 감시장비(TOD)가 있어 대부분 상황실에서 확인할 수 있지만, 이를 100% 신뢰해서는 안 된다. 눈으로 확인해야 하는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이 하사의 말처럼 한참을 걷다 보니 사각지대와 지형상 철책을 설치할 수 없는 곳 등이 눈에 띄었다. 특히 배수로는 사람이 오가기 쉬운 구조라 면밀한 감시가 필요하다는 것을 실감했다.
부대, ‘철새의 집’이 되다
다음 날 새벽, 어둠이 짙게 깔린 61대대 염수개소초를 방문했다. 가장 특이한 것은 어둠 속에서 들리는 요란한 괭이갈매기의 울음소리였다. 어둠을 가득 채운 새소리는 무서울 정도였다. 도대체 얼마나 많은 개체가 서식하는 것인지 짐작도 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 역시 염수개소초 장병들에게는 일상에 불과했다. 해안 정밀 순찰을 준비하던 최성은 상병은 “괭이갈매기 소리는 밤낮을 가리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아마 조금 있다가 해가 뜨면 엄청난 수를 보고 깜짝 놀랄 수도 있습니다. 그나마 괭이갈매기가 4~8월만 이곳에 머무는 철새라는 점이 위안입니다. 처음엔 조금 거슬리지만 신경 쓰지 않는다면 생활에 큰 지장은 없습니다. 이제는 철새도 부대의 일부라는 생각까지 듭니다.”
최 상병의 말 그대로 살짝 날이 밝아오자 엄청난 장면을 목도할 수 있었다. 소초 옆 절벽을 하얗게 덮은 괭이갈매기가 쉴 새 없이 주변을 날아다니는 모습을 보자 잠이 확 달아났다.
지루한 반복의 끝에 기다리는 것
염수개소초가 담당하고 있는 지역은 평탄한 해안이 아닌 섬 동북단의 꽤 가파른 산지였다. 소초의 순찰 구역 4㎞ 가운데 1.2㎞ 구간을 동행하기로 했다. 숨을 헐떡이며 산을 오르던 중 고요한 새벽을 깨우는 엔진 소리가 들렸다. 새벽부터 나와 예초기로 순찰로를 개척하고 있던 진태준 하사가 굉음의 주인공이었다.
이제 막 5시가 넘은 시간, 진 하사는 구슬땀을 흘리며 순찰로 개척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소초 간부들은 비만 오면 쑥쑥 자라는 잡초를 제거해 소초원들이 안전하게 순찰을 할 수 있도록 돌아가며 새벽 마다 순찰로로 향한다고 한다.
드디어 도착한 정상. 가파른 절벽 위에 초소가 세워져 있었다. 초소 아래로 내려다 보이는 바다는 해무로 가득해 도무지 끝이 보이지 않았다. 문득 지난 1년 동안 장병들을 만나며 가장 많이 들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군 생활의 끝이 보이지 않는다”는 말이었다.
이제 희미해진 20여 년 전의 기억을 돌이켜보면 장병들의 말은 단순한 투정은 아니었다. 하지만 결국 모든 일에는 끝이 있는 법. 1년 전 ‘이게 끝이 나기는 할까’라는 생각으로 시작한 DMZ 순례도 어느새 이곳이 마지막이라는 감회에 젖을 쯤, 살짝 안개가 걷힌 하늘 아래로 바다가 모습을 드러냈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 그 지루함을 이겨낸 끝에는 반드시 너른 바다가 찾아온다. 그리고 다시 새로운 항해가 펼쳐질 것이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걷다 보니 순찰의 종착지인 산 아래 해안 통문에 도착했다. 통문 밖으로는 해양 쓰레기가 가득했다. 철책 앞에 나뒹구는 플라스틱병에는 중국어가 적혀 있었다. 해양 쓰레기는 국적을 가리지 않는다. 심지어 북한에서 온 쓰레기도 있다고 한다. 이런 이유로 해양 쓰레기를 연구하기 위해 백령도를 방문하는 학자들도 있다는 것이 김 소초장의 설명이었다.
그런데 왜 이렇게 쓰레기를 방치하고 있을까? 이유는 간단했다. 아직 해변에 남아 있는 지뢰 때문에 적극적인 환경정화가 어렵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여단은 지뢰 유실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해 주기적으로 지뢰제거 작전을 펼치는 중이다.
‘역대급 전차 기동훈련’을 목도하다
염수개소초에서 다시 63대대 전차중대로 장소를 옮겨 K1E1 전차 기동훈련을 참관했다. 현재 여단은 전자전 능력이 강화된 K1E1 전차를 다수 보유하고 있다. K1E1 전차는 기존 K1 전차에 피아식별장치와 후방 카메라를 더한 개량형이다. 특히 포수 조준경의 성능이 크게 개선된 것이 특징이다.
작은 섬에 전차가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는 의문을 품을 수 있지만 이는 오산. 적이 상륙할 경우 이를 요격하고 역습에 나서기 위해서는 전차가 필요하다는 것이 여단의 설명이었다. K1E1 전차는 백령도를 지키고, 적에게 ‘카운터 펀치’를 날리는 중요한 전력이었다.
전날에 이어 안내를 담당한 노 실장은 “K1E1 전차는 물론 장병들의 생존·기동성 강화를 위해 한국형 상륙돌격장갑차(KAAV)도 갖추고 있다”고 소개했다.
“백령도를 비롯한 서해 도서는 대공·대해상, 대침투, 경계 등 모든 작전을 동시에 펼쳐야 하는 것이 특징입니다. 이에 따라 다양한 전력을 구비해 모든 상황에 대응할 수 있는 힘을 갖춰야 하죠. 이를 위해 여단은 백령도에 함께 주둔하는 해군 전진기지와 공군 관제·방공부대, 육군 항공부대와 힘을 합쳐 합동성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노 실장과 이야기를 나누던 중 훈련이 시작됐다.
“하나차, 현 시간부로 공격! 둘차는 하나차를 후속하여 즉시 공격에 나설 것!” 중대장의 지휘에 맞춰 전차 2대가 굉음을 내며 달려가기 시작했다. 영내 기동훈련이라고 해서 ‘슬슬 한 바퀴 정도 돌겠지’라고 생각한 것은 오산. 주민들을 배려하기 위해 영내에서 하고 있지만 중대는 절대 대충 훈련하는 법이 없다고 한다.
각 전차는 사주경계를 위해 포신을 계속 돌리며 전력질주 했다. 전차가 ‘뫼비우스의 띠’처럼 코스를 왕복하는 동안 전차장은 K6 중기관총으로 계속 사각을 경계했다. ‘지축을 울린다’는 상투적인 표현을 생생히 체감할 수 있었다. 먼지를 내뿜으며 돌진하는 전차들의 모습은 그동안 취재하며 본 그 어떤 전차 기동 모습보다 역동적이었다. 훈련이 끝나자 절로 박수가 나왔다.
인상적인 훈련이 끝나고 전차를 둘러보던 중 조종수 덮개에 특이한 그림이 그려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1호차는 ‘내 생명 전차와 함께’라는 문구와 전사의 얼굴, 도끼 2자루가 그렸고 2호차는 검은 호랑이를 새겨 넣었다.
각 단차마다 특징을 담아 그림을 그려 넣자는 아이디어에서 비롯된 전통이라고 한다. 별것 아닌 이벤트일 수 있지만, 중대원들의 소속감과 자부심이 한층 커졌다는 것이 중대의 설명이었다.
중대는 섬이라는 지형을 극복하고 원활하게 전차를 운용하기 위해 승무원들에게 기본적인 정비 교육을 하고 있다. 중대의 매일은 교육과 훈련의 반복이었다.
유격부대원부터 천안함 46용사까지…백령도에 서린 호국의 혼
부대 방문을 마치고 백령도를 대표하는 전사적지를 둘러보기로 했다. 먼저 백령도 인근에서 산화한 천안함 46용사를 기리는 ‘천안함 46용사 위령탑’으로 향했다.
2010년 3월 26일 21시 22분 천안함은 백령도 서남방 2.5㎞ 해역에서 북한의 감응어뢰에 의해 함수와 함미로 절단돼 침몰했다. 안타깝게 희생된 천안함 46용사의 넋을 기리는 위령탑이 이곳에 세워진 것은 당연한 일.
우리 군은 북한의 만행을 기억하고 천안함 46용사의 숭고한 희생을 영원히 기억하기 위해 피격 현장이 내려다보이는 산지에 위령탑을 세웠고, 지금도 군은 물론 각계각층의 국민이 틈틈이 이곳을 찾아오고 있다.
다음은 동키(Donkey) 부대 막사. 동키부대 막사는 6·25전쟁 당시 서해를 둘러싼 치열한 대립을 상징하는 오래된 전사적지다.
동키부대는 1951년 1·4후퇴 이후 백령도로 철수한 황해도지구 피난민 청년 1000여 명으로 구성된 3개 대대 규모 무장의용대다. 동키부대에 대한 정보를 입수한 미군은 백령도에 윌리엄 에이블(William Able) 기지를 창설해 이들과 연계했다.
동키부대라는 이름의 유래는 정확하지 않지만 미군이 나눠준 AN/GRC-9 무전기의 수화기가 당나귀 귀 같았다는 설, 참을성 많고 충실하며 싸움을 잘하는 당나귀에 빗댄 표현이라는 설 등이 있다.
동키부대는 적 후방에서 동조자를 규합하고 첩보 수집 등을 전개했다. 이들은 적 부대 기습, 수송·보급 교란, 정보·심리전 등 다양한 특수 임무를 수행했다. 이들의 활약상을 눈여겨본 미군은 윌리엄 에이블 기지를 ‘레오파드(Leopard) 사령부’로 개편해 본격적으로 동키부대를 지원했다.
동키부대 막사는 섬 중앙에서 약간 동쪽에 자리 잡고 있다. 우거진 수풀 속에서 찾아낸 막사는 돌과 철판으로 구성된 낡고 허름한 건물이었다. 과거 대한민국을 위해 열악한 환경 속에서 싸워온 동키부대원들의 투혼이 세월의 흐름을 거스르며 남아 있는 듯 했다.
막사 앞에는 동키부대원들이 사용했던 우물 ‘백령정’도 있다. 백령정은 동키부대원은 물론 지역 주민들도 함께 사용한 민군 협력의 상징이기도 하다.
계속되는 일상의 연속…모두가 ‘살아간다’
취재 마지막 날인 5일 여정의 끝을 짓기 위해 백령도 서쪽 최북단 두무진으로 가던 중 여단 장병들이 도로를 통제하는 모습을 봤다. 무엇을 하는지 물어보니 61대대 화기중대가 박격포 실사격을 하고 있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백령도는 늘 훈련이 끊이지 않는 섬. 6여단 장병 누구 하나 임무 수행에 소홀함이 없다는 사실을 새삼 느꼈다.
발길을 돌려 잠시 훈련 모습을 지켜봤다. 대대는 디지털화된 신형 81㎜ 박격포 사격을 하고 있었다. 조금 떨어진 해안에서 관측한 좌표를 전달받자 장병들은 절차에 따라 물 흐르듯 사격했다. ‘퉁’하는 소리와 함께 탄피가 발사된 뒤 수 초 후. 멀리서 포연이 피어올랐다.
17세기부터 유래를 찾아볼 수 있을 정도로 박격포는 상당히 단순하고 어찌 보면 원초적인 화기다. 하지만 현대전에서도 여전히 개량돼 다양한 쓰임새로 활용되는 ‘가성비 화기’이기도 하다. 박격포 운용의 중요성을 깊이 인식하고 있는 중대는 장병들의 숙련도 향상을 위해 훈련을 거듭하고 있었다.
중대가 훈련에 몰두하는 동안 다른 부대 장병들도 백령도 곳곳에서 일과를 수행하고 있었다. 장병들은 지방자치단체의 요청을 받아 민·관·군 합동 해양정화 활동을 펼치는가 하면, 낡은 철책을 보수하며 하루를 살아가고 있었다.
여정의 끝, 그리고 다시…
장병들을 뒤로하고 두무진항에 도착했다. 두무진은 서해 최북단인 백령도에서도 최서북단에 위치하고 있다. 밀려오는 파도 소리와 두런두런 한담을 나누는 어민들. 두무진항에서는 나른한 항구의 낭만을 느낄 수 있었다.
항구 옆 숲길을 따라 드디어 두무진 끝자락에 도착했다. 여단은 1992년 이곳에 통일기원비를 세웠다. ‘우리는 이곳에 온 겨레의 간절한 소망과 뜨거운 해병대의 혼을 담은 통일기원비를 세워, 영광된 통일 조국의 그날을 기원하고자 합니다.’라는 문구에서 당시 장병들의 간절한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두무진에 설치된 마지막 철책 앞에 서니 그동안의 여정이 영화처럼 스쳐 갔다. 두무진 끝 포토존에 마련된 작은 벤치 아래 앉아 마지막 메모를 적으며 상념에 잠겼다.
그동안 DMZ 안에서 많은 것을 보고, 많은 이들을 만났고, 많은 것들을 생각하고, 많은 것들을 느낄 수 있었다. 수많은 장면 속에 새겨진 명확한 사실은 아름다운 대한민국, 아름다운 DMZ를 지키기 위한 우리 장병들의 노력이 깃들지 않은 곳이 없었다는 점이었다.
이는 백령도 역시 마찬가지. 3일 동안 지켜본 여단 장병들은 긴장 속에서 일과를 반복하고 있었다. 하지만 대한민국을 지키는 힘은 이 단조로운 일과의 반복에서 기인했다. 지난 1년 동안 기록한 우리 장병들의 노고는 우리가 누리는 일상이 앞으로도 계속되리라는 것을 강하게 확신할 수 있는 근거가 됐다.
서해 최북단에서 수첩에 적은 마지막 메모. ‘DMZ라는 경이로운 환경 속에서 매일을 살아가는 이들을 다시 만날 수 있길….’
△ 백령도 전진기지에는 해군 함정 및 전투근무지원정과 해병대 고속단정(RIB)이 부두에 계류돼 있었다. 마침 RIB 해상정찰이 예정돼 있어 임무 현장에 동행하기로 했다. 6여단은 오전, 오후 하루 두 차례 고속단정을 활용한 정밀 정찰을 실시한다. 육상 감시장비로 확인이 어려운 백령도 해안 곳곳을 육안으로 확인하기 위한 차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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