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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 안보/육군

3보병사단 3.7완전작전

by 구석구석 2024. 4.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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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점타격 … 불법 총격 도발에 즉각 응징 명령
초전박살 … 상대 GP에 있던 적군 29명 사망

1973년 3월 7일 북한군 기습 사격
우리 군 4시간15분 동안 대응 포격
가장 두려운 존재로 백골부대 인식
매년 ‘3·7완전작전 결의행사’ 개최
선배 전우들의 정신 이어나가

4시간15분 동안 사정없이 내리꽂히는 포탄. 악몽에서나 겪을 법한 이 장면이 정확히 51년 전 비무장지대(DMZ) 내 북한군 감시초소(GP)에서 일어났다. 북한군의 어설펐던 도발의 대가는 혹독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강력한 맞대응으로 적의 도발 의지를 완전히 꺾어버린 육군3보병사단의 ‘3·7완전작전’이다. 적의 도발에는 응징만이 답이라는 ‘즉각, 강력히, 끝까지’ 원칙이 완벽하게 이뤄졌던 그날을 복기해본다. / 국방일보 글=조수연 기자/사진=부대 제공

지난 1월 1일 강원도 철원군 문혜리 포병사격장에서 진행된 육군3보병사단 새해 첫 포탄사격 훈련에서 K9·K55A1 자주포들이 화염을 내뿜으며 포탄을 발사하고 있다.

적진에 떨어진 포탄 74발에 달해

1973년 3월 7일 강원도 철원군 3사단 작전구역 내 DMZ. 훼손된 군사분계선(MDL) 푯말을 수리하기 위해 DMZ에 진입한 3사단 장병 7명에게 갑자기 총탄이 쏟아졌다. 북한군 최전방 감시초소(GP)에서 기습적인 불법 총격 도발을 감행한 것.

즉시 우리 군 GP와 일반전초(GOP)에서 박격포 등으로 대응사격을 했지만, 북한군의 도발은 멈추지 않았다. 당시 3사단장이었던 고(故) 박정인 장군은 다친 채 고립된 우리 장병들을 구출하고, 적을 즉각 응징할 것을 지시했다. 적 도발 원점에 직접적인 포병사격을 명령한 것.

이에 오후 2시15분부터 6시30분까지 아군의 대응사격은 무려 4시간15분 동안 이어졌다. 적진에 떨어진 포탄은 74발(고폭탄 17발·백린탄 57발)에 달했다. 계속되는 집중 포격에 도발을 자행한 북한군 GP가 화염에 휩싸이며 무너져 내렸고, 총성도 잦아들었다. 상처를 입은 전우들도 무사히 구출했다.

한 치의 망설임 없는 원점 타격으로 부대와 장병들의 사기는 하늘을 찌를 듯했다. 사단은 이를 ‘3·7완전작전’이라고 이름 붙였다.

1975년 3월 5일 귀순한 북한군 유대윤(가운데) 소위.

2016년 88세를 일기로 작고한 박 장군은 북한군의 도발 원점인 GP 포격을 명령했을 뿐만 아니라 사단의 모든 트럭이 라이트를 켜고 DMZ 남방한계선까지 돌진하도록 했다.

완전작전 2년 뒤인 1975년 3월 귀순한 북한군 유대윤 소위는 “북한군 GP에 포탄이 정확히 떨어져 29명 전원이 사망했다. 그날 이후 북한군은 3사단을 가장 두려워하는 부대로 생각했다”며 “당시 3사단 정면의 북한군 사단은 교체됐고, 해당 지휘관은 문책당했다”라고 증언했다.

“우리는 살아도 백골! 죽어도 백골!”

사단은 3·7완전작전의 빛나는 전통을 계승하기 위해 매년 결의행사를 개최하고 있다. 적이 가장 두려워하는 백골부대로 자리매김한 그날의 기백을 기억하기 위함이다.

지난 7일에도 백골포병여단 예하 대대에서 ‘3·7완전작전 51주년 즉·강·끝 결의행사’가 열렸다. 장병들은 행사를 통해 강력한 대응으로 적을 격멸한 선배 전우들의 백골정신과 신화적 완전작전 전통을 이어갈 것을 다짐했다.

 

3·7완전작전을 지휘했던 박정인 사단장.

대응사격 시연에는 포병 마일즈 장비를 장착한 K55A1 자주포가 투입됐다. 장병들은 행사에 참석한 선배 전우들 앞에서 과학화·현대화된 훈련을 선보였다. 적 도발 상황이 전파되고, 화력대기태세가 격상되자 장병들은 그동안 훈련한 대로 일사불란하게 포상에 전개했다. 장병들은 사격 절차에 따라 적 도발 원점을 ‘즉·강·끝’ 응징하는 것으로 훈련을 마무리했다.

대응사격을 마친 장병들은 “살아도 백골! 죽어도 백골! 필사즉생! 골육지정! 백골! 백골! 파이팅!”을 외치며 완전작전 전통 계승을 결의했다.

철책점검

빈틈없는 경계태세로 조국 수호 앞장

3사단은 1947년 전군 최초의 사단급 부대인 조선경비대 제3여단으로 창설됐다. 이후 1949년 5월 12일 육군본부 일반명령 15호에 따라 사단으로 승격됐다.

3사단은 ‘백골부대’라는 별칭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6·25전쟁 발발 전 월남해 자원입대한 청년들이 ‘죽어 백골이 돼서라도 끝까지 조국을 수호하고, 두고 온 북녘땅을 자유의 품속으로 되찾고야 말겠다’는 각오로 철모 좌·우에 백골을 그려 넣고 참전한 것이 기원이 됐다.

포사격훈련

전 장병이 백골정신으로 무장했기 때문일까? 사단이 기록한 DMZ 완전작전 역사는 화려하다. DMZ 군사분계선을 월경해 침투한 적 3명의 퇴로를 차단한 뒤 수색부대를 투입해 전원을 사살한 ‘5·22완전작전’, 적이 조준사격을 감행하자 즉시 대응사격으로 퇴각시킨 ‘7·16완전작전’도 사단의 자랑거리다.

사단은 정전협정 체결 이후 중부전선 최전방에서 무결점 경계작전을 수행하고 있다. 총 39회의 적 침투 도발을 현장에서 종결하고, 139명을 사살했다.

1950년 10월 1일 전군에서 최선봉으로 38선을 돌파한 부대라는 기록도 갖고 있다. 경북 포항에 주둔 중이던 3사단은 강원도 양양까지 330㎞를 진격했고, 사단 맹호연대가 최선봉에서 38선을 돌파했다.

김상혁(중령) 백골포병여단 대대장은 “더 빈틈없고 강인한 대비태세로 적이 도발하면 처절하게 응징해 뼈저린 후회를 안겨줄 것”이라며 “이를 토대로 ‘즉·강·끝’ 백골포병의 명성을 이어가겠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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