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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방곡곡/경기한강유역

양평 사나사 상원사

by 구석구석 2023. 10.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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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나사와 상원사는 경기도 양평군 용문산 자락에 위치한 사찰로써 대한불교조계종 제25교구 봉선사의 말사이다.

두 사찰을 품고 있는 용문산은 해발 1,157m의 산으로, 한강 상류에 위치하고 있으며 경기도에서 네 번째로 높은 산이다. 본디 이름은 미지산(彌智山)이었으나, 조선 태조 이성계가 용이 날개를 달고 드나드는 산이라고 해서 용문산으로 바꿔 불렀다는 설도 있지만, 남동쪽 기슭에 신라 신덕왕(913년) 때 창건된 용문사가 위치하였으므로, 용문산으로 불렸다는 설이 좀 더 유력한 것으로 보인다.

용문산에서 바라본 남한강

두 사찰은 현재 양평군에 속하지만, 조선시대까지(조선과 대한제국을 나누면) 사나사는 양근군, 상원사는 지평현에 위치하여 각각 지역을 대표하는 사찰이었다. 1908년 양근(楊根)과 지평(砥平)이 행정상 통합되고 공평하게 한 글자씩 따서 양평(楊平)이란 지명이 지어졌다.

‘세종실록지리지’에 ‘용문산이 군 동쪽에 있으니, 지평 서쪽 경계에 걸쳐있다’는 기록처럼 용문산은 양근과 지평으로 양분되어 있던 그 한가운데 경계 지점에 위치한다. 양평 전체를 굽어보며 그 지맥이 사방으로 뻗어 오랜 시간동안 많은 사찰이 자리잡고 있었으나, 현재 전통사찰로 사나사, 상원사, 용문사가 남아있다.

사나사

◇ 나말여초 여엄이 창건하고 고려말 보우에 의해 중흥한 사나사

"기러기, 토마토, 스위스, 인도인, 별똥별, 사나사... 제 이름은 사나사입니다."

대한민국에서 유일한 이름을 가진 사나사(舍那寺)는 용문산의 서쪽 지맥인 백운봉과 함왕봉 기슭에 위치한다. 923년 선종계 승려로써 왕건의 국정을 자문한 대경국사 여엄이 양평 보리사에 머물 때 제자 융천과 함께 사나사를 창건하였다고 전한다.

‘봉은사본말사지’기록에 의하면 창건 당시 비로자나불과 오층석탑을 조성했으며, 주불은 비로자나불(毘盧舍那佛)이었다. 비로자나불에서 사나사의 이름이 유래되고, 석가모니를 본존불로 모신 대웅전이 아닌 비로자나불을 모신 대적광전이 현재에도 사나사의 금당으로 자리하고 있다.

1367년 공민왕의 왕사였던 원증국사 보우(普愚, 1301~1382)가 말년에 머물면서 140여칸 규모로 크게 중창되었다. 보우가 입적한 뒤 나라에서 ‘원증’이라는 시호가 내려지고 살아생전 보우와 인연이 깊었던 사나사, 청송사, 태고암, 양산사 등에 사리를 나누어 탑에 봉안하였다. 사나사원증국사탑과 사나사원증국사석종비가 그런 연유에서 세워져 경기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태고 보우에 대해서는 전통사찰 9 태고사에서 자세히 다루어졌다.)

사나사원증국사석종비는 보우가 입적한 4년 후에 세워졌는데 정도전(鄭道傳 1342~1398)이 글을 짓고 의문이 해서체로 썼다. 일반적으로 제자들이 비를 건립한 것과 달리 사나사원증국사석종비는 양근지역민들이 주축이 되어 비를 세운 것이 특이하다. 아마 보우의 덕으로 현에서 군으로 승격된 것이 지역민에게 큰 감동을 준 것이 영향을 주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비는 장방형의 비좌 위에 비신을 놓고 장방형 돌기둥을 세워 비를 고정하고 위에 덮개돌은 얹은 형식이다. 여주 신륵사 보제존자석종비, 대장각기비와 유사하다. 의병전쟁과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총탄으로 인해 크게 훼손을 입어 현재 비각을 세워 보호하고 있다.

사나사 경내를 둘러보면 계곡을 끼고 전각 중에 다른 사찰에서 보지 못한 함씨각이 있다. 양근함씨의 시조인 함왕 혹은 고려의 개국공신인 함규(왕건에게 성을 하사받아 ‘왕규’라 알려져 있다)를 모신 사당이다. 사나사의 창건과 발전에 이 지역의 유력호족인 양근함씨의 영향이 있었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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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의 후삼국 통합과정에서 왕건은 양근의 호족이었던 함규를 포섭하고, 선종계인 여엄으로 하여금 사나사의 건립하게 하였다. 이 과정에서 여엄과 사나사는 지역 내 유력호족인 함규로 대표되는 양근 함씨의 지원을 받았고 양근함씨의 원찰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사나사 건립에 영향을 준 양근함씨의 영향력은 함왕혈과 함왕성에서 짐작해볼 수 있다. 함왕혈은 사나사 일주문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계곡 바위굴이다. 삼한시대에 부족을 이끌 지도자가 나타나기를 바라며 하늘에 제사를 지냈는데 이때 함왕혈에서 함왕이 될 사내아이가 태어났다고 한다. 함왕은 용문산 줄기의 험준한 지형을 이용해 자연석으로 성을 쌓고 주변을 정복하였다. 함왕이 쌓은 성을 ‘양근성’, ‘함씨대왕성’, ‘함공성’으로 불렸다.

상원사

◇ 정확한 창건연대를 알기 어렵지만, 관음보살이 나타난 상원사

"상원사, 상원사 동종 알아요....하지만 달라요"

상원사라 하면 오대산에 위치한 상원사가 먼저 떠오른다. 상원사 동종, 세조가 왕림한 사찰... 용문산 상원사와 오대산 상원사이 공유하는 키워드가 있긴 하다. 하지만 양평에 위치한 상원사는 오대산 상원사와 분명히 다른 역사를 담고 있다.

상원사는 정확한 창건 시기는 알려지지 않았으나 경내에 현존하는 석조물을 미루어 볼 때 고려초에 초기로 추정된다. 보우가 상원사에 머물며 수행하였고, 무학대사가 왕사를 그만 둔 뒤에 잠시 머물렀다고도 전해진다. 용문사정지국사비에 의하면 조선 태조대에 조안이 상원사를 중건하였다고 적혀있다. ‘단종실록’은 효령대군이 범종을 만들어 기증하고 수도하였고, 효령대군을 비롯한 왕실의 원찰 역할을 하였다고 한다.

관음현상기 사진=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그 외 상원사와 관련된 가장 유명한 이야기 중 하나가 ‘신증동국여지승람’에 기록되어 있는 세조와 관련한 내용이다. 1462년(세조8년)에 세조가 절에 행차하여 관음보살을 친견(親見)하고 종교적인 기적에 크게 기뻐하면서 쌀 200석을 내리고, 전국에 죄수를 풀어주면서 절을 크게 중창하였다는 것이다. 이러한 내용은 최항의 ‘관음현상기’ 기술되어 있다.

이 같은 기록들을 종합해보면 상원사는 고려시대 건립되었으며 조선전기 왕실과 밀접한 관련을 가지며 크게 중흥했던 것으로 보여진다.

다만 현재 굽이굽이 이어진 계곡을 따라 오르다 보면 가파른 경사지에 세워진 상원사를 만나게 되는데 시멘트로 지어진 전각 등 대부분 현대에 조성된 것으로 보여져서 전통사찰인 상원사에 대한 의문이 들기도 한다.

양평에서 찍은 1907년 정미의병 모습 사진=데일리메일

◇ 1907년 타버린 사나사와 상원사

"우리는 어차피 죽게 되겠지요. 그러나 좋습니다. 일본의 노예가 되어 사느니 자유민으로 죽는 것이 훨씬 낫습니다"

이 사진은 항일의병과 관련한 교과서나 드라마에 자주 등장한다. 1907년 의병전쟁을 취재하기 위해 영국신문 기자인 F. A. 멕켄지(Fredric A Mckenzie, 1869~1931)가 원주, 제천, 충주 등에서 의병을 찾던 중 양평의 의병 소식을 듣고 양평에 왔다.

이곳에서 머무는 동안 만난 의병장의 인터뷰와 의병 모습을 ‘조선의 비극(THE TRAGEDY OF KOREA)’이란 기사에 담았다.

멕켄지가 양평에서 만난 의병들은 누더기 한복을 입은 사람, 군복을 입은 사람, 한복에 군복 바지를 입은 사람 등 다양한 인물들이 있었다. 일제의 침탈에 생업을 버리고 싸움을 택한 의병들의 손에 든 총은 제각각이며 어느 것 하나 성한 것이 없었다고 한다.

파괴된 사나사 철조좌상(1916년) 사진=국립중앙박물관

일제에 의한 고종의 강제퇴위와 군대해산을 계기로 봉기한 정미의병에서 용문산은 양평 의병활동의 중심에 서게 되었다. 용문산은 일본군을 상대로 게릴라전을 치르기에 알맞은 지형과 지세를 갖추고 있었다. 또한 용문산에 위치한 사찰들이 항일의병의 근거지로써 이들의 활동을 지원한 것도 용문산을 근거지로 할 수 있었던 중요한 이유였다. 이들 사찰의 가치와 의미는 오래된 역사와 문화유산을 품고 있는 것을 넘어, 나라와 백성들의 어려움을 함께하였기에 더욱 큰 의미가 있었던 것이다.

나라를 지키기 위해 들불처럼 일어났던 정미의병은 결국 일본군의 대대적인 탄압으로 진압되었고 그 과정에서 의병을 도왔던 사나사와 상원사는 모두 불타버렸다.

이 시기를 거치면서 완전히 파괴되어 현재는 망실되었다. 상원사는 법당을 제외하고 모든 전각이 불탔다. 겨우 남은 상원사 동종은 곧 서울 남산 소재의 일본 절인 히가시혼간지(東本願寺)에 800원에 팔리는 등 수난 속에 100여 년을 이리저리 옮겨지다 2010년 상원사로 돌아오게 되었다.

근래에 사나사와 상원사는 전각들은 다시 짓고, 옛 모습을 되찾기 위해 애쓰고 있다.

매년 용문산은 등산객뿐만 아니라 사나사계곡과 상원사계곡을 찾는 피서객이 많았다. 무더운 여름을 지나 선선한 가을에 접어들며 단풍이 들기 시작한 계절로 많은 관람객들이 찾을것이며, 이왕 찾는 김에 경내를 둘러보며 사찰의 정취와 문화유산을 찾으면서 함께 의병들이 사나사와 상원사에 남겼던 흔적을 찾아 함께 느껴보는 것도 어떨지 추천해본다.

/ 중부일보 2022.8 송유진 양평군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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