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1보병여단 향로봉부대
창설초기에는 육본직할의 경보병연대였으나 현재 동부전선을 담당하고 있는 12사단(을지부대) 예하부대로 직할대를 비롯하여 1대대(향로봉대대. 1~4중대) 2대대(단결대대. 5~8중대) 3대대(대곡리대대. 9~12중대)가 있으며 예전에는 GOP를 순환근무하였으나 현재는 2대대가 전담하고 있다.
2008년 37연대에 향로봉 작전지역을 넘겨주고 2010년대 들어 37연대의 일반명칭이었던 상승독수리연대로 명칭을 바꿨다. 2019년 부대개편으로 다시금 37연대로부터 향로봉 작전지역을 인수하면서 원래의 명칭이던 향로봉을 다시 사용하게 되며 종전의 주둔지는 52연대에 인계하였고 2020년도 국방개혁에 따라 여단으로 개편되었다.
ㅇ1970년대 향로봉에서 휴가신고를 하고 출발하였던 병사가 폭설에 파묻혀 죽은 일도 있을 정도로 눈이 정말 많이 내린다. 2006년 겨울에는 3일간 내린 누적 적설량이 2m를 넘긴 경우도 있었다. 많은 적설량 때문에 향로봉으로 향하는 전봇대에는 10cm 단위로 눈금이 표시되어 있다. 한 겨울 영하 34도, 체감온도 영하 57도를 기록한 경우도 있으며 보통 첫눈은 10월, 마지막 눈은 5월에도 경험한다.[나무위키]
1996년 강릉에 잠수함으로 침투한 무장공비침투사건때 수색에 참가하여 병장1명이 전사했다.
비무장지대(DMZ)에 침투한 무장간첩을 소탕하고 전사한 고 최병연(1948. 2.10∼1971. 8. 16)상병
1971년 8월 16일 보병 제12사단 51여단 수색중대 소총수로서 대원 9명과 함께 비무장지대에서 지정된 수색로를 따라 수색정찰 임무를 수행하던 중 수상한 발자국을 발견하자 무장간첩의 침투로 판단하고 즉각적인 작전을 전개했다.
최 상병(당시 일병)은 대원들과 함께 재빨리 대형을 갖춰 적의 예상 도주로를 차단, 수색을 벌여 바위 뒤에 은신 중이던 괴한 2명을 발견하고 일제히 소총과 수류탄으로 공격했다. 그러나 이들이 갈대숲으로 도망치자 뒤편에 있던 최 일병이 위험을 무릅쓰고 과감하게 앞으로 돌진, 정확한 사격으로 갈대숲에 숨어있는 적 두 명을 그 자리에서 사살했다. 그리고 다시 총구를 돌려 사격자세를 취하려는 순간 근처에 은신 중이던 또다른 적의 기습사격을 받고 전사했다.
최 일병의 이같은 용맹과 살신성인에 힘입은 아군 수색조는 예상 도주로를 철저히 차단, 나머지 무장간첩 3명을 일망타진하는 데 성공했다. 정부는 최 일병의 전공을 기려 충무무공훈장 함께 1계급 특진을 추서했다.
/ 새전북신문(http://www.sjbnews.com) 김동욱기자 2008.3.
■ 51여단 / 2대대 단결대대 GOP대대
GOP로 전입되면 중대본부에서 1박하며 교육을 받고 각 소초로 흩어지게 되죠.
5중대(송어달중대)는 41, 42, 43소초에서 생활하는데 중대본부는 42소초에 있다. 42소초에 통문상황실이 있어 8중대원들도 함께 생활한다.
ㅇ51여단의 4천계단은 신이 버린 땅으로 표현할 수 있다. 12사단을 상징하는 향로봉, 을지전망대와 더불어 삼대 축이다. 최동단 22사단에 인접한 △△소초일대는 보급을 모노레일로 할 정도로 열약하다. 51연대 GOP 평균 경사는 50도 이상이다.
무엇보다 △△소초가 속한 사천리중대의 소초와 소초 사이 특정구간은 4800여개 계단으로 이뤄졌고 이 구간은 평균 경사가 70도 이상이고 일부구간은 수직에 가깝다. 병사들은 이를 4천계단으로 칭한다. 이곳에 소초에 투입되면 병사는 물론 간부 역시 평균 6~8kg 체중이 빠진다. 도로를 닦지 않아 차로 접근할 수 없는 소초가 몇 군데 있기는 한데, △△소초처럼 완전히 산속에 고립된 경우는 유일하다.
4천계단은 워낙 유명하기에 이따금 언론이나 각 GOP 소초에 전입온 신병들이 교육을 위해 오기도 하며 군견도 낙오된다고 한다. GOP 경계작전 지형은 52연대 GOP보다 험하다. 날씨가 좋으면 금강산을 볼 수 있다. [나무위키]
ㅇ4천개 계단 올라 갈 수가 없으니 면회 한번 못갔죠. 면회를 가면 병사가 내려와야 하는데 누가 자식 그 많은 계단 오르락 내리락 고생을 시키려고 면회를 가겠어요. 아들도 그 계단 한번 오르고 내리면 뒷날까지 몸살이 난다고 하던데 휴가를 한번 와도 그렇게 내려와야 하더군요.
지금처럼 휴대폰도 없고 전화통화도 줄 서서 시간 주어져야만 하고.. 휴가때만이라도 마음 편하게 있다 가게 해야죠. 자식들이 부모 걱정할까봐 군대서 안좋은 일은 이야기도 안한 것 같아요. 군대서도 그렇게 교육 시키는건지... 젊은 애들 갇혀 있는게 정말 안쓰럽죠. / 군대를 보낸 어느 어머니의 글
ㅁ 상승향로봉여단 단결대대 GOP근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길을 걸어야 합니다. 자욱한 안개를 뚫고 앞으로 나아간다는 것은 무엇보다 큰 두려움입니다. 그래도 걸어야 합니다. 우리가 서 있는 이곳이 나와 내 가족, 그리고 전우를 지켜내는 방벽(防壁)이기 때문입니다. 두려움을 떨쳐내며 내딛는 발자국이 곧 내일의 평화입니다.
그렇지만 마냥 두려운 것만은 아닙니다. 가야 할 곳을 알려주는 한 줄기 등불, 함께 걷는 전우가 있기에 깊은 밤 다시 걸음을 옮깁니다.
우리는 매일 밤 각자의 방법으로 두려움을 이겨내고 있습니다. 다시 아침이 밝아오고, 떠오르는 태양과 청량한 바람이 어둠과 안개를 몰아낼 때, 두려움을 극복한 우리 앞에 비무장지대(DMZ)의 새로운 하루가 모습을 드러냅니다. / 국방일보 2022.9 글=맹수열/사진=조용학 기자
DMZ는 오랜 시간 경외의 대상이었다. 적과 맞닿아 있는 미지의 땅. 한 걸음 물러서 바라보면 호기심이겠지만, 이곳을 지키는 이들이 가지는 큰 감정은 ‘두려움’이다.
낯섦, 새로움은 늘 두려움을 수반한다. 한 가지 고백하자면, DMZ 취재를 시작하기 전 기자의 마음속에 가장 먼저 자리 잡았던 감정 역시 두려움이었다. 그리고 고개를 든 한 가지 의문. DMZ를 지키는 장병들은 누구보다 두려움이 클 터. 과연 이들은 어떻게 두려움을 이겨내고 있을까? 지난 13~15일 ‘동부전선의 중심’ 강원도 인제군을 수호하고 있는 육군12보병사단 장병들과 함께 걸으며 두려움을 이기는 방법에 대한 실마리를 찾을 수 있었다. / 국방일보 2022.9 글=맹수열/사진=조용학 기자
12사단이 위치한 인제군은 과거부터 험한 산세와 시시각각 변하는 기후로 장병들 사이에서 ‘힘든 곳’이라는 이미지가 강했다. 취재를 위해 상승향로봉여단 단결대대로 향하는 길. 검문소를 지나 이어진 산길에 덩그러니 자리 잡은 부대는 이곳이 외부와 단절된 곳이라는 느낌을 다시 한 번 상기시켰다.
믿음, 일촉즉발의 상황을 이겨내는 힘
가장 먼저 향한 곳은 송어달중대. 과거 귀하다는 송이버섯이 많이 나서 심마니들이 은어로 ‘송이달!’이라고 외치던 것이 ‘송어달’로 발음이 변해 지금의 부대 이름이 됐다는 구전이 있다.
이 시각 마침 중대의 담당 지역 내 DMZ에서 수색대대가 작전을 펼치고 있었다. 중대는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 81㎜ 박격포로 작전 지역을 엄호 중이었다. 매일 이어지는 실제 상황. 장병들은 어떤 기분을 느끼고 있을까?
“지난달 15일, 그러니까 광복절 이른 아침에 상황이 접수됐습니다. 자대 배치 이후 처음 겪는 실제 상황이었죠. 평소 여유가 넘쳤던 선임들도 잔뜩 긴장했던 것 같습니다.” 이제 막 일병 계급장을 단 임익형 일병은 입대 후 가장 긴장감이 팽팽한 순간으로 이날을 꼽았다. 임 일병은 “일촉즉발의 상황 속에서 어찌해야 할 바를 모를 때 가장 힘이 됐던 것은 바로 옆에 있던 선임”이라며 “간부·선임들이 잘 대처하고 용기를 불어 넣어줘 빨리 안정을 찾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중대는 평소 주간에 상황이 발생할 경우 소형전술차량을 활용하고 있다. 산악작전차량이 도입되면서 철책까지 이동하는 시간이 절반 이상 줄었다고 한다. 도보로 빠르게 움직여도 30분 이상 걸리던 철책은 이제 15분 정도면 도착할 수 있게 됐다. 이날도 소형전술차량과 함께 DMZ와 맞닿은 한 통문으로 향했다.
통문 앞 고가초소에 오르자 DMZ가 한눈에 들어왔다. 특히 이곳에서는 6·25 전쟁 막바지 중공군의 최후의 공세에 맞서 승리를 거둔 854고지 전투 현장과 그곳에 지어진 초소(GP)도 확인할 수 있었다. 철책 바로 앞에 세워진 고가초소에서 최민 상병과 지영탁 일병을 만날 수 있었다.
두 사람 모두 혹시 모를 경계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이야기했다. 하지만 두려움보다 더 큰 것은 ‘믿음’이었다.
“주간에는 비교적 경계가 수월하지만 야간에는 불빛에 의지해만 합니다. 그래도 열상감시장비(TOD)와 중거리 카메라를 믿고 초동조치에 더 힘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내가 봄과 동시에, 아니 더 빨리 상황실이 파악하고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근무에 임하고 있습니다.” 최 상병의 말이다.
“이병 때는 상황을 놓칠까 봐, 실수할까 봐 걱정이 많았던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시간이 해결해 줄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또 함께 근무를 서는 전우와 서로 놓친 점을 보완해 나가기 때문에 이제는 더 이상 두렵지 않습니다. 두 사람이 근무를 서는 것은 다 이유가 있습니다.” 지 일병은 최 상병을 바라보며 빙긋 웃어 보였다.
최고난도 험지, 자부심으로 극복한다
송어달중대에서 사천리중대로 장소를 옮겼다. 구불구불한 도로를 지나며 멀미가 났지만 이마저도 감사해야 할 정도라고 한다. 이 험지에 포장도로가 생긴 것 역시 최근의 일. 비포장도로를 달리지 않는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자 비로소 어지럼증이 가셨다.
‘V자 협곡’의 가운데 위치한 사천리중대는 이름 그대로 4000개가 넘는 계단으로 유명하다. 중대 작전지역의 계단 수를 다 더하면 7446개. 차량으로는 도저히 갈 수 없는 험지 곳곳에 초소가 있다 보니 부식 운반에 모노레일을 사용해 유명해지기도 했다.
이곳을 방문한 산악인 엄홍길 씨마저 “힘들다”고 말했을 정도로 악명 높은 철책점검 코스도 사천리중대 장병들에게는 일상이다. 부임 후 순찰 코스를 한 번에 오르내려 본 조재훈(대위) 중대장은 “왕복을 해야 하는 철책점검의 특성 상 걸어야 할 계단의 수는 그 두 배가 된다. 하면 할 수는 있지만 힘든 것도 사실”이라며 “지금은 코스를 반으로 나눠 순차적으로 순찰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가 가장 중점을 두고 있는 것은 ‘체력’이다. 장병들은 험한 계단을 극복하기 위해 매일 체력 단련을 통해 지구력을 키우고 있다. 이날도 장병들은 왕복 3㎞에 이르는 산길을 헤치며 자율적으로 달리기를 하고 있었다.
손꼽히는 격오지 생활을 지탱하는 원동력은 다름 아닌 ‘자부심’. 이곳에서 만난 장병들은 하나같이 “우리가 최고”라는 말을 했다. “말로만 듣던 GOP는 상상 그 이상이었습니다. 북한과 마주하고 있다는 긴장감에 겁이 났고, 철책점검은 너무 힘들었죠. 이런 무서움을 떨칠 수 있었던 것은 ‘최고의 부대’에 있다는 자부심 덕분입니다. 그 어느 부대보다 힘들지만 임무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느끼는 뿌듯함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일찌감치 두려움을 털어내고 최정예 수호병으로 거듭난 오요셉 이병의 말이다.
조 중대장 역시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그는 “아무리 자원해서 왔다지만 누구나 처음에는 적응하기 힘들다”면서 “이런 신병들에게 ‘내가 소초의 주인’이라는 의식을 심어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천리중대에서만 3년째 근무하고 있는 박지원 중사는 “그동안 많은 것들이 변했어도 최전방 수호병이라는 자부심, ‘동부전선의 심장’을 지킨다는 긍지는 그대로”라고 강조했다.
일상이 된 훈련, 능동적인 병사를 만들다
반복된 훈련 역시 두려움을 이겨낼 수 있는 또 다른 힘이 되고 있다. 사단 내 모든 GOP대대는 거의 매일 상황조치 훈련을 하고 있다. 사천리중대 역시 마찬가지. 중대는 일일 단위로 상황조치 훈련을 시행하고 있다.
이날 훈련을 이끈 사람은 강신국(중위) ○○소초장. 귀순자 유도 상황을 상정해 훈련이 시작되자 강 소초장을 필두로 한 초동조치부대는 귀순자 유도낭과 워리어플랫폼으로 무장하고 빠르게 부대 앞에 모였다. 초소 근무자가 먼저 출동한 사이 줄지어 현장으로 달려나간 장병들은 순식간에 진지·고가초소를 점령에 나섰다.
엄호를 받으며 귀순자 발견 장소까지 나아가는 장병들의 발걸음에는 한 치의 망설임도 찾아볼 수 없었다. 사단이 추구하는 ‘능동적인 병사 육성’을 현장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거듭된 훈련은 장병들의 마음을 더 단단하게 만들었다. 김수빈 상병은 “훈련은 당연한 일상”이라며 “언제 어떤 상황에서도 대처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실제 상황에서 흔들림 없이 주어진 임무를 수행하는데 큰 도움을 주고 있다”고 말했다.
고된 GOP 생활, 존중·배려와 함께라면…
다음 행선지인 단결중대는 890고지에 자리 잡고 있다. 한낮임에도 단결중대는 희뿌연 안개에 휩싸여 있었다. 한 치 앞이 겨우 보이는 이런 날씨는 이미 익숙하다고 한다. 장병들은 “맑은 날이 오히려 드물다”고 입을 모았다.
그래도 철책 점검은 계속된다. 오히려 과학화 장비로는 보기 힘든 기상 때문에 순찰, 증가초소 운영 등 사람의 힘을 이용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고 한다. 김우진(상사 진) 부소초장을 비롯한 근무자들과 함께 동행했다.
“자 오늘도 힘내자!” 김 부소초장은 장병들을 독려하며 길을 나섰다. 그는 사소한 대화 중에도 “고마워”, “수고해”라며 일일이 화답했다. 지금까지 본 철책 점검 중 가장 부드러운 풍경이었다.
“실시간 변화하는 GOP에서 정신적 무장은 필수죠. 하지만 그만큼 모두가 수고하고 있다는 것에 감사함을 느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힘든 것은 어쩔 수 없지만 이를 즐겁게 여기도록 한다면 더 완벽한 임무수행이 가능하지 않을까요? 저는 물론이고 중대 모든 간부들이 이렇게 여기고 있습니다.”
김 부소초장의 이야기는 ‘빈말’이 아니었다. 단결중대는 여단이 선정한 ‘미소상’을 받은 부대. 철책 점검을 마치고 잠시 부대 복도를 걷는데도 분위기가 좋다는 것이 확연히 느껴졌다.
어느덧 찾아온 저녁. 근무가 없는 장병들은 저마다 꿀맛 같은 휴식을 즐겼다. 한 쪽에서는 생일을 맞은 오인송 중사를 축하하는 소박한 파티가 열렸다. 마침 외진을 나갔던 동료가 사온 생일 케이크와 냉동 떡갈비·피자로 간단한 생일상이 완성됐다. 오 중사를 둘러싼 장병들이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르자 주인공의 얼굴엔 환한 미소가 번졌다.
“저에겐 오늘이 특별한 날이 아닙니다. 전우들과 함께 있는 것만으로 모든 날들이 특별하다고 생각합니다. 부대 사정으로 케이크가 귀한데 특별히 챙겨준 동료들이 너무 고맙습니다. 앞으로도 모두 건강하고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단결중대 장병들은 서로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문화를 통해 수많은 어려움을 헤쳐나가고 있었다. 전입 5개월차인 박병주 일병은 “서로 잘 챙겨주는 우리 부대가 최고”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 올렸다. 박 일병은 “낯선 환경과 DMZ가 주는 부담감을 떨쳐내는데 가장 도움이 됐던 것은 다름 아닌 ‘전우’였다. 항상 든든한 버팀목이 되는 선임들을 본받아 정예 장병으로 거듭나겠다”는 각오를 밝혔다.
이상혁 병장 역시 “서로를 배려하는 문화가 ‘실수하면 안된다’는 긴장감을 풀어 주는데 큰 힘이 된다”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할 땐 한다’는 전통은 그대로 유지해 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DMZ 투입의 긴장감, ‘믿음’으로 극복하다
14일 이른 아침. DMZ 수색작전에 나서는 수색대대 장병들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특히 이날은 단결대대 영상감시반장 노희용 하사가 동참해 의미를 더했다.
여단은 영상감시요원과 전입 간부를 대상으로 DMZ 동반수색을 보내는 전통이 있다. 이런 전통과 별개로 노 하사는 “작전 지역을 직접 확인하고 싶다”며 먼저 손을 들었다고 한다.
“평소 영상을 통해 지켜보던 지역이지만 실제로 보는 것은 분명히 다를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사실 조금 무섭기는 하지만 설레는 마음도 있습니다. 믿음직한 수색대대 전우들과 함께하니 한결 마음도 편하고요. DMZ를 걸어보며 작전 지역을 완벽히 숙지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출발 전 다시 한 번 꼼꼼히 장비를 점검한 노 하사는 눈 앞에 펼쳐진 DMZ 속 수풀을 바라보며 이렇게 말했다.
함께 작전에 나서게 된 수색대대 김동주 상병 역시 긴장의 끈을 놓지 않았다. 이제 수색작전에 익숙해진 김 상병이지만 이날 들어가는 코스는 처음이라고. 그는 “그동안 익혀온 노하우를 동원해 오늘도 성공적으로 작전을 마치겠다”면서 “믿음직한 전우가 있기에 이제 두려움은 없다”고 역설했다. 그의 얼굴이 굳어있던 것은 긴장이 아닌 결의 때문이었다.
‘12보병사단의 상징’ 향로봉에서
빠르게 수풀 속으로 사라진 수색대대 장병들을 배웅한 뒤 ‘12사단의 정체성’이라고 할 수 있는 향로봉으로 향했다. 해발 1296m에 달하는 향로봉으로 가는 길은 시작부터 난관이었다. 거친 비포장도로, 굽이진 난코스, 시계(視界)를 차단하는 극심한 운무와 거센 바람 때문에 중간중간 멈춰 설 수 밖에 없었다. 정상에서 3m 아래 있는 선점중대까지 차로 이동하는데도 1시간 30분이 넘게 걸렸다.
사단은 이렇게 험한 향로봉을 행군 장소로 활용하고 있다. 훈련병과 신임 장교는 물론 예하 부대 장병들 역시 주기적으로 향로봉을 오르며 산악사단의 기상을 마음에 새기고 있다는 것이 사단의 설명. 이날도 상승향로봉여단 본부중대 장병들이 향로봉 정상에 발자취를 남겼다.
공교롭게도 이 날은 선점중대가 진 교대를 하고 있었다. 장병들은 거센 안개 속에서 온갖 가재도구를 내놓고 이사에 한창이었다. 분주한 가운데 잠시 짬을 내 휴식을 취하고 있는 오현수 일병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전입하자마자 향로봉으로 오게 된 오 일병은 “깎아내린 듯한 산세와 눈앞을 가로막는 안개 때문에 덜컥 겁도 났지만, 이제는 오히려 떠나는 것이 아쉽다”고 했다. 그러면서 “치열하게 군 생활을 할 수 있다는 것, 두 번 다시 할 수 없는 경험을 한다는 도전정신이 생겼다”고 덧붙였다.
향로봉 정상은 실제로 향로에 향을 피운 것처럼 운무로 가득했다. 하지만 불어오는 세찬 바람으로 간간이 안개가 걷힐 때면 말 그대로 절경이 펼쳐졌다.
“모든 일은 마음먹기에 달려”
마지막 날은 장소를 옮겨 금강산과 양구군 펀치볼 일대를 동시에 내려다 볼 수 있는 을지전망대를 방문했다. 펀치볼 지역은 대부분 21보병사단이 관할하지만 전체를 내려다 보기에는 을지전망대가 더 용이하다고 한다. 현재 을지전망대는 리모델링 공사가 한창이다. 이르면 올해 말, 적어도 내년 초에는 새로운 전망대가 완공될 예정이다. 사단은 완공 후 절차에 따라 민간에 전망대를 개방할 방침이다.
을지전망대 바로 옆에는 을지대대가 있다. 대대 정훈장교 임선우 중위는 부모님의 걱정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임관 후 첫 부임지가 이곳입니다. 제가 접적지역에 가고 싶다고 신청을 했죠. 최전방을 지킨다는 자부심을 느끼고 싶었지만 부모님의 걱정은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더 안심하시는 것 같아요. 요즘은 ‘오히려 군이 더 안전한 것 아니냐’고 말하실 정도죠.”
철책 점검을 마치고 복귀한 김창오 상병과 조태신 일병은 “모든 것이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철학적인 답을 내놓았다. 김 상병은 “사실 처음부터 무서웠던 적이 없다.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듯 DMZ만의 느낌을 즐길 줄 안다면 무서울 일이 없다”며 초연한 표정을 지었다. 조 일병은 “마음을 편하게 먹고 나니 두려움도 함께 사라졌다”고 말했다.
DMZ, 두려움이 걷히는 곳
인제에서 만난 12사단 장병 거의 모두가 두려움을 느낀 적이 있었다고 털어놓았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 두려움은 인간 본연의 원초적인 감정이다. 두려움은 숨긴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하지만 이들은 저마다 각자의 방식으로 두려움을 이겨내고 있었다. 서로에 대한 믿음, 대한민국 최정예라는 자부심, 실전적인 훈련, 존중과 배려. 그 어떤 것도 소홀히 할 수 없는 요소였다.
지난 14일 향로봉 정상에서 바라본 풍경은 두려움을 이겨낸 장병들의 마음을 대변하는 듯했다. 거센 바람과 안개를 뚫고 멀리 푸른 하늘 위로 환한 빛을 내뿜던 태양. 험하고 두려운 길일지라도 끊임없이 앞을 향하다 보면 언젠가 찬란한 햇살을 맞이할 수 있다. 그 어느 곳보다 뿌옇던 인제의 DMZ는 역설적이게도 ‘두려움이 걷히는 곳’이었다.
국방일보 2022.9 맹수열 기자 < guns13@dema.mil.kr > 조용학 기자 < catcho >
'군사 안보 > 육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수도포병여단 669포병대대 포성대대 (2) | 2023.08.30 |
---|---|
15보병사단 / 승리부대 호랑이수색대대 (1) | 2023.08.28 |
수도군단 700특공연대 3대대 북진대대 (0) | 2023.08.26 |
9보병사단 백호포병 966포병대대 흑곰 왕포 (0) | 2023.08.26 |
수기사 1기보여단 133기보대대 재구대대 (0) | 2023.08.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