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시간 곰삭은 멋과 이야기 논산 강경
[여행스케치=논산] 논산 강경포는 한때 100여 척의 배가 들어왔을 정도로 융성한 마을이었다. 그 화려했던 날들은 이제 희미한 사진을 통해 추억할 정도로 강경은 작은 마을이 되었지만, 무엇보다 큰 선물로 남겨진 것은 지역특산품이 된 젓갈이다. 워낙 유명해진 젓갈 때문에 한편으론 그 이면의 잘 곰삭은 강경의 멋과 짭조름한 이야기들은 가려진 면이 있다. 강경은 잘 발효되고 숙성된 멋과 맛, 이야기로 가득한데도 말이다.
논산을 관통하는 논산천이 서쪽으로 흐르다 금강 본류와 만난다. 과거, 그 합수 지점은 서해로부터 깊숙하게 들어오는 뱃길이기도 해 보기 드물게 하항(河港)도시로 발전했다. 사람들이 몰렸고 시장은 융성했으며 덩달아 마을도 흥했다.
강경여행의 시발점, 옥녀봉
강경에서 한 곳만 가야 한다면, 아니 논산에서 한 곳만 가야 한다면 옥녀봉을 꼽겠다. 전국에 옥녀봉이라는 이름을 가진 봉우리나 산은 셀 수 없이 많고 하나같이 엇비슷한 배경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그 가운데에서도 강경 옥녀봉은 단연 돋보인다.
일단 해발 44m로 높지가 않다. 그럼에도 옥녀봉을 첫손에 꼽는 이유는 아름다운 조망과 함께 그 곳에 강경의 성쇠가 압축되어 있기 때문이다. 도도히 흐르는 금강의 물줄기와 그 지세에서, 옥녀봉 곳곳에 남겨진 시대의 흔적들에서, 강경의 역사와 문화, 산업과 종교사를 들여다보는데 부족함이 없다.
‘들 가운데 작은 산 하나가 강가에 우뚝 솟아 동쪽을 향했고, 두 줄기는 큰 냇물을 좌우로 마주하였다. 뒤로 큰 강이 조수와 통하나 물맛이 그리 짜지 않다.’ 이중환은 <택리지>를 통해 강경의 옥녀봉을 이야기했고 그 아래 흐르는 강물을 영험하게 봤다. 길어다 며칠 가라앉힌 후 맑게 뜬 윗물을 마시면 수십 년 고생한 병도 고칠 수 있다는 이야기까지 덧붙였다. 풍수지리를 바탕으로 전국의 살만한 곳들을 수없이 소개한 <택리지>가 다른 곳도 아닌 강경에서 집필되었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옥녀봉에서 1km 가량 떨어진 팔쾌정에서 썼다고 하니 이중환은 옥녀봉에 수도 없이 올랐을 것이다.
옥녀봉 정상에서 금강과 논산천이 만나는 곳을 내려다보면 이곳이 동해안의 원산항과 함께 한때 조선의 양대 포구로 발전하였다는 사실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넓게 펼쳐진 기름진 평야는 풍족한 곡창지대를 이루고 부여와 공주로 이어지며 흐르는 금강은 훌륭한 뱃길이 되었다. 옥녀봉 밑에 형성된 강경포구는 19세기 말엽까지 수만 명의 상인들이 오갔을 정도로 큰 시장이었다. 평양 다음으로 규모가 컸다고 하는데 ‘1평양, 2강경, 3대구’라는 말이 돌 정도였다.
옥녀봉 정상에는 봉수대가 있다. 낮에는 연기로 밤에는 횃불로 급한 연락을 돌렸던 군사시설이다. 봉수대 옆에는 300년 가까이 된 느티나무가 친구처럼 서 있다. 그 곳에서 내려다보는 전망이 워낙 빼어나다보니 해질녘에도 장관이어서 요즘 표현으로 ‘낙조 맛집’ 소리를 듣는다. 옥녀봉 발 밑 강변으로는 잘 닦인 자전거도로도 보인다.
옥녀봉 기슭에는 한국침례회 최초의 예배당 건물이자 한국침례회가 태동된 지병석 집사의 초가집이 있고 2차례에 걸쳐 각각 오백여 명, 천여 명의 군중들이 일제에 대항하여 거리로 나온 1919년의 항일독립만세운동을 기념하는 비도 있다.
강경이 고향인 박범신 작가의 작품 <소금>의 배경이 된 건물과 이를 기념하기 위해 지은 강경산소금문학관도 있어서 작가의 작품 세계를 엿볼 수 있다. 1860년에 새겼다는 해조문도 빼놓을 수 없는 볼거리다. 수많은 배들이 옥녀봉 밑을 지나던 시절, 송심두라는 사람이 물때를 관찰한 후 그 내용을 주역의 수치로 풀어 옥녀봉 암벽에 새겨놓았다. 밀물과 썰물의 발생 원인과 시각은 물론 그 높이까지 자세히 기록된, 우리나라 최초의 완벽한 조석표라고 할 만하다.
근대역사거리와 젓갈의 고장, 강경
강경이 번창하니 일제 강점기에는 일본인들이 대거 몰려와 근대화된 상점들이 많이 생겨났고 은행까지 개설되었다. 1911년에는 한일은행 강경지점이 생겼는데 이는 군산·함흥·원산 등지의 개항장보다도 10여 년 빠른 시기이다. 지금도 온전한 모습으로 남아있는 옛 한일은행 건물은 1913년에 건축된 것으로 알려졌다. 강경의 쇠락과 함께 개인 젓갈창고로 전락된 은행 건물을 논산시에서 매입하여 지금의 강경역사관으로 꾸몄다.
뒤편에는 한일은행 건물과 조화를 이루도록 같은 시대 모습을 한 ‘강경구락부’를 조성하였는데 영락없는 개화기 시대 모습 그대로이다. 현재는 커피숍과 호텔, 식당 등이 영업 중이어서 쉴 곳을 찾는 여행자들의 발걸음을 잡아당긴다. 강경읍내에는 강경구락부 외에도 타임머신 여행지라고 부를 만큼 근대 건물들이 많다. 등록문화재로 지정된 건물만 해도 ‘구 강경노동조합(현, 강경역사문화안내소)’, ‘강경공립상업학교 관사’, ‘구 강경연수당건재약방’ 등이 있으며 현재 ‘논산근대역사문화촌’ 사업을 통해 옛 근대거리가 조성되고 있다. 곳곳에서 공사 중인 건물들이 완공되면 개화기 시대를 재현한 새로운 명소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일반인들에게 강경은 젓갈의 고장으로 알려졌다. 금강하굿둑이 생기면서 뱃길까지 완전히 끊겼지만 여전히 젓갈 유통으로 전국의 소비자들을 사로잡고 있다. 젓갈집들이 읍내에 즐비한데 그중에서도 비교적 오래되었다는 곳을 찾았다. 조합의 초창기 회장을 지내고 현재도 고문으로 활동하고 있다는 심씨네젓갈식품 심철호 대표는 강경포의 ‘마지막 객주’이기도 했던 부친으로부터 가게를 물려받아 운영하니 가게의 역사가 70년 가까이 된다.
“초등학교 때만 해도 배가 많이 들어왔어요. 강경이 집산지 노릇을 했죠. 우리는 1957년부터 한 자리에서 영업을 하고 있습니다. 그땐 젓갈집이 몇 집 없었죠.” 심 대표 뒤로는 중소벤처기업부가 지정한 ‘백년가게’ 인증패가 빛나고 있다.
강경전통맛깔젓사업협동조합의 나경필(46) 조합장은 조합원에다 일부 비조합원까지 더하면 강경의 젓갈집이 140여 곳은 넘을 것이라고 한다. “강경 젓갈이 많은 소비자들로부터 인기를 얻는 비결은 현대화된 저장창고를 통하여 과학적으로 발효를 관리하는 데 있죠.
흔히 ‘토굴발효’가 좋은 줄 아시는데 온도 관리가 어려워 새우젓이 익어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 단점을 보완한 것이죠. 시청에서도 ‘착한명품가게’ 지정을 통해 품질 관리를 하고 있습니다.” 조합에서는 젓갈전시관을 운영하고 젓갈축제도 열고 있다. 코로나 여파로 열지 못했던 강경젓갈축제가 올해는 지난 10월 12일에 다시 열렸다. 나 조합장은 강경의 문화유산과 경관을 활용하여 관광에 젓갈산업을 접목시키겠다고 당찬 포부를 밝힌다.
/ 여행스케치(http://www.ktsket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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