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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방곡곡/강원도

양양 흘림골 - 등선대

by 구석구석 2023. 6.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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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양 흘림골 단풍

흘림골의 단풍과 바위는 남설악의 가을을 대표할 만큼 아름답다. 특히 12폭포 바로 아래는 외설악의 천불동, 내설악의 가야동 계곡과 함께 설악산의 3대 단풍 명소로 꼽힌다.

추석이 지난 벌판에 풍요가 넘실거린다. 잠자리가 코스모스를 희롱하고 허수아비는 새는 안 쫓고 춤만 춘다. 이미 벼를 베어낸 논에는 싹이 파랗게 올라 있다. 양평 홍천 인제를 지나 한계령에 오르면 양희은의 명곡 ‘한계령’이 절로 나온다. 마음은 동해바다까지 훨훨 난다. ‘이 산 저 산 구름 몰로 다니는 떠도는 바람’이 된다. 10월 중순, 한계령 오른쪽 아래에 삐쭉삐쭉 솟은 칠형제봉도 때때옷으로 갈아 입었다. 흘림골은 칠형제봉 아래에 숨어 있다.

흘림골은 폐쇄된 지 20년 만인 2004년 9월에 재 개방되었다. 여자의 음부를 닮은 폭포에 흘러내리는 가녀린 물줄기 때문에 흘림골이라는 이름을 얻은 이 계곡은 점봉산 북쪽 골짜기 중의 하나로서 단풍과 바위가 남설악의 가을을 대표할 만큼 아름답다. 특히, 12폭포 바로 아래는 외설악의 천불동, 내설악의 가야동 계곡과 함께 설악산의 3대 단풍명소로 꼽힌다.

등산은 한계령휴게소에서 양양 방향으로 4Km내려간 지점에서 시작한다. 흘림골은 12폭포까지 약 2.6Km이며 12폭포 아래는 주전골, 큰고래골 등이 오색약수까지 이어져 있다. 전체 등산로의 길이가 약 6.5Km이다. 흘림골의 깔딱고개 두세 개만 제외하면 대체로 내리막이어서 산행 시간을 4시간 잡으면 된다.

지난 70, 80년대에 여심폭포의 물을 마시면 아들을 낳는다는 소문이 있어 이곳이 신혼여행지로 각광을 받았다. 그러나 단지 속설일 뿐이랴. 2박 3일을 잡아야 설악산에 갈 수 있던 시정에 흘림골의 만물상과 주전골의 폭포지대는 아무나 쉽게 갈 수 없는 큰 유혹이었으리라. 여심폭포까지는 30~40분간을 숨가쁘게 올라야 한다. 10m 높이의 물줄기가 바람에 흩날리는 품은 마치 어우동이 교태를 부리는 것 같다. 너나 없이 주고 받는 가벼운 퇴폐성 발언이 별로 민망하게 들리지 않는 곳이다.

다시 숨가쁘게 30여분 동안 오르면 흘림골의 최고봉인 등선대(1002m)의 턱밑에 오른다. 등선대는 그리 높지 않지만 밧줄을 타고 올라야 한다.

바위 정상에는 10명 정도가 앉을 수 있고 기암과 단풍의 물결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여기에서 보이는 기암군을 만 가지 형상을 띠고 있다는 뜻에서 만물상이라 부른다. 칠형제봉과 한계령도 빤히 보인다. 대청봉, 귀때기청봉 등 고봉들은 어르신마냥 멀리서 내려다보고 있다. 등선대에 앉아 도시락을 까 먹으니 임금님 수락상 부럽지 않다.

이제 철계단을 따라 내려간다. 울창한 숲길을 지나 다시 고갯마루에 올라서며 뒤를 돌아본 순간 탄성을 참을 수가 없다. 무릉도원을 연상케 하는 실경산수화가 펼쳐진다. 사진 한 장씩은 꼭 찍고 가는 촬영 명소다.

흥분을 가라앉히며 내리막길을 걷는다. 12폭포에 이르렀다. 벌써 3시간 가까이 걸었다. 고운 바위를 물결이 쓰다듬으며 흘러간다. 옥수를 손에 떠서 얼굴을 씻어 본다. 옆에서 자꾸 뭔가 지껄여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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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부터가 편안한 내리막길이다. 주전골은 위폐범들이 가짜 엽전을 만든 골짜기라는 뜻이다. 도적들이 몸을 숨길 만큼 과연 바위가 많다. 물은 매우 많고 맑다.

주전골의 용소폭포는 꼭 보고 내려오자. 동굴모양으로 파인 바위 앞에 폭포수가 파찰음을 내며 쏟아지는 품이 밀양의 호박소를 닮았다. 폭포수 소리가 죽비소리처럼 귓전을 크게 울린다.

큰고래골의 선녀탕에 이르니 좁았던 계곡이 활짝 열린다. 휘어진 암벽이 요새 같다. 이곳 또한 온 시름을 잊게 하는 비경이다. 맑은 소와 담은 하도 맑아서 비취빛을 띠고 있다. 암반 계류를 따라 단풍잎이 미끄러져 내려가는 것을 바라보며 마음을 모두 비워 존다. 오색약수에 이르러도 욕심을 버리는 게 좋다. 위장병에 좋다던 약수는 이제 말라서 마실 수가 없다.

아무렴 어떠랴. 남설악의 깊은 품에 한 나절 안겼다가 나오는 걸음인데 석연함을 품어 무엇하리. 오색약수 식당가에 들러 동동주는 한 잔 마실 일만 남았다. 

/ 조선일보 생활미디어 이두영

음식: 남설악식당(033-672-3159)’ 1987년 농촌진흥청 향토음식경진대회에서 금메달을 받은 집. 산채음식 등 메뉴 다양, 

오색약수터를 지나 흐르는 주전골 계류 바로 옆을 따라 등선대식당(033-672-5525) 등 20호의 음식점들이 늘어서 있다. 대다수 관광지들의 터무니없는 음식과는 사뭇 다른, 만족할 만한 수준의 음식들을 낸다. 산채비빔밥이나 산채정식에 별도로 각종 나물 한 접시와 구수한 된장찌개가 딸려나온다.

숙박: 팬션 ‘흐르는 강물처럼(033-673-8977,8989) 어성전 계곡. ‘오색지구의 오색그린야드 호텔(033-672-8500)’ 온천도 있음. 낙산사 옆 ‘낙산7호 식당횟집(033-672-2270)’은 바다가 보이는 숙소. 이외 모텔 다수.

흘림골매표소~여심폭~등선대~12폭~용소폭~오색약수

등선대로 오르는 흘림골 계곡을 걷는 발걸음은 비록 급한 오르막이지만 가볍다. 지도로 보아 짤막하고 단순한 길이기 때문이다. 도상거리로는 1km, 실거리는 아무리 길게 보아도 1.5km에 불과하다. 그리 오래지 않아 절경을 본다는 기대감으로 매표소 앞을 지났다.


국도변에 급비탈 좁은 곳에 옹색하게 세워진 매표소 주변의 분위기로만 보아서는 그 안에 무슨 별난 볼거리가 있겠나 싶지만, 등선대에 올라 경치를 본 이들은 100% 천하절경임을 반복해 강조했다. 아직 단풍이 들려면 멀었는데도 산행객을 실은 관광버스들이 줄을 잇는 데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요컨대 단풍과 무관하게 이곳 등선대 풍치는 사철 두고 남다름이 분명하다.

매표소 안으로 들어 잠시 오르자 순식간에 원시 풍광으로 변한다. 오래도록 풍상을 겪으며 속이 썩어들어 거의 껍질만 남은 고령의 주목들이 여기저기 패찰을 달고 섰으며, 나이테를 보니 300~400년은 묵었음직한 거대한 전나무가 쓰러져 푸른 이끼로 뒤덮여가고 있다. 계곡은 작지만 품어 안은 것은 풍부하다.

흘림골~등선대~주전골로 이어지는 등선대 코스는 20년쯤 전 주목 도벌사건 이후 통제를 시작했다가 개방됐다. 개방 직후부터 이 탐승로는 경관의 뛰어남과 산행로의 아기자기한 재미, 한나절로 끝낼 수 있는 적절한 거리 등의 덕분으로 오색을 오랜만에 달뜨게 했다. 주민들은 “작년 가을에만 수만 명 관광객이 다녀갔는데, 오색 역사상 가장 많은 사람들이 다녀간 것 같다”고 말한다.

설악에서도 최상급의 경관 선사

등선대 코스는 실은 오색 주민들 민심 달래기 차원에서 개방한 코스로 보는 것이 적절하다. 오색 주민들은 오색약수 분출량이 거의 정지되는 한편 금강산으로 관심들이 쏠리며 관광객 숫자가 크게 줄어들자 국립공원관리공단에 생계보장 차원에서 등선대 코스를 개방해달라고 줄기차게 요구해왔다. 오색 주민들이 이렇게, 분명 많은 관광객들이 몰려들 것이라 자신하고 있었을 만큼 이곳 등선대 풍치는 특상급이다.

계곡을 가로질러 작은 다리가 놓였다. 1년 새 산비탈의 어떤 곳은 깎이고 허물어져 내렸다. 설악산 관리사무소가 돌계단을 만드는 등 애를 쓴 흔적은 보이지만, 올해 단풍 인파가 한번 더 지나고 나서는 아무래도 대대적으로 정비를 해야 할 것 같다.

다리로 다시 왼쪽 사면으로 건너서는 급비탈을 오르면 오른쪽 협곡 저 안 깊숙한 곳에 한 줄기 가는 물줄기가 벽을 건드리고 있는 여심폭포가 뵌다. 한자 표기가 ‘女心’ 아닌 ‘女深’인, 은근히 외설적인 이름이다. 몰려온 단체 등산객들 중의 리더격인 남자들은 어김없이 한 마디씩 야한 농담을 꺼내든다.

설악산쪽의 폭포들은 불쑥 밖으로 드러낸 듯한 것이 많은 반면 이곳 점봉산 것들은 대개 깊이 팬 곳에 숨은 듯 자리 잡았다. “설악산이 남성 산, 이곳 점봉산은 여성 산이기 때문”이라고 길 안내를 자청한 전 남설악구조대장 이재영씨(48)는 그 이유를 설명한다. 흘림골이란 여심에서 흘러내린 계곡이란 뜻이라는데, 아무튼 이곳 여심폭포에서 물줄기가 끊어지므로 수통에 물을 담아야 한다.

여심폭포 앞에 있는 아름도 넘는 흰 줄기의 나무는 희귀목인 엄나무다. 개두릅이라 부르는 엄나무 순을 따기 위해 이렇게 큰 엄나무도 사정없이 베어 넘어뜨렸던 예가 많다. 이곳은 많은 관광객이 수시로 드나들며 감시자 역할을 할 것이니 이 엄나무는 오래도록 살아남을 것이다.



요란스런 여심폭포 앞을 떠나 등선대로 향했다. 물줄기는 끊어졌고 비탈도 심해진다 싶더니 평평한 안부 위다. 여기서 왼쪽 위의 등선대까지 올랐다가 되내려와 남쪽 12폭포로 하산하는 것이 거의 정석으로 굳어졌다. 거꾸로 산행해서 안 될 것 없지만 다리 힘이 갑절로 들 것이다.

작은 공터를 이룬 안부에 올랐다. ‘여심폭포 0.3km, 등선폭 0.4km, 등선대 0.4km’ 팻말이 서 있는 삼거리다. 등선대쪽으로는 사람들이 쉴새없이 오가고 있다. 그들을 따라갔다. 등선대 벽과 그 앞에 문설주처럼 선 기암 사이로 백두대간 주능선쪽 풍경이 들어앉는다. 길이 좁아서 툭하면 윗사람이 내려오기를 기다려야 했다.

등선대 기슭으로 다가서자 가파른 바위벽에 밧줄이 매어져 있다. 잡고 오르려는 이와 내려오려는 사람들이 줄을 지어 기다리고 있다. 사다리를 놓던지 무슨 수를 쓰지 않으면 단풍철엔 ‘교통대란’이 일어날 것 같다.

바위를 오르는 일에 서툰 사람은 등선대 정수리로 올라서기도 또한 쉽지 않다. 때문에 아낙들은 태반이 포기하고는 되돌아서고 만다. 만약 등선대에 올라서 보았다면 안간힘을 써서라도 올라오길 정말 잘했다며 가슴을 끌어안게 될 것이다.

설악산 대청봉에 올랐다가 중청 지나 희운각쪽으로 내려가다가 소청봉에 서면 저 아래로 펼쳐진 공룡릉과 용아릉 기암봉들에 혼이 앗기고 만다. 이곳 등선대는 그들 용아릉이나 공룡릉의 기암봉 무리를 새가 되어 바로 위에 다가가 바라보는 듯한 느낌이 든다. 천화대 암릉을 해본 바위꾼들 이외는, 아마도 설악에서 이런 기막힌 조망점을 본 사람이 없을 것이다. 치솟고 패이고 휘거나 겹친 그 기이한 암봉들의 면면이며 숫자를 어떻게 헤아려 전할 수 있을까. 이곳의 풍광이야말로 백문이 불여일견, 직접 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금강산 천선대 풍경도 이곳 남설악 점봉산 등선대에는 댈 것이 못된다는 이재영씨의 자랑이다.

금강산 천선대 주변은 날카로운 침봉들이 수백 개 총총히 몰려서 있는 기관이 자랑인데, 너무 침봉들뿐이라 좀 단조롭다. 그에 반해 이곳 등선대에서는 대청봉이며 점봉산의 부드러운 육산 능선과 우뚝한 기암봉들이 황금분할로 어울렸다. 게다가 오늘은 뭉게구름까지도 양념으로 곁들여져 오래도록 등선대 정상을 떠나지 못하게 한다. 여기서 보니 귀청봉은 정말 무슨 짐승 귀처럼 뾰족하게 솟았다. 대청봉에서 귀청봉에 이르기까지 설악산 서북릉이 전혀 다른 산인 듯 새삼스럽다. 구름이 지나며 서늘한 그늘이 서북릉 산록에 드리워지곤 한다.

등선대 위엔 많아야 20명 이상 머물기 어렵다. 때문에 밑에서 기다리는 사람들이 아우성을 치니, 눈치가 뵈서라도 오래 머물지 못하겠다. 사방이 빙 둘러 오금이 저리는 절벽이고 사람들은 떠밀듯 올라온다. 큰 사고가 나기 전에 난간을 설치해야 할 것 같다. “이 경치에 반해서 벌써 세 번째 다녀간다는 사람도 보았다”고 등선대식당을 운영하는 이재영씨는 말한다.

안부로 되내려가자 막 올라온 사람들, 간식 먹고 물 마시는 사람들로 북새통이다. 얼른 북쪽 계곡을 향해 내려갔다. 오름길보다 더한 급경사 돌길이어서, 그리고 왼쪽 저편에서 안개를 둘렀다가 훌쩍 걷어올리며 나타나곤 하는 침봉들을 흘깃거리노라 더더욱 발길이 조심스럽다.

이곳에서 뵈는 기암봉들은 밑둥과 몸통, 머리통까지의 굵기가 별 차이가 없어, 거대한 신전 기둥 같다. 저기 내?외설악에서는 거의 볼 수 없는 이곳 남설악만의 기관이다. 정수리로 몇 마리 까마귀가 날아오르고 잿빛 안개로 밑둥을 가린 침봉들은 짐짓 신화적 분위기마저 띤다.

무명폭포 옆을 지나 길은 슬며시 다시 능선 자락 위로 치닫는다. 거기 능선 위에서 사람들이 한결같이 뒤를 돌아본다. 등선대와 그 일대의 침봉군들이 안개의 장막을 벗고 일제히 드러났다. 여기저기서 불끈 치솟은 침봉들은 장관이기도 하거니와, 그 사이의 공간에서는 엄청난 기운이 느껴진다.

“여기가 왜 주전골이냐 하면 말이죠, 진짜로 저기 골짜기 안에서 동전을 찍어냈거든요. 제가 들은 얘긴데, 그리 오래 된 얘기가 아니예요. 누구네라곤 말할 수는 없지만, 그 친구 할아버지 되는 사람이 저 안쪽 골짜기에 요새로 치면 위조 동전을 몰래 만들어 내오곤 했다고 합디다.”

주전골 내려가는 도중에 제2약수가 있는데, 저 아래 제1약수는 거의 물이 나오지 않으므로 이곳 제2약수 물맛이라도 보고 간다. 하지만 이미 이곳 제2약수도 예전의 오색약수 명성에 값하기엔 분출량이나 물맛이나 너무 미약하다.

계곡길은 제법 길고 양쪽 풍경이 역시 명불허전, 남달리 뛰어나 걷는 맛이 좋았다. 가다가 침봉 무리를 되돌아보거나 혹은 다리에서 골짜기의 크고 작은 바윗덩이들과 쓸려 내려오다가 걸린 나무둥치와 계곡가의 푸른 이끼, 짙은 숲이 어울린 정갈한 풍경들을 들여다보노라 걸음은 느려졌으나 산행 만족도는 100점 만점이었다.

가을 단풍이 절정일 때 오면 어떨까. 낮에는 사람에 치일 것이니 새벽 일찍 움직이라고 이재영씨는 조언했다. 그 시간대가 실은 경치도 가장 멋질 때라고 한다.

월간산 432호

숙박
오색에는 원조급 다섯 여관이 있다. 그린야드호텔 바로 아래에서부터 용천장, 설악장, 현대장, 오색장, 약수장의 순서로 5개 장급 여관들이 유럽풍 분위기를 풍기며 늘어서 있다. 객실에도 모두 온천수를 공급한다.


용천장은 2층 방이 좀 큰 편이며, 욕조가 큰 것이 자랑. 그린야드 온천탕 이용시 20% 할인권 제공. 전화 033-672-3791. 설악장은 5개 여관 중 유일하게 대중탕을 운영하는 곳으로, 투숙객은 무료다. 전화 033-672-2645.


현대장은 큰 방의 경우 간단한 싱크대 시설을 들여놓았다. 2층 양옆의 큰 방이 조망도 좋다. 전화 033-672-4088.

오색장은 2층에 싱크대를 들인 큰 방이 여러 개 있다. 전화 033-672-3635.

약수온천모텔은 전면 통유리로 조망이 시원한 것이 자랑. 전화 033-672-3156.

그린야드호텔은 오색약수와 같은 수질의 물을 받아둔 약수탕을 비롯해 여러 시설을 갖춘 온천사우나탕을 운영하고 있다. 개장시간 06:30~20:00, 전화 033-672-8500.

양양펜션은 오색에서 흘러내린 오색천이 후천과 합류하는 지점인 송천리 개울가에 자리 잡았다. 2층의 큰 방이 권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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