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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방곡곡/인천광역시

인천 배다리 헌책방골목

by 구석구석 2022. 9.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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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다리 헌책방골목

 

아벨서점앞에서 파노라마로 찍었더니 도로가 코너같이 나왔네요. 큰아이때 이곳에서 더러 교과서를 사기도 했었는데 지금은 창녕동 문구도매점으로 더 이름이 알려진 곳이죠.

배다리는 경인선 전철이 지나는 배다리 철교 아래 동구와 중구의 경계를 이루는 지점으로 금창동・송현동・창영동 일대를 말한다. 19세기 말까지 밀물 때가 되면 이곳까지 바닷물이 들어와 경인철도가 놓이기 전까지는 이곳에 배를 대어 놓을 수 있는 다리가 있었다 해서 ‘배다리’라 불렸다.

개항 이후 개항장에 주둔한 일본인들에 의해 내몰린 조선인들이 하나 둘 모여 형성했다는 배다리는 이후 한국전쟁 때는 고향을 잃은 피난민들이, 1960~70년대 산업화 시기에는 일자리를 찾아 몰려든 지방 사람들로 붐볐다. 그래서일까. 배다리 일대에는 아직도 유서 깊은 우리네 터전과 문화유산 등이 많이 남아있다. 고된 삶 속에서도 학구열을 불태우며 헌책을 사고팔던 헌책방 거리, 1920년 문을 연 인천양조장, 100년 역사를 자랑하는 창영초등학교와 영화학교, 여 선교사 기숙사 등이 그것이다. 아쉽게도 지금은 재개발 등의 이름으로 사라질 위기에 처한 거리지만, 아직까지도 배다리는 옛 추억이 아련한 거리이자 인천 서민들의 삶과 애환을 대변하는 역사의 산현장이다.

배다리를 얘기할 때 가장 먼저 빼놓을 수 없는 곳이 바로 ‘헌책방 골목’이다. 모든 것이 궁핍했던 시절, 배움에 목말랐던 사람들이 학문에 대한 갈증을 풀 수 있었던 곳이 바로 배다리 헌책방 골목이다. 동구 금곡동과 창영동의 경계지역에 자리 잡고 있는 헌책방 골목은 1호선 동인천역에서 나와 중앙시장 건너편 배다리로 접어들면 바로 이어진다.

배다리 헌책방

한국전쟁 이후 폐허가 된 거리에 리어카와 노점상들이 하나 둘 모여들기 시작하면서 형성된 헌책방 골목은 웬만한 인천사람들에게 배다리 하면 헌책방 골목으로 대변될 만큼 유명했다. 한때는 40여 곳의 헌책방들이 이 일대 거리를 꽉 채우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아벨·한미 등 달랑 대여섯 곳만이 남아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하루 종일 한산한 거리는 헌책방 특유의 옛 향기만을 풍기고 있다.

배다리헌책방골목의 삼성서림

40년 넘게 배다리에서 헌책방을 운영해 온 아벨서점의 곽현숙 사장은 “배다리는 인천 서민의 역사를 대변하는 곳”이라며 “그런 역사는 보존할 가치가 있다.”고 말했다. 아벨서점 옆으로는 곽현숙 사장이 연 시집전시관 ‘시가 있는 작은 책 길’도 있다.

아벨서점에서 우각로 방향으로 걸음을 옮기면 1920년대에 문을 열어 70년이 넘도록 인천탁주의 대명사인 ‘소성주’를 제조했던 인천양조주식회사가 나온다. 빨간 벽돌 건물의 입구 우측 벽면에는 ‘인천양조주식회사’라는 한자명패가 아직도 떡하니 걸려있다. 하지만 이 술 공장 터에는 현재 문화·예술 대안공간인 ‘스페이스 빔’이 들어서 있다. 입구를 지키는 특이한 고철 로봇이 소위 ‘예술’하는 사람들의 공간임을 대변하는 듯하다. 내부로 들어서니 정면 벽면에는 아직도 떼어내지 않은 ‘품질향상’이라는 글자판이 시선을 집중시킨다. 내부 곳곳을 둘러보니 당시 건물양식에 손 하나 대지 않은 모습이다. 이곳 스페이스 빔에서는 미술전시나 크고 작은 세미나, 지역 연극인들의 연극무대 등 각종 문화적 활동이 이뤄지고 있다.

옛양조장 건물의 스페이스 빔

옛 양조장 건물을 나와 우각로를 내려가다 보면 재미난 간판이 인상적인 ‘개코막걸리’집이 시선을 끈다. 간판에 매달린 노란 양철 주전자가 시원한 막걸리 한잔 생각나게 한다. 맞은편 길목에서는 퍼포먼스 반지하가 운영하는 지역공동체 문화공방 '기억과 새로움의 풍경'도 만나볼 수 있다.
그 길을 따라 내려오다 왼쪽 사잇길로 접어들면 인천 최초의 공립학교인 창영초등학교가 나온다. 창영초등학교를 시작으로 영화학교, 여선교사기숙사 등 인천의 서양식 교육의 시초가 됐던 장소들과의 해후가 시작된다. 1907년 전교생 3명의 ‘인천공립보통학교’로 출발한 창영초등학교는 1919년 3·1운동 당시 인천에서 만세운동을 처음 시작한 곳으로도 유명하다. 현재 학교에는 ‘독립운동 인천지역 발상지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창영초등학교 바로 옆에는 한국 최초의 사립 초등학교인 ‘영화학교’가 자리하고 있다. 1892년 인천 내리교회의 2대 목회자 존슨 선교사의 부인에 의해 설립된 ‘영화학당’에서 출발했다. 한국 최초로 보이스카우트를 도입했고, 고적대를 만들어 명성을 날리기도 했다.

한국 여성계의 선구자 김활란, 손기정 선수 가슴에서 일장기를 지워버린 동아일보 기자 이길용, 유아교육의 개척자 서은숙, 영화배우 황정순씨 등이 이 학교 출신이다.

배다리와 우각로 일대에서 볼 수 있는 또 하나의 잔재미는 골목골목을 수놓은 공공미술이다. 골목을 빠져 나오는 길에 만난 어느 담장의 넝쿨 그림은 소박한 배다리의 정취를 그대로 담고 있다. 돌아오는 길은 우각로 끝에 자리한 도원역을 이용하면 된다. 

/ 중앙일보 워크홀릭 담당기자 최경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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