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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방곡곡/부산광역시

부산팔경

by 구석구석 2022. 9.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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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팔경 - 해운대/광안리/국제시장/남포동자갈치시장/태종대/오륙도/달맞이고개

 

1. 해운대

부산시 해운대구 중동 일대로서 해운대는 수려한 사빈해안과 배후의 송림, 그리고 동백나무로 유명한 유계도인 동백섬 등이 조화를 이루는 옛부터 시인과 묵객들의 유상처로 절찬을 받아온 대표적인 명승지이다. 해운대란 신라의 말기 유교학자이자 문필가로 이름난 최치원이 지금의 동백섬일대를 거닐다가 이곳의 절경에 심취하여 동백섬 남쪽 암벽에 자신의 호인 해운을 따서 "해운대(海雲臺)"라는 세 글자를 새긴데서 비롯되는 것으로 전해진다. 『해운대』라고 새겨져 있는 암반의 위에는 인어상이 세워져 있다.

바다축제

오늘날 관광지로 이름난 해운대는 옛부터 문인들의 놀이터로 절찬을 받아온 경승지로, 『동국여지승람』동래현 고적조에 의하면, "해운대는 현의 동쪽 18리인데 산절벽이 있어 바다 가운데로 들어와 누에 머리와 같은데 그 위는 모두 동백, 두충, 송삼 등의 나무가 사시사철 울창하고 유인마제(遊人馬蹄)에 쌓여 삼사촌을 밝게 된다.

남쪽으로 대마도를 바라보면 심히 가깝다. 신라 최치원이 일찍이 축대 위에서 유상하여 그 유적이 아직 남아 있는데 최치원의 일자를 해운이라 한다"고 적고 있다. 해운대는 옛날부터 자연경관이 빼어난 해변의 명승지로 이름나 있어 아름다운 8가지의 자연경관을 『해운대 팔경』이라 불려왔다.

첫째가 『해운대상(海雲臺上)』으로 해운대 위에서 바라보는 경치이고, 둘째는 『오륙귀범(五六歸帆)』으로 오륙도 앞에서 고깃배들이 돌아오는 한적한 풍경이다. 셋째는 『양운폭포(養雲瀑布)』로 해운대의 주산인 장산에 있는 폭포를 이른다. 폭포의 규모는 크지 않으나 물줄기가 마르지 않고 물 흐르는 소리가 퍽이나 아름다운 곳으로 해운대지역의 상수도원으로 주민 및 각 호텔에 각종 용수를 제공하기도 하는 곳이다.

네번째는 『구남온천(龜南溫泉)』으로 해운대 온천을 말하는데 신라말 진성여왕이 온천에 행차하여 휴양하고 약수를 사용했다는 전설이 있을 정도로 유명하였다. 다섯째는 『봉대점화(烽臺點火)』로 간비오산의 봉수대를 치는데 외적침입을 알리는 봉화가 해풍을 타고 불길이 하늘로 십여장이나 올라가 화산이 솟는 광역을 연상케 하였다 한다.

해운대 황옥공주동산

여섯째는 『우산낙조(牛山落照)』로 현재 해운대의 달맞이 길에서 해지는 모양을 보는 것으로 "해뜨는 것은 영도에서 보고 해지는 것을 해운대"라는 말을 남길 정도로 아름다움을 보여주었다. 일곱째는 『장지유수』로 해운대 못골에서 내로 흐르는 물로 못가에 버드나무가 우거져 제방전체가 휴식처가 되었던 것이다. 여덟째는 『춘천약어(春川躍漁)』로 해운대 춘천천의 물이 하도 맑아서 고기가 뛰어 노는 것이 보였는데 이를 두고 하는 말이다. 이러한 조건으로 옛날의 해운대는 대한팔경으로 손색이 없는 주변경관을 갖추었다. 오늘날에도 해운대는 우리나라 최고의 관광 휴양지로서 손색이 없는 곳이다. 

 

2. 광안리

2003년 광안리해수욕장 개장일에 맞춰 완공된 광안해변의 테마거리는 인공야자수, 조형물, 벤치, 녹지대등을 갖추고 있다. 해변에 조성된 테마거리는 광안리해변을 따라 보행자중심의 시민휴식공간으로 세련된 이국적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어, 부산의 상징이며 명물로 태어난 광안대로와 함께 광안리해수욕장의 새로운 관광자원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광안리해수욕장전경 / 한국관광공사

광안리해변에는 100여개의 카페가 있습니다. 음악과 칵테일과 낭만이 깃든 카페에서 바라보는 해수욕장과 광안대교는 아름답기 그지없다. 광안대교에서 이 곳을 바라보면 마치 동화속 유럽의 한 도시를 여행하고 있는 듯한 착각을 할 만큼 예쁘게 꾸며져 있다.

테마거리 / 수영구

 

광안리 해수욕장 주변에는 낭만이 깃든 카페거리와 300여곳의 횟집이 있고 야외무대가 설치되어 있어서 부산 바다축제를 비롯한 다양한 축제가 개최되고 있으며 해변을 찾는 피서객을 위한 공연도 있다. 인근의 수영강에서는 낚시를 할 수도 있고, 싱싱한 회를 즉석에서 맛볼 수도 있으며 올림픽요트 경기장이 있어서 요트를 탈 수도 있다.

해운대와 더불어 부산의 대표적인 광안리해수욕장은 양질의 모래사장과 사시사철 다양한 축제로 젊은이들 뿐만 아니라 모든 세대들이 즐겨찾는 부산의 관광명소이다

낭만의거리, 해맞이광장, 젊음의거리 등으로 불리우는 관광테마거리(1.2km)가 광안리해변을 따라 조성됨으로서, 초록향기 가득한 바다의 쉼터에서 이국적인 분위기 속에 사계절 내내 아름다운 바다여행의 종착역이 될 것이다 / 수영구청 홈페이지

 

3. 국제시장

국제시장은 부산이 한때 우리 나라에서 가장 거래규모가 큰 상업도시로서 이름을 떨치게 해주었던 상징적인 존재이다. 그래서 부산하면 누구나가 국제시장을 들먹이게 될만큼 국제시장은 우리나라 상품유통 역사에서 길이 지워질 수 없는 확고한 좌표로 남을 만하다. 신창동을 중심으로 하는 국제시장이 모습을 갖추기 시작한 것은 1945년 광복과 함께였다.

1948년에는 1층 목조건물 12동을 지어 '자유시장'으로 개설하였다. 8.15광복 후 자유민주주의의 물결이 범람하는 시대적 풍조가 반영되었으리라 여겨지며 1950년 5월 지금의 '국제시장'으로 개설하였다. 1950년 한국전쟁 이후 미군이 진주하면서 군용물자와 함께 온갖 상품들이 부산항을 통해 밀수입되었는데 이들 밀수입 상품들은 도떼기시장을 통해 전국 주요시장으로 공급되었다. 국제시장은 밀수 외국상품은 물론 유엔군 군수물자까지 흔하게 거래되었다.

광복이 되자 일본인들이 철수하면서 이른바 전시통제물자를 한꺼번에 팔아 돈을 챙기기 시작하면서부터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우리나라 최대시장이었던 부평동공설시장 일대에 갖가지 물자들이 쏟아져 나왔고 그런 물자들이 그 무렵만 하더라도 드넓은 빈터였던 오늘의 국제시장 자리를 장바닥으로 만들어 자연 발생적으로 상설시장을 이룩했던 것이 국제시장의 발생 배경이다. 이 국제시장 장터를 '돗대기시장' 혹은 '도떼기시장'이라고도 하는데 시장의 규모가 크고 외국물건 등 없는 게 없을 뿐만 아니라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있는대로 싹 쓸어모아 물건을 흥정하는 도거리시장이거나, 도거리로 떼어 흥정한다는 뜻에서 그렇게 불렀다고 한다.

그 가운데에서도 외국 옷감을 비롯한 장신구와 화장품이 주종을 이루고 있었으며 외제상품의 인기에 편승하여 가짜 외국 상품들도 많이 거래되었다. 1969년 1월에는 '사단법인 국제시장'으로 법인체 등록을 하였으며, 지금은 약 650개 업체에 1,489칸의 점포가 있으며 종사하는 종업원 수는 약 1,200∼1,300명에 이른다. 1공구는 가방, 문구, 공예품, 2공구는 주방기구, 철기, 안경점, 3공구는 침구류, 양품점, 4공구는 포목, 주단, 양단, 주방기구, 5?6공구는 가전제품, 기계공구, 포목점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문방구, 주방기구, 기계공구의 의류, 전기전자류 등이 주종을 이루는 도소매업 시장이다.

1953년 2차례의 큰 피해를 입었으며, 1992년 4월에도 큰 화재가 있었다. 건물이 낡고, 주차시설이 불편한 점, 다른 재래시장과 마찬가지로 점차 노후?쇠퇴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인근의 대형 백화점을 비롯한 광복동 상가들과의 상권 경쟁관계에 있으나 여전히 부산 시장의 상징적인 존재일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찾는 명소로 꼽힌다

 

4. 남포동

남포동은 8.15광복 후 영도의 남항동과 구별하기위해 남포동이라고 불리우게 되었는데 남포는 부산시청에서부터 보수천 하구를 지나 부산공동어시장에 이르는 해안으로 남항의 해안에 해당한다.남항 일대의 용두산 쪽 바닷가는 자갈이 많아 자갈치로 더 잘 알려져 있다.

PIFF(Pusan International Film Festival) 광장은 지난 1996년부터 부산국제영화제가 개최되면서 남포동 극장가를 우리나라 영상문화의 저변확대와 국제적 문화관광 도시로서의 위상을 정립하기 위해 문화관광명소로 새롭게 단장하고, PIFF광장으로 명명하면서 조성된 곳이다.

PIFF광장 주변에는 국제영화제의 주무대가 되는 개봉극장들이 남포동에서 충무동 육교에 이르는 도로변에 위치하고 있으며, 남포동 구 부영국장에서 충무동 육교에 이르는 400여 미터 도로에 ‘스타의 거리’와 ‘영화제의 거리’가 조성되었다.

도심지내 번화가 중심에 위치한 40계단 특화거리는 50~60년대 어려웠던 시절의 애환과 향수가 짙게 서린 40계단 일대를 당시의 생활상을 테마로 하여 조성한 부산의 대표적인 문화관광 복합거리이다. 옛 부산역과 부산항을 상징하는 기찻길, 바닷길을 주제로 40계단 광장 등 4개 쉼터를 조성하였다.

부산 중앙동에 위치한 한 주차장은 개미 한마리 빠져나갈 수 없는 빽빽한 주차장으로 유명한 곳으로 SBS `신동엽의 있다!없다?`에 소개되어 눈길을 끌었다. 종일 주차를 하는데 5000원인 이곳의 주차요원들이 차 한대 주차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불과 채 10여초가 걸리지 않으며, 차 간격은 평균 5cm에 불과하다.

 

5. 자갈치시장

중구 충무동 보수천 하구 및 남포동 해안일대로, 원래 자갈치란 이름으로 불리우던 곳은 옛 부산어시장 제4구판장이 있던 주변을 일컫는다. 특히 부산의 성격을 가장 잘 보여주는 시장으로 외지로부터 관광객의 이용이 많은 가장 부산다운 시민의 생활의 터전이자, 상징의 대명사 처럼된 자갈치시장은 어느 시장과는 달리 어패류가 주류를 이루고 있는 시장으로 정식으로 "부산어패류처리장"이라 불렀다.

자갈치란 지명은 자갈해안에서 비롯 되었다는 설과 활어만을 취급한다고 하여 활어만이 거래되는 자갈치란 어종의 명칭에서 유래되었다는 설이 있다. 개항(1876년) 당시의 이곳은 자갈해안으로 보수천 하구일대로 주먹만한 옥돌로 된 자갈 해안이 있었다는데서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한다. 1925년 5월 부산남항의 실지 현장조사를 시작하여 1930년 2월 남항방파제, 남포동 해안 매축(1931년 1기 매축 준공), 1935년 2월 수면 34,000평 매축공사에 착수하여 1938년 2월 남항매축준공(2기)를 하였다.

이 시장이 개설된 것은 1924년 8월 남빈시장(현 자갈치시장)으로 개설하게 되면서 시작되었다. 8.15광복 이후 이 해안은 연근해 어선들의 수산물 집산지로서의 어항기능, 노점상들의 활어판매 기능이 혼재하는 시장으로 이루어졌다. 특히 오늘날의 자갈치시장으로 불리고 있는 곳은 "자갈치어패류처리장"이 들어서 있는 중구 남포동을 중심으로 하는 갯가 시장으로 본래 이 자리는 가건물로 들어서 있었던 곳이다. 즐비하게 늘어서 있던 판잣집은 1961년 부터 1968년까지 철거완료 되었다. 1974년 2월에는 말쑥한 "자갈치어패류처리장"으로 신장개업해 자리잡게 되었다. 1985년 큰 화재로 말미암아 점포 231개소가 소실되었고, 1986년 1월에 현대식 건물로 개축하여 다시 문을 열었다. 이것이 지금의 "부산어패류처리장"이다.

한편, "부산어패류종합시장"은 노점상 철거를 통하여 1970년 10월 신축되어 시장 기능을 담당하다가 1986년 4월 화재로 인하여 시설을 신축하여 현재와 같이 개장되고 있다. 1층에는 활어, 전복, 선어, 잡어 등의 점포가 있고, 2층에는 식당, 식품, 건어부 등 수많은점포가 영업하고 있다. 또한 어패류처리장 동쪽 도로의 노점에는 수조를 차려 놓고 싱싱한 활어를 전시하고 있어 이곳을 찾는 사람들의 입 맛을 더하는 것은 물론 한꺼번에 손님을 받는 모습은 자갈치 시장의 또 다른 모습이라 할 수 있다.

지금도 자갈치시장에 가면 해안가 도로변에는 "판때기장수" 아주머니들이 고등어, 멍게, 고래고기 등을 파는 진귀한 모습은 자갈치시장이 아니고서는 볼 수 없는 부산만이 가지는 바다내음이 물씬 풍기는 곳이다. 1980년대에는 3층 규모의 대형 "신동아수산센터"가 들어서 자갈치 시장의 명성을 더하고 있으며, 활어 판매와 싱싱하고 맛있는 회를 맛볼 수 있고, 건어물 및 해산물판매로 새로운 명물로 떠오르고 있다. 이러한 자갈치 시장에는 어쩌다 한 두사람의 남정네가 끼어 있을 뿐이고 전을 벌이고 있는 사람들은 거의가 아낙네들이다. 더욱이 노점상의 경우에는 예외 없이 아낙네들인 것이다. 그래서 "자갈치 아지매" 또는 "자갈치 아줌마"라고 하면 억척스런 생활력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이것이 자갈치 시장의 특징으로 섬세하고 부드러움은 없으나, 오늘을 열심히 살아가는 다이나믹한 "자갈치아지매"들은 부산 사람의 특유한 기질을 상징하는 가장 부산다운 사람들인지도 모른다. 바로 이러한 점 때문에 자갈치 시장은 살아있는 『부산의 縮圖요, 부산시민의 생활상을 대변해 주는 현장』이기도 하여 부산의 대표적인 명소로 등장하게 된 것이다.

 6. 태종대

태종대는 오륙도와 함께 부산을 대표하는 암석해안의 명승지.

부산시 기념물 제28호('72. 6. 26 지정)로 영도구 동삼동 산 29-1 일대에 위치해 있는 태종대는 영도의 남동단에 위치한다. 이곳은 파도의 침식으로 형성된 100m에 달하는 "태종대(太宗臺)"는 울창한 난대림과 굽이치는 창파와 어울려 절경을 이룬다. 특히 영도등대 아래에 발달하는 융기파식대인 신선암은 태종대를 대표하는 명소로 그 형성시기는 지금으로부터 약 12만년전인 제4기의 최종 간빙기에 해당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동백섬의 누리마루태종대는 세계 3대 미항의 하나인 이탈리아의 나폴리만에 있는 커프리섬을 연상케 할 정도로 빼어난 경관을 갖고 있어 예로부터 명승지로 알려져 왔다. 태종대에 대한 기록으로 『동래부지』에는 "태종대는 동래부 남쪽 30십리 되는 절영도 동쪽에 있는데 해수가 주회하고 하나의 석교가 있어 노는 사람이 겨우 통과하며, 속전에 신라 제29대 태종무열왕이 삼국통일의 대업을 성취한 후 전국의 명승지를 탐방하던 중 이곳에 들러 궁인들과 함께 울창한 수림과 수려한 해안절경에 심취된 후 잠시 소일하며 활을 쏜 곳이라고 하여 이로써 이름하였다."고 전해진다. 또한 가뭄이 있을 때에는 동래부사가 이곳에서 기우제(祈雨祭)를 지낸 곳으로 유명하다.

 

영도의 절경인 태종대 앞바다에 섬 하나가 주전자처럼 생겼다고 해서 주전자 섬 이라고한다.

특히 음력 5월초 열흘날에 오는 비를 태종우(太宗雨)라고 하는 것으로 보아, 태종 무열왕과의 관련에서 지어진 이름으로 추정된다. 영도의 최남단에 자리잡고 있으며 해발 250m의 최고봉을 중심으로 기암절벽에 부딪치는 파도소리를 들으며 청명한 날이면 멀리 대마도까지 바라다 볼 수 있는 명소로서 옛부터 시인과 묵객들이 많이 찾았던 곳이다. 조선 선조 40년(1607) 통신사로 일본에 다녀온 경운의 『해차록』에서도 바다를 바라보는 달밤을 노래하고 있다.

태종대에 자생하는 난대계상록활엽수인 생달나무, 후박나무, 참식나무 등이 해산초나무 사이에 산재해 있고, 해송 및 상록활엽수 이외에 약 120종의 낙엽수주에서 대표적인 때죽나무, 굴피나무, 개서나무 등이 분포하고 있다. 지금도 이 숲에서 서식하고 있는 노루, 산토끼, 다람쥐, 꿩, 메추리 등 수종의 동물 서식처이다. 계절마다 도래하는 철새, 그리고 경내에 자리잡고 있는 망부석, 신선 바위, 병풍 바위 등은 천혜의 아름다운 자연경관임을 잘 설명해주고 있으며, 각종 위락시설을 설치하여 이곳을 찾는 관광객의 편의를 도모하고 있으며 태종대는 국내 최대의 임해관광위락지역으로 발돋움하고 있다.

지형이 가파르고 험난한 군사보호구역으로 접근이 어려웠으나 시민들의 해양관광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하여 공공근로사업으로 조성한 산책로로서, 대마도와 송도 쪽으로 드넓은 바다 풍경을 배경삼아 연장 3㎞의 해안산책로를 2시간 정도 굽이굽이 거닐 때마다 경치가 달라지고, 파도곁으로 내려서면 자갈소리가 합창을 하며 곳곳에는 장승과 돌탑, 출렁다리, 장미터널, 파도광장, 무지개 분수대 등 아기자기한 볼거리, 즐길거리 등도 곳곳데 마련되어 있다. 전국 어느 도시에서도 느낄 수 없는 꿈과 낭만이 가득한 해안산책로에서 바다를 마음껏 품어 볼 수 있다.
유람선을 타고 보면 등대와 자살바위, 신선바위, 망부석, 아치섬, 태종대의 해안절벽, 해송 숲 등 천혜의 절경들이 태종대의 진면목을 나타내고 있어, 보는 이로 하여금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망부석 촛대바위 / 옛날 왜구에 끌려간 지아비를 애타게 기다리던 어느 여인이 비가오나 눈이오나 설한풍이 불건 땡볕이 내리쬐건 왜땅이 멀리서나마 바라보임직한 이곳에서   지아비를 그리워하며 돌처럼 서 있다가 마침내 돌덩이로 굳어 버렸다는 애틋한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런 전설을 따라 이 돌을 망부석(望夫錫)이라 전해지고 있다.

절영로를 따라 가다보면 목장원 앞의 해안쪽으로 돌출된 작은 광장이 나온다. 75년도에 조성되었다 하여 75광장으로 불리며, 팔각정, 놀이공원 등이 있어 절영로를 걸어온 나그네가 잠시 쉬어갈 수 있는 곳이다.

 

7. 오륙도

오륙도사랑 걷기대회

부산의 상징 오륙도는 용호2동 용호농장 앞 승두말에서 바다쪽으로 솟아 있는 돌로 이루어진 섬을 말하는데 육지에서 가까운 곳부터 우삭도(32m, 방패섬, 솔섬), 수리섬(33m), 송곳섬(37m), 굴섬(68m), 등대섬(28), 등 5개의 섬을 말하며 우삭도가 밀물때에 방패섬과 솔섬으로 분리된다.

밀물때 6개, 썰물때 5개의 섬으로 나누어 지는 현상에 따라 오륙도라 불리어지게 되었다. 오륙도는 대한민국의 관문이며 부산항을 드나드는 각종 선박은 반드시 이곳을 지나야 하기 때문에 부산항의 상징이기도 하다. 특히 노산 이은상의 오륙도시와 오륙도 일출은 전국적으로 유명하다.

 

이기대에서 보이는 광안대로와 해운대

 

 

 

 

8. 달맞이고개

 

달맞이고개에서 본 광안대교

 

달맞이고개전경

 

 

 

동백섬에서 본 달맞이 고개

 

자료

동아대학교 박물관광안리해변테마거리

www.haeundae.pe.kr

야후지식검색 '국제시장'

디씨인사이드 후지필름 겔러리 '달맞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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