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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방곡곡/제주시

제주 평대리 비자림 돛오름

by 구석구석 2022. 8.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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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시 구좌읍 비자숲길 55 (평대리) / 비자림 064-783-3857

 

숲과 나무를 좋아하는 사람이면 꼭 한번 들러볼 만한 곳이 바로 제주 비자나무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엄숙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비자숲이다. 이 숲에서는 무려 500년을 살아온 비자나무도 나이 축에 끼지 못할 정도로 오래된 비자나무로 가득하기 때문에도 더욱 그렇다.

돛오름에서 내려다본 비자림. 제주도 북동쪽에는 수 천 그루의 비자나무들이 자라는 희귀한 숲이 있다. 오래된 비자나무 고목들이 군락을 이룬 제주 평대리 비자나무숲은 단일 숲으로는 세계적인 규모를 자랑한다. 사시사철 푸른빛인 숲은 언제 찾아도 신비하고 오묘한 분위기가 흐른다.

비자숲은 제주도 북제주군 구좌읍 평대리에 고려와 조선의 역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살아있는 자연사박물관이다.

비자숲에 들기 전 바로 입구 오른편에는 곰솔(Pinus thunbergii)들이 수문장인양 반기고 있다. 중부지방에서 흔히 보이는 소나무(Pinus densiflora)가 남쪽 지방으로 가면서 곰솔로 변한다. 즉, 곰솔과 소나무는 매우 가까운 친구들이다. 외형적으로 서로들 쉽게 분간이 어려울 때가 많을 만큼 비슷하다.

그러나 소나무는 껍질이 대체로 붉은 빛을 띠는 반면, 곰솔은 어두운 색깔을 띤다. 또 장차 솔잎이 되고 가지가 되어 줄기생장을 할 수 있는 겨울눈의 색깔이 소나무는 황색을 띠는 반면, 곰솔은 흰 색을 띤다는 차이점이 있다. 곰솔은 주로 남쪽이나 바닷가에서 자라는 경향이 있어 다른 말로는 해송(海松)이라 하고, 소나무는 남부 이북지방의 내륙지역에 주로 자라기 때문에 육송(陸松)이라고도 한다.

돌담으로 만든 비자숲 길은 다소 인위적인 느낌을 주지만, 돌담에는 송악(Hedera rhombea)과 으름덩굴(Akebia quinata)이 한창 생장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송악은 사시사철 푸른 덩굴식물로 담벼락이나 나무 줄기를 타고 오르는 전문가다. 나무에 붙어 기어오르지만 나무에겐 피해를 가하지 않고 단지 지지만을 하며, 무려 20m까지도 능히 자란다. 덩굴성식물로 오래 자라면 400년까지도 살아갈 수 있는 생명력이 강한 나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송악으로 전북 고창 선운사로 가는 개울 건너편 절벽에 천연기념물(제367호)로 지정된 수백 년 된 송악이 대표적이다. 나무에 붙어 흐르는 빗물을 빨아 마시고, 필요한 공기는 나무에 다닥다닥 붙은 공기뿌리로 산소호흡을 하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 작년에 만든 보라빛 송악열매들이 포도송이처럼 송알송알 맺혀있는데, 독성을 띠고 있어 식용으로는 불가하다. 하지만 소들이 지나가면서 자주 송악 잎을 먹는다 하여 일명 ‘소밥’이라고도 부른다.

또한 1처 8부를 자랑하는 으름덩굴 꽃이 화사한 모습으로 개화시기를 기다리고 있다. 암꽃과 수꽃의 모양이 서로 비슷하나, 크기와 빛깔이 다르다. 화사하게 보이는 꽃잎 같은 모양은 사실상 꽃잎이 아니라 꽃받침이 변한 모양이다. 그러니까 으름덩굴의 꽃에는 꽃잎이 이미 퇴화되어 사라져버렸다. 꽃잎은 으름덩굴에게 그 어떤 역할도 할 수 없을 만큼 무용지물이 되어버렸단 뜻이 되겠다.

비자숲으로 깊이 빠져들게 되면 자연스럽게 신발을 벗어 던지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하고 몸으로 삼림욕을 시작하게 된다. 맨발로 천 년의 세월을 담고 있는 비자숲을 거닐면서 새소리와 바람소리, 그리고 코끝으로 스쳐지나가는 들풀의 향기와 간혹 더덕향들로부터 숲의 향수를 가슴 깊이 느낄 때 비로소 삼림욕의 절정에 이르게 된다.      

괴상한 형태로 자라난 나무들이 오묘한 분위기를 풍긴다. 사진/ 김도형 사진작가

 비자숲이 하늘을 가려 숲 내부의 습도는 매우 높은 편이다. 그래서 음지성 식물들이 많이 나타나고, 특히 고사리류와 이끼류들이 원시 숲의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그 중 대표적으로 우단일엽(Pyrrosia linearifolia)이나 콩짜개덩굴(Lemmaphyllum microphyllum), 일엽초(Lepisorus thumbergianus)들이 비자나무를 타고 오르는 모습을 보는 것은 어렵지 않은 풍경이다. 외모는 고사리와 매우 다르지만 모두가 고사리류에 속한다. 이들 또한 앞에서 만난 송악이나 으름덩굴처럼 스스로 자신의 몸을 지탱하면서 올라갈 수 없는 관계로 지지대 역할을 할 나무를 필요로 할 뿐, 나무에게 해를 가하는 기생식물들은 아니다. 

바위를 움켜 쥔 채 자란 나무들. 사진/ 김도형 사진작가

우리나라에 살고 있는 나무는 대략 1천여 종이 된다. 그 중 비자나무(Torreya nucifera·榧子)는 주목과에 속하는 나무로 흔히 만날 수 있는 나무가 아니다. 주로 남쪽 따듯한 지방에서 나타나는데, 전남 백양사를 기점으로 해서 해남이나 고흥, 그리고 제주도가 비자나무가 살기에 비교적 적합한 곳이 된다.

주목(Taxus cuspidata·朱木)과 마찬가지로 비자나무도 암나무와 수나무가 분리되어 살아가는 나무이며, 그 재질 또한 주목과 견주어 손색이 없는 나무다. 주목은 암을 예방하는 물질을 축출해서 개발되었지만, 비자나무의 열매에서는 구충제의 물질을 축출해서 오래전부터 내려오는 의약품들로 각광을 받아오고 있는 나무다.

비자림이라 쓰인 기념석. 사진/ 김도형 사진작가

나이가 수백 년이 된 수천 그루의 비자나무를 한꺼번에 만날 수 있는 곳은 제주도 비자숲에서만 가능한 일이다. 주목의 이름은 나무의 속 색깔이 붉다 해서 붉을 주(朱), 나무 목(木)을 사용하여 주목이란 이름이 붙어졌듯이, 비자(榧子)나무란 이름의 유래는 비자나무의 잎이 지금은 사라지고 없지만 옛날 할머니나 어머니께서 머리를 빗으실 때 사용하시던 참빗 같은 모양을 하고 있다 해서 붙은 이름이라 한다.

비자나무는 늘 푸른 잎을 매달고 있는 상록침엽수로, 제주의 비자숲은 사계절 언제 방문해도 푸름을 만끽할 수 있는 곳이다. 비자나무는 다른 상록침엽수와 마찬가지로 매년 새로운 침엽을 만들어낸다. 그러나 한 번 돋아난 침엽들은 1년을 사는 게 아니라 수년을 살아 가지에 붙어있게 된다. 주목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한 번 돋아난 침엽들은 오래 살면 무려 8년 동안 가지에서 떨어지지 않고 붙어서 광합성을 한다.

물론 비자나무의 잎도 주목의 잎과 크게 다를 바 없이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된다. 그러니까 왜 침엽수가 잎이 매년 떨어짐에도 불구하고 늘 푸르게 보이는지에 대한 현상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그것은 매년 돋아난 새 잎이 그 해에 떨어지지 않기 때문이며, 이로 인해 나뭇가지에는 잎이 누적되기 때문이다.

비자나무는 응달에서 죽지 않고 잘 견디는 내음성이 강한 나무다. 그 때문에 성장속도가 매우 느려 나이테의 간격이 조밀하게 나타난다. 그러니까 줄기가 가늘고 키가 작다고 어리게 보는 것은 금물이다. 둘레가 10cm 또는 20cm 정도가 된다고 해서 어린 나무로 치부하다가는 큰 실수를 범할 수 있다. 키가 2~3m 정도이고 둘레가 20cm 정도 되는 비자나무라 할지라도 100살을 훌쩍 넘긴 나무가 적지 않다. 물론 응달이 아닌 빛이 있는 곳에서 자라는 비자나무는 상황이 다르다.

제주 비자숲을 깊숙이 들게 되면 숲에서 가장 어른인 800년 이상 된 고목 비자를 만나게 되는데, 그 나무를 보면 절로 숙연해진다. 사람의 세대로 말하자면 무려 24~25대째 조상쯤 된다는 말이다. 시간적으로 따져보면 고려 초기 때부터 살아왔음을 알 수 있다. 비자숲의 상징적인 나무이기도 한 최고령 나무는 사진으로 담기에 역부족일 만큼 거목이며, 아직도 건강함을 자랑하고 있다.

나무의 건강 정도는 우선적으로 나뭇잎의 수를 보면 알 수 있다. 나뭇잎의 숫자가 하늘을 가릴 만큼 무성하면 그 나무는 건강한 나무라 판명해도 크게 틀리지 않는다. 나뭇가지 사이로 하늘이 많이 보이면 보일수록 그 나무의 건강지수는 낮다. 그렇게 보았을 때 최고령의 비자나무는 아직도 건재함을 과시하고 있다.

비자림에 자라고 있는 연리목. 사진/ 김도형 사진작가

이것보다 더 놀라운 사실은 최고령 비자나무가 옛날에는 서로 다른 두 그루가 현재는 한 그루로 합쳐졌다는 사실이다. 어린 시절에는 서로 둘레가 작아서 각각으로 자라다가 점점 두꺼워지면서 공간이 좁아지고, 급기야는 서로가 피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 두 비자나무가 최후로 선택한 것은 두 몸이 한 몸이 되는 연리목(連理木)으로 변한 것이다.

연리목은 같은 종류의 나무들이 아주 가까이 살면서 두 그루가 한 그루로 합체된 나무를 말한다. 하지만 서로 다른 종류의 나무일 경우에는 연리목 현상이 나타나지 않는다. 연리목이 되면 이후로는 서로 모든 것을 공유하게 된다. 모든 물과 양분을 함께 나누고, 아픔과 기쁨 또한 함께 나누는, 그야말로 하나의 개체가 되어버리는 경우다. 이 오래된 비자 연리목은 그렇게 긴 세월의 수많은 사연을 담고 있다. 

자고로 비자나무의 쓰임새가 매우 다양하여 우리의 역사나 문화 속에서 매우 다양한 형태로 이용되어 왔음은 고문헌에도 자주 등장해 잘 알 수 있다. 비자나무 목재는 선박을 만들거나, 옛 선비들이 비자나무로 만든 바둑판을 최고급으로 여겨왔으며, 기타 다양한 고급재료로 활용되어왔다. 이뿐 아니라 비자 열매는 특히 구충제로 뛰어난 약효가 있다 해서 널리 사용되어왔으며, 그냥 먹어도 고소한 맛이 있다. 비자숲 입구 매표소에서 비자 열매도 판매하고 있으니 구태여 힘들게 숲에서 열매를 주울 필요 없이 그냥 숲을 마음껏 즐기기만 하면 된다.

비자숲의 면적은 약 13만여 평이며, 비자나무와 더불어 다양한 들풀과 나무들이 자라고 있다. 비자나무 외에도 생달나무, 머귀나무, 덧나무 등 중부지방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나무를 합치면 무려 100여 종이 비자숲을 가꾸고 있고, 들풀이나 고사리류와 이끼류 등을 합치면 약 140여 종이 서식하는 그야말로 생물다양성을 확인할 수 있는 생태계의 보고인 것이다.

하지만 수백 종의 식물이 살아가지만, 원시숲의 모습치고는 그다지 다양한 종류의 나무와 들풀이 나타난다고 할 수 없다. 비자숲의 모습을 오래도록 간직해야 하는 것으로 단정된 문화재 관리임무 때문이 아닐까? 관리로 인해 다른 곳에서 자연스럽게 바람이나 동물을 통해 이주해오는 식물들을 막아 제한된 숲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하지 않다면 다른 다양한 나무들이 비자숲이 너무나 엄숙하고 습하고 응달이어서 감히 끼어들어 살 수 없는 까닭일까?

아무튼 약 2,800그루의 수백 년 된 비자나무숲을 볼 수 있는 곳은 세계에서도 보기 드문 곳이란 희귀성 때문이라도 혹, 제주도를 방문하시는 경우가 있다면 잠시 시간을 내어 찾아 볼만하다.

/ 월간산 남효창 이학박사

 

돝오름에서 내려다보는 비자나무숲

비자나무숲 뒤편에는 풍만한 산체를 이룬 돝오름이 있다. 돝오름은 오름 형태가 돼지가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돝오름과 비슷하게 발음되는 돗오름, 돛오름으로 불리기도 한다. 돝오름에 오르면 너른 숲이 한눈에 잡힌다. 비자림에서 차로 5분 정도 거리에 위치해 함께 둘러보기 좋다. 송당리 마을로 이어진 도로에서 비포장된 샛길에 들어서면 오름 아래 조성된 주차장에 닿는다. 

돝오름은 높이가 129m 정도이지만 정상에 오르면 비자림은 물론 다랑쉬오름과 손지오름, 높은오름 등 시원한 전경이 펼쳐진다. 산 중턱까지 경사가 급한 구간이 이어져 숨이 조금 차오르지만 수고로움에 대한 보상이 충분히 주어진다. 조금만 힘을 내면 생각한 것보다 더 근사한 풍경을 눈에 담을 수 있다. 탐방로를 따라 오르는 동안 무성하게 자라난 억새풀과 미나리아재비, 제비꽃 같은 야생화들이 눈을 즐겁게 해 준다. 분화구가 넓은 편이어서 둘레를 돌아 정상에 오르기까지 제법 시간이 걸린다. 따스한 햇살을 맞으며 오름이 펼쳐내는 전경을 천천히 음미해보자. 부드럽게 흐르는 바람결에 이른 봄의 향기가 스치듯 지나간다.

/ 여행스케치 2022 정은주 여행작가

 

맛집 성복식당(064-757-2481)의 은갈치 요리와 우가촌(064-739-0456)의 흑돼지가 유명하다. 우보원(064-738-0500)의 꿩 샤브샤브도 잘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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