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옥산서원
조선 선조 때 회재를 추모하기 위해 지은 옥산서원은 건물보다도 주변의 풍광이 더 인상적이다. 바로 앞에 널찍한 너럭바위들이 층을 이루며 시원스레 깔려 있고 그 위를 쉼없이 타고 넘는 냇물은 곳곳마다 아담한 소(沼)와 폭포를 빚어 놓았다.
물가 양편에는 참나무 벚나무 느티나무 소나무 등 노목들이 짙은 그늘을 만들고 있다. 절벽 사이를 이어주는 아담한 나무다리를 건너면 소꿉놀이하던 옛 시절이 떠오르기도 한다.
주위 풍광을 맘껏 즐긴 후 옥산서원으로 들어가자. 천하의 영재를 가르치는 즐거움이라는 뜻의 역락문(亦樂門),시작도 끝도 없는 태허의 상태를 뜻하는 무변루(無邊樓),마음과 덕과 지식의 근본을 구하는 집이라는 구인당(求仁堂) 등 건물마다 근사한 이름이 붙어 있다.
서원은 강당이자 중심건물인 구인당(求仁堂), 기숙사인 동서재, 서원의 누각인 무변루(無邊樓), 장서각인 경각과 장판각 그리고 청분각, 사당인 체인묘로 구성되어 있다. 서쪽으로 향하고 있는 정문인 역락문(亦樂門)으로 들어서면 무변루가 나타나고 그 안으로 계단을 오르면 마당이 있다. 마당 건너 구인당이 있고, 좌우에는 동서재에 해당하는 민구재와 암서재가 있다.
구인당에는 옥산서원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이곳에 보면 “만력 갑술(1574년) 선조 임금의 사액을 받은 지 266년 되는 기해(1839년)에 불이 나 다시 썼다”는 글이 적혀 있다. 어떤 사람은 이것을 추사 김정희가 썼다고 하는데 믿을 수 있을는지. 추사와 관련된 어떤 낙관도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마루에 올라 안으로 들어가 보니 옥산서원이라는 또 다른 현판이 걸려 있다. 끝 부분에 구액모게(舊額摹揭)라는 글자를 볼 수 있는데 이를 풀이하면 옛날의 편액 즉 원래의 편액을 본떠서 걸었다는 뜻이 된다. 그렇다면 이 편액이 바로 한석봉이 썼다는 그 글씨를 모방한 셈이 된다. 이게 사실이라면 우리는 바로 옥산서원에서 조선 최고 명필의 글씨를 대조해 볼 수 있는 호사를 누리는 것이다.
구인당을 본 다음 건물 왼쪽으로 돌아가면 사당 옆에 문원공 회재 이언적 신도비가 보인다. 이 신도비는 비각 안에 들어 있어 그 글자를 일일이 읽어볼 수가 없다. 그러나 안내판을 통해 비문은 고봉 기대승이 짓고 아계 이산해가 글씨를 썼다고 한다. 이들 모두 당대 최고의 학자들이다. 회재 선생은 이(理)와 기(氣)중 이를 우선시하는 이선기후설을 주장하였다. 이처럼 이를 우선시하는 주리론은 이후 퇴계 이황에게 전해져 조선 성리학의 중심사상이 되었다.
출처 : 글 오마이뉴스/ 사진 시니어매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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