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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방곡곡/광주광역시

광주 남구-광주8경 포충사와 대촌들녘

by 구석구석 2015. 10.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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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기념물 제7호 포충사

 

포충사는 임진왜란 때 호남의병을 이끌고 금산싸움에서 순절한 고경명 종후 인후 3부자와 유팽로 안영을 모신 곳이다. 대원군의 서원철폐 때에도 장성의 필암서원과 함께 헐리지 않은 전남의 2대서원이다.

 

 

이 건물은 왜란 후 호남유생들이 충의로운 인물을 기리고자 세웠는데 1603년 고경명의 후손과 제자인 박지효 등이 임금에게 청하여 포충이라는 이름을 받았다. 1980년에 새로운 사당과 유물전시관 내외삼문 정화비 및 관리사무소 등을 세웠고 이때 옛사당을 보수하면서 충효당 청사영당 전사청 고직사 등을 철거하였다.

 

그러나 옛 사당과 동서재는 본래의 위치에 비교적 원형이 잘 보존된 채로 남아 있다. 포충사에 소장되어 있는 문적 4종 9점은 광주광역시 유형문화재 제21호로 지정되어 있기도 하다.

 

고경명은 1592년 일본군의 침입으로 한양이 함락되고 선조임금이 의주로 피난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여러고을에 격문을 돌려 의병을 모집하였으며, 의병대장으로 추대된 그는 유팽로 안영 양대박을 종사관으로 삼고, 아들 종후 인후와 함께 담양을 출발하였다. 전주 여산을 거쳐 은진에 도착하였을 때 충청도 금산의 일본군이 호남으로 침범할 것이라는 정보르르 듣고, 곡창인 호남을 방어하기 위해 금산을 공격할 계획을 세웠따.

 

관군과 합세하여 일본군을 공격하였으나 관군이 무너지자 시가가 떨어진 의병도 패하고 말았다. 그는 후퇴하자는 주위의권유를 뿌리치고 적과 싸우다 유팽로, 안영, 아들인후 등 많은 의병과 함께 순절하였다. 비록 금산성을 탈환하는데는 실패하였찌만 전주침입의근거지를 공격함으로써 전주를 방어하고 있던 관군을 도와 호남을 구하는데 크게 이바지하였고, 호남의병 봉기의 촉진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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