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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방곡곡/전라남도

순창 동계면-구미리 구암정 용골산 무량산

by 구석구석 2015. 1.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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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위와 천년송이 어우러진 무량산…용의 형상 용골산(용궐산)

호남의 젖줄기인 섬진강을 사이에 두고 마주보고 있는 용골산(龍骨山)은 용이 승천하려는 형상이고, 무량산(無量山)은 물산이 헤아릴 수 없음을 뜻한다. 그런데 선조들은 예부터 금거북 형상이라는 의미로 구악(龜岳)으로 불렀는데, 언제부턴가 무량산으로 둔갑됐다.

 

순창군 동계면 구미리 중동 경로당 앞에 세워진 표석과 향토사학자 양상화씨의 고증에 의하면 금거북의 꼬리라는 지명을 가진 구미는 700년의 장구한 세월동안 남원양씨가 집성촌을 이루고 있는 명당이라고 한다. 따라서 구미는 금거북이 진흙 속으로 빠져들어가고 꼬리만 남은 금구몰미이고, 건너편의 적성면 구남 마을은 금거북이가 남수로 들어가는 금구남수 형상이라고 한다. 남수란 서하수의 의미로 동계천과 섬진강 원류가 합수되는 지점이자 섬진3지맥이 섬진강으로 숨어드는 구남 마을 어은정 앞을 일컫는다. 

구미리 1028 구암정

구암정은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되어있는 전형적인 정자로 남원양씨대종회에서 보호 관리하고 있다.

이 정자는 1520년(이조 중종 15년) 때 구암 양배의 학문과 덕망을 추모하기 위하여 1808년 그의 후손들이 정성을 모아 지게서원을 세워 배향하였으나 1868년(고종 5년)에 서원 철폐령에 의하여 서원이 헐려진 후 그의 유업을 기리기 위하여 1901년 호를 따서 구암정을 세웠다.

이를 증명하듯 구미리 앞에는 거북바위가 있고, 만수탄에는 구암 양배의 덕망과 학문을 추모하기 위해 1818년에 세운 구암정이 있다. 또한 구미리 출신으로 임진왜란 때 고경명과 함께 왜적을 무찌른 양흥의 막내아들 어은 양사형이 지은 어은정이 섬진3지맥 끝자락인 적성면 평남리 귀남 마을 섬진강변에 있다.

무량산이 바위와 천년송이 어우러진 금거북에 대한 풍수지리가 유명한 반면, 용골산은 용에 관련된 지명과 전설이 많음을 알 수 있다. 예컨대 용골산 남쪽 어치리 내룡에서 북동으로 오르면 천연동굴인 아흔아홉 개의 용굴이 있는데, 세번째 용굴까지는 사람이 갈 수 있으나, 네번째 용굴부터는 불을 켜도 앞을 분간할 수 없어서 갈 수 없다고 전해온다. 그리고 용골산 상봉의 신선바위와 산중턱에는 삼형제바위, 그리고 최근까지 스님들이 찾아와서 축조했다는 절터, 물맛 좋기로 소문난 용골샘 등이 있다.

용골산 정상의 신선바위에는 바둑판이 새겨져 있는데, 옛적에 용골산에서 수도하던 스님이 호랑이에게 무량산에 있는 스님에게 서신을 보내서 신선처럼 바둑을 두었다고 전해온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한국전쟁 때 아군들이 적군을 토벌하기 위해서 막사를 설치하면서 쇠말뚝을 박으면서 바둑판의 형체가 없어졌다.

용골산은 행정구역상 사면이 어치리에 둘러싸여 있고, 삼면은 모두 섬진강이 에워싸고 있어 동서남북 어느 방향에서 보아도 암봉으로 둘러싸인 용골산의 모습을 바라볼 수 있다. 또 내룡 마을 장구목재 부근에는 옛적에 300호의 옹씨들이 살았는데, 섬진강 두무쏘에서 잉어를 잡아먹고 모두 죽었다는 전설도 있다. 장구목은 옛적에 주민들이 왕래하던 큰 길목으로, 장군의 명당이 있어 장군목으로 불렸는데, 장구목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용궐산 하늘길의 잔도
용권산의 잔도/서울경제

내룡 마을 장구목가든 앞 냇가,

자연경관이 가장 좋은 곳에 화강암으로 된 요강바위가 세인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그 바위는 어른 1명이 들어갈 수 있는 항아리처럼 움푹 파인 구멍이 있어 예부터 어른들이 소변을 보는 요강을 닮아서 요강바위, 또는 용이 승천하려고 용틀임을 하는 용틀바위로 불린다.

그 바위 상단부에는 연꽃 모양을 한 돌출부 세 개가 있는데, 바라보는 방향에 따라서 귀를 쫑긋 세우고 있는 토끼 같기도 하고, 또는 여성의 성기를 빼닮은 모습을 한 기암괴석이다. 바로 옆에는 자라를 닮은 자라바위가 있고, 물결 무늬를 이룬 거대한 너럭바위는 여인들이 목욕한 뒤 기묘한 모습으로 휴식을 취하고 있는 것 같다.

1 무량석문 상단부. 2 두꺼비바위. 3 용골산 석성. 4 삼형제바위.

용동에서 각시봉~무량산~용골산 이어 주파

동계면 구미리 용동 경로당에 도착하면 마을유래를 소개한 표석과 돌로 벽을 쌓아서 지은 새사도교회 캐나다교구 구미교회가 눈길을 잡는다.

각시봉이 보이는 북쪽 마을 안으로 들어가면 밤나무단지를 만나고 곧이어 능선 삼거리에 닿는다(용동에서 10분 거리). 남원양씨 묘소에서 북쪽으로 오르면 능선이 아닌 계곡을 따라 등산로가 이어진다. 오름길과 씨름하면 각시바위에 닿는다(용동에서 35분 소요). 조망이 좋아서 용동 마을과 구미가 내려다보이고, 체계산, 풍악산, 고리봉, 용골산을 휘감아도는 섬진강 줄기가 한눈에 잡힌다.

바위와 소나무가 어우러진 길을 오르면 섬진강에서 목욕하고 올라온 듯한 두꺼비바위가 산 너머 동심저수지의 아내를 향해 가고 있다. 신선과 선녀가 노닐 성싶은 비경을 자랑하는 작은각시봉에는 큰 바위에 이끼와 고사리, 그리고 부처손이 자라고, 묘소 주변에는 백년송들이 줄지어 섰다(용동에서 50분 소요).

아쉬움을 뒤로하고 발걸음을 옮기면 아름다운 자연경관이 환상적으로 다가오며 점입가경이란 말을 실감케 한다. 거대한 바위를 돌아서가며 마치 지리산 통천문을 오르듯 석문을 통과해서 무량문 위에 서면 동계가 한눈에 보이고, 작은 쇠사다리가 있어 또 하나의 큰 바위를 올라야한다. 큰각시봉에는 산불감시초소가 있고, 9개 가지를 뻗어 용트림하는 노송이 발길을 잡는다(용동에서 1시간10분 소요). 무량산 정상과 용골산이 우뚝 솟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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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망을 즐기고 북쪽으로 발걸음을 재촉하면 급경사를 지나 육산의 부드러운 능선이 시작되며 동심 마을 또는 추동과 구미를 잇는 고개를 만난다. 뒤돌아보면 지나온 각시봉이 뾰족하게 서서 손을 흔든다. 작은 고스락을 올라서면 동쪽으로 동심과 저수지 3개, 추동, 동계, 그 너머로 체계산과 고리봉, 동악산이 한눈에 잡히고, 동심 저수지 3개가 의좋은 삼형제처럼 나란히 다가온다. 북쪽은 무량산, 서북쪽은 용골산이 반갑게 손짓한다. 무량산 정상에는 작은 바위와 리번이 많다(용동에서 1시간40분 소요).

무량산에서 산줄기는 북쪽으로 부드럽게 이어지다가 15분쯤 내려오면 섬진3지맥 갈림길이다. 산경표의 원리대로 물을 건너지 않고 무량산에서 용골산을 이으려면 북쪽의 원치 방향으로 가다가 시루봉 못미처에서 용골산으로 가야하나 등산로가 워낙 좋지 않고, 날씨도 폭염이라서 등산로가 좋은 서북쪽 어치계곡으로 내려섰다. 소나무와 잡목이 어우러진 내리막을 가면 어치리 시멘트임도에 닿는다(무량산에서 40분 소요).

불볕더위에 시멘트도로에 반사된 햇볕에 얼굴이 익을 정도다. 10분쯤 걸어서 어치리에서 흘러온 계곡물에 풍덩 뛰어 들어 목욕재개하고 어치계곡에서 오찬을 즐겼다. 어치계곡을 출발해서 임도를 또 다시 걸으려니 날씨는 무덥고 배는 불러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다. 15분쯤 임도를 따라 오르면 큰 소나무와 남성의 거시기처럼 우뚝 솟은 선돌이 반긴다.

다시 임도를 조금 오르면 ‘산경표’라 쓰인 빨간 리본과 전북산사랑회의 노란 리본, 그리고 경상좌도병마사 비석이 있는 서쪽 등산로가 안내한다(어치계곡에서 15분 소요). 임도를 따라 북쪽으로 계속 오르다 능선을 타고 오르는 길은 등산로가 희미하고 30분쯤 더 걸린다.

1 작은각시봉. 2 무량석문을 빠져나오는 일행.

서쪽 산길로 오르면 너덜을 지나 석성이 연이어지고 등산로가 아주 좋은 산길이 반긴다. 대슬랩을 오르다 뒤돌아보면 둥그런 모습의 무량산과 삼각추 형상인 각시봉이 한눈에 다가온다. 오름길과 씨름하다보면 섬진강변 폭포에서 올라오는 길과 만나는 나주임씨 묘소가 있는 능선에 닿는다(어치계곡에서 40분 소요).

북쪽으로 급경사를 오르면 바위구간이 시작되며, 땀이 비 오듯 쏟아지며 큰 바위와 석성이 있는 용골산 정상에 닿는다(어치계곡에서 1시간 소요). 그런데 전북산사랑회에서 세운 이정표는 실종되고 앙증맞은 돌에 새긴 용골산 표석이 웃음을 자아낸다.

신선이 되어 사방이 탁 트인 조망을 즐기고 두 군데 바윗길에 매인 밧줄을 잡고 내리면 묘소가 있고, 삼형제바위를 지나 내리막과 씨름하면 바람이 제법 시원한 장군목에 닿는다(용골산에서 50분 소요). 시멘트도로를 걸어서 장군목가든에서 얼음맥주에 목을 축이니 하늘을 나르는 기분이다(장군목재에서 10분 소요).

○제1코스  미리 용동 경로당~밤나무단지~북릉~각시바위~(1.5km)~작은각시봉~(0.5km)~각시봉~(1km)~무량산 정상~북릉~섬진3지맥 갈림길~안부~임도~(2km)~어치계곡~임도~표석~능선~(2km)~용골산~삼형제바위~(1.8km)~장군목~(1.3km)~장군목가든 <9.1km, 5시간 소요. 점심시간 포함>
○제2코스  폭포~북릉~(2.5km)~용골산~삼형제바위~(1.8km)~장군목~(1.3km)~장군목가든 <5.6km, 3시간 소요>
○제3코스  용동 경로당~(2km)~각시바위~(1km)~무량산~(3km)~용동 경로당 < 6km, 3시간 소요>

용골산 주변의 장구목가든(653-3988)에서 민박과 숙박이 된다. 토종닭백숙, 닭도리탕, 다슬기탕이 유명하다. 

/ 월간산 467호 2008.9 김정길 전북산악연맹 상근부회장·호남지리탐사회 회장

 

# 도둑맞아서 오히려 명소가 된 바위

용궐산 하늘길로 가는 들머리인 용궐산 치유의 숲은 섬진강을 끼고 있다. 그쪽 섬진강의 호젓한 강변을 두고 ‘장군목’이라고 부른다. 섬진강과 나란히 이어지는, 순창과 임실의 경계를 이룬 길목이었는데 주변에 장군의 명당이 있어 ‘장군목’이라고 했다는 이야기도 있고, 지형이 장구처럼 생겼다고 ‘장구목’이라고 불린다는 이야기도 있다.

장군목에는 바위를 휘감아 흐르는 강물이 뚫은 돌개구멍이 있는 너럭바위가 펼쳐져 있다. 여기에 도둑맞았다가 찾았다고 해서 더 유명해진 요강바위가 있다. 물살이 바위에 뚫은 구멍이 마치 요강처럼 생긴 바위다. 형상이 그렇다는 얘기지 15t이 넘는 바위도, 바위에 뚫린 구멍도 요강의 크기에 비할 바가 아니다.

요강바위 / 김수남 여행작가

이른바 ‘요강바위 도난 사건’의 개요는 이렇다. 섬진강 변의 거대한 요강바위가 어느 날 감쪽같이 사라졌다. 이사 온 외지인이 선심을 쓴다며 주민을 모두 단체관광을 보내준 뒤 마을에 아무도 없는 틈을 타 중장비를 끌고 와 바위를 실어내 간 것이었다. 도둑은 바위를 정원석으로 팔려고 경기 광주의 한 야산에다 숨겨두었다가 붙잡혔다. 범인은 잡았고 바위는 증거품이 돼 전주지검 남원지청의 앞마당에 놓였다. 모르긴 해도 남원지청 역사상 ‘가장 무거운’ 압류물품이었으리라.

요강바위는 마을 주민들의 요청에 따라 3년 만에 원래 있던 섬진강 변으로 옮겨졌다. 바위를 옮기는 데 운반비로만 500만 원이 들었다는데, 그 비용을 주민들이 십시일반으로 거둬서 마련했다고 했다. 되돌아온 요강바위는 일약 명물로 떠올랐다. 도둑맞지 않았더라면 과연 마을 주민이나 여행자들이 요강바위에 지금처럼 오래 눈길을 주었을까. 결과만 놓고 본다면 명소를 도둑이 만들어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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