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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방곡곡/경상남도

밀양 산외-가곡리 엄광리 보담산~낙화산~중산

by 구석구석 2014. 3.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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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절이 시절인지라 단풍과 억새가 만발한 산은 평일과 휴일 가리지 않고 만원이다. 단풍을 보러 갔다가 단풍 빛보다 더 화려한 '사람 단풍' 탓에 고개를 절레절레 젓기도 하고, 황금 억새밭에 올랐다가 '산중 체증'으로 곤욕을 치르기도 한다. 단풍, 억새로 유명한 산들이 매년 이맘때면 통과의례처럼 겪는 몸살이다. 하여 눈썰미 있는 산꾼은 이럴 땐 호젓한 산행지로 눈을 돌린다. 사람에 떠밀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산행이 아니라 마음먹은 대로 보폭과 숨을 조절하며 유유한 산행을 즐길 수 있어서다. 밀양 보담산(562m)과 낙화산(626m)은 이런 산행에 딱 맞는 산이다.


밀양 땅의 진산인 종남산보다 유명세가 덜 해 사람의 발때를 덜 탔다. 육산의 아늑함과 걷는 재미는 물론이고 능선을 따라 연결된 암릉도 아기자기한 멋을 준다. 명산은 아니지만 언제 찾아도 넉넉함을 만끽할 수 있는 고향 뒷산 같은 산이다.

영남알프스의 주봉인 가지산에서 서쪽으로 뻗어 운문산과 억산을 지나 구만산으로 닿는 산줄기가 운문지맥이다. 산줄기가 뚜렷하고, 계곡과 산세가 좋아 사계절 내내 산꾼의 발길이 끊기지 않는다. 보담산과 낙화산은 운문지맥의 꼬리에 있는 산이다. 비학산(317m)에서 출발한 운문지맥 종주꾼들이 보담산과 낙화산에서 힘을 보충했다가 다음 산을 노리곤 한다.


대개 이 구간 등로는 보담산에서 남서쪽으로 3㎞쯤 떨어진 비학산을 출발해 보담산~낙화산~중산~꾀꼬리봉(538m)으로 내려오는데, 산행시간만 8시간이 넘는다. 당일 산행지로는 무리라 비학산과 꾀꼬리봉 구간은 제쳐놓고 보담산~낙화산~중산을 연결하는 코스로 꾸며봤다. 원점회귀 산행이다. 산행 거리 8.5㎞, 넉넉잡아 4시간 30분 정도 걸린다.

산행 중반까지 등로는 확실하고 깔딱 고개도 없는 편이다. 낙화산에서 내려와 이정표가 있는 안부에서 석이바위까지가 약한 가풀막이다. 612봉을 내려와 다시 올라야 하는 중산 구간도 오름이 느껴진다. 삼각점(643.3m)을 지나면서부터는 인적이 드물어 묵은 길이 많다. 여기서부터는 산행 안내리본과 개념도를 잘 따져서 걸어야 한다.


기점은 관음사(밀양시 산외면 엄광리)다. 슬레이트로 만든 단층짜리 대웅전이 특이하다. 마당 한쪽에 관세음보살 탱화가 서 있다. 근래 만든 사찰이라 별다른 문화재나 유적은 없다.

관음사에서 왼쪽으로 조금 오르면 안당골과 중촌으로 가는 갈림길을 만난다. 안당골 쪽으로 등산로 입구 이정표가 있다. 이정표를 따라 250m가량 가면 보담산으로 붙는 산행로가 있다. 산행팀은 이 길 대신 곧장 산자락으로 들어서는 루트를 택했다.


들머리에 시멘트로 만든 사당이 있다. 사당을 지나 5분 정도 가면 묘가 나오고, 5분 뒤에 묘가 또 나온다. 묘에서 다시 5분을 더 가면 무명바위가 나온다. 뒤를 돌아보니 중산 너머로 아침 해가 돋기 시작한다. 역광 때문에 산줄기 실루엣이 은은하게 드러난다. 아침 해가 서서히 오르면서 촌락도 하나둘씩 제 색깔을 띤다.

▲ 보담산으로 가는 암릉길

느슨한 오르막을 걷는다. 비학산에서 보담산으로 이어진 능선이 낙타 봉우리처럼 산 금을 긋는다. 20분 정도면 안당골 접근 도로에서 올라오는 등산로와 붙는다.

보담산이 저만치 보이기 시작한다. 10여 분 더 오르면 보담산 주능선에 닿는다. 이 길부터 크고 작은 바위 사이로 난 길을 따라야 한다.

 ▲ 전망대에서 바라본 비학산. 낙타 등 모양이다.
능선에서 10분 남짓 가면 전망대다. 서남쪽 조망이 좋다. 남쪽부터 덕대산, 종남산이 북진한다. 이 줄기는 돛대산, 형제봉을 지나 화악산으로 간다. 화악산 건너편에 청도 남산도 보인다.

전망대에서 북서쪽으로 약 400m 떨어진 곳에 바위가 능선을 덮은 곳이 있다. 바로 볼수바위다.

 

 전설에 따르면 보담산의 '보담(寶潭)'은 옛날 중국에서 고관을 지낸 노장수의 이름. 보담은 죄를 짓고 이 산에서 귀양살이하면서 볼수바위를 밟고 마을을 오갔다. 그 과정에 바위에 큰 발자국이 남았고, 그 모양이 북두칠성을 닮았다고 한다. 보담산의 다른 이름인 '보두산(步斗山)'이 여기서 유래했다.

 

 

▲ 기점에서 출발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조망이 좋은 전망대에 올랐다. 건너편에 운문지맥 종주를 출발하는 비학산이 있다. 능선 생김새가 낙타의 등 같다. 그 너머로 밀양의 진산인 종남산의 마루금이 보인다.

▲ 노장 보담이 걸었다는 볼수바위.
전망대를 지나면 보담산 방면 이정표가 나온다. 15분 정도 오르면 보담산이다. 조망은 별로다. 정상 안내 푯말에 보두산이라고 적혀 산꾼들을 혼란스럽게 한다. 이 때문에 국토지리정보원이 나서 지난 2002년 1월 5일 보두산을 보담산으로 변경 고시했다. 밀양시가 정비에 나서야 한다.

운문지맥 종주꾼들이 매단 산행 안내리본은 낙화산 방향으로 풍부하다. 잠시 뒤 보이는 소방서에서 설치한 '구조대 표지목'에도 보두산으로 오기했다.

표지목에서 20분 정도 가다 능선 길에서 오른쪽으로 약간 벗어난 지점에서 툭 튀어나온 바위가 낙화암이다. 낙화산이 이 바위 이름을 빌렸다.

 

바위에 슬픈 전설이 서려 있다. 밀양 사람 박희량의 부인 민 씨는 임진왜란 때 왜적들이 마을을 침범하자 산으로 도망쳤다. 결국 이 바위까지 쫓겨 온 민 씨는 정절을 지키려고 절벽 아래로 뛰어내렸다고 한다. 하지만 일부에선 민 씨의 추락지점이 이곳이 아니라 엄광리 옆 마을인 가곡리 뒷산에 진짜 낙화암이 있다고 주장한다.

▲ 낙화암 바위.

낙화암에서 5분 거리에 낙화산이 있다. 정상 조망은 동쪽과 남쪽이 트였고 다른 쪽은 막혔다. 맞은편 중산 뒤로 승학산~정각산 줄기가 보이고, 천황산~재약산~향로산 마루금이 바치고 있다. 간월산~신불산~영축산 능선도 어렴풋이 보인다. 정상 표석엔 해발 597m로 표기했다. 산행팀은 국토지리정보원의 해발고도(626m)를 따랐다.

▲ 석이바위. 지도에는 이 지점보다 한참 뒤에 표시돼 있다.

낙화산에서 약 20분이면 이정표 삼거리(안부)에 내려선다. 오른쪽은 안당골로 내려가는 하산로다. 예전에 석이버섯이 많이 났다는 석이바위는 이정표에서 7분 정도 걸어야 나온다. 국토지리정보원 지도에는 석이바위를 한참 뒤에 만나는 삼각점 아래 능선에 표시했는데, 지도가 틀렸다.

석이바위부터는 암릉 길이 쭉 이어진다. 밧줄을 이용해 통과하는 구간도 제법 있고, 나무 말뚝으로 만든 계단도 있다.

552봉과 612봉까지 무던히 간다. 바로 다음 나오는 전망대의 조망이 괜찮은 편이다. 산행팀이 지나온 보담산~낙화산 능선이 한눈에 들어온다. 발아래에 꽤 큰 규모의 한옥이 보이는데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의 생가다.

전망대에서 안부로 내려와 중산(649m)까지는 10분 정도면 충분하다. 중산은 조망은 좋지 않지만, 산마루가 넓어 식사나 쉼터로 알맞겠다. 중산부터는 소나무, 참나무 숲길이다. 길바닥에서 솔가리와 낙엽이 깔려,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난다. 삼각점이 있는 곳까지 거의 오름이 느껴지지 않는 평길이라 15분이면 넉넉하다.

삼각점에 오르면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대리석으로 만든 또 다른 중산 표석과 석이바위봉이라는 표시 탓이다. 산외면 민간단체가 세운 것인데, 실제 위치는 이곳이 아니다. 산행팀이 앞서 지나온 곳이 맞다.

삼각점에서 '보두-9' 표지목이 설치된 안부까지는 20분 정도. 이 지점부터는 묵은 길이 많아 주의해야 한다. 오른쪽으로 꺾어 10분가량 내려가면 '보두-10' 표지목이 나온다. 여기서 약간 잡목이 우거진 길을 통과하면 갈림길이 나온다. 뽕나무밭과 노송이 보이는 쪽으로 우회전한다.

 

이제 마을로 가는 길로 접어들었다. 돌탑을 쌓은 민가를 지나 5분쯤 가면 다촌버스정류소다. 이 앞을 지나 3~4분 남짓 가면 기점인 관음사가 나온다.

 

부산일보 라이프레저부 051-461-4164. 전준배 산행대장 010-8803-8848.글·사진=전대식 기자

 

산행지 주변에 마땅히 먹을 만한 데가 없다. 산외면 금천리까지 나와야 한다. 날씨가 쌀쌀해지면서 따뜻한 국물이 생각나는 요즘이다. '외정 황토못메기'(055-355-6116)는 대표적인 보양식인 메기 요리 전문점이다.

황토물에서 기른 국산 메기는 육질이 쫄깃하고, 민물고기 특유의 비린내가 거의 나지 않는다. 얼큰한 매운탕(소 2만 7천, 대 3만 9천 원)과 매콤한 메기구이(1접시 2만2천원)가 괜찮다. 메기토종삼계탕(4만5천원)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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