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발등산로·족욕장·수목원… 가족끼리 떠난다면 더 좋겠네
지리산 영신봉에서 낙동강 남녘을 따라 김해 분성산까지 약 299㎞ 산줄기. 바로 낙남정맥이다. 낙남의 산들은 하동, 사천, 고성, 옛 마산 등 남해안과 마주보며 산맥을 뻗친다. 이 마루금은 진주와 고성의 경계에 있는 깃대봉에서 남강으로 달리는 곁가지를 친다. 바로 월아지맥이다. 달이 아름답다는 월아산이 지맥의 끝에 있다.
깃대봉에서 월아산을 잇는 산이 보잠산(寶岑山·453m)이다. 뜻으로 치면 '보물 같은 봉우리 산'이지만 정작 높은 산은 아니다. 아마도 진주 일반성면과 이반성면의 너른 들에 우뚝 솟아 그런 이름이 붙었지 싶다. 산꾼들이 봉우리 '잠(岑)'자와 고개 '령(岺)'자를 헷갈려 '보령산'으로도 부른다. 잘못 표기된 관광지도나 인터넷에 떠도는 등산안내도가 오독을 부추긴다.
보잠산은 월아지맥을 찾는 산꾼들 사이에서는 잘 알려진 산이지만, 일반 등산객들에게 생소한 산이다. 차라리 '경남수목원 뒷산'이라고 하면 고개를 끄덕일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낙남정맥 월아지맥의 산…보령산으로 잘못 쓰이기도
왜구 막으려 쌓은 산성 흔적, 묵은 길 많아도 험하지 않아
최근 진주시가 보잠산 등산로를 잘 정비해 놓았다. 상남고개에서 시작해 삼거리 갈림길에서 보잠산으로 갔다가 다시 갈림길로 돌아 나와 작당산을 거쳐 수목원으로 나오는 코스이다. 산행 코스가 3시간 정도로 짧은 편이고, 보잠산~갈림길 구간을 반복해서 걸어야 해 산행 코스로는 부적절하다.
'산&산' 팀은 기존 보잠산 등산로 대신 새 코스를 열었다. 남산리 버스정류소에서 출발해 240봉을 돌아 보잠산을 찍고 안부를 통과해 작당산~수목원으로 내려오는 코스다. 240봉~정상 구간에서 약간 땀이 난다. 그 외의 구간은 평범하다. 막판에 만나는 맨발등산로 구간은 둘레길 삼아 걸어도 좋겠다. 산행거리 9.7㎞에 산행시간은 4시간 30분 정도 된다. 특히 날머리 부근에서 수목원을 지나기 때문에 가족 산행지로 추천한다.
일반성면 남산리 버스정류소에서 첫발을 뗀다. 반성저수지로 난 시멘트 신작로를 따라 걷는다. 모를 심은 무논을 보며 걷는다. 웬만한 논에 모내기가 끝났다. 논을 따라 걷는데 순록 농장이 있다. 산행팀을 보고 놀랐던 순록이 곧 고개를 처박고 꾸벅꾸벅 존다.
20분쯤 가다 신작로를 두고 첫 번째 갈림길로 붙는다. 묵은 길이라 길 찾기가 쉽지 않다. 보잠산 개척 산행을 위해 홍성혁 산행대장이 지난주에 혼자서 답사했다. 길을 미리 닦아놓지 않았다면 산행 초입부터 헤맬 뻔했다.
갈림길에서 왼쪽으로 산허리를 따라 돈다. 볕 좋은 곳에 묘가 있다. 묘 왼쪽으로 붙는다. 아담한 숲은 지난다. 10분 정도 가면 시야가 확 트이는 데가 나온다. 보잠산이 아침 안개 속에 은은하게 좌정하고 있다.
비탈은 순탄하다. 굳이 잰걸음을 할 필요가 없다. '보잠산 등산로'라고 쓴 붉은색 리본이 심심찮게 나온다. 시에서 등산로를 정비하려다 중단한 탓인지 리본만 있지 길은 묵은 상태 그대로다.
10여 분 오르막을 탄다. 갈림길이 나오는데 오른쪽으로 간다. 낮은 가지들로 길이 가려 산행 리본을 놓치면 한참을 헤맬 만한 곳이다.
▲ 남해안에 출몰한 왜구를 막으려고 쌓은 보잠산성의 흔적.
갈림길에서 240봉까지 단숨에 오른다. 이 봉을 지나면 경사면에 화강암 돌덩이가 흩어져 있다. 자세히 보면 자연석이 아니라 사람의 손을 탄 돌들이다. '디지털진주문화대전'에는 예전에 보잠산 일대에 석축성이 있었다고 나와 있다. 정확한 조사가 없어 축조 시기 등은 알 수 없다. 다만 고려시대 것으로 추정한다. 남향인 성은 고성군을 지향하는데, 남해안에 출몰한 왜구를 겨냥해 쌓은 것으로 보인다. 성은 대부분 붕괴했다.
산성 흔적에서 15분쯤 가면 헐벗은 묘가 나온다. 묘에서 우측으로 난 능선이 월아지맥과 연결된다. 우리는 왼쪽이다. 급한 내리막을 내려간다. 조금 속도를 줄여 멈칫할 무렵 산딸기 군락을 발견했다. 아직 절정은 아니었지만 그런대로 먹을 만했다.
보잠산성의 돌들을 피해 조금씩 오른다. 비탈이 느껴진다. 해가 중천으로 가면서 등이 뜨거워진다. 다행히 숲 그늘의 품이 넓어 견딜 만하다. 나무 사이로 부는 바람이 땀을 식혀준다.
423봉을 지나니 전망 좋은 곳이 나왔다. 홍 산행대장이 "이곳의 조망이 정상보다 좋다"고 말했다. 벼랑에 서서 월아산 방향으로 카메라를 조준했지만, 아침부터 눌러앉은 안개가 조망을 막아버렸다.
▲ 정상의 표석.
여기서부터 5분 정도 오르면 보잠산 정상이다. 길이 170㎝가량의 표석이 있는데, 해발이 439m로 적혀 있다. 국토지리정보원의 2만 5천 분의 1 지도에는 이곳의 표고가 453m이다. 지도는 보잠산 정상도 여기가 아니라 400m쯤 떨어진 봉우리에 표시했다. 거기에다 산 이름도 '寶岺山'으로 썼다.
산행팀의 취재 결과 보잠산 위치는 표석이 있는 곳이 맞고, 높이는 453m가 정확하다. 정리하면 국토지리정보원 지도는 정상 위치와 산 이름이 틀렸고, 정상 표석은 높이를 잘못 표기했다. 진주시와 국토지리정보원의 후속 조치가 필요하겠다.
보잠산 정상은 초등학생들이 소풍을 와서 노래대회를 열어도 될 만큼 넓다. 하지만 조망의 폭은 인색하다. 북쪽으론 남강을 병풍 삼아 월아산과 장군대산이 있다. 동쪽은 방어산, 여항산 등 낙남정맥의 알짜배기 산들이 자리 잡고 있다. 하지만 이날은 안개에 가려 조망이 원활하지 못했다.
▲ 산행 중반부터 작당산까지 오르내리막은 무난하게 밟을 수 있다.
정상을 벗어나 15분쯤 가서 439봉이 나온다. 주변에 삼각점이 있다. 삼각점 옆에 참나무 한 그루가 뿔을 달고 엉덩이를 숙인 모양으로 자라고 있다.
439봉에서 333봉을 지나 갈림길까지는 무난한 내리막이다. 발을 뗄 때마다 표고가 떨어진다. 소나무, 산벚나무, 산딸기가 어울려 향이 나는 내리막길이다.
갈림길에서 오늘 산행에서 처음으로 이정표를 만났다. 주변에 벤치가 있다. 작당산 방향으로 길을 낸다. 정상까지 올라가는 구간이 묵은 길이었다면 갈림길에서 작당산과 이후 구간까지는 정비가 잘 된 길이 이어진다. 특히 이 구간은 소나무를 계획적으로 심어 아늑한 솔숲이 매력으로 다가온다.
갈림길에서 작당산까지는 20분 정도. 이 일대 보잠산성의 흔적이 더 뚜렷하다. 무너진 돌담도 있고 돌로 쌓은 집터도 있다. 무너진 돌 사이로 이끼와 야생화가 자랐다.
작당산에서 10분쯤 가면 맨발등산로가 시작된다. 솔가리가 풍성한 길인데, 잔돌이 많아 맨발로는 무리이겠다. 맨발등산로는 500m가량 된다.
맨발등산로 끝나는 지점에 특이하게 족욕장이 있다. 대리석 의자가 4개 있다. 수도꼭지를 열어 찬물에 발을 씻었다. 발이 시릴 정도로 물이 차가웠다.
여기서부터 경남수목원이 시작된다. 은행나무, 단풍나무, 메타세쿼이아 등 온통 나무다. 수목원 전망대에 올라 잠시 쉬어 간다. 전망대 아래 연못이 있다.
▲ 작당산 부근에 보잠산성의 흔적이 더 뚜렷하다. 담을 쌓은 집터도 보인다.
전망대에서 수목원 쪽으로 더 내려오면 길은 여러 갈래다. 왼쪽은 '상록활엽수원', 오른쪽은 '무궁화홍보관'이다. 주변에 있는 수목원 안내도를 참고해 구경할 데와 갈 길을 정하면 되겠다. 산행을 하다가 본 꽃과 나무를 여기서도 볼 수 있다. 산행팀은 상록활엽수원과 야생동물원을 거쳐 종점인 수목원 매표소로 나왔다.
▲ 경남수목원
문의 : 라이프레저부 051-461-4164. 홍성혁 산행대장 010-2242-6608. 글·사진=전대식 기자
경남수목원 일대는 먹을 만한 데가 없다. 일반성면까지 나와야 한다. 일반성면 반성시장 안에 '옛날 장터국밥'(055-762-3412)이 유명하다. 선지국밥(5천 원), 돼지국밥·선지국수·돼지국수(4천 원)가 잘 팔린다. 일행이 많다면 돼지수육(대 1만3천원)이 괜찮겠다. 갓 삶은 돼지고기와 내장도 일품이지만 음식량이 압도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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