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손도손 정다운 산행 … 천년가람 정취 흠뻑
숨이 턱까지 차는 고생을 하면서 정상에 올라야만 자연을 느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산행이 어렵다면 쉽고 안전한 트레킹 코스를 찾으면 된다.
가족들과 함께 이번 주말 간편한 복장에 물병과 간단한 간식거리를 갖고 트레킹을 떠나보자.
트레킹은 가벼운 배낭 하나만 짊어지고 산이나 들판을 여유 있게 걸으며 대자연 속에서 사색을 즐기는 레저스프츠로 등산과 산책의 중간 형태로 보면 된다. ‘집단여행’ ‘사색 여행’으로 사용되고 있다.
등산화가 아니더라도 운동화만 신으면 되고 지도와 수통, 비상식량등 꼭 필요한 물건만 챙겨 하루 3∼4시간씩 자연 속을 느긋하게 음미하면서 걸으며 자신을 되돌아 보는 기회로 삼는 게 좋다.
순천 조계산은 고색창연한 대사찰과 울창한 숲의 정취를 즐길 수 있는 곳이다. 높이 884m의 높지 않은 산이 동·서쪽 자락으로 펼쳐져 천년고찰 선암사와 송광사를 품고 있고 절을 지나 산으로 들어서는 숲길은 옛 정취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조계산 자락 선암사∼선암 굴목재∼송광 굴목재∼송광사에 이르는 옛길은 총 6.8km. 길 중간에서 벗어나 산 정상까지 올라가봐야 총 길이가 1.8km밖에 안 돼 잠시 ‘외도’를 즐길 만 하다.
출발지인 선암사는 고풍스럽고 은근한 멋을 자랑한다. 특히 절 앞에 아름답기로 이름난 승선교가 있다. 도선국사가 팠다는 작은 연못 삼인당과 선암사 제2 부도밭을 지나면 연못 맞은편에 위치한 찻집 뒷길이 굴목이재로 오르는 길이다.
이곳에는 60∼70년 된 삼나무와 편백나무가 어우러진 멋진 숲이 펼쳐져 있고 풀섶엔 노란 피나물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다.
선암사와 송광사를 이어주는 산길이 굴목이재다. 선암사 쪽의 선암 굴목이재(큰 굴목이재)와 송광사 쪽의 송광 굴목이재(작은 굴목이재)로 나뉘는데 작은 굴목이재에는 장군봉으로 오르는 길이 있다.
숲이 아늑하고 길이 험하지 않아 연인이나 가족이 산행하기에 안성맞춤. 우리 역사와 자연을 진하게 맛볼 수 있는 코스다.
송광 굴목이재부터 송광사까지는 줄곧 내리막 돌밭 길이라 아이들이 뛰어다니다 발목을 다칠 수 있으니 유의해야 한다.
작은 대피소를 지나 참나무 우거진 시누대밭길로 내려가면 물소리가 크게 들리고 송광사 옆길로 빠지는 길이 나온다. 송광사는 국사와 전각, 보물이 많다고 해 삼다사찰로 불려질 만큼 볼거리가 많은 명찰이다. 우리나라에서 아름답기로 손꼽히는 두 절을 함께 돌아볼 수 있다는 것이 이 트랭킹의 가장 큰 장점이다.
문의 선암사관리사무소061-749-3578
부드러운 흙길 밟으며 가을 정취 느끼다 / 문경새재
문경새재는 산세가 험하고 높아서 대낮이라도 혼자서는 넘지 못하고 반드시 사람이 모이길 기다렸다가 넘는 고개라고 했다. ‘새재’는 새도 날아서 넘기 힘든 고개라는 의미에서 조령(鳥嶺)이라고도 불렸다. 또는 ‘새로 생긴 고개’라서 ‘새재’로 이름 붙였다는 설도 있다.
문경새재는 옛날 선비들이 과거를 보러 한양으로 올라갈 때 즐겨 찾던 코스였다. 추풍령은 추풍낙엽이 돼 떨어지고, 죽령은 미끄러져서 떨어진다는 금기가 있었기 때문.
지금은 전 구간 길이 아주 넓어졌고 마사토로 쫙 깔려 잘 정비 관리되고 있다. 트레킹 시작부터 끝까지 함께 웃고 얘기하고 인증샷을 찍고 소통할 수 있다. 연인과 가족끼리 또는 단체로 걸으면서 힐링하는 대한민국 최고의 여행 걷기 길로 사랑받고 있다.
문경새재 주변의 주흘산과 조령산도 산세가 아름답다. 한번 가보면 최고의 건강 힐링 길이라고 누구나 감탄하게 된다. 특히 단풍이 절정인 10월 말경부터 환상의 걷기 길이 된다.
문경새재로 가기 전 ‘수옥폭포’
문경새재에 오르기 전 들르는 수옥폭포는 규모나 경치로나 어디에 내놔도 손꼽히는 폭포다. 약 20m 높이에 3단으로 이뤄져 있다. 조선 시대 조선통신사들이 일본으로 가다 거쳐 갔던 명소로 알려져 있다.
숙종 때 통신사로 가던 임수간이 수옥정에서 풍류를 즐기며 남긴 글이 있다. ‘가루분’이라는 표현이 절묘하다.
“수옥정은 깎은 듯한 석벽이 삼면에 둘렀고, 고목이 울창하게 뒤얽혔다. 공중에 달린 폭포는 10여 길이 넘고 가루분처럼 튀는 물방울이 마치 눈이나 서리 같다.”
지난번 여행 때 가을 가뭄으로 폭포 수량이 적어 시원한 물줄기를 보지 못해 아쉬웠다. 폭포 아래에는 수옥정 관광단지가 조성되고 있다.
쉬엄쉬엄 오른 3문 ‘조령관’
승용차를 몰고 오는 대다수 관광객은 문경새재 관광단지에서 1문 주흘관부터 걷기 시작한다. 각자 본인의 체력에 맞게 쉬엄쉬엄 오르다 쉬다 하며 힐링 걷기를 하고 원점 회귀를 한다.
버스를 이용하는 단체 관광객은 대개 3문 조령관부터 걷는다. 문경새재길 전 코스 걷기 여행을 가장 쉽게 즐길 수 있다. 버스에서 내려 조금 걷자 초입부터 우거진 나무숲과 어우러진 붉디붉은 단풍이 탄성을 자아내게 했다.
완만한 오르막이 계속되는 마사토 깔린 명품 길 1.8㎞ 정도를 여유롭게 걷는다. 피톤치드 가득한 시원하고 상쾌한 공기를 가슴 가득히 들이쉬고 뱉는다. 행복이 따로 없다. 조령관 전방에 있는 광장과 쉼터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다.
조령관을 지나 완만하게 이어지는 문경새재길을 본격적으로 걷기 시작한다. 5~8m 폭의 여유 있는 마사토 흙길이다. 그저 발걸음만 내디디면 된다. 계속 내려가기만 하는 길이라 힘든 것이 하나도 없는 소풍 길이자 산책 길이다. 신발을 벗고 맨발로 걸어도 좋다.
계곡 옆으로는 맑디맑은 계곡물이 끊임없이 흘러내린다. 길 위로 낙엽이 휘날린다. 앞서가는 여행객들의 뒷모습이 영화의 한 장면이 돼 눈에 들어왔다.
내려오다 귀틀집을 구경했다. 나무와 나무가 네 귀가 잘 맞도록 세워놓고 나무 사이에 진흙을 발라 지은 집이다. 보온성이 좋고 습기 조절 능력이 뛰어나 현대인의 웰빙 주거에도 좋단다.
2문 조곡관에 닿았다. 우리나라 고유의 축성과 성루를 잘 보여주는 귀중한 문화재로 그간 드라마나 영화 장면에서 많이 봐 온 명소다.
드라마 촬영장 등 볼거리 풍성
조곡관을 지나고부터는 거의 평탄한 내리막길이 이어진다. 옆으로 쏟아지는 조곡폭포를 지났다. 폭포는 높지 않고 앙증맞게 예뻤다.
드라마 ‘왕건’에서 궁예를 처형하는 촬영지에 나왔던 용추폭포도 보인다. 처연했던 드라마 속 궁예의 모습이 떠오른다.
굽어진 노송과 멋들어진 모습을 연출하는 교귀정에서 전통 한옥의 아름다움에 빠져본다. 교귀정은 전임과 신임 경상감사가 업무를 인계인수하는 교인처였다. 자연과 하나로 동화되는 한옥은 언제봐도 멋지다.
좀 더 내려오니 문경새재를 넘나들던 선조들이 여독을 풀면서 쉬어가던 주막이 복원돼 있다. 한양을 오가던 옛 군인이나 관리들이 묵던 군막터도 지나친다. 기름을 짜는 도구를 닮은 절벽 위의 지름틀바우도 만난다.
1문 주흘관에 다 내려와서 2000년에 개장했다는 KBS 촬영장을 들러본다. 촬영장에는 광화문, 근정전, 사정전, 교태전, 백제궁, 관아, 양반촌, 서민촌, 저잣거리 등 세트가 정교하게 지어져 있다.
국내 최대의 촬영장이다. 이곳에서는 정도전, 징비록, 관상, 남한산성, 장영실 등 수많은 드라마와 영화가 촬영됐다.
/ 한국아파트신문 2021.9 조석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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