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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방곡곡/강원도

삼척 노곡-군천리 둔달리 깃대봉

by 구석구석 2009. 12.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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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시 노곡면 노곡면사무소 앞에 이르러 깃대봉 남쪽 타령재에서 발원하는 군천(軍川)을 끼고 달렸다. 상월산리~하군천리~상군천리를 지난 9km쯤의 둔달리 마을, 도로가 끝나는 곳인 ‘둔둘박이 도로개통 기념비’ 앞에 승용차를 멈췄다. 

 

기념비를 읽어봤다. 예로부터 산비탈에 마을이 형성되었다고 하여 둔둘박이라 불렸다고 한다.  남쪽에 거신령산, 북쪽에 만리산이 솟았고, 심곡에서 발원한 둔달천 맑은 물이 옥터를 일궈 자리 잡은 큰터, 장재터 마을이 있다. 등짐 지고 쉬어 넘는 정잇재, 타령잇재와 더불어 징검다리에는 조상의 한과 얼이 서려 있다고 기념비는 이른 후 이렇게 말을 이어간다. 

“나라의 은혜 입어 탄탄대로 열렸으니 떠났던 이웃들아 이 길 따라 돌아오소. 백태 청태 잡곡 갈고 황기 장뇌 약초 심어 부자마을 이룩하세. 은혜주신 김일동 사장님 도로 개통에 공헌하신 모든 분들 정말 감사합니다. 그 공덕 영원히 기리오리다. 서기 1998년 12월 29일 둔달리 주민 일동.”

둔덕진 언덕 ‘둔둘박이’ 삼거리 왼편에 보이는 농가 뒤로 거신령산으로 가는 옛 길이 있고 오른편 콘크리트 포장 오름길이 큰터를 거쳐 깃대봉 가는 산행길이다. 큰터로 간다. 갈지자를 쓰는 비탈에 퀴퀴한 얄궂은 냄새를 풍기는 누리장나무, 오엽선(곱장선) 같은 나뭇잎을 가을이 오면 제일 먼저 낙엽으로 떨구는 오동나무, 골프공 크기의 열매를 땅에 떨군 호두나무들이 가로수 대신 사열을 한다. 몇 알을 발로 쓱쓱 비벼 종피를 제거하고 흙 묻은 핵을 물에 씻어 산행 휴식 때 맛볼 요량으로 배낭 옆 주머니에 챙기고 몇 걸음 더 옮기니 오목한 지형에 홀로 앉은 농가다. 격자방문 창호지가 빠끔빠끔 뚫려 있다. 봉당 골마루 처마의 빨랫줄에는 옷가지가 걸렸고, 계곡물을 마당으로 끌어드린 세면터에는 설거지감이 놓여 있다. 집 앞 언덕에는 두충나무, 산초나무를 대량으로 심어 놓았다. 주인이 출타 중인가 보다.

 

 

 ▲ 타령재를 내려선 후 만나는 계곡.

 

멧돼지가 풀숲 갈라놓은 흔적 따라 올라

농가 뒤 왼편 좁은 숲길로 올라 들어서니 사람이 밭으로 다닌 길이고, 지릉선으로 가는 길은 자연적으로 숲이 길을 폐쇄시켰다. 길이 사라지고 없다. 뙤약볕에 노출된 머리가 한순간 띵해진다. 한참을 번뇌하다가 ‘노곡간 350R 208’ 전봇대 앞에서 다음 전봇대로 전선이 이어진 방향을 따라간다. 가시덤불이고, 쑥대궁이고, 억새고 할 것 없이 마구 밟고 헤치며 고도를 높인다. 옛날에는 분명히 길이 잘 나 있었을 터인데 모두 대처로 나간 뒤 이렇게 길이 사라진 것이다. 묵밭에는 나무 그늘도 없다. 허리춤까지 오는 면도날보다 더한 억새 이파리가 폭염에 허우적거리는 팔뚝에 칼집을 낸다. 아리고 쓰리다. 전봇대에서 25분쯤 걸려 뽕나무가 심어진 울타리에 마당은 무성한 쑥대밭을 이룬 집에 다다랐다. 무너져 가는 흙벽에 5분 전 7시에 멈춰선 쾌종시계가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귀신이라도 부엌문을 삐걱 열며 “게 누구요?” 할 것만 같아 닭살이 돋는다. 집 왼편 뒤쪽에는 비석이 선 묘도 있다.

사방이 우거진 풀숲이라 우선 묘 있는 곳으로 올라선다. 이틀 동안 쏟아진 폭우로 묘에도 물기가 질척거린다. 묘를 뒤로하고 오른편의 작은 물골을 따라 길을 트며 오르자 절벽 아래에서 샘솟은 물을 모은 식수 탱크가 있다. 탱크 주위에 돌을 쌓은 게 흡사 호식총 같다. 부근은 여기저기 멧돼지들의 목욕탕이 되어 있었다. 사방팔방 덩굴식물들이 꽉 들어차 오도 가도 못할 음침한 곳이다. 덩굴 숲 사이로 오른편 동쪽에 나무가 없는 지릉이 보인다. 그쪽 방향으로 숲을 뚫고 나간다. 그 와중에도 까맣게 익은 머루를 보니 그냥 보고 갈 수 없다.

남쪽 건너편 거신령산 쪽에서 시원한 바람이 불어와 땀을 들인 후 초원으로 나서니, 여기는 모두가 사람 키를 훨씬 넘는 억새밭이다. 헤엄을 친다. 땀에 젖은 살갗이 쓰리고 아프다. 옷에 피도 흥건하다. 방금 멧돼지가 지나가며 풀을 갈라놓은 흔적을 따라 오르니 초원이 끝난다. 미처 좋아할 겨를도 없이 경사를 높이는 길이 나타나더니 간벌해 쓰러진 나무들이 길을 막는다. 간벌된 나무들을 버린 길을 가면 고생이 배가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따가운 햇볕을 가릴 수 있는 나무 그늘이 있어 그나마 위안을 삼아 본다.

천천히 이리저리 나무들을 타고 넘으며 곡예를 하느라 산행시간이 많이 흐른다. 신발 끈도, 모자도 나뭇가지가 잡아당기며 달라 한다. 심장박동 소리가 쿵쾅거리고 숨이 멈추는 것 같다. 깃대봉 동북쪽 지능선에 올라서니 이제야 숨통이 트인다. 1.8ℓ 페트병에 담아온 얼음물도 반이나 줄었다. 태백여성산악회 권영희·이영숙·황분순씨는 그래도 힘들다는 투정 한마디 없다.

 

 ▲ (좌) 깃대봉 정상. 숲 사이로 백두대간상의 두타산이 보인다. (우) 타령재를 찾아 하산하고 있다.

남서쪽으로 방향을 틀어 이제부터는 능선을 따른다. 그런데 여전히 간벌해 버린 나무들이 애를 먹인다. 어쩔 수 없는 일. 이리 갔다 저리 갔다 발품을 판다. 싸리버섯, 표고버섯, 벚꽃버섯 등 먹음직스러운 독버섯들도 많다. 능선을 따른 지 40여 분. 정상이 보이며 간벌된 나무들이 없어져 한결 나은 듯했으나, 이제는 바위들이 나타나는 길 없는 급경사다. 고도를 높이며 숲을 헤친다. 이렇게 40여 분을 더 오르니 잡목과 돌들이 있는 정상이다.

삼각점을 찾아 본다. 어? 이상하다! 주위의 나무들 모두를 꺾어 한곳에 수북이 쌓아 두었다. 사방에 쉬파리가 날고 주먹만 한 멧돼지 똥이 지천이다. 아뿔싸. 멧돼지란 놈이 새끼를 낳으려고 삼각점 위에다 집을 지었으니 삼각점이 보일 턱이 있나. 동행한 여성들은 겁을 먹고 슬금슬금 피한다. 피해서 될 일이 아니다. 모여야 변을 당하지 않는 것이다. 인간의 냄새와 소리에 일찌감치 자리를 양보한 것이니 괜찮다고 사진도 찍고 정상제도 올린 후 정상을 멧돼지에게 돌려주고 남쪽 능선 타령재를 향하여 자리를 뜬다. 

 

작은 바위들도 나타나고 하늘이 보이지 않는 능선 마루금을 놓치지 않고 20여 분을 하산하니 그제서야 급경사 능선이 숨을 죽인다. 멧돼지들이 땅을 파헤쳐 밭을 일궈 놓았다.

부드러운 능선을 10분쯤 더 내려서니 타령재 안부다. 이곳 마을 사람들은 타령잇재라 부르고 있다. 사람의 내왕이 끊겨 정글지대로 변했으나 재를 넘던 사람들이 쉬며 먹고 버린 복숭아 씨앗이 돋아 어린 나무 몇 그루로 자라나 옛 재였음을 말해주고 있다.

타령재 오른편 서쪽은 도계읍 차구리 큰말 피골이고, 동쪽 왼편은 노곡면 둔달리 큰터골이다. 원점회귀 산행을 위해 큰터골로 하산한다. 초장부터 고생을 예고하는 줄딸기덩굴과 쓰러진 고목이 길을 막는다. 발밑에는 옛 길이 눈으로 보이지만 무릎 위로는 나무와 풀이 덮여, 뚫고 나가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니다. 등산복은 걸레처럼 되었다. 길은 계곡으로 곧장 떨어지지 않고 왼편으로 산사면을 끼고 돈다. 오지 산행 40여 년에 옛 길이 폐쇄된 정도로 보아서는 여기가 가장 심한 듯하다. 동행한 권영희·이영숙·황분순씨가 참으로 대단하다. 이렇듯 거칠고 힘든 곳으로 안내했는데도 연신 즐거워하는 그들.

움푹 파인 곳이 옛 길이라 힘이 들어도 놓치지 않으려고 따라간다. 구불구불 몇 번을 ‘알바’하기도 하며 30여 분을 내려서니 눈에는 보이지 않는 계곡물 소리가 요란하다. 폭포가 있는 게다.

산사면으로 지계곡을 건너 암반 위를 지나자 무너진 허공다리를 만난다.  왼편 숲 위쪽의 묘 1기는 멧돼지가 묘를 반으로 갈라 놓아, 눈으로 보기에 안된 정도가 아니라 처참하다.

오른편으로 접어들자, 아찔한 폭포를 지나더니 길은 계곡으로 내려선다. 이제 또 나무들에 시달려야 하나 하는 생각은 기우였다. 아예 옛 길은 물이 쓸어가 버리고 없다. 그래도 바위와 물을 건너는 게 훨씬 수월하다.

물가에 자란 덩굴식물들이 발목을 잡아 사진을 찍을 겨를도 없다. 계류를 끼고 따르기를 10여 분 만에 벽채는 없고 기둥만 기우뚱 남아 있는 폐가 한 채를 만났다. 귀신이 발목을 잡았는지 카메라 멘 채로 폭 엎어져 일어나는데 썩은 함석 지붕 처마가 배낭을 물고 놓아주지를 않는다. 산 위에서도 이런 일이 없었는데…. 뒤를 따르던 태백여성산악회원들은 참았던 웃음을 터뜨렸다. 집 뒤란 절벽에 늘어진 다래나무에는 포도송이처럼 다래가 달렸다.

폐가를 뒤로 하고 큰터를 향해 가는데도 길이 보이지 않는다. 숨은 그림 찾기다. 왼편 산사면으로 길이 보이는데 숲이 들어차 갈 수가 없어 계곡을 따르다가 큰터 쪽으로 올랐다. 산초나무 밭을 따라 산 위로 올라서 두충나무, 산초나무, 호두나무들 사이로 훤한 길로 내려서니 큰터 농가가 반갑게 마중한다.

 

둔달리 둔둘박이~(10분)~큰터 농가~(25분)~폐가~(1시간40분)~동북능선~(1시간10분)~정상~(30분)~타령재~(1시간 30분)~큰터 농가~(5분)~둔둘박이

옛 길을 찾아 산행 코스를 택했으나 발밑은 희미하게 길 흔적이 남아 있어도 나무들이 길을 덮어 버려 아예 생짜로 길을 뚫는 것이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 능선은 옛 길에 비해 다닐 만하였으나 산짐승 때문에 정상 삼각점을 확인하지 못한 것은 깃대봉이 처음이다. 산악회 한 팀만 지나가도 금세 옛 길이 뚫리게 될 것이다. 글·사진 김부래 태백 한마음산악회 고문


노곡면사무소 부근에 노곡슈퍼(033-572-3711), 월송식당(033-572-0255)이 있으며 숙식은 김원근 이장(010-2985-7984)에게 문의하면 된다. 한가네식당(033-572-7909), 하군천리 김두수 이장댁(033-572-7514, 011-9919-7513), 둔달리 삼거리 이용구씨 집(033-572-4880) 등에 닭백숙, 민박 문의. 하반전리의 산내들(033-572-9078)은 슈퍼를 겸한 민박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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