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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방곡곡/제주시

제주 한경-조수리 낙천리 아홉굿마을 굽은오름

by 구석구석 2009. 11.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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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의 역사현장 굽은오름

굽은오름(구분오름·拘奔岳·한경면 조수2리 소재·표고 96m·비고 26m)은 새신오름 서쪽 2km 남짓 거리에 있다. 굽은오름이란 이름은 ‘구부러지게 누워있는 개의 형상’을 하고 있다는데서 왔다고 한다. 조수리는 오래전부터 옹기를 굽던 마을이다. 오름 뒤쪽에 물이 있었는데 흙이 붉어서 물도 붉게 비치니까 이 동네를 ‘불그못’, 한자로는 주지동(朱池洞)이라 불렀다. 현재도 가마터가 남아있어 옹기굽던 마을의 자취를 느낄 수 있다.

 

마을사람들의 증언에 따르면 태평양전쟁 말기에 일본군은 굽은오름 전체에 갱도를 판 것으로 알려진다. 오름 내부에 대규모 갱도가 구축돼 있다는 이야기다.

 

   

 ▲ 굽은오름의 갱도와 도면(2)와 도면(1)

특히 굽은오름 탐사에서는 갱도내부 구조와 갱도의 완성된 형태를 파악하게 해주는 갱도가 확인돼 비상한 관심을 끈다.<도면 1> 이 갱도는 굽은오름 ‘암메왓’ 지경 사면에 위치한다.

지금은 경작지로 이용되고 있지만 태평양전쟁 말기에는 일본군들이 이 일대에 천막을 치고 숙영을 했다. 갱도는 수평형태로 파들어갔다. 굽은오름의 다른 갱도나 새신오름 갱도의 경우 대부분 입구부분이 가파르게 경사져 있는 것과 비교된다. 갱도의 구조는 ‘에프’(F)형으로 입구는 동쪽으로 나 있으며 총연장은 50m 길이다.

 

무엇보다 취재팀의 시선을 끈 것은 갱도내부 전체에 갱목 설치형태가 원형대로 뚜렷이 남아있다는 점이다. 갱목 홈은 무려 직경이 35cm, 높이는 220cm, 갱목홈 간격은 50cm에 이른다. 갱도 내부 좌우측 벽면 뿐만 아니라, 오른쪽으로 난 공간 좌우 벽면에도 남아있다. 갱목홈은 성인이 들어갈 정도로 깊고 뚜렷하다. 일본군들의 무모함과 치밀함에 소름이 끼칠 정도다.

굽은오름 갱도는 여러모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즉 갱도를 구축하는데 소요된 목재수량, 내부 구조 등을 파악하는데 하나의 중요한 근거가 되기 때문이다. 갱도 내부 상황만을 보면 태평양전쟁 말기 일본군은 50cm 간격으로 직경 35cm에 2m 이상 되는 거대한 갱목을 설치했다는 이야기가 된다. 벽면에 세웠던 갱목 수만도 단순계산만으로 무려 3백20개나 된다.

 

바닥과 천장을 포함할 경우 엄청난 갱목이 소요됐음을 추정할 수 있다. “갱목이 한아름이나 됐다”는 이 마을 노인회장 박성린씨의 표현이 과히 틀린 말은 아니다. 이처럼 큰 갱목은 일본군 제111사단이 중국 만주에서 제주도로 이동하면서 수송해 온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또다른 갱도는 오름 4부 능선 쯤에 위치한다.<도면 2> 이 갱도는 총길이가 40m 규모다. 입구가 45도 정도로 가파르게 경사져 있어 진입하기가 쉽지 않다. 갱도의 내부 폭은 120cm에서 135cm, 높이는 170cm를 보인다. 이외에도 20m 길이의 갱도 2곳이 더 확인된다.

 

이처럼 굽은오름에서도 많은 갱도의 실체가 확인된다. 그 이유는 이 일대가 가마오름·새신오름과 함께 태평양전쟁 말기 일본군 제111사단 243연대의 핵심 주둔지였기 때문이다. 일본군은 이 일대에 각종 중무장 화기를 갖춘 막강한 ‘주저항진지’를 구축했던 것이다.

특히 이 곳은 지금까지 탐사한 갱도 가운데 갱목설치 형태가 가장 원형대로 남아있어 주목된다. 일정구간도 아닌 갱도전체에 갱목설치 형태가 온전히 남아있는 경우는 처음 확인됐다. 때문에 조사연구 대상으로서 중요한 가치는 물론 보존 필요성이 제기된다. 한라일보 특별취재팀=윤보석·이윤형·표성준·이승철기자

 

낙천리 2145 물드리네 064-772-5079

올레14코스 중 낙천리 테마마을 사무실에서 2분거리, 생각하는 정원에서 5분거리

 

물드리네는 500여평의 규모에 전시실, 염색체험장이 있으며 근처에 염료식물을 재배하고 있다. 물드리네는 체험학습대상의 연령별, 인지정도에 따른 염색체험과 염색에 관심이 있는 분들을 위한 천연염색교실을 운영하고 있다. 염색재료는 제주풋감, 억새, 귤, 녹차잎, 동배잎, 쪽, 홍화, 자근, 치자등 제주지역의 나무와 풀 그리고 각종 한약재를 사용한다.

 

5km반경 내에 현대미술관, 방림원, 유리의성, 생각하는 정원, 제주옹기마을 등이 모여있다. 낙천의자테마을에서는 보리빵체험, 보리수제비점심, 국수, 보리빵판매, 농산물 등을 판매하고 있다.

 

아홉굿마을 / 올레꾼들 쉬어가며 '특별한 추억'으로 간직

제주국제공항 인근에서 자동차로 약 45분가량 달려야 닿을 수 있는 낙천리 '아홉굿마을'. 아홉굿마을이 1000개의 나무의자 프로젝트를 시작한 것은 2006년.

 

2003년 농촌진흥청에서 지정하는 농촌테마마을로 선정됐으나 이후 수년동안 이 곳을 찾는 사람들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아홉굿마을은 전국공모를 통해 붙여진 나무의자들의 이름을 축하하기 위해 지난 해 7월말 지역주민들을 비롯한 이름짓기 공모에서 우수자로 선정된 이들과 가족들이 함께하는 '푸른농촌 희망찾기 낙천마을 공원 선포식'도 개최했다. 이들은 자신들이 이름을 붙인 '꽃'들을 찾아 앉아보고 쓰다듬으며 자랑스러워 했다.

 

아홉굿마을 태생의 주역중 한 사람인 직전 이장 조시홍(52)씨는 인터넷 다음 카페의 '고든터사람들'을 기억하고 있다. 조씨는 "고든터사람들의 전국 회원들이 2박3일로 마을을 찾았는데 함께 고기도 구워먹고 남은 숯으로 서로 얼굴도 칠해주면서 즐거웠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고 말했다.

 

 

'사랑의 숲에서 길을 잃다' '이쁜 내가 참는다' '차-★ 없는 e-세상' '국데워라 금순아' '인연과 인연사이'……. 영화제목이 아니다. 1000개에 달하는 나무의자들이 하나씩 갖고 있는 이름이다.

 

지역주민이라고 해 봐야 고작 200여명. 제주시 지역내에서도 가장 외곽지에 자리잡고 있는 마을 중에 하나인 한경면 낙천리(이장 김만용). 이곳에는 변변한 식당은 커녕 그 흔한 편의점이나 '구멍가게'조차 없다. 그러나 전국에서 단 하나뿐인, 아니 전 세계에서 하나뿐인 의자들이 무려 1000개씩이나 있다. 나무의자 하나하나마다 독특한 이름들을 갖고 있다.

 

시인 김춘수의 '꽃'에서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처럼 나무의자들도 이름이 붙으면서 나름대로 각자 하나씩의 의미를 갖게 됐다. 이름을 붙인 이들에게 나무의자들은 '꽃'이 된 것이다.

 

특히 용수포구에서 저지마을회관에 이르는 제주올레 제13코스의 중간지점에 마을이 위치해 올레꾼들이 잠시 쉬어가는 곳이 됐다. 올레꾼들은 마을 곳곳에 있는 나무의자에 앉아 쉬면서 의자에 새겨진 특이한 이름들을 추억으로 간직하며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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