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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방곡곡/경기도

부천 범박동 신앙촌 오만제단의 추억

by 구석구석 2009. 9.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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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만제단 벙개

 

영수가 토요일에 오만제단에 가보자고 올렸는데 반응이 션찬아서 파토인가 하는 순간에 영수한테 전화가 온다. 밤11시 조금 못된듯하다. 얼마전 장모님이 돌아가시고 야밤에 전화가 오면 긴장을 하게 된다.

 

이시간에 먼 전화를 한다냐~ 속으로 궁시렁거리면서 전화를 받는다. 지는 당직이라 갠찮지만....아무튼 애를 낳아야 어른이라고 할 수 있다. 애를 낳았다고 다 어른이 아니다. 나같이 적어도 셋은 나바야 한다. 

 

오만제단 뒷편에 지금도 코스모스가 피어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었는데 마침 잘 되었다. 토욜에 놀만한 몇사람에게 전화하여 오후 1시에 영수랑 만나서 같이 갈 사람들 태우고 오만제단에 가기로 한다. 지난간 시절을 언제까지 울거먹어도 끝이 없을 오만제단 구경을 하고 물탱크실 위에서 삼겹살에 소주한잔 하기로 한다. 아직도 머릿속에 그리는 풍경이 남아 있을려나 모르겠다.

 

아침에 빗소리에 잠에서 깨어 난다. 밖을 보니 쏟아 붓는다고 할만큼 비가 내린다. 비가오니 만나는거 취소해야겠다고 전화를 할까 망설이다가 걍 얼굴이라도 보자고 생각이 바뀐다. 11시경에는 빗발도 줄어들고 다행히도 먹구름이 옅어지기 시작한다. 전화안하길 잘 했다.

 

집을 나서는데 마눌이 김치해야 하는데 어딜가냐고 궁시렁거린다. 문방구 보라는 소리다. 울마눌이 오만제단을 알리도 없지만 옛날친구들 만나서 오만제단에 갈거라고 나온다.  송내에서 영수태우고 신앙촌입구에서 영철이형 태우고 재근이 입원한 병원에 간다.

 

영철이형이 원선이도 사진찍어야 한다며 기어히 한번더 찍었네요

재근이는 좀 나아졌나 했더니만 왼다리가 휘어 경과를 더 봐야 하지만 안좋으면 6개월이상 병원치료를 받아야 한단다. 휜정도가 눈으로도 확연한데 장시간 병원생활하는 것도 그렇지만 보험관계도 잘되어야 할텐데.....

 

안내부 그만두고 오늘에야 오만제단을 처음 올라가 보니 근 30년은 지났나 보다. 가면서도 혹시나 못들어가게 하면 어쩌나 한다. 오만제단 입구를 철책으로 막아 놓아 지금은 아무나 못들어가는데 간장사러 왔다고하면 열어준다는데 안되면 그렇게도 해보자고 한다.

 

옆에서 길을 갈차주고 운전하는데 도모지 위치감각이 없다. 아파트가 지어진 후에 처음 가봤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머리속에 그려져 있던 신앙촌이 아니다. 유년시절이 송두리채 없어져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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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머리산이랑 학교길의 신작로가 안보이니 이렇게 허전할 수가... 아파트사잇길 언덕을 오르니 삥 둘러쳐진 철책이 보이고 들머리엔 초소같은 것도 하나 보인다. 오만제단 입구란다.

 

발칸포가 자리잡기전 비가오면 수영을 하기도 했던 뒷편의 거대한 바위돌은 어디로 갔을까...

다행히도 철문은 열려 있고 제지하는 사람도 안보인다.

 

몇굽이를 도니 어느새 꼭대기다. 예전엔 이길이 엄청 길고 꾸불꾸불거리는 길이었는데 ... 다들 하나같이 "이 길이 이리 짧은 길이었냐"고 한다. 이길 초입에 남자숙소방향의 넓은 돌계단길이 있다. 안내부할때 이곳에서부터 할머니 할아버지 등을 밀었었다. 밀기 싫어서 농땡이도 많이 폈는데 지금은 잡초만 무성하고 아래에서 올려다 보니 버려진 신전길같기만 하다.

 

산꼭대기 오만제단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추억은 가슴속에 있을 때 추억이지 그것을 들추었을 때는 추억이 아니다'라고 했는데 오늘은 그말이 딱 들어맞는 날이다. 머릿속의 오만제단은 없어졌다. 애초에 코스모스를 기대했던것 자체가 잘못되었던 거다. 울퉁불퉁한 허연바윗돌과 코스모스위로 나르는 잠자리는 어디에도 없었다. 볼품없는 회색건물만 덩그러니 보인다.

 

 

여자화장실자리

김선생이 쓰던 경비실, 여자화장실, 자갈이 깔렸던 안내부실, 뭔 바람이 불었는지 잠시 권투를 했던 차고자리를 둘러보고 자판기커피를 빼들고 해도 해도 끝이 없는 옛날 이야기를 풀어 놓는다. 지금이야 서로 웃으면서 얘기할 수 있지만 상호형의 스트레스, 고교시절의 알듯모를듯한 썸싱, 우리동창들 삐딱선탓던 얘기, 담배사건, 머리좋은 영수만 기억하는 선후배 이름, 군불때던 안내부실일화, 빨간밍크담요.....

오만제단앞의 큰 계단길

자기가 국민학교애들 반사를 했다고 하는 재근이 말을 듣고 반사가 뭔지 몰랐었다.

 

말을 하다보니 '아~~~~마져 그런게 있었구나' 하게된다. 오랜시간이 지난건지 내가 안내부를 나이롱으로 한건지 아무튼 거의 잊고 살았던 일들을 오늘 다시 새겨본다. 

 

예전의 안내부실

까맣게 그을린 우리의 터전 안내부실은 기와와 입구의 기둥만 여전하고 예전 모습은 안보인다. 미루나무가 있던 자리에는 창고가 들어서 있었다. 안내부실 밑의 차고는 수풀에 가려져 슬라브만 보인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오르내렸던 제단앞의 넓은 계단길은 이게 그길이었나 싶다.   

 

오만제단은 우리가 그랬던 것처럼 지금도 우리같은 사람들이 보인다. 이해가 안가는 부분이지만 그때의 우리를 대신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무슨 행사가 있었는지 안팎에서 설겆이를 한다. 행사용 의자도 널려있어 궁금하던 차에 한 아주머니한테 '여기서 식사도 제공해요' 하고 물어본다. 한 무더기씩 차로 올라 오고 설명회를 하나보다.

 

 

나는 기억이 없는데 우리가 심었다는 느티나무와 한없이 높게만 보였던 종루

 바람도 불고 고기구울 자리도 마땅치 않아 재근이네 삼실로 자리를 옮긴다. 홍익이와 연락이 닿아 합류한다. 국민학교때 만물상을 했던 재근이네 집이 엄청 컸었는데....  한동안 비워둔 사무실이라 먼지만 풀풀거려 바닥물청소를 하고 원탁에 둘러앉아 삼겹살에 소주를 곁들이며 오만제단에서 못나눈 얘기를 이곳에서 다시 풀어 놓는다.

오만제단과 안내부실의 주변은 그 당시에도 컷지만 지금은 완전히 거목이 되어 있었다.

추억은 모두에게 아름다운 것인가 보다.

'고3때 다들 공부할 때인데 우리들은 뭣때문에 공부를 안하고 오만제단에 올라갔을까'를 화두로 가난했던 국민학교시절의 얘기들이 끝없이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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