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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방곡곡/경상남도

함안 가야읍-도항리 함안박물관 아라가야고분군

by 구석구석 2009. 6.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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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읍 도항리 748번지 함안박물관 055-580-3621

도항·말산리 고분군가야읍 사거리에서 군북방면으로 200m정도 직진 뒤 명덕여고 진입로로 좌회전하여 500m정도 직진하면 됨

 

도항·말산리 고분군정비사업의 일환으로 설립한 함안유물 전시관은 가야읍 도항리 748번지 삼기마을 옆쪽 5,200여평의 부지위에 70여억원의 예산을 들여 연건평 577평, 지하1층, 지상 2층으로 2003년 10월 건립되었다. 내부시설에 전시된 유물은 92년 가야읍 도항리 아파트 신축공사시 출토된 4∼5세기때 수장층의 말갑옷, 환두 대도,옥재목걸이와 같은 지배계급의 유 물과 수레바퀴모양토기, 화염형투창고배 등의 토기류를 비롯해 도항·말산리 고분군 일원에서 출토된 안라국의 유물이 전시되어 있다.

 

* 제 1전시실
함안의 역사연표와 가야시기 안라국의 형성과 멸망과정, 안라국의 대표적인 유도적인 도항, 말산리고분군, 안라국의 고분군과 산성, 안라국의 왕궁지 등을 모형으로 제작하여 함안의 역사변천상과 안라국의 역사를 중심으로 구성하였다.

* 제 2전시실
함안지역에서 확인된 가 시기별 무덤형태를 통해 함안지역 고분문화의 변천과정을 이해할 수 있다. 시기별 무덤형태의 변화는 독널무덤→널무덤→덧널무덤→돌덧널무덤→돌방무덤의 순서로 변화하는 것을 알수 있다.

* 제 3전시실
삼한·삼국시대에 함안지역을 주 무대로 활동한 안야·안라국인들의 무덤에서 출토된 유물들을 중심으로 구성하여 당시인의 토기문화와 철기문화를 이해하도록 구성하였다.

* 제 4전시실
함안지역의 대표적인 토기인 불꼿무늬토기와 외래계토기를 통해 안라국의영역과 대외관계를 알 수 있게 하였다. 또한 마갑총에서 출토된 말갑옷을 비롯하여 마장무사를 복원하여 안라국의 수준높은 철기문화를 알수 있게 하였다. 이 외 함안지역의 대표적인 산성인 성산 산성출토목간을 전시하였다.

* 제 5전시실
함안의 각종문화재사진과 함안의 근대역사연표 및 관련 전설과 설화,조선시대 함안의 향교와 서원을 위주로 구성하였다. 이 외 제방축조과정과 세시풍속 및 씨아,물레, 바디등의 베 짜는 도구를 전시하여 함안의 근대문화를 보여 주고자 하였다.

* 기획전시실
함안박물관 개관기념으로 기획전시실에는 함안군민이 기증한 유물 약 300여점 중 이를 선별하여 약 100여점을 전시하였다.유물의 내용은 청동기시대의 간돌검과 돌도끼를 비롯하여 근대유물에 이르기까지 다양하지만 주로 안라국시기의 토기들이 주류를 이룬다 특히 4~5세기 대의 안라토기 가운데 i자형 굽다리접시, 불꽃무늬굽다리접시, 화료형그릇받침, 문양뚜껑,입큰단지 등 지금까지 학계에 보고되지 않은 새로운 연구자료이다. 또한 그 출처가 명확하여 학술적 가치가 매우 높다고 할 수 있다.

 

이 외 백제계, 신라계, 외계, 고령의 가라 국계, 고성의 고자국계, 창녕의 비사벌계 등의 다양한 외례계토기 등도 포함되어 있어 당시 안라국의 대외관계를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 제공하였다.

* 야외전시장
청동기시대의 군북동촌리26호 고인돌과 도동마을 삼기선돌을 전시하였다. 특히 군북 동촌리26호 고인돌의 상석에는 모두 398개의 알구멍이 새겨져있어 주목된다. 이에 대해 다산과 풍요를 상징하는 신앙의 대상물 또는 별자리를 형상화한 천문도라는 주장이 제기 되었다. 안라국시기의 조형물로는국립창원문화재 연구소에서 발굴조사한 도항리 (문) 4호분인 돌방무덤을 그대로 복원하여 재현하였다. 또한 안라국시기의 대표적인 토기인 수레바퀴모양 토기를 청동으로 재현하여 전시하였다.

 

도항리·말산리고분군

남해고속도로 함안IC에서 가야읍 소재지로 진입하여 함안면방면 국도79호선으로 약 5분 정도의 거리이며 함안군청 옆에 위치함.

 

함안군은 남쪽이 높고, 북쪽이 낮은 분지로 북과 서는 낙동강과 남강으로 남과 동은 600m가 넘는 산으로 둘러 있다. 이 고분군은 아라가야의 도읍지였던 가야읍 도항 · 말산리 일원에 위치하며 찬란한 가야문화를 생생하게 보여주는 유적이다. 아라가야 왕들의 무덤으로 생각되는 100여기의 대형고분들은 높은 곳에 열을 지어 위치하고, 그 아래로 1,000여기나 되는 중소형의 고분들이 분포하고 있다. 이 고분군은 일제시대에 처음 조사되었는데, 당시 제34호분은 봉토(封土)의 지름이 39.3m, 높이가 9.7m나 되는 최대 규모의 왕릉이었다.최근에는 고분군 북쪽끝 자락에 있는 마갑총에서 고구려의 고분벽화에 그려진 것과 같은 말갑옷이 출토되었고, 다섯 사람의 순장 인골(人骨)이 확인된 제8호분의 조사로 더욱 유명해지게 되었다.

현재까지의 발굴조사를 통해 알게 된 사실은 다음과 같다.
첫째, 공자모양의 굽다리접시(工字形 高杯)불꽃모양의 창을 낸 굽다리접시(火焰型透窓高杯)는 아라가야가 여러 가야 중에서도 독특한 문화를 가진 독자적인 정치세력 이었음을 확인시켜 주었다.


둘째, 각종의 큰칼 · 갑옷 · 말갑옷 · 새가 달린 비늘쇠(有刺利器)같은 철제품과 금·은 ·유리· 옥으로 만든 장신구들은 아라가야 왕의 강력한 위상을 보여 주었다.


셋째, 기원전후부터 6세기 중반까지 만들어진 이 고분군은 아라가야의 성립 · 발전 · 멸망의 과정을 상세하게 보여주고 있다.

 

넷째, 이 고분군의 출토품과 같은 유물은 동래 · 경주 · 일본에서도 확인되고 있다. 아라 가야의 산물이 다른 가야와 신라, 일본열도의 왜까지 수출되었음을 보여준다.


다섯째, 고분군의 규모와 화려한 유물들은 6세기경의 아라가야가 남부가야의 중심으로 주변국들과 교섭하던 모습을 그려볼 수 있게 해주었다. 현재는 이 고분군이 위치한 곳을 끝 말자의 말산(末山)이라 부르고 있다. 그러나 말산은 말이산으로 불렸었다. 말이산(末伊山) 마리산은 머리산이었다.원래는 아라가야의 시조가 등장하고, 역대 왕들이 묻혔던 우두머리의 산이었으며,1962년 1월 21일 사적 제84 · 85호로 지정되었고, 본고분군의 효율적인 보존관리를 위해 2001년도에 기본계획을 수립하였다. 이 계획에 따라 인근 문화유적과 함께 역사탐방 코스로 개발해 나갈 것이다.

도항 말산리 아라가야 고분군

 

 

함안 아라가야 고분군은 가야읍에서 함안면 방향으로 가는 지방도를 따라가면, 오른쪽 야산 구릉지대에 남북으로 2km 이상 대형 고분 40여기 등, 총 153기가 밀집 되어 있는 전국 최대의 고분지역이다. 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함안은 본래 아시랑국, '아라가야'라 하기도 하였으며, 가야는 신라 때 멸망당했으므로 이 고분군들은 가야 국왕들의 묘로 보인다.

 

함안면 괴산리 547  무진정 유형문화재 제158호

가야읍 사거리에서 함안면 방면 국도 79호선으로 약 3km 지점에 위치함

 

무진정은 풍류를 즐기기 위해 언덕 위에 지어진 정자이다. 이 정자는 조선 명종 22년(1567)에 무진 조삼선생의 덕을 추모하기 위해 그의 후손들이 세우고, 선생의 호를 따서 무진정이라고 하였다. 무진은 조선 성종 14년(1483) 진사시에 합격하고 중종 2년(1507) 문과에 급제하여 함양·창원·대구·성주·상주의 목사를 지냈고, 사헌부 집의 겸 춘추관 편수관을 지냈다. 

 

사진출처 : 한국관광공사

 

앞면 3칸·옆면 2칸의 건물로 지붕은 옆면이 여덟 팔자 모양과 비슷한 팔작지붕이다. 앞면의 가운데 칸에는 온돌방이 아닌 마루방으로 꾸며져 있고, 정자 바닥은 모두 바닥에서 띄워 올린 누마루 형식이다. 기둥 위에 아무런 장식이나 조각물이 없어 전체적으로 단순하고 소박한 건물로 조선 전기의 정자 형식을 잘 보여주고 있으며, 1976년 12월 20일 유형문화재 제158호로 지정되어 보호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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