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통하게 살 오른 9~10월이 제철… 골다공증·혈관에 좋은 ‘가을 보약’
'가을 전어(錢魚)’. 소주 한 잔에 전어회 한 점 입 안에 넣으면 유난히 더웠던 여름이 가고 가을이 왔음을 확실히 느낄 수 있다. 올해도 어김없이 전어가 가을을 알리고 있다. 가을이 되면 전어는 기름이 사르르 돌아 씹히는 느낌이 좋아지고 고소해져 그 맛이 최고조에 이른다.
전어는 봄에 태어나 여름 동안 플랑크톤과 유기물을 먹고 자라며 가을이 되면 월동준비를 한다. 그 중 살이 가장 통통하게 오르는 철이 바로 지금, 9월과 10월 사이이다. 봄에는 100g당 지방이 2.4%에 불과하지만 이때는 6%로 증가하고 뼈도 부드러워진다. 반면 여름에는 기름기가 적고 겨울에는 뼈가 억세 맛이 떨어진다. 가을 전어가 유독 고소한 이유다.
전어의 맛을 찬미하는 표현도 가지각색이다. ‘가을 전어는 깨가 서말’ ‘집 나간 며느리도 돌아오게 만드는 전어’ ‘전어는 며느리가 친정 간 사이 문을 걸어 잠그고 먹는다’ 등. 최근에는 ‘자살을 위해 강둑에 섰던 사람도 전어 굽는 냄새에 마음을 돌린다’는 표현까지 생겼다.
‘자산어보’에는 ‘기름이 많고 달콤하다’고 기록돼 있다. 이처럼 전어는 단순히 고소한 맛만을 무기로 삼지는 않는다. 고소함에 더해진 달콤함이 조화를 이뤄서 매력적인 맛을 내는 것이다.
전어는 다 자라도 몸 길이가 30㎝ 안팎일 정도로 작다. 그 중 15~20㎝ 정도인 것이 가장 맛이 좋다. 너무 큰 것은 뼈가 억세고, 작은 것은 살이 퍼석퍼석하다. 살이 여물고 불그스름하며, 씹을수록 고소하고 은은한 맛이 더해지는 것이 한창 물 오른 좋은 전어이다.
전어는 성질이 급하기로 유명하다. 계속해서 움직이고, 물 밖에서는 물론 수족관 안에서도 급한 성질로 인해 오래 살지 못한다. 이런 급한 성질 때문에 양식이 어려운 생선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 그물에 걸린 전어 역시 빨리 죽기 때문에 어부들도 그물코에 잘 걸리지 않도록 전어잡이 그물을 따로 만들 정도이다. 수십 미터 길이의 그물을 길게 둘러 전어떼를 포획한 후 그물을 끌어올린다.
전어를 먹는 방법도 다양하다. 전어회는 여느 생선회와는 다른 맛을 내는 별미 중의 별미다. 예리한 칼로 섬세하게 포를 뜨기보다는 투박하다 싶을 정도로 썰어야 특유의 찰진 맛을 느낄 수 있다. 혹자는 “전어회에 있어서만은 베테랑 주방장의 솜씨 좋은 칼날이 허름한 횟집 주방장의 무딘 칼날을 따라오지 못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예쁜 그릇에 정갈하게 담겨지기보다 막그릇에 대충 던져 넣은 듯 담겨진 것이 전어에는 더 어울린다고도 한다. 그래서 뼈째 썰어야 함은 물론이다. 전어의 고소함이 뼛속까지 배어 있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양념장. 생선회를 먹을 때 고추냉이를 푼 간장소스나 초고추장에 찍어 먹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전어는 된장에 찍어 먹어야 제 맛이다. 또 쌈으로 먹을 때는 상추보다 깻잎이 어울린다. 초장은 식초가 전어의 고소함을 약화시키고 상추는 전어 특유의 비린 맛을 그대로 전하기 때문이다.
우선 깻잎을 들고 전어를 두세 점 듬뿍 올린다. 그 위에 다진 마늘, 고추, 참기름 등을 섞은 된장을 곁들여 한 입 씹으면 담백하면서도 고소한 맛이 입 안 가득 퍼진다. 식초를 서너 방울 떨어뜨린 쌀뜨물에 전어를 10~20분간 담갔다 빼면 비린내를 제거할 수 있다.
회를 즐겨먹는 사람도 “전어회는 느끼하다”고 말하는 경우가 있다. 이럴 때는 회무침으로 먹어 보자. 양파, 무, 오이 등 각종 야채와 새콤달콤한 초고추장을 넣어 무치면 된다. 맛은 물론이고 풍부한 야채의 영양까지 더해진 보양식이 된다. 여기에 밥과 참기름을 넣고 슥슥 비비면 고소한 맛이 일품인 전어회 무침 비빔밥으로 즐길 수 있다. 음식점에 따라 양념장을 만드는 방법에 차이가 있다. 지역에 따라 다양한 야채가 좀 더 가미되거나 콩가루를 뿌려내기도 한다.
하지만 뭐니뭐니 해도 전어를 가장 맛있게 먹을 수 있는 방법은 다름 아닌 구이. 미식가들이 꼽는 최고의 방법이고, 특히 전어회에 적응하기 힘든 초심자들에게 권할 만하다. 전어에 대한 다양한 표현에서도 알 수 있듯 전어구이는 맛 이상으로 향에 그 매력포인트가 있다. 고소한 냄새가 1㎞ 밖까지 퍼질 정도라니 말이다. 전어에 칼집을 내고 굵은 소금을 뿌린 뒤 숯불이나 연탄불에 얹어 석쇠에 굽는 것이 최고의 방법이다. 서서히 익어갈수록 노란빛의 기름이 지글지글 끓어오르면, 거기에서 퍼지는 향이 어찌 깨 서 말만큼의 냄새만 풍기겠는가. 여기에 소주 한잔 곁들이면 가을의 풍미는 제대로 즐기는 것이다.
먹을 때는 머리부터 먹는 것이 좋다. ‘전어는 깨가 서 말’이라는 것도 바로 머리부분을 두고 하는 말이다. 굽는 과정에서 나는 연기를 머리가 가장 많이 흡수해서 고소함이 집중되기 때문이다. 그 다음 맛있는 것이 내장. 때문에 전어를 구울 때는 별다른 손질 없이 전체를 사용한다. 꼬리도 버리지 않고 먹는다. 구이용 전어는 급속 냉동해둔 것도 괜찮다. 활어를 그냥 구웠을 경우에는 살이 부서지기 때문이다.
전어는 젓갈로도 만드는데 산지(産地)에서조차 구하기가 쉽지는 않다. 전어 새끼로 담근 것은 엽삭젓(혹은 뒈미젓), 내장만을 모아 담근 것은 전어 속젓, 내장 중에서도 위(‘밤’이라고 한다)만 모아 담근 것을 전어 밤젓(또는 돔배젓)이라 한다. 호남지방에서는 전어로 깍두기를 담그기도 한다.
영양학적인 측면에서 보아도 가을 보약이라 불릴 만큼 뛰어나다. 전어 100g은 수분 71g, 단백질 25g, 지방 2g 등으로 이뤄져 있고 120㎉의 열량을 낸다. 일단 뼈째 먹는 생선인 만큼 칼슘이 굉장히 풍부해서 여성의 골다공증에 큰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간혹 가시를 발라내고 살점만 먹는 사람이 있는데, 그래서는 맛과 영양 모든 면에서 전어를 제대로 즐길 수 없다. 혈관질환 예방에도 효과적이라 특히 50대 이상 중장년층에 좋다.
DHA(607㎎), EPA(119㎎) 등과 같은 불포화지방산도 풍부하다. 따라서 콜레스테롤 저하·성인병 예방에 좋으며, 성장기 어린이나 수험생의 두뇌활동에도 도움을 준다. 단백질이 분해되어 생긴 글루타민산과 핵산은 간기능 강화 효과를 가져오는데, 숙취해소에 도움이 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또 인체에서 생성되지 않는 필수 아미노산이 8종류나 있고, 콜레스테롤과 체지방을 분해하는 타우린이 풍부하다. 비타민과 미네랄 성분은 피로회복과 피부미용에 효과가 있다. 특히 껍질에 많은 비타민 B2, B6 등은 빈혈·각기병을 예방하고, 비타민E는 노화방지에 탁월하다.
한방에서는 장을 깨끗이 하고 ‘식탁 위 소화제’라 불릴 정도로 위를 보호하는 기능이 뛰어나다고 한다. 전어의 살을 약재로 사용하여 위장 기능 강화와 부스럼 치료에 썼다. 이뇨작용도 있어 아침마다 몸이 붓고 팔다리가 무거운 증상, 그리고 방광의 원활한 활동에 도움이 된다. 영양학적으로 다시마와 궁합이 잘 맞는다. 전어는 산성, 다시마는 알칼리성이기 때문이다. 다시마에는 알긴산이 풍부해 변비예방에도 그만이다. 다만 생선회는 임산부가 섭취할 시 세균 또는 중금속이 태아에게 안 좋은 영향을 미칠 수도 있으므로 최대한 싱싱한 것을 섭취해야 한다.
전어는 청어목 청어과에 속하는 물고기로 등쪽은 암청색이고 배쪽은 은백색이다. 서식장소는 수심이 30m이내인 연안이다. 남쪽에서 월동을 하고 4~6월부터 난류를 타고 북상하여 강 하구에서 산란한다. 알을 낳느라 온 힘을 빼기에 봄 전어는 맛이 떨어진다. 6~9월에는 만 밖으로 나갔다가 다시 만 안으로 들어온다.
지방에서는 대전어, 엿사리, 전어사리, 새갈치, 엽삭 등으로도 부른다. 옛 문헌에는 전어(箭魚)로도 표기했고, 정약전이 흑산도 유배 시절에 쓴 ‘자산어보’에는 ‘기름이 많고 달콤하다’고 기록되어 있다.
어획은 보통 9월, 이르면 8월부터 12월까지 이어지지만 10월이 지나면 전어의 이동이 시작되어 어획이 쉽지 않으므로 지금이 전어를 즐길 수 있는 적기(適期)다. 무엇보다 ‘봄 도다리, 가을 전어’라 부르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서울로 들어오는 전어는 주로 서해산이다. 서천, 군산, 격포항 등에서 잡힌 것이다. 남해산 전어는 부산, 마산, 울산 등으로 수송된다.
요즘에는 운송수단이 좋아져 서울을 비롯한 내륙 사람들도 쉽게 먹을 수 있지만 전어는 육지에서 흔한 생선이 아니었다. 천성적으로 성격이 급해 잡힌 후 이틀을 넘기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전어는 예로부터 신분의 높고 낮음에 관계없이 사랑받아 온 음식 중 하나다. 조선 실학자 서유구의 저서 ‘임원경제지’에는 ‘기름지고 맛이 좋아 상인들이 염장해서 파는데 신분의 귀하고 천함이 없이 모두 좋아한다. 맛이 뛰어나 이를 사려는 사람이 돈을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전어라 한다’고 기록돼 있다. 이웃나라 일본에서도 축제나 제사 때 반드시 상에 올릴 정도로 중요한 음식으로 인정 받고 있다.
하지만 요즘만큼 전어가 대우를 받았던 적은 없었던 듯하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찾는 사람이 적어 만원짜리 한 장이면 한 바구니 가득 살 수 있었지만, 최근 수요가 늘어 귀하신 몸이 되었다.
‘세종실록 지리지’와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는 충청도, 경상도, 전라도, 함경도에서 전어가 많이 나는 것으로 전한다. 세계적으로는 동중국해, 일본 중부이남 등에 분포하고 있다. 경남 사천과 전남 광양에는 전어잡이 관련 갈방아소리와 전어잡이노래가 전해온다. 갈방아소리는 전어잡이 그물 작업을 할 때 부르는 노래이며, 전어잡이노래는 선창으로 돌아오면서 부르는 진(느린)가래소리, 풍장(농악)소리로 구성되어 있다.
전어를 맛있게 먹는 법
15~20㎝ 크기가 가장 맛있어
회 뜰 땐 투박하게 뼈째 썰어야
깻잎에 싸고 된장에 찍어 먹으면 제 맛
쌀뜨물에 담가놓으면 비린내도 없어져
구이는 머리와 내장이 ‘일미’
“찾아가서 먹자” 전국 전어축제
서천 홍원항 전어축제
충남 서천 홍원항은 수도권에서 가장 많이 찾아가는 전어 산지로 2000년부터 축제를 시작했다. 맨손으로 전어 잡기 대회, 전어 OX 퀴즈, 관광객 전어 썰기 대회, 전어 정량 달기 대회, 전어구이 시식회 등 다양한 체험이벤트가 펼쳐질 예정이다. 전어젓도 맛볼 수 있다. 9월 29일~10월 12일. 문의 (041)952-9123
광양 망덕포구 전어축제
축제 첫째 날인 9월 14일 저녁에는 섬진강을 배경으로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라는 주제로 한밤의 음악회가 열린다. 길놀이, 청소년 페스티벌, 스포츠댄스, 국악페스티벌, 관현악공연, 시민노래자랑, 각설이공연, 축하불꽃놀이 등 다양한 공연과 전어잡이 시연이 펼쳐진다. 9월 14~16일. 문의 (061)797-2721
장흥 전어축제
전남 장흥군 회진항에서 열린다. 각설이타령, 고교 동아리 공연, 국악공연 등 각종 행사와 향토음식점이 마련된다. 이맘때쯤이면 절정을 이루는 천관산의 억새가 끝도 없이 펼쳐지니 가벼운 차림으로 산에 올라 보는 것도 좋겠다. 9월 22~24일. 문의 (061)863-7071
보령 무창포 대하전어축제
가을 전어와 함께 유명한 것이 대하다. 천수만에서 잡히는 싱싱한 대하와 전어를 동시에 맛볼 수 있다. 다양한 이벤트와 갯벌에서 조개, 대하를 잡는 체험행사도 마련돼 있으니 여행 기분을 만끽하기에 그만이다. 9월 22일~10월 14일. 문의 (041)936-3510
보성 득량만 전어축제
‘다향의 고장’ 전남 보성에서도 전어 축제가 열린다. 국내에서 가장 넓은 갯벌 중 하나인 득량만에서 갓 잡아 올린 전어를 이용한 시식행사는 물론, 해수풀장에서 직접 잡은 전어를 구워볼 수 있는 코너도 마련된다. 조수간만의 차가 커서 살이 쫄깃쫄깃한 것이 특징이다. 10월 1~3일. 문의 (061)850-5611
“서울에서 먹자” 전어 맛집
서울 잠원동 ‘진도횟집’(02-548-6441)은 식당 주인이 안면도 등지에서 직접 배를 띄워 잡은 생선을 쓴다. 전어 회, 구이, 무침 등이 포함되어 있고, 매일 음식이 바뀌는 풀코스가 4만원. 뽀얗고 진한 생선곰국이 별미다.
서울 성북구 성신여대 근처 ‘구룡포 전어횟집’(02-927-5340)은 직각으로 전어를 썰지 않고 비스듬하게 칼집을 넣어 자른다. 전어뼈회·구이가 1접시 1만5000원씩이다. 4인 테이블이 8개인 작은 횟집이지만 인테리어가 깔끔하다.
‘여수 오동도’는 전어무침(3만5000원·4만5000원·5만5000원) 양념이 독특하다. 된장 중심의 양념장에 전어뼈회를 무쳐낸다. 여기에 무, 깻잎, 깨, 양파 등을 넣어 버무린다. 가격은 이 식당의 ‘대치점’ 기준. 고덕동 본점·목동점과 조금씩 다르다. 고덕동 본점 (02)427-5551, 대치점 (02)557-0039, 목동점 (02)2652-2237
매콤달콤한 양념이 강하고 참기름 냄새가 많이 나는 ‘왕십리 전어마을’(02-2292-6831)의 전어무침(2만5000원)에는 풍성한 전라도 손맛이 배어 있다. 전어회는 ‘대’ 3만원, ‘중’ 2만원.
낙원상가 뒷골목 잡어회 전문점 ‘영일식당’(02-742-3213)에서는 전어 등 여러 생선을 섞어 1접시에 2만5000원을 받는다.
논현동 ‘진동횟집’(02-544-2179)은 회·무침 모두 1인분 2만8000원이다.
주간조선 / 서일호 기자 ihseo@chosun.com 이현주 음식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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